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항의 혁명은 안단테로]하느님을 살해하는 신도들 / 경향신문 기사

2014. 8. 19. 06:45잡주머니






       

전체기사
[김규항의 혁명은 안단테로]하느님을 살해하는 신도들
김규항 |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찬사가 많다. 자본주의의 사악함을 비판하는 등 그의 발언과 행보는 충분히 그럴 만해 보인다. 그러나 프란치스코 교황이라는 한 인물을 지나치게 신성시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보수 꼴통’이라 비판받는 염수정 천주교 서울대교구 교구장의 추기경 임명에서 드러나듯 교황은 로마 가톨릭 체제라는 정치적 컨텍스트 안에서 작동하는 존재다. 인물보다는 그 개혁성 자체에 집중하는 게 바람직하다. 그와 관련하여 우리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그걸 이끌어낸 요한 23세 교황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요한 23세는 시쳇말로 ‘듣보잡’ 교황 후보였다. 개성이 강했던 전임 교황이 만들어낸 피로감에다 유력한 두 교황 후보의 각축전이 지속되자 가톨릭 지도부는 일종의 ‘징검다리’ 교황으로 요한 23세를 선출했다. 나이가 워낙 많아서(1958년 교황에 즉위했을 때 78살이었다) 어차피 교황을 오래 맡기도 어려웠고 특별한 개성을 가진 인물로 보이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듣보잡 징검다리’ 교황이 가톨릭 역사를 뒤집어 놓는다. 요한 23세는 1959년 1월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소집을 명한다.

   4년의 준비를 거쳐 1962년 개최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4개의 헌장과 9개의 교령, 3개의 선언이라는 방대한 성과를 남겼다. 그중 몇 가지를 들면 1545년 트리엔트 공의회 이후 라틴어로 봉헌되던 가톨릭 미사가 각 나라 언어로 봉헌되기 시작했다. 개신교에 대한 ‘열교’라는 멸시적 표현을 ‘분리된 형제’로 고쳤고 다른 종교에 대한 존중도 적시했다. 교회의 사회적 책임, 사회적 불의에 하느님의 말씀으로 저항하는 예언자적인 책임을 중시하게 되었다. 이 변화가 남미의 해방신학 운동을 비롯, 가난하고 약한 인민들과 함께하는 교회에 힘을 실어준 건 물론이다. 한국의 정의구현사제단도 같은 맥락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교리의 면에서 혁신은 ‘교회 밖의 구원’을 인정한 것이다. 기독교가 구원의 유일한 방법이라면, 다른 종교를 믿거나 기독교가 전파되지 않은 곳의 사람들은 꼼짝없이 지옥에 갈 수밖에 없다. 이런 논리가 얼마나 많은 야만과 제국주의 수탈의 빌미가 되었던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익명의 그리스도인’이라는 표현으로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한다. 인간의 입장에서 교회는 하느님과 소통하는 유일한 방법이라 해도 하느님 입장에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느님이 교회라는 감옥에서 풀려난 것이다.

    요한 23세는 공의회를 마무리하지 못하고 1963년 6월 선종한다. 보수세력은 후임 바오로 6세가 그 ‘경악할 만한 상황’을 종식하길 기대했지만 바오로 6세는 공의회를 지속하여 완료한다. 이후 30여년 동안 교황 이름은 ‘요한바오로’가 된다. 요한 23세와 바오로 6세의 개혁정신을 이어받는 의미다. 2005년 ‘요한바오로’라는 이름을 떼고 즉위한 베네딕토 16세는 가톨릭의 개혁 정신을 후퇴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행스럽게도’ 그는 2013년 3월 자진 사임했고 후임 프란치스코 교황이 가톨릭의 개혁 정신을 잇고 있다.






▲ 교황 프란치스코 개인보다는 그를 이끌어낸 개혁성 주목해야
갱신 이끈 건 민주주의 아닌 ‘독재’… 실체적 민주화, 자본 통제에 달려


   가톨릭의 거듭된 개혁적 갱신이 가능한 가장 결정적 이유는 ‘독재 체제’다. 만일 개신교처럼 민주주의 체제라면 제아무리 개혁적인 교황이 나와도 소용없었을 것이다. 개혁에 불만(은 물론 신학적 견해 차이를 넘어 냉혹한 이해관계를 둘러싼 것이다)을 억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이야기는 오랫동안 독재 체제와 싸워 정치적 민주주의를 회복한 한국의 진지한 시민들에겐 불편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일에서 오늘 민주주의에 대한 유의미한 질문을 얻어낼 수 있다.


   이를테면 한국 사회는 독재가 물러나고 민주화가 되어 좋은 세상이 열렸는가? 대통령을 욕해도 죽진 않게 되었지만 새롭게 등장한 자본 독재는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의 실체를 더욱 훼손해왔다. 학원 민주화의 열망은 대학이 모조리 기업으로 변신하는 걸로 귀결했다. 악취나는 한국 보수개신교 교회 문제도 결국 교회가 자본주의에 먹혀버린 현상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사회든 교회든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상충한다는 사실, 민주주의가 실체를 가지는가 여부는 자본주의의 통제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다. 예수는 이미 “하느님과 마몬을 동시에 섬길 순 없다”(마가 6:24)고 못을 박았다. 자본주의는 ‘공식적인 마몬의 체제’다.

   자본주의의 사악함을 비판하는 교황은 괜스레, 우연찮게 출현한 게 아니다. 가톨릭의 개혁 정신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거센 물결 앞에서 잦아들었고 앞서 언급한 베네딕토 16세 시기엔 ‘제3차 바티칸 공의회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그 여론이 결국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교황을 만들어낸 것이다. 나쁜 교회 때문에 신도들이 고통받는다는 말은 사실이되, 절반만 사실이다. 교회는 신도의 반영이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신도는 나쁜 교회를 만들며 심지어 하느님을 살해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신학적 구심이었던 칼 라너는 “대부분의 기독교인이 믿는 하느님은 고맙게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 바 있다. 물론 이건 가톨릭이나 개신교를 넘어 다른 모든 종교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