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제목 : | 말씀의 초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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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오로는 리스트라에서 유다인들의 선동으로 군중에게 돌을 맞아
죽을 뻔했으나 제자들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다.
그 뒤 바르나바와 함께 데르베로 건너가 복음을 전하고
안티오키아로 돌아갔다. 이곳에서 두 사도는 제자들을 격려하고
교회 공동체마다 원로들을 임명한 뒤 주님께 그들을 의탁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의 평화를 남기고 떠나가신다고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당부하시며,
세상의 어떤 권력도 당신께 아무 권한이 없다고 말씀하신다(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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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해 주신 모든 일을 교회에 보고하였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4,19-28
그 무렵 안티오키아와 이코니온에서 유다인들이 몰려와
군중을 설득하고 바오로에게 돌을 던졌다.
그리고 그가 죽은 줄로 생각하고 도시 밖으로 끌어내다 버렸다.
그러나 제자들이 둘러싸자 그는 일어나 도시 안으로 들어갔다.
이튿날 그는 바르나바와 함께 데르베로 떠나갔다.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그 도시에서 복음을 전하고
수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은 다음,
리스트라와 이코니온으로 갔다가 이어서 안티오키아로 돌아갔다.
그들은 제자들의 마음에 힘을 북돋아 주고 계속 믿음에
충실하라고 격려하면서, '우리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리고 교회마다 제자들을 위하여 원로들을 임명하고,
단식하며 기도한 뒤에, 그들이 믿게 된 주님께 그들을 의탁하였다.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피시디아를 가로질러 팜필리아에 다다라,
페르게에서 말씀을 전하고서 아탈리아로 내려갔다.
거기에서 배를 타고 안티오키아로 갔다.
바로 그곳에서 그들은 선교 활동을 위하여 하느님의 은총에
맡겨졌었는데, 이제 그들이 그 일을 완수한 것이다.
그들은 도착하자마자 교회 신자들을 불러,
하느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해 주신 모든 일과 또 다른 민족들에게 믿음의
문을 열어 주신 것을 보고하였다. 그리고 제자들과 함께 오래 머물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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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27-31ㄱ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
'나는 갔다가 너희에게 돌아온다.'고 한 내 말을 너희는 들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아버지께 가는 것을 기뻐할 것이다.
아버지께서 나보다 위대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나는 일이 일어나기 전에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다.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가 믿게 하려는 것이다.
나는 너희와 더 이상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겠다.
이 세상의 우두머리가 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나에게 아무 권한도 없다.
그러나 내가 아버지를 사랑한다는 것과
아버지께서 명령하신 대로 내가 한다는 것을 세상이 알아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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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이에게
죽음은 더 이상 '마지막'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이 굳건한 신앙인들조차도
부활이 단지 죽음 뒤의 피안의 세계에 관한 약속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의식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주님의 부활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는 사건입니다.
이미 우리 안에서 실제로 작용하는 신비입니다.
이러한 뜻에서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의 삼부작 『나자렛 예수』
제2권에서 말하는 예수님 부활의 의미를 음미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라자로나 그분께서 되살리신
다른 죽은 이들처럼 이승의 평범한 인간 생활로 되돌아가지 않으셨다.
그분께서는 전혀 다른, 새로운 삶으로 들어가셨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광대함'으로 들어가시어 당신 자신을
제자들에게 드러내 보이신다. 새로운 삶은 이 새로운 세상의 시작과
연관되어 있으며, 그렇게 해서 그 완전한 뜻이 이해되었다.
새로운 세상이 있다면, 거기에는 새로운 삶의 양식도 있게 마련이다.'
주님의 부활과 우리의 지상 삶은 결코 서로 스쳐 가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에 대한 신앙은 죽고 난 뒤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 새로운 삶의 양식으로 드러납니다.
오늘 복음 말씀은 우리에게 이러한 부활의 의미를 깨닫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주시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다르다고 말씀하십니다. 당신께서 남겨 주셨고
부활을 통하여 제자들이 체험한 평화는 이제 새로운 삶을 채웁니다.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도 '바로 지금'
새로운 삶의 방식이 열려 있음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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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매일 미사-
♬ 하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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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사즐모(댄스스포츠 사교댄스모임 - 라틴, 모던, 사교, 리듬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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