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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5월의 첫 주일은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죽음의 문화'의 위험성을 깨우치고 인간의 존엄과
생명의 참된 가치를 되새기게 하는 '생명 주일'이다.
한국 교회는 1995년부터 5월 마지막 주일을 '생명의 날'로
지내 오다가, 주교회의 2011년 춘계 정기 총회에서 이를
'생명 주일'로 바꾸며 5월의 첫 주일로 옮겼다. 교회가 이 땅에
더욱 적극적으로 '생명의 문화'를 건설해 나가자는 데 뜻이 있다.
오늘 전례
▦ 오늘은 부활 제3주일입니다.
부활의 기쁜 소식이 우리의 일상에 얼마나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지를 차분히 살펴보아야 할 때입니다.
무엇보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우리의 삶에서 어떤 어려움과
슬픔이 있더라도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희망을
잃지 않게 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은총이 우리의 삶 순간순간 살아 숨 쉬기를 청하며,
주님께서 현존하시는 성체성사에 뜨거운 마음으로 참여하도록 합시다.
베드로는 하느님께서 나자렛의 예수님을 죽음의 고통에서
풀어 다시 살리셨다고 선포하며, 시편을 들어
다윗이 예수님의 부활을 이미 예언하였다고 밝힌다(제1독서).
베드로 사도는 그리스도의 고귀한 피로 헛된 생활 방식에서
해방된 신앙인의 삶을 기억하게 한다.
신앙인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을 믿게 되었고, 그리스도께서는
신앙인에게 하느님에 대한 희망과 믿음을 갖게 하셨다(제2독서).
예수님께서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신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걸으며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성경에서 그분을 두고 한 말씀의 참뜻을 비로소 깨닫는다(복음).
<예수님께서는 죽음에 사로잡혀 계실 수가 없었습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2,14.22ㄴ-33
오순절에,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일어나 목소리를 높여 말하였다.
'유다인들과 모든 예루살렘 주민 여러분,
여러분은 이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내 말을 귀담아들으십시오.
여러분도 알다시피, 나자렛 사람 예수님은 하느님께서
여러 기적과 이적과 표징으로 여러분에게 확인해 주신 분이십니다.
하느님께서 그분을 통하여 여러분 가운데에서 그것들을 일으키셨습니다.
하느님께서 미리 정하신 계획과 예지에 따라 여러분에게 넘겨지신 그분을,
여러분은 무법자들의 손을 빌려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죽음의 고통에서 풀어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죽음에 사로잡혀 계실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그분을 두고 이렇게 말합니다.
'나 언제나 주님을 내 앞에 모시어,
그분께서 내 오른쪽에 계시니 나는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기에 내 마음은 기뻐하고 내 혀는 즐거워하였다.
내 육신마저 희망 속에 살리라.
당신께서 제 영혼을 저승에 버려두지 않으시고,
당신의 거룩한 이에게 죽음의 나라를 아니 보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저에게 생명의 길을 가르쳐 주신 분,
당신 면전에서 저를 기쁨으로 가득 채우실 것입니다.'
형제 여러분, 나는 다윗 조상에 관하여 여러분에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는 죽어 묻혔고 그의 무덤은 오늘날까지 우리 가운데에 남아 있습니다.
그는 예언자였고, 또 자기 몸의 소생 가운데에서 한 사람을
자기 왕좌에 앉혀 주시겠다고 하느님께서 맹세하신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예견하며 '그분은 저승에 버려지지 않으시고,
그분의 육신은 죽음의 나라를 보지 않았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이 예수님을 하느님께서 다시 살리셨고 우리는 모두 그 증인입니다.
하느님의 오른쪽으로 들어 올려지신 그분께서는 약속된 성령을 아버지에게서
받으신 다음, 여러분이 지금 보고 듣는 것처럼 그 성령을 부어 주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여러분은 티 없는 어린양 같으신 그리스도의 고귀한 피로 해방되었습니다.>
▥ 베드로 1서의 말씀입니다. 1,17-21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각자의 행실대로 심판하시는 분을 아버지라 부르고 있으니,
나그네살이를 하는 동안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지내십시오.
여러분도 알다시피, 여러분은 조상들에게서 물려받은
헛된 생활 방식에서 해방되었는데,
은이나 금처럼 없어질 물건으로 그리된 것이 아니라,
흠 없고 티 없는 어린양 같으신 그리스도의 고귀한 피로 그리된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세상 창조 이전에 이미 뽑히셨지만,
마지막 때에 여러분을 위하여 나타나셨습니다.
여러분은 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시고 영광을 주시어,
여러분의 믿음과 희망이 하느님을 향하게 해 주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빵을 떼실 때에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4,13-35
주간 첫날 바로 그날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두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순 스타디온 떨어진 엠마오라는 마을로 가고 있었다.
그들은 그동안 일어난 모든 일에 관하여 서로 이야기하였다.
그렇게 이야기하고 토론하는데,
바로 예수님께서 가까이 가시어 그들과 함께 걸으셨다.
그들은 눈이 가리어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걸어가면서 무슨 말을 서로 주고받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은 침통한 표정을 한 채 멈추어 섰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 클레오파스라는 이가 예수님께,
'예루살렘에 머물렀으면서 이 며칠 동안 그곳에서 일어난 일을
혼자만 모른다는 말입니까?'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무슨 일이냐?' 하시자 그들이 그분께 말하였다.
'나자렛 사람 예수님에 관한 일입니다. 그분은 하느님과 온 백성 앞에서,
행동과 말씀에 힘이 있는 예언자셨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수석 사제들과 지도자들이 그분을 넘겨,
사형 선고를 받아 십자가에 못 박히시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그분이야말로 이스라엘을 해방하실 분이라고 기대하였습니다.
그 일이 일어난 지도 벌써 사흘째가 됩니다.
그런데 우리 가운데 몇몇 여자가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였습니다.
그들이 새벽에 무덤으로 갔다가, 그분의 시신을
찾지 못하고 돌아와서 하는 말이, 천사들의 발현까지 보았는데
그분께서 살아 계시다고 천사들이 일러 주더랍니다.
그래서 우리 동료 몇 사람이 무덤에 가서 보니
그 여자들이 말한 그대로였고, 그분은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아, 어리석은 자들아!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는 데에 마음이 어찌 이리 굼뜨냐?
그리스도는 그러한 고난을 겪고서
자기의 영광 속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
그리고 이어서 모세와 모든 예언자로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 걸쳐 당신에 관한 기록들을 그들에게 설명해 주셨다.
그들이 찾아가던 마을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예수님께서는 더 멀리 가려고 하시는 듯하였다.
그러자 그들은 '저희와 함께 묵으십시오.
저녁때가 되어 가고 날도 이미 저물었습니다.' 하며 그분을 붙들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묵으시려고 그 집에 들어가셨다.
그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그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그들에게서 사라지셨다.
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
그들이 곧바로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와 동료들이 모여,
'정녕 주님께서 되살아나시어 시몬에게 나타나셨다.' 하고 말하고 있었다.
그들도 길에서 겪은 일과 빵을 떼실 때에 그분을
알아보게 된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비교적 가까운 시기를 두고 한국 교회에서 일어난
가장 주목할 만한 현상 하나를 꼽자면 무엇보다도 성경 읽기와
공부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높아진 사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말씀 봉사자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이제 어느 정도 성경 읽기 운동이 확산된 시점에서
이 과정을 함께해 온 많은 사람이 다시금 성경 공부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한 시기라는 것을 자각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통독했다는 데서 오는 성취감이나 성서 신학의 지식을
얻게 되었다는 학구열을 만족시키는 뿌듯함을 넘어,
진정으로 성경 말씀을 알아듣고 이해한다는 것이 무엇이며,
그 방법을 제대로 깨닫고 정립해야 한다는 겸허한 자성의 소리가 많습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 말씀은, 사치품이나 자기만족이 아니라
진정 우리를 살아 있게 하고 살아가게 하는 원천으로서
성경을 만나고 이해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오롯이 보여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과 함께 걸으며 당신을 두고
한 성경 말씀의 참뜻을 깨우쳐 주십니다.
베드로 사도는 설교를 하면서 시편에서 다윗이 노래한 내용이
바로 주님을 두고 한 말이었음을 사람들이 생생하게 느끼게 합니다.
또한 베드로 사도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만났기에 하느님을 믿으며
희망을 안고 살게 되었다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전합니다.
교회는 중요한 성찰을 할 때마다 신앙의 원천인 이 성경의 가르침에
우리 삶의 자리를 선입관 없이 비추어 보려고 노력합니다.
우리 삶의 모습을 다름 아닌 성경의 가르침에 비추어 본다면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분명하게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우리는 말씀의 의미를 깨닫는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알아 하느님에 대한 깊고 강한 믿음을
갖게 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사도들이 체험하였듯이 우리의 삶이 말씀의 세계 안으로 깊이 들어가
새롭게 변화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성경을 읽고 공부하는 이유입니다.
그러기에 성경 말씀을 이해했다는 참된 표지는
다름 아니라 새로운 삶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출처 매일 미사-
♬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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