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제우스이야기

2014. 8. 20. 23:38잡주머니






       (27)제우스이야기|[310] [신화에세이]

정암|조회 60|추천 0|2011.05.16. 00:49http://cafe.daum.net/jsseo43/LRRs/29 

<새천년을 여는 神話에세이>(27)제우스이야기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그리스 인 조르바'에서 인용한다. 젊은 화자(話者)를 향해 터뜨리는 늙은 호색한(好色漢) 조르바의, 올륌포스 팔난봉꾼 제우스 론이 실로 그럴 듯해서 길게 인용하는 염치를 무릅쓴다. 

   "두목! 혼자 사는 여자에게 심심해 할 겨를을 안 주었다는 잡놈 같은 신(神)이 누구였지요? 그 양반, 수염을 염색하고 심장에다 문신을 새기고 다녔다나봐요. 변장도 곧잘 했는데, 때로는 황소가 되고 백조가 되고 양이 되었다는군요. 여자들이 원하는대로 말입니다. 이름이 무엇이었죠?"
"제우스 얘기군요. 조르바, 어쩌다 제우스를 생각하게 되었지요?"
"오, 얼마나 고생이 막심했을까. 두목, 그 양반, 위대한 순교자였어요. 당신은 책에 쓰인 것이면 뭐든 꿀꺽꿀꺽 삼킵니다만, 책 쓰는 인간들이 여자 일이나, 여자 쫓는 남자 일을 뭐 알겠어요? 개코도 모르지!"
"조르바, 당신이 그 `신비'를 써서 설명해 주면 그도 좋은 일일텐데요."
"못할 것도 없지만, 그 `신비'라는 것을 살아 버리느라고 시간이 없어서 못 했어요. 전쟁, 여자,술을 살아 버렸으니 펜대 운전할 시간이 어디 있었겠어요? 신비를 사는 사람들에겐 시간이 없고, 시간이 있는 사람들은 살 줄을 몰라요."

카잔차키스 소설속 유쾌한 상상력
"조르바, 처음 얘기로 되돌아갑시다. 제우스 이야기가 왜 나왔죠?"
"아, 그 양반… 그 양반의 고민을 알아주는 건 나밖에 없습니다. 여자? 물론 좋아했지요. 그러나 당신네 펜대잡이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차원이 달라요. 그 양반은 여자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그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시킨 겁니다. 그 양반은 시골 구석을 다니다 독수공방으로 인생을 낭비하고 있는 노처녀, 혹은 유부녀를 보면 사랑해줍니다만 꼭 아리따운 여자일 필요는 없습니다. 추녀라도 상관없습니다. 

    남편은 멀리 떠나고 여자는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이 양반은 성호를 척 긋고 여자가 좋아할 모습으로 변장합니다. 그리고는 여자 방으로 들어가, 녹초가 될 판인데도 최선을 다해 주지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지요. 오, 제우스, 저 가엾은 숫양, 귀찮은 내색 한번 하는 법이 없었어요. 좋아서 그 짓 한 것도 아닐 겁니다. 암양을 너댓 마리 해치우고 난 숫양 본 적 있어요? 침을 질질 흘리고 눈깔에는 안개와 눈꼽투성이입니다. 기침까지 콜록콜록 해대는 꼴을 보면 그거 어디 서 있을 성싶지도 않습니다. 

   그래요, 저 불쌍한 제우스도 그런 고역을 적잖게 치렀을 겝니다. 그리고는 새벽이면 올륌포스로 돌아와, 한숨을 쉬면서, `오 하느님, 언제면 좀 편히 쉴 수 있을까요? 죽을 지경입니다' 이러고는 질질 흐르는 침을 닦았을 겁니다. 그런데 그때 또 한숨 소리가 들립니다. 인간 세상에서 한 여자가 잠옷 바람으로 발코니로 나와 풍차라도 돌릴 듯한 기세로 한숨을 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제우스는 또 불쌍한 생각이 듭니다. 

   그는 끙, 하고 신음을 토해 냅니다. `이런 니기미, 또 내려가야 하게 생겼구나! 신세 타령하는 여자가 있으니….' 이런 짓도 오래 하다 보니 여자들이 제우스를 한 방울도 남김없이 빨아 버리고 맙니다. 꼼짝도 할 수 없게 된 그는 먹은 것을 토하고는 숨을 거둡니다. 그 뒤를 이어 그리스도가 이 땅에 내립니다. 그는 제우스의 꼴이 말이 아니게 된 걸 알고는 가로되, `여자를 조심할지니'."

   나는 조르바의 천진난만한 상상력에 경탄하면서 웃음을 터뜨렸다. 조르바의 입담을 두고 여성비하 혐의를 걸고 싶어하는 독자에게 일러두거니와, 팔난봉꾼 제우스의 정반대편에는 `아프로디테 포르네(음란한 아프로디테)'가 있다. 이들의 난봉은 생명의 기운을 돌리는 일종의 터보엔진이었다.
1999년 8월, 그리스 남단의 섬 크레타 행(行) 항공기에 오르려니 웃음이 나왔다. 하필 `크로노스 항공(Cronos Airway)' 소속 항공기였기 때문이다.

   크로노스는, 아버지이자 천신(天神)인 우라노스(Uranus)가, 어머니이자 대지의 여신인 가이아(Gaea)에게 괴상한 자식을 자꾸 끼친다는 이유로 낫을 한 자루 만들어 아버지의 생식기를 잘라버린 패륜아다. 제우스는 바로 그 크로노스의 아들이고, 아프로디테는, 우라노스의 생식기에서 흘러내린 피가 생명의 원천인 바다를 떠돌다 빚어낸 여신이다. 크로노스가 아버지의 생식기를 자를 때 쓴 `낫'에 이 신의 신격(神格)을 푸는 열쇠가 숨어 있다. 크로노스의 이름, `시간'을 뜻하는 영어의 연결형 `크로노(chrono)'는 같은 의미를 지닌 그리스어 크로노스(Khronos)에서 유래한다. 크로노는 영어의 `연표(chronology)' `연대기(chronicle)' `초정밀 시계(chronometer)'같은 말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로노스는 낫과 모래시계를 든 모습으로 그려지는 것이 보통인데 이것은 그가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것들을 소멸시키는 시간의 속성을 상징하기 때문이란다.



갓난아기 제우스 숨겨 위기모면
   크로노스에게는 괴망한 버릇이 있었다. 아내 레아가 자식을 낳으면 낳는 족족 산 채로 삼켜 버리는 버릇이 그것이다. 제우스가 크로노스와 레아의 여섯번째 아기로 태어났을 때는 크로노스가 이미 먼저 태어난 다섯 남매를 삼킨 뒤였다. 어머니 레아로서는 크로노스가, 여섯째 제우스까지 삼키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다. 그래서 지아비 크로노스가 갓난아기를 내놓으라고 했을 때, 아기만한 돌을 강보에 싸서 내밀었다. 속임수에 걸린 크로노스는 강보에 싸인 돌을 제우스인 줄 알고 삼켜 버렸다.

    레아는 아기 제우스를 크레타의 한 동굴에 숨기고, `아말테이아'라는 이름의 산양(혹은 유모)으로 하여금 그 젖으로 기르게 했다. 제우스는 여느 아기가 아니라서 울음소리가 여간 큰 것이 아니었다. 레아는 그 울음소리가 크로노스의 귀에 들어가지 않도록 아기가 자랄 때까지 산신(山神)들로 하여금 동굴 밖에서 방패를 두드리게 했다. 말하자면 방패 소리로써 두번째로 크로노스를 속인 것이다.

    신화에 따르면 신들의 성장속도는 엄청나게 빠르다. 그렇게 빠른 속도로 자란 제우스가 토제(吐劑)를 써서 아버지 크로노스가 삼킨 5남매를 토해내게 하니, 이들이 바로 태어나기는 제우스보다 먼저 태어났지만, 자라기는 나중에 자란 바다의 신 포세이돈, 저승의 신 하데스, 나중에 제우스의 아내가 되는 헤라, 대지와 곡물의 여신이 되는 데메테르, 그리고 부뚜막과 불씨의 수호여신 헤스티아다. 산신들의 방패 소리라는 속임수 덕분에 크레타에서 자랄 수 있었던 제우스는 바로 그 아버지를 흔적도 없이 제거하니, 이 때부터 크로노스는 신화의 무대에서 사라진다. 크레타 행 항공기가 `크로노스 항공사'에 소속된 것에 웃음이 나왔던 것은 크레타야말로 아들 제우스가 아버지 크로노스 몰래 자란 섬 이름, 따라서 크로노스에게는 치욕의 상징일 터였기 때문이다.
   왜 처음부터 제우스가 아니고 이제 와서 제우스인가? 기원전 5세기, 정치가 페리클레스가 아크로폴리스에다 세운 것은 제우스 신전이 아니라 성처녀 아테나 신전이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제우스를 중심으로 하는 올륌포스 신들과 선대(先代)에 속하는 티탄(거신돚巨神)들 사이에 건곤일척(乾坤一擲)의 대판 싸움이 벌어진 적이 있다. 이것을 `티타노마키아(티탄과의 전쟁)'라고 하는데, 이때 대지의 여신 가이아는 손자 제우스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이제는 힘이 아니다. 승리의 관건은 지혜와 기술에 있다.'
벼락과 기후의 신 제우스가 전쟁에서 승리하지만 아크로폴리스를 차지하지는 못한다. 아테나가 바로 지혜와 기술의 여신이었기 때문이다. 그 시대에 이르러서야 사람들은 하늘의 신 우라노스도, 시간의 신 크로노스도, 벼락의 신 제우스도 아닌, 지혜와 기술의 여신 아테나를 섬기게 된 것이다. 보편적인 신화 기술 방식과는 달리 제우스를 이제와서야 등장시키는 것은 그가 다른 신들의 존재를 설명할 때만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