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대동지지(大東地志) / 집주 문경사

2014. 5. 14. 19:59나의 이야기






       

15. 대동지지(大東地志)  집주 문경사 / 개인발간 향토자료 

2012/08/07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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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삼국사기지리지고려사지리지 경상도지리지 세종실록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부 록

  

 

 

 集註                         

  문     경     사  

 

 

15대동지지(大東地志)

 

차        례

  해 설
  번 역
      문경(聞慶)
  연혁(沿革)
  관원(官員)
  고읍(古邑)
  방면(坊面)
  산수(山水)
  영로(嶺路)
  성지(城池)
  창고(倉庫)
  역도(驛道)
  보발(步撥)
  진도(津渡)
  토산(土産)
  누정(樓亭)
  단유(壇
)
  전고(典故)
     예천(醴泉)
     상주(尙州)


  [해 설]

  고산자(古山子) 김정호(金正浩)는 1861년(철종 12)에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를 제작 간행했으며 대동지지는 여지승람의 착오를 정정 보완하기 위하여 편찬한 지리서로 동국여지고(東國輿地攷)라고도 하는 필사본 32권 15책이다.

  내용은 총괄, 팔도지지(八道地志), 산수고(山水考), 변방고(邊方考), 정리고(程里考), 역대지(歷代志) 등 6개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팔도지지 가운데 경상도는 11~14권까지이다. 이 지리지의 특징은 동국여지승람식 체제를 바꾸어 대명일통지의 형식을 취하여 고사, 고전, 시문, 인물은 생략했다. 현황 파악에 주력하여 1828년(순조 무자년) 현재의 방면, 전결, 호구, 도리(道里)를 상세히 기록했고, 역사의식에 입각하여 전고(典故) 항목을 설치하고 고적의 고증적 기록이 있다. 국내외 65종의 방다한 서적을 인용했다.

경상도

-

            문경현

-

   문경 마성 호계 점촌 가은 농암

 

 └ 

           상주목

-

   영순 산양 산북

 

           예천군

   동로

  현재의 문경이 문경현 외에 상주, 예천에 포함된 것은 해당 부분만 번역했다.
  

  [번 역]

문     경(聞慶)

  [연혁(沿革)]
   본래는 신라의 고사갈이성(高思葛伊城)인데 관문(冠文)이라고도 하였다. 757년(경덕왕 16년)에 관산으로 고치어 고령군(古寧郡)에 소속시켰다.
   940년(고려 태조 23년)에 문희군(聞喜郡)으로 고치고 1018년(현종 9년)에 상주에 소속시켰다가 뒤에 문경으로 고치었다. 1390년(공양왕 2년)에 감무를 두고 1413년(조선 태종 13년)에 현감을 두었다.

  [관원(官員)]
   현감 겸 상주진관(尙州鎭管) 병마절제도위(兵馬節制都尉) 조령산성(鳥嶺山城) 수성장(守城將)이 1원(員)이다.

  [고읍(古邑)]
   가은(加恩) : 서남쪽 41리에 있고 본래 신라의 가해현(加害縣)이었는데 757년(경덕왕 16년)에 가선(嘉善)이라고 고치어 고령군(古寧郡)의 소속으로 하였다.
  940년(고려 태조 23년)에 가은으로 고치고 1018년(현종 9년)에 상주에 소속시켰다가 1390년(공양왕 2년)에 문경현에 소속하게 되었다.
   호계(虎溪) : 동남쪽 40리에 있고 본래 신라의 호측현이었으며 배산성(拜山城)이라고도 하였는데 757년(경덕왕 16년)에 호계로 고치어 고령군(古寧郡)에 소속하였다. 1018년(고려 현종 9년)에 상주에 소속하였으며 조선시대 태종 때에 문경현에 소속되었다.

  [방면(坊面)]
   읍내(邑內) : 끝이 5리다
   초곡(草谷) : 서북쪽으로 처음은 7리이고 끝은 28리다.
   신동(身東) : 동남쪽으로 처음은 7리이고 끝은 20리다.
   신남(身南) : 남쪽으로 처음은 5리이고 끝은 25리다.
   신북(身北) : 동북쪽으로 처음은 10리이고 끝은 40리다.
   가현내(加縣內) : 서남쪽으로 처음은 40리이고 끝은 50리다.
   가동(加東) : 남쪽으로 처음은 28리이고 끝은 40리다.
   가남(加南) : 서남쪽으로 처음은 53리이고 끝은 65리다.
   가서(加西) : 서남쪽으로 처음은 50리이고 끝은 90리다.
   가북(加北) : 서쪽으로 처음은 25리이고 끝은 70리다. 이상 5면은 옛 가은현이다.
   호현내(虎縣內) : 동남쪽으로 처음은 27리이고 끝은 45리다.
   호남(虎南) : 동남쪽으로 처음은 40리이고 끝은 50리다.
   호서(虎西) : 동남쪽으로 처음은 25리이고 끝은 50리다. 이상 위 3면은 옛 호계현이다.
   벌천부곡(伐川部谷) : 북쪽 15리다.
   마량부곡(馬良部谷) : 옛 호계현에 있다.
   잉을항소(仍乙項所) : 동쪽 10리다.
   고곡(高谷)부곡, 견천(絹川)부곡, 소산천(小山川)부곡

  [산수(山水)]
   주흘산(主屹山) : 북쪽 1리다.
   관혜산(冠兮山) : 남쪽 4리다.
   희양산(曦陽山) : 서쪽 30리 연풍경계이고 봉암사[양산사라고도 한다]가 있다. 산 위에 백운대가 있고 산의 서남쪽에 구룡봉이 있다. 산의 서쪽 20여리에 외선유동이 있고 그의 서쪽 10여리에는 내선유동으로 시내와 돌이 어우러져 경치가 아주 아름다운 곳이다.
   재목산(梓木山) : 옛 가은현의 남쪽 2리에 있다.
   장산(獐山) : 옛 호계현의 북쪽 1리에 있다.
   소둔산(所屯山) : 남쪽 15리에 있다.
   봉명산(鳳鳴山) : 동쪽 8리에 있고 금학사가 있다.
   화산(華山) : 청화산(靑華山)이라고도 하는데 옛 가은현의 서쪽, 본 현에서 70리 떨어진 곳으로 남쪽으로 보은의 속리산, 서쪽은 청주의 송면리에 닿고, 북쪽에 경치가 뛰어난 선유동.용유동이 있다.
   불일산(佛日山) : 옛 가은현 서남 20리에 있고 청화산과 서로 연결된다.
   대미산(黛眉山) : 동북쪽 30리이다.
   용뢰산(龍磊山) : 운달산이라고도 하며 동쪽 20리다.
   여산(廬山) : 옛 호계현의 서쪽이다.
   대야산(大耶山) : 희양산의 남쪽 갈래로 제일 높은 봉우리가 비로봉(毘盧峯)이고 선유동의 주산이다. 서쪽의 청주 화양동(華陽洞)이 30리다.
   관방산(官方山) : 현의 서쪽   리 이다.
   용유동(龍遊洞) : 청화산의 남쪽으로 골짜기 가운데 넓고 평평한 바위 모두에 큰 내가 휘돌아 흘러 돌의 모양이 기묘한 형태이며 계곡은 바람이 차서 시원하다.

  [영로(嶺路)]
   계립령(鷄立嶺) : 세상에서 지릅재[麻骨岾]라 부르며 북쪽 28리의 연풍 경계로 156년(신라 아달라왕 3년)에 계립령로를 열었다.
   이화현(伊火縣) : 현의 서쪽 18리, 연풍현 경계에 있는 지름길이다.
   갈령(葛嶺), 고모령(高毛嶺) : 모두 서쪽 길이다.
   조령(鳥嶺) : 세상에선 새재[草岾]라 하며 서북쪽 28리, 연풍현의 경계로 경상 우도에서 서울을 가는 큰 길이다. 양의 창자처럼 많은 구비마다 지세가 높고 가파르며 험하여 막히고 끊어져 있는데다 호서지방과 남북으로 갈라놓고 목구멍 같아 일이 있을 때는 꼭 지켜야 할 땅이다.
   불한령(弗寒嶺) : 희양산의 남쪽 갈래로 서쪽으로 20리에 내선유동이 있다.
   야운령(野雲嶺) : 운달산 북쪽 갈래로 동북쪽 30리다.
   토천(兎遷) : 관갑천이라고도 하는데 남쪽 20리 곧 용연의 동쪽 벼랑인데 위로는 깎아 지른 절벽이고 아래는 깊은 소라 위태롭고 좁아 바위를 파서 사다리 길을 만들었는데 구불구불 거의 6, 7리로 견탄으로 가는 길이다.
   견탄(犬灘) : 동남 35리로 근원은 조령의 용추로 남쪽으로 흘러 초곡을 거쳐 현의 남쪽에서 요성천이 되고 소야천을 지나 남호, 오천의 물과 함께 고모성, 고부성에 이르러 토천의 용연을 지난다. 가은천이 동남으로 흘러 회연(回淵)을 경유하여 옛 호계현의 인천(寅川), 관천(串川)과  남쪽으로 흘러 봉황대를 지나 이안천의 오른쪽 영천(영川)에 들어 무흘탄(無訖灘)을 이룬다. 용연의 아래 암석이 깎아질러 폭포와 못을 이루는데 상.중.하 3개의 굴이 파여 지세가 높고 가파르며 험하여 요충이다.
   요성천(
耳卯 
城川) : 동쪽 4리로 근원은 대미산에서 나와 남쪽으로 흘러 현의 남쪽 화봉원 앞을 지나 소야천과 합류하여 토천에 이르러 가은천과 합치며 견탄의 상류를 이룬다.
   소야천(所耶川) : 남쪽 6리에 있다. 그 근원이 계립령과 새재인데 남쪽으로 흘러 요성천에 합친다.
   가은천(加恩川) : 가은현 남쪽에 있다. 그 근원이 속리산에서 나오고 동쪽으로 흘러서 용연에 이르러 요성천, 소야천 두 시내와 합친다.
   인천(寅川) : 호계현의 동쪽에 있는데 현에서 거리가 55리이고 상주에 보라.
   병천(甁川) : 가은현 서쪽으로 화양동이 40리다. 그 아래에 상하 용추가 2곳 있다. 북쪽으로 선유동이 있고 계산(溪山) 천석사(泉石寺)가 뛰어나다. 논이 비옥하고 토산물은 감과 밤이 난다.
   용연(龍淵) : 남쪽 22리 가은천과 소야천의 두 내가 합치는 곳이다.
   용추(龍湫) : 새재 아래 동화원(桐華院)의 서북쪽 1리에 있다. 폭포가 있는데 맑은 날 우뢰소리와 함께 어슴푸레하게 흰 무지개를 이루며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다.
   조천(潮泉) : 조천은 둘이 있다. 하나는 소둔산에 있는 것으로 물이 바위 구멍으로부터 나오는데 그 근원이 줄 같으며 매일 아침저녁으로 솟아 넘치어 3리까지 번지어 가서 멎는 것이 마치 밀물과 썰물이 오가는 것과 같다. 또 하나는 현의 남쪽 5리 정곡리(井谷里)에 있는 것으로 흙 구멍에서 매일 세 번 뿜어 넘쳐 동구로 흘러 소야천으로 들어간다.

  [성지(城池)]
   조령산성(鳥嶺山城) : 1708년(숙종 34년)에 남북 18리, 둘레 18,509보이다. 성이 세 곳 있는데 한 곳은 고개 위에 충청도와 경상도의 경계를 이루는 조령관(鳥嶺關)이라 하며, 하나는 응암의 북쪽에 신충원(申忠元)이 쌓은 옛 성을 고쳐 쌓아 조동문(鳥東門)이고, 한 곳은 초곡에 있는데 주흘관(主屹關)이라 하며 문경, 함창, 용궁, 상주 5고을의 군량창이 있다. 위의 3곳에는 모두 홍예문이 있어 큰길이 통하고 또 홍예 3칸으로 성안의 개울물이 이곳으로 흘러 나간다. 1751년(영조 27년) 별장을 두어 문경, 함창 두 고을의 병력을 전속시켰다. 수성장은 본현 현감이 겸했고 별장이 1인 있다.
   혁폐(革廢) 어류성(御留城) : 조령의 동쪽에 터가 있다. 안은 넓게 전개된 형세가 험고한데, 동남쪽은 절벽이 천길이나 되며 북쪽은 조금 낮기는 하지만 인력으로 통할 수 없다. 불과 성가퀴 5, 6백파(把)를 설치하면 성안에는 우물과 샘이 많아 수만 군사를 수용할 수 있다. 북쪽에는 월악(月岳), 동쪽에는 작성(鵲城), 서쪽에는 조령, 남쪽에는 토천이 있으며 매우 험한 사다리길이고 중관이다.
   희양산성(曦陽山城) : 옛 가은현 북쪽 15리에 있으며 3면이 모두 석벽이다.
   가은 고현성(加恩 古縣城) : 옛 현 서남쪽 5리에 있으며 둘레는 565자이며 우물이 한 개 있다. 다른 이름으로 견훤성(甄萱城)이라 하는데 이것은 견훤이 가은현 사람이기 때문이다.
   요성(
耳卯 
城) : 동남쪽 4리로 둘레 556자이다.
   고부성(姑父城) : 토천 남쪽 높은 산 위에 있다. 둘레가 620자이고 고모성과 서로 마주 있다.
   고모성(姑母城) : 토천 서쪽 단봉(斷峰) 위에 있으며 두 골짜기가 중반을 묶은 것 같고 큰 하천과 큰 길이 성 아래를 지나는데 둘레가 990자이다. 모두 신라 때 방어하던 곳이다.
   정곡성(井谷城) : 남쪽으로 5리 정곡리에 있다.

  [봉수(烽燧)]
   선암산(禪巖山) : 옛 호계현의 북쪽 7리에 있다.
   탄항(炭項) : 북쪽 31리에 있다.

  [창고(倉庫)]
   읍창(邑倉) : 읍내
   호계창(戶溪倉), 가은창(加恩倉) : 모두 옛 현에 있다.
   산성창(山城倉) : 주흘관 안에 있다.

  [역도(驛道)]
   유곡역 : 동남쪽 40리에 있다. 속역이 18역이고 찰방이 1원(員)있다.
   요성역(
耳卯 城驛) : 동쪽 3리에 있다.

  [보발(步撥)]
   요성참(
耳卯 城站), 견탄참(犬灘站)

  [진도(津渡)]
   견탄진(犬灘津) : 가물 때는 다리를 놓고 큰비가 오면 배로 건넌다.

  [토산(土産)] : 감, 잣(海松子), 송이버섯, 석이버섯, 닥나무(楮), 벌꿀, 웅담, 은어

  [누정(樓亭)]
   교구정(交龜亭) : 서쪽 27리 조령의 용추 위에 있다. 신구 감사 교인처(交印處)다.
   천교정(遷喬亭) : 유곡(幽谷)의 정자다.

  [단유(壇)]
   주흘산단(主屹山壇) : 명산으로 사전(祠典)에 소사(小祀)로 실려 있다.
   관혜산(冠兮山) : 주흘산에서 부제한다.
   재목산(梓木山), 장산(獐山) : 이상 3개처는 본 현에서 봄.가을로 제사 지낸다.

  [전고(典故)]
   642년(신라 선덕여왕 11년) 김춘추(뒤에 무열왕)가 고구려에 사신으로 갔을 때 고구려 왕이 말하기를 “마목현(麻木縣)[즉 계립령], 죽령(竹嶺)은 본래 고구려의 땅인데 우리에게 돌려주지 않으면 돌려 보내 줄 수 없다”라고 했다. 고구려 장수왕이 남쪽을 쳐 백제땅을 빼앗아 조령과 죽령의 두 고개를 새로 설치했다. 진흥왕이 공격하여 죽령에 이르렀고 적성을 거쳐 한양을 갈 수 있게 했다.
   928년(고려 태조 11년)에 왕이 순행하여 고사갈이성에 이르니 성주 흥달이 귀순하여 왔다. 배산성(拜山城)을 쌓고 정조(正朝) 제선(悌宣)에게 명령을 내려 병사 2개 대(隊)를 거느리고 지키게 했다. 929년(12년) 후백제 견훤이 가은현을 포위했으나 이기지 못하고 돌아갔다.
   1592년(선조 25년) 4월 변기(邊璣)가 조방장(助防將)으로서 조령을 지키다가 죽고 같은 달에 문경현이 왜군에 함락되었다.


예    천(醴 泉)

  [연혁(沿革)]
   본래는 신라의 수주촌(水酒村)인데 757년(경덕왕 16년)에 예천군으로 고쳤다. 영현이 6개인데 안인(安仁), 가유(嘉猷), 은정, 영안, 감천, 축산이다.

  [고읍(古邑)]
   안인(安仁) : 서북 40리 갈평창(葛平倉) 가까운 곳이다. 본래 신라의 난산(蘭山)인데 757년(경덕왕 16년)에 안인으로 고쳐 예천군의 영현으로 했다가 고려 초에 예천군에 소속했다.

  [방면(坊面)]
   화북(花北) : 서북쪽으로 처음은 25리고 끝이 80리다.
   동로소(冬老所) : 서북쪽으로 끝이 90리이다.
  위의 2면은 서북동쪽 풍기의 상리, 하리 2면과 경계가 서로 들어가 있다. 화북면의 서쪽은 상주의 산양, 산동, 산서, 산북 4면과 경계이다. 동로소가 끝나는 곳은 서쪽은 문경의 신북면과 경계이고 북쪽은 청풍, 단양, 풍기와 만난다.

  [산수(山水)]
   작성산(鵲城山) : 북쪽 90리에 있고, 풍기 도솔산의 서쪽 갈래이다.
   천장산(天藏山) : 화북면에 있다. 안인 고현의 북쪽이다.
   동로평(冬老坪) : 북쪽으로 53리에 있다.
   항령(項嶺) : 북쪽 90리에 있다.

  [성지(城池)]
   작성(鵲城) : 작성산 위에 있다. 주위 610자이고 서쪽에 석문이 있고 3면이 모두 암석이다.
   고성(姑城) : 안인 고현에 있다.

  [창고(倉庫)]
   갈평창(葛平倉) : 서북 40리에 있다.
   산성창(山城倉) : 문경 조령산성에 있다.
 

상    주(尙 州)

  [연혁(沿革)]
   고려 때인 1018년(현종 9년)에 상주목을 설치했는데 8목의 하나였다.
   속군이 7개인데 문경, 용궁, 개령, 보령, 함창, 영동, 해평이다.
   속현이 산양, 가은, 호계 등 18개 현이다.

  [고읍(古邑)]
   산양(山陽) : 북쪽으로 63리에 있다. 본래 신라의 근품(近品)[품(稟)은 암아라고도 함]인데 757년(경덕왕 16년)에 가유로 고쳐 예천군 진현(鎭縣)이 되었다. 고려 940년(태조 23년) 산양으로 고치고 1018년(현종 9년) 상주 소속이 되었고, 뒤에 감무를 설치하였다가 1180년(명종 10년) 에 다시 소속하게 되었다.
   영순(永順) : 동북쪽 35리로 본 주의 북쪽 100리에 있다. 임하촌인데 고려 고종 때 태씨 성을 가진 마을 사람이 김취려(金就려)로 몽고의 침입 때 공이  있어 촌을 승격시켜 영순현으로 하여 소속시켰다.

  [방면(坊面)]
   영순(永順) : 동북쪽으로 처음은 30리 끝은 50리로 본래 옛 영순현 땅이다.
   산양(山陽) : 끝이 65리이다.
   산동(山東) : 처음이 50리이고 끝이 110리이다.
   산남(山南) : 처음이 50리이고 끝이 80리이다.
   산서(山西) : 처음이 60리이고 끝이 70리이다.
   산북(山北) : 끝이 120리이다.
  위의 5면은 옛 산양현 땅이다. 함창, 문경 양 고을의 땅을 넘어서 있다. 동쪽은 용궁, 예천 2읍의 서쪽이다. 산북의 북쪽은 충주와 경계이다.
   무림부곡(茂林部曲) : 북쪽 30리에 있다.
   양보부곡(陽寶部曲) : 산양에 있다.

  [산수(山水)]
   사불산(四佛山) : 공덕산(功德山)이라고도 하며 옛 산양현의 북쪽  본 주에서 100리에 있다. 동쪽은 작성산과 연접하고 서쪽은 운달산과, 남쪽은 천장산과 가깝다. 산 위에 네모난 돌이 있는데 4면에 사방불(四方佛)이 있어 신라 진평왕이 와서 친견했다. 중봉을 법왕이라 하고 그 밑의 바위에 미륵상이 있고 주위에 미륵암이 있다.
   운달산(雲達山) : 북쪽 90리로 문경과 경계이다. 아래에는 조동샘이 바위 사이에서 솟아 나는데 농천(農泉)이라고 부른다.

  [영로(嶺路)]
   대조현(大鳥峴) : 산양현 북쪽 본 주에서 88리이고 중로(中路)이다.
   야운령(野雲嶺) : 운달산 북쪽 갈래이다.
   인천(寅川) : 북쪽 60리로 산양천이라고도 하며 남쪽으로 흘러 용궁 무흘탄(無訖灘)으로 흘러든다.
   영천(영川) : 북쪽 45리 영순면에 있다.

  [창고(倉庫)]
   산양창(山陽倉)

  [토산(土産)]
   옥등석(玉燈石) : 대조현(大鳥峴)에서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