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과학칼럼] 또 하나의 '딥 임팩트'
박성근 고려대 물리학과 교수
입력 : 2005.10.21 20:34 50'
▲ 박성근 고려대 물리학과 교수 |
|
영화 같은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는 것을 가끔 볼 때가 있다. 그때마다 영화 같은 감동을 받기도 한다. 지난 7월 4일, 태양계 안에서 있었던 인류 최초의 우주 충돌 실험이 그 중 하나이다. 미 항공우주국의 우주탐사선 ‘딥 임팩트’가 혜성을 향해 350㎏짜리의 충돌체를 발사하는 일이 있었다. 이때의 충격으로 인해 그 혜성 템펠1의 표면에는 큰 분화구가 생겨났고, 표면과 내부의 물질들이 수천㎞까지 솟아오르는 모습이 관측되기도 했다. 혜성 안에 갇혀 있는 물질들은 태고의 것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혜성의 파편들을 연구하면 혜성의 지각과 내부뿐만 아니라 초기 태양계의 정보들을 알아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충돌 실험의 성과는 충돌 전 과정을 정확하게 기록해주는 딥 임팩트에 설치된 고성능 카메라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이제까지의 학문적 대상이었던 우주는 좀더 넓은 상업적·군사적 대상으로 탐구되고 있다. 특히 최근 들어 중국의 약진은 우주경쟁에 새로운 불을 지피는 것 같다. 처음에는 중국의 선저우 우주선을 놓고 많은 서방 전문가들이 구소련의 우주선 소유즈를 복제했다며 대단치 않은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중국 최초의 유인 우주선 선저우 5호와 6호의 연이은 성공은 중국이 수모를 겪으면서도 필요한 기술을 빌려오고 끈기 있게 자신들의 기술을 키워온 결과로 보인다. 그 기술로 2년 후인 2007년에 새로운 선저우 7호를 발사하겠다는 것이다. 조금 뒤늦은 출발이었지만 자신의 기술들을 만들어가며 우주경쟁에 임하고 있는 모습은 많은 후발 주자들이 배워야 할 점이라 생각된다.
오는 2007년에는 2005년의 우주 충돌 실험과는 대조되는 대규모의 지하 입자충돌실험이 시작된다. 스위스 제네바에 위치한 유럽입자물리학연구소(CERN)가 주도하는 ‘대형강입자가속기 실험(Large Hadron Collider)’이 바로 그것이다. 지하 100m에다 만든 원 둘레가 27㎞나 되는 터널에 높은 에너지의 양성자들을 정면충돌하게 하는 실험설비는 세계 최고수준이다. 혜성 안에 갇힌 태고의 물질들을 찾는 딥 임팩트 실험처럼, 대형강입자가속기실험에서도 양성자 안에 갇힌 ‘쿼크(quark)’들이 만들고 있는 과정을 통해 태초에 어떻게 물질들이 만들어졌나를 연구한다.
기본 입자들은 우리의 맨눈으로는 볼 수 없는 것들이기 때문에 딥 임팩트의 카메라와 같은 역할을 하는 ‘입자검출기’라는 실험장치들을 사용해야 한다. 그런데 국가에서 전적으로 지원하는 우주경쟁과는 사뭇 다르게, 대형강입자가속기실험에 참여하는 40여개 국가에서 온 물리학자들은 공동으로 이 실험을 수행한다. 마치 각자 준비한 음식을 한자리에 모아서 이웃들끼리 어울려 파티를 하듯 국가별로 제작한 입자검출기들을 한데 모아 실험에 활용한다.
이 파티에 한국이 만든 ‘음식’도 준비됐다. 과학기술부의 지원 속에서 필자가 많은 동료들과 함께 8년 동안 개발해오고 있는 입자검출기인 ‘전방저항판 검출기’가 그것이다. 이 검출기는 2007년 대형강입자가속기실험에 다른 몇몇 선진국의 입자검출기들과 함께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이번 실험에서 찾고자 하는 것은 크게 나누면 두 가지이다. 하나는 물질의 질량의 근원이라고 여겨지는 ‘힉스(higgs)’ 입자를 찾는 것이고, 또 하나는 자연에 ‘초대칭(supersymmetry)’이라는 대칭성이 존재하는지를 찾는 것이다.
쿼크의 충돌에서 자연의 진리를 찾는다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그러나 필자를 더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그 역사에 우리의 땀과 노력이 더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거야말로 영화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