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5. 15. 01:26ㆍ산 이야기
******* 전 한국산악회 회장님이신 노산 이은상(李殷相) 선생님께서 지으신 <노산문선>이란 책을 지인으로부터 구하여
책표지는 초간본의 것을 내용은 재간본(단기4287년 9월 30일 발행)의 것을 복사하여 책으로 만들어서 읽고 있습니다.
초간본의 책표지는 호(湖)자 낙관이 찍힌 것으로 뒤안의 대숲 앞으로 뱃집형 초가 한칸집이 있고, 앞마당에는 차를 다리는
저자인 듯한 분께서 풍로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부채질을 하시며 바람 피우는 구도를 단순한 선묘로 노산 선생님의 평소 모습,
또는 한평생에 소원하시던 산거(山居)를 소박하게 표현한 걸작으로 보입니다.
대숲 위 하늘에는 노산 선생님의 아호를 상징하는 듯 해오라비(노 鷺) 3마리가 유유히 날고 있습니다.
산거를 계획할 때에는 거창한 계획이나, 요란한 공사를 되도록 피하고 노산문선 초간본의 표지화 처럼 단칸 초가집에서 이슬과
비를 피할 수 있고, 제 한몸 누울 수 있고, 찾아 오신 손님 3~4명 앉아 쉬거나 주무실 최소한의 공간만 있으면 될 것 같습니다.
그래야 원래 산의 주인이신 산천초목들과 뭇 산짐승과 물고기 등과 어울리면서 그들의 생활 터전을 최소한으로 양보받아
함께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이 <노산문선>을 읽는 내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
본문 내용 중 설악행각(雪嶽行脚) 장의 "행각(行脚) 전야(前夜)의 등하(燈下)에서"라는 제목의 등행을 떠나시기 전날의 소회를
글로써 표현하신 것이 있어 참고 삼아 소개하여 드리겠습니다.
<<깊은 밤-홀로 발낭(鉢囊)을 앞에 놓고, 이것 저것 여구(旅具)를 만지다 말고, 창(窓) 밖에 듣는 비소리에 평일(平日)과
달리 구슬픈 생각조차 일어나는 구월(九月) 이십(二十) 구일(九日) 밤.
행장(行裝)을 어질러 놓은 채로 돌아 앉아, 안두(案頭)를 향해 등(燈)과 마주 아무 말이 없는 동안, 내 머리에 문득 떠오르는 것이
<홍과(鴻瓜)>의 두자.
기러기 멀리 돌아가면서 발톱으로 자국을 눈 위에 내어, 제 지나간 곳을 기표(記票)해 두어도, 후일(後日)에 다시 와 보면,
그 눈은 다 녹고, 발ㅅ자국은 스러져, 어딘지 알ㅅ길이 없는 것이라, 고인(古人)이 일찍 사람의 유력(遊歷) 무적(無跡)을
일러 <홍과(鴻瓜)>라 하였습니다.
이제 저 <설악(雪嶽)>명산(名山)을 찾아가는 이 사람도 우매(愚目+未)할사 한개의 홍과여인(鴻瓜旅人)이 아니오리까
그러면 누구 있어 묻기를 <흔불가지(痕不可知)의 홍과행(鴻瓜行)을 무슨 일로 짓느냐>할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할 때, 머물러 있어 또한 그 자취 없을진대, 가고 옴을 그 누구라 묻고 대답(對答)할게 있으오리까.
다만 나와 함께 저 강산(江山)이 여기에 있고, 강산(江山)과 더불어 이 내가 지금에 있어, 또한 주주야야(晝晝夜夜)에
내-저를 연연(戀戀)하고, 시시절절(時時節節)에 저-나를 초초(招招)하므로, 이제 내-가는 곳이 강산(江山)이요,
강산(江山)으로 가는 자-나인 것으로만 생각하면, 다시 더 가부(可否)를 장론(長論)할 게 없을 겝니다. >> ......후략.....
**** 노산문선 초간본 표지 스캔 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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