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고비 106일 집뺏기 사투, 위대한 실패

2014. 7. 26. 20:22과학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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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고비 106일 집뺏기 사투, 위대한 실패


김성호 2013. 10.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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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따구리 낮 비운 새 하루 100번 10km 오가며 진흙 단장
밤 되면 집주인이 허물어…신혼 살림하고 알 낳으며 ‘종전’ 
 
 동고비에 대한 글 약속을 해를 넘겨 이제야 지킵니다. 지난 해, 딱따구리의 둥지를 제 둥지로 삼으려는 동고비 이야기를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관련기사/ 동고비의 집짓기 무한도전 http://ecotopia.hani.co.kr/48649) 동고비는 버려진 딱따구리의 둥지 입구에 진흙을 발라 좁혀서 번식을 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딱따구리가 여전히 사용하고 있는 둥지에 진흙을 발라 좁히려는 동고비 이야기였습니다. 
   딱따구리는 이른 아침 둥지를 나서 먹이 활동을 하다가 어두워지면 다시 둥지로 돌아와 잠을 자는 습성이 있습니다. 번식 일정에 들어선 것이 아니라면 날이 밝은 시간부터 어둠이 내리기까지 둥지는 비는 셈입니다. 둥지가 빈 사이 동고비는 열심히 진흙을 발라 좁혔고, 밤이 되면 딱따구리는 삽시간에 진흙을 허물고 들어가 잠을 잤으며, 다음 날 아침 동고비는 처음부터 다시 진흙을 붙어야했습니다. 짓는 자와 허무는 자, 둘 중 누가 승자가 될지 더 관찰한 뒤 알려드리겠다고 했었는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진검 승부의 결말에 이르기 전에 숲 가꾸기 사업으로 둥지 나무가 베어진 것입니다. 결국 인간에 의해 둘 다 패자가 된 셈이었습니다. 
 
 아침 8시부터 10시간 꼬박 50분 일하고 10분 쉬고…
 
   글 약속도 있고 개인적으로 궁금하여 해가 바뀌어 번식의 계절이 다시 돌아왔을 때 같은 상황을 찾아다녔고, 마침내 찾아 그 결말을 보았기에 이제 그 이야기를 전합니다.
올해도 동고비가 눈독을 들인 둥지는 청딱따구리 수컷의 둥지로서 소나무에 만든 몇 해 묵은 둥지였습니다. 그렇다고 동고비가 청딱따구리의 둥지만 탐내는 것은 아닙니다. 쇠딱따구리를 제외한 오색딱따구리, 큰오색딱따구리, 까막딱따구리의 둥지가 모두 대상입니다.

z1.jpg » 동고비가 열심히 진흙을 날라 입구를 좁힙니다.

   3월의 첫 날, 드디어 동고비가 진흙 작업을 개시합니다. 아직 어두운 기운이 남아있는 아침 7시 즈음 청딱따구리는 둥지를 나섰고, 8시부터 동고비는 입구에 진흙을 바르기 시작합니다. 몇 분이 멀다하고 진흙을 날라 하루 종일 입구를 좁힌 동고비는 어두움이 내리기 직전 어디론가 사라집니다. 진흙을 날라 둥지를 좁히는 일은 암컷이 담당합니다. 수컷은 둥지를 짓는 암컷에 대한 경계를 맡습니다. 
 오늘 하루에 동고비 암컷은 콩알 크기의 진흙을 100번 정도 날라 둥지를 좁혔습니다. 해가 뜨며 진흙을 나르기 시작하여 해가 지며 일정을 마쳤으니 대략 10시간을 일한 꼴입니다. 계곡 주변에서 진흙을 뭉쳐 날아와 둥지에 붙이며 다지고 또 가져오기를 반복합니다. 암컷은 대략 50분 정도 일하고 10분을 쉽니다. 50분 동안 10번 정도 진흙을 가져와 둥지에 붙이고 다집니다. 진흙을 가져와 잠시도 쉬지 않고 부리를 움직여 둥지에 붙이고 다시 나서는데 5분 정도가 걸리는 셈입니다. 

 z2.jpg » 다음날이면 둥지는 어김없이 허물어져 있었으나 동고비는 다시 진흙을 붙이기 시작합니다.

 지켜보는 내가 정신이 하나도 없을 정도니 동고비는 어떨까 싶습니다. 게다가 진흙을 가져오는 곳에서 둥지까지의 거리는 약 50미터였습니다. 왕복하면 100미터고 100번을 오갔으니 오늘 동고비 암컷은 총 10킬로미터를 온 힘을 다하여 비행한 것이 됩니다. 동고비가 떠나고 해가 진 직후 청딱따구리가 나타납니다. 하루 종일 온 힘을 다해 동고비가 붙인 진흙을 허물고 들어가는 데에는 채 1분이 걸리지 않습니다.
 
z3.jpg » 둥지를 허문 것은 둥지의 주인인 청딱따구리였고, 청딱따구리는 동고비가 하루 종일 붙인 진흙을 한 순간에 무너뜨리고 들어갑니다.


 딱따구리 부부가 번갈아 24시간 둥지 지키며 떠나지 않아 
 
   3월 한 달이 그렇게 지나고, 4월 한 달도 그렇게 지나고, 5월 한 달도 그렇게 지났습니다. 주인 없이 완전히 비어있는 딱따구리 둥지에 집을 지을 때와 차이점은 있습니다. 안쪽부터 차분히 진흙을 붙여서 탄탄하게 둥지를 짓지 않고 입구만 덜렁 막습니다. 또 무너질 둥지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6월 10일입니다. 동고비가 진흙을 붙이기 시작한 지 100일이 되는 날입니다. 동고비는 여전합니다. 그동안 동고비가 나른 진흙 덩어리는 10,000개에 이르고, 진흙을 나르기 위해 이동한 거리만 총 1,000킬로미터에 이르지만 오늘 아침 둥지의 모습은 100일 전 진흙을 붙이기 시작할 때와 똑 같습니다.
 6월 16일, 106일 째 날입니다. 결국 동고비가 포기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청딱따구리 수컷이 오늘은 암컷과 함께 왔고, 산란이 시작되며 둥지는 한 순간도 비지 않기 때문입니다.
 
z4.jpg » 둥지에 암컷이 나타납니다. 이 소나무 둥지에서 번식을 치르겠다는 뜻이며, 이제부터는 암수가 교대로 둥지를 지키기 때문에 동고비가 설 자리는 없습니다.

 
직접 먹이 물고 와 주지 않고 배에 가득 넣어 와 나눠줘
 
   청딱따구리는 산란을 마친 뒤 알 품기에 들어섰습니다. 2주가 지나니 먹이를 나르기 시작합니다. 청딱따구리는 부화한 어린 새에게 줄 먹이를 직접 물어 나르지 않습니다. 배에 가득 담고 와서 나눠줍니다. 통상 부화가 일어난 것은 먹이를 나르기 시작하는 것으로 알 수 있는데 먹이가 보이지 않으니 부화의 시점을 정확히 알기는 쉽지 않습니다. 카메라를 넣어 보는 방법이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삼가는 것이라 지켜보는 것 말고는 달리 길이 없습니다. 지켜보더라도 교대 횟수가 바뀌는 것을 알아차려야 하기에 내내 지켜봐야 합니다. 청딱따구리의 경우 알을 품을 때는 암수가 하루 4번 교대를 하는데, 부화가 일어나면 8번 정도로 늘어납니다.

DC20.JPG » 둥지 앞에서 암컷이 배에 담아온 먹이를 토해내는 모습입니다.

 부화가 일어나고 3주가 지나니 어린 새들이 둥지 입구로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고, 일주일이 더 지나며 어린 새들은 모두 둥지를 떠났습니다. 어린 새들과 암컷이 둥지를 떠난 뒤에도 수컷은 여전히 둥지에서 잠을 자며 둥지를 관리하고 있습니다. 해가 뜨면 둥지를 나서 먹이 활동을 하다 해가 질 무렵이면 다시 둥지로 돌아와 잠을 자는 일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DC21.JPG » 어린 새 암컷의 모습입니다. 엄마 새를 닮아 머리에 붉은 색이 없습니다.
DC22.JPG » 어린 새 수컷의 모습입니다. 아빠 새를 닮아 머리에 붉은 색이 있습니다.
DC23.JPG » 아빠 새와 어린 새 수컷의 모습입니다.

 
바늘구멍만한 가능성으로 수컷 둥지 노려
 
 그렇다면 동고비는 왜 이리도 무모한 행동을 지속할까요? 가능성 때문입니다. 딱따구리가 번식에 들어서면 수컷의 경우 잠을 자는 둥지를 떠나 새로운 둥지로 옮길 수 있다는 가능성 입니다. 만약 수컷이 자신의 둥지로 암컷을 불러들여 번식을 한다면 동고비는 절대 그 둥지를 차지할 수 없습니다. 수컷과 암컷이 서로 교대를 하며 둥지를 지켜 24시간 둥지는 비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수컷이 자신의 둥지를 떠나 새로운 둥지로 옮길 가능성도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그렇게 되면 빈 둥지는 비로소 동고비의 차지가 됩니다. 동고비가 딱따구리 암컷이 사용하는 둥지에 도전하는 경우는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딱따구리 암컷은 번식에 들어서더라도 번식 둥지의 밤은 수컷이 지켜주기 때문에 반드시 자기의 잠자리 둥지로 와서 잠을 잡니다. 딱따구리 암컷의 둥지는 1년 내내 비지 않은 셈입니다. 가능성이 조금도 없는 일에조차 도전을 하지는 않습니다.
 시간이 흘러 가을입니다. 내년 봄은 아직 아득한데 동고비는 벌써 청딱따구리 둥지를 기웃거리고 있습니다. 더 시간이 흘러 해가 바뀌고 숲에 번식의 계절이 돌아오면 동고비는 또 다시 이 둥지에 진흙을 붙이기 시작할 것이며, 날마다 짓고 또 다시 무너지는 일상은 여전할 것입니다. 
 누구라도 앞날을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도전하는 정신 곧 ‘동고비 정신’이 어쩌면 동고비 종 보전의 원동력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때는 알아차리지 못했는데, 실제로 3년 전에는 이 둥지를 동고비가 차지한 적이 있었습니다.


김성호 서남대 생명과학과 교수
서남대 생명과학과 교수. <큰오색딱따구리 육아일기><동고비와 함께한 80일><까막딱따구리의 숲>의 저자로서 새가 둥지를 틀고 어린 새들을 키워내는 번식일정 전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인내로 세세히 기록하는 일에 주력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지리산과 섬진강에서 만난 생명들의 20년 이야기를 담은 생태에세이 <나의 생명수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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