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목구멍' 앞에서

2014. 7. 2. 17:21여행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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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목구멍'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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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에 가장 아름다운 여행 2 | '악마의 목구멍' 앞에서



    적도를 향해 날아가는 짧은 시간 동안 창 밖에는 기묘한 모양의 구름조각들이 눈부신 햇살 아래 빛나고 있었다. 천상의 세상이 있다면 이런 것일까, 그 풍광을 보며 들었던 생각은 오로지 그것뿐이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출발한 지 40여 분, 한마리 새처럼 날던 비행기가 고도를 낮추어 구름떼를 수직으로 뚫고 내려앉자, 황금빛 햇살에 물든 대지가 거칠고도 원시적인 녹색의 밀림 사이로 모습을 드러내었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국경지대에 위치한 이과수 국립공원, 그 중에서도 '악마의 목구멍'으로 쏟아지는 거대한 폭포를 마주할 순간이 드디어 다가오고 있었다.

   북미의 나이아가라, 아프리카의 빅토리아와 더불어 세계 3대 폭포에 속하고 신(新)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선정된 이과수 폭포. 270여 개에 달하는 크고 작은 폭포들에서 쏟아지는 물줄기를 보고 나면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완전히 달라져 인생 자체가 이과수를 다녀가기 전과 후로 나뉘게 된다는 이야기를 수없이 들었던 터였다. 그러니 아르헨티나 여행을 하면서 어떻게 그곳을 그냥 지나칠 수 있단 말인가. 공항에서 차를 타고 공원 안에 위치한 호텔까지 향하는 길, 이과수 국립공원에서 촬영했다는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장면들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사람의 몸집만한 나무 잎사귀들, 비현실적이라 할 정도로 강렬한 태양, 힘차게 달려나가는 지프차 바퀴 밑에서 피어 오르는 붉은 흙먼지. 아마존 정글에서 멀지 않은 그곳에서는 언제라도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길을 잃고 맹수들의 습격을 받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얼마를 달렸을까, 차가 멈추어 섰다. 사방에서 스테레오처럼 울리는 폭포 소리와 더불어 울창한 숲이 바람과 함께 만들어 내는 소리, 그리고 수없이 많은 이름 모를 열대 지방 새들의 울음소리가 하늘을 가득 메우며 나를 반겼다. 내 발로 땅을 딛고 서 있음에도 믿기지 않던 그 풍경.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흥분된 가슴을 안고 일단 호텔 안으로 들어섰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폭포가 있는 아르헨티나 최대의 국립공원, 그 중에서도 유일하게 공원 안에 위치한 호텔인지라 그 특별한 곳을 찾은 사람들의 얼굴에서는 나처럼 커다란 기대감과 뿌듯함이 가득했다.

    그런데 체크인을 하기 위해 줄을 서 있는 동안 우연히 뒤에 서 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엿듣게 되었다. 그들은 미국에서 온 관광객들이었는데 '악마의 목구멍'을 볼 수 있는 야간 투어를 앞두고 매우 들떠 있었다. 이과수 국립공원 안에 야간 투어가 있다는 것은 미처 알지 못했던 사실이었다. 이과수의 수백 개 폭포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악마의 목구멍'을 매달 보름달이 뜨는 날에만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었고 그날은 바로 보름달이 뜨는 날이었다. 일부러 계획을 하려 해도 어려웠을 텐데 그리도 기막히게 타이밍이 맞아 떨어지다니! 귀를 쫑긋 세우고 이야기를 듣던 나는 내가 체크인 할 차례가 오자 직원에게 투어 참가 의사를 전했다. 그러나 일생일대의 여행으로 이과수를 찾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런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예약은 이미 오래 전에 끝났다는 직원의 말이 돌아왔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구를 반 바퀴 돌아왔노라고 떼를 써보기도 했지만 그런 이야기는 통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일단 포기하고 방에 들어가 짐을 풀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그리고는 호텔 직원이 믿기 힘든 소식을 전해주었다. 누군가가 갑자기 심한 몸살을 앓는 바람에 그날의 투어를 취소했고 우리 일행이 대신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어린아이처럼 제자리에서 방방 뛰기 시작했다. 거짓말처럼 찾아온 기회였다. 병이 난 사람을 생각하면 안된 일이지만 나로서는 뜻밖에 부여잡게 된 행운이기에 도무지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호텔 방의 창 밖으로 어둠이 내려 앉기 시작한 공원과 먼 발치로 흰거품을 쏟아내는 폭포가 보였다. 나는 투어 시간이 되기를 기다리는 사이 창가에 서서 보름달 아래 보는 '악마의 목구멍'은 어떤 느낌일까를 수없이 상상해 보았다.

    드디어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앉은 이과수의 밤, 다양한 국적의 관광객20여명이 '악마의 목구멍'을 보기 위해 호텔을 나섰다. 뚜껑 없는 작은 열차는 어둠 속에서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이내 속력을 냈다. 때때로 길게 뻗어 있는 나뭇가지들이 기차에 닿아 서걱거리는 소리를 낼 뿐 세상은 마치 아무런 생명체가 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적막했고 사람들은 말이 없었다. 달빛을 받아 빛나는 이과수의 강물도 마치 폭풍 전야를 예고하듯 고요하게 흘렀다. 얼마 후, 기차가 서서히 속력을 낮추더니 완전히 멈추어 섰다. 우리는 안내자의 뒤를 따라가며 한 줄로 걸었다. 비좁은 숲길을 지나고, 달빛을 받아 반짝이는 이과수 강물 위의 흔들거리는 다리를 지나자, 또 다시 나무가 우거진 좁은 길이 이어졌다. 어둠에 잠긴 야생의 정글 속을 걷다보니 아주 묘한 느낌이 들었다. 영원의 시간 속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그것은 어쩌면 아주 짧은 순간이었을 수도 있다. 혹은 그 반대로 내 느낌보다 훨씬 긴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듯했지만 어쩌면 그곳에서는 수백 수천의 이름 모를 생명체가 나를 목격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그들은 자신들만의 세상에 발을 들여놓은 한밤의 침입자들을 경계의 눈으로 바라보았을 것이다. 어쨌거나 그 숲길을 지나고 다리를 건너며 보았던, 달빛으로만 보는 원시 그대로의 자연은 너무나 단순하고 평화로웠으며 동시에 약간의 두려움을 안겨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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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부에 와 닿는 공기가 점점 더 차가워지는 것을 느낄 때쯤 적막을 가르는 폭포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때마침 날개를 파닥이며 시야에 나타났다 사라진 호랑나비 한 쌍에 흠칫 놀란 나머지 마치 최면에서 깨어나는 사람처럼 갑자기 정신이 들었다. 그리고 보니 어느새 어둠에 익숙해진 내 눈 앞에는 깊은 잠에 빠져있는 아마존의 모습이 희미하게나마 정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어느 순간 들리기 시작한 물소리는 한 걸음씩 발을 뗄 때마다 무서울 정도로 커졌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라고는 오로지 그 폭포뿐인 듯 천지를 울리는 굉음에 우리 모두는 압도되었다. 깊고 어두운 물길 속으로 온 세상을 빨아들일 듯 쏟아지는 물살, 어마어마한 폭포가 칠흑 같은 어둠에 싸인 하늘과 함께 만들어내는 공명 속에서 혼미한 느낌이 들었을 때, 자유시간이 주어졌고 사람들은 말 없이 하나둘 흩어졌다.

    솔직히, 그 다음에 내가 어떻게 악마의 목구멍 앞에 가 서있게 되었는지는 잘 생각나지 않는다. 그 몇 분간의 시간은 까맣게 지워져 내게 돌아오지 않는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마침내 '악마의 목구멍'을 마주하는 순간 아찔해져 무언가를 붙잡고서야 똑바로 설 수 있었다는 것, 그리고는 '세상에 맙소사...'라는 말을 수없이 반복하며 한동안 같은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한 채 그 엄청난 광경을 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세계적인 폭포라고는 하지만 어찌나 울타리가 허술한지 자칫 발을 헛디뎠다가는 큰일 날 수 있는 상황인데 공포심보다 경외심에 가까운 감정이 일었다.

    한밤의 바다를 바라본 적이 있는 사람은 그 느낌을 상상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큰 파도가 치지 않는다 하여도, 아니 그렇지 않고 침묵을 지키고 있으면 있을수록 더더욱 위엄 있는 모습으로 인간을 압도하면서 동시에 평화롭고 균형 있는 마음의 안정을 찾아주는 그런 밤바다. 악마의 목구멍을 처음 목격했던 밤, 처음엔 놀라움과 두려움이 뒤섞인 어떤 감정에 온몸이 전율함을 느꼈다. 그러나 이내 내 마음에는 밤바다 앞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그러나 그것의 수십, 수백 배 더 커다란 평화로움이 내려 앉아 가볍게 하늘로 떠오를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거대한 물줄기에서 매 순간 뿜어져 나왔다 공기 중으로 사라지는 수억의 물방울만큼이나 인간의 삶도 부질없고 또 아름답지 않나. 잠시 동안 무지개의 환영으로 남는 것 외엔 흔적도 없이 사라져 우주의 본질로 다시 돌아가는 것은 이과수의 폭포들이 토해내는 물안개나 인간의 존재나 마찬가지인 것을. 그 무엇이 우리에게 견딜 수 없는 아픔이나 슬픔이 되고 남을 용서하지 못하는 이유가 될까. 어차피 삶이란 잠시 다녀가는 여행과 같은 것이고 우리 모두는 여행자가 아닌가. '악마의 목구멍' 앞에 넋을 놓고 서 있던 그 밤, 내가 아는 그리고 미처 기억하지 못하는 가슴 깊은 곳의 앙금들이 스스르 녹아내려 수십만개의 보이지 않는 물방울들과 영원히 사라져버렸다. 신비롭고 장엄한 자연 앞에선 세상 그 어떤 단단한 것이라도 힘을 빼앗기고 말기 때문이리라.

    참으로 기묘한 경험이었다. 무서운 속도로 어마어마한 물줄기를 쏟아내고 있는 폭포 앞, '악마의 목구멍'이라는 이름처럼 온 세상을 다 삼켜버릴 것만 같은 공포스런 자연 앞에서 평화로움이 느껴졌다는 것은. 태양이 자취를 감추어 둥글고 흰 달 하나가 세상의 모든 빛이 되어 주고 있는 가운데 '악마의 목구멍'으로 떨어지는 폭포수 속으로 지구상의 모든 소리와 영혼이 빨려 들어가고 있는 것만 같던 그 순간, 나는 세상을 내려다 보며 유유히 날고 있는 한 마리의 새처럼 한없는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현지 인디언들의 언어로 '거대한 물'이란 뜻을 지닌 이과수, 그 중에서도 악마의 목구멍에는 오랜 전설이 하나 전해져 내려온다. 스페인의 정복자들이 도착하기도 훨씬 전부터 이과수 폭포 주변에는 '구아라니'라는 이름의 인디언 부족들이 살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해마다 이과수 강을 지키는 보아 신에게 아름다운 처녀를 한 명씩 바치는 전통이 있었다. 제물로 바쳐질 여자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이미 정해져 있었기에 어느 누구도 반항하는 법이 없었지만 나이피의 경우는 달랐다. 나이피는 그렇게 슬픈 운명을 타고 태어나지도 않았을 뿐더러 그녀의 약혼자 타루바와의 결혼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결혼식을 몇 주 앞둔 어느 날, 보아 신이 강가를 산책하고 있는 나이피를 보았고 그녀의 아름다움에 반해 그녀를 제물로 바칠 것을 요구한 것이다. 구아라니 부족 사람들은 보아 신을 비롯한 다른 신들까지도 노하게 만들 것이 두려워 결국 결혼식이 있기 전날 밤 그녀를 신에게 바치기로 결정하게 되었다.

   깊은 사랑에 빠져 있던 나이피와 타루바는 남들의 눈을 피해 카누를 타고 도망칠 계획을 세우지만 보아 신에게 그 모습을 들키게 되었다. 두 사람은 있는 힘을 다해 카누를 저어 도망치려 했고 그 뒤를 따르던 보아 신은 강의 너비만큼 몸을 키워 거센 물살을 만들어 가며 그들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럴수록 두 사람은 더욱 세게 노를 저었고 그 모습에 화가 난 보아 신은 결국 강바닥을 둘로 갈라 버렸다. 갈라진 땅 사이로 카누가 빨려 들어가고 있을 때 타루바는 가까스로 도망을 쳤지만 나이피는 여전히 카누에 타고 있었다. 바로 그렇게 물과 함께 갈라진 땅 사이로 나이피가 추락하기 직전 보아 신은 그녀를 커다란 바위로 만들어 버렸고 그 모습을 목격한 타루바는 그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나 보아 신이 그것을 그냥 두고 볼 리 없었다. 그는 타루바의 두 손을 땅에 완전히 붙여버린 후 그를 곧 한 그루의 소나무로 만들어 버렸다.

   두 연인을 영원히 갈라놓기 위해 끔찍한 저주를 내린 보아 신은 지금도 악마의 목구멍 깊은 곳에 살면서 질투심에 불타고 있지만, 거대한 폭포를 사이에 두고 한 그루의 소나무와 하나의 바위로 변해버린 두 사람은 여전히 애틋한 사랑을 하고 있으며 그 때문에 폭포 위에는 둘을 이어주기 위해 매일 수많은 무지개가 생겨난다는 그런 이야기이다.

   달빛 아래 폭포 투어를 마친 다음 날, 나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전설을 지닌 '악마의 목구멍'을 작렬하는 태양 아래서 다시 보았다. 그 때도 이루 형언할 수 없는 놀라움과 감동으로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전설 속 두 연인의 사랑을 상징하는 대형 오색 무지개는 브라질 땅끝에서 시작해 폭포 위를 지나 아르헨티나에까지 닿아 있었고 그 아래로는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양의 폭포수가 보기만 해도 아찔한 악마의 목구멍, 그 검고 깊은 세상 끝 어딘가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과연 미국의 어느 영부인이 그곳에 와서 '나이아가라 폭포는 견줄 것이 못 된다. 부끄럽다.'는 유명한 말을 남긴 것이 이해되었고 그 위대한 자연을 마주하고서 세상만사가 부질없음을 깨닫게 되었다는 사람들의 말이 실감났다. 난간이 있는 곳에서 한참을 벗어나도 온 몸을 적실 정도로 뿜어져 나오는 물보라 때문에 사람들은 아예 수영복 차림으로 관광을 하거나 우의를 입고 있었고 기념 사진을 찍기 위해 약간의 몸싸움까지 불사했다. 정말로 그런 끔찍한 저주를 퍼부은 괴물 같은 신이 살고 있지 않고서야 어찌 이런 폭포가 존재할 수 있을까. 앞에 서 있는 내내 말로 설명하기 힘든 두근거림이 내 영혼과 몸뚱아리를 휘감았다.

   '악마의 목구멍', 이것이 그 옛날 인디언들에게는 얼마나 두려운 존재였을 것이며 또한 이런 자연과 하나가 되어 살았던 그들은 얼마나 커다란 심장과 영혼을 지니고 있었을 것인가. 방울방울 하늘로, 그 끝을 알 수 없는 절벽 아래로 퍼져 나가는 안개과 물보라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던 나. 예고없이 불어온 새벽녘 바람에 포로로 일어나는 창틀의 먼지와 같은 인간의 삶. 영겁을 살 것마냥 힘차던 인생도 찰나의 순간에 한줄기 연기처럼 사라지지 않던가. 무엇 때문에 욕심을 부리고 불평하면서 언제 끝날지 모를, 이 짧디 짧은 '인생 여행'을 허비한단 말인가. 언제라도 전설 속 보아신과 인디오들이 당장 튀어 나올 것만 같은 그곳, 이과수 '악마의 목구멍'에서 얻은 대자연의 가르침은 바로 그것이었다. 인간의 삶이란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인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사소한 일에 연연하는 이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듯한. 지금도 나는 눈을 감고 그밤의 감동을 다시 느껴보곤 하는데 몇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그것은 쉽사리 지워지지 않고 있다. 허나 혹여라도 어리석은 인간의 본성으로 그날의 가르침을 망각하게 된다면 내 자신을 채찍질하는 마음으로 주저 없이 비행기에 몸을 싣을 것이다. 지구 반대편, 나이피와 타루바의 전설이 살아있는 아마존 정글 속 이과수 폭포로 향하는 하늘길을 따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