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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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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하느님께서 규정과 법규들을 실천하라고 명령하신다.
이는 곧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의 소유가 되어
그분의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는 약속을 뜻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는 미워하라는
구약의 말씀을 확장시키신다.
주님을 따르는 이라면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어야 한다(복음).
<너희는 너희 주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어라.>
▥ 신명기의 말씀입니다. 26,16-19
모세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오늘 주 너희 하느님께서 이 규정과 법규들을
실천하라고 너희에게 명령하신다.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그것들을 명심하여 실천해야 한다.
주님을 두고 오늘 너희는 이렇게 선언하였다.
곧 주님께서 너희의 하느님이 되시고, 너희는 그분의 길을 따라 걸으며,
그분의 규정과 계명과 법규들을 지키고, 그분의 말씀을 듣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오늘 너희를 두고 이렇게 선언하셨다.
곧 주님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그분 소유의 백성이 되고 그분의 모든 계명을 지키며,
그분께서는 너희를 당신께서 만드신 모든 민족들 위에 높이 세우시어,
너희가 찬양과 명성과 영화를 받게 하시고, 너희가 주 너희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분의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시겠다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처럼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43-4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네 원수는 미워해야 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
사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그것은 세리들도 하지 않느냐?
그리고 너희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한다면,
너희가 남보다 잘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그런 것은 다른 민족 사람들도 하지 않느냐?
그러므로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계명을 주셨습니다.
이로써 그들이 거룩한 백성이 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그 거룩함은 이웃을 사랑하라는 윤리적 가르침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습니다.
따라서 이웃에 대한 의무를 제외한,
하느님에 대한 경건함만을 이르는 거룩함은 위선이고 거짓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계시된 사랑의 계명이 무엇을 뜻하는지
온전히 깨달으려면 민족, 혈연, 친분에 사랑을
제한시키는 좁은 마음을 넓혀야 합니다. 이것이 계명의 완성입니다.
이 완성은 예수님에게서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가 좋아하고 자기에게 속한 사람만이
'이웃'이라는 닫힌 마음을 활짝 열고자 하십니다.
그래서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사람들이 생각하는 계명의 한계를 넘어서시며,
오히려 계명을 참되게 완성하십니다.
이러한 완성의 씨앗들은 사실 구약 성경 안에도 간직되어 있었습니다.
고아와 과부를 돌보고 떠돌이를 환대하라는 가르침은,
사랑의 계명은 결코 자신의 울타리 안에 있는
사람들끼리 나누는 것으로 제한될 수 없음을 암시합니다.
자신과 다르고, '우리'라 부르기를 꺼리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
생겨나는 자리에서 사랑의 계명은 완성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상계에서 즐겨 쓰는 말로 하자면,
'타자'(他者)를 받아들이는 곳에서 사랑의 계명이 온전한 의미를 찾습니다.
이러한 성경의 근본정신에서 폭력적이고 혼돈된 세계를
벗어날 길을 찾는 현대 사상은 다시금 희망의 빛을 찾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현대 철학에 깊은 영향을 끼친
프랑스의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입니다.
그는 '타인의 얼굴'을 대면하고 차마 외면하지 못하는
절대적 책임성에서 윤리의 근원을 발견합니다.
그의 이러한 철학에 영감을 준 것은
바로 성경이 말하는 사랑의 계명이기도 합니다.
회개는 우리에게 익숙한 사랑의 의무의 한계를 넘어서는 도전입니다.
타인의 얼굴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마주 보고 책임감 있게 받아 안으려는 노력입니다.
자신의 안위와 자기만족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오직 사랑이
온전해지고 완전해지기를 갈망하며 끝끝내 멈추지 않는 발걸음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 주님 계신 어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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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사즐모(댄스스포츠 사교댄스모임 - 라틴, 모던, 사교, 리듬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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