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2005 Chomolangma 휴먼 원정대

2014. 8. 22. 22:17산 이야기






      

[펌] 2005 Chomolangma 휴먼 원정대  등반관련.. 

2005/05/30 09:33

복사http://blog.naver.com/gajap/60013367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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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asphalte | ????
원문 http://blog.naver.com/repan/40012973646



• 원정대명:  2005 한국 초모랑마 휴먼 원정대 (2005 KOREAN CHOMOLANGMA HUMAN
EXPEDITION)
• 원정기간:2005년 3월 11일 ~ 2005년 5월 31일
• 원정대원:단 장 고인경 (GO IN KYOUNG)
원정대장 손칠규 (SON CHIL KYU)
 등반대장 엄홍길 (EUM HONG GIL) 외 9명 (총10명)
 트레킹 대원 9명 (취재팀)
• 등반루트:중국측 북릉 ~ 북동릉
• 입산경로:NEPAL KATHUMANDU ~ TIBET ~ BASE CAMP
• 등반목적:2004년 한국 계명대 산악회 조난사망자 3인 유해 및 유품수습
 동 등산로상의 타원정대 조난 사망자 유품 또는 유해수습

2004년 봄 시즌 CHOMOLANGMA봉(8848m) 중국측 북릉-북동릉 루트로 5월 18일 등정에 
성공한 한국 계명대학교 EVEREST원정대(2004 Keimyung University Everest Expedition)의 
박무택 등반대장과 장민 대원이 설맹 등의 사고로 귀환하지 못하였고, 이들을 구조하러 나선 
백준호 원정대 부대장 또한 함께 사망하는 비극이 발생하였다. 

동년 5월 21일 주중한국대사관을 경유하여 접수된 티벳 등산협회(TMA)의 사고통지 공문과 
타원정대에 따르면 박무택 등반대장은 8750m부근에서, 백준호 원정부대장과 장민 대원은 
8450m부근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고 현재도 등산로상에 방치되어 있는 상태다. 

이와 같은 비극적인 사고를 당한 계명대학교 산악회 및 대구광역시 산악연맹 그리고 한국의 
많은 동료 산악인들은, 동지들의 시신을 등반로 상에 방치해둘 수 없다는 데 뜻을 같이하여, 
2005년 봄 시즌에 엄홍길 등 고산 전문가들로 구성한 원정대를 파견하여 세계의 수많은 
산악인들이 오르내리는 등반로 상에 방치되어있는 고인들의 시신과 유품을 수습과 함께 
타 외국 등반대의 조난사망자의 유품이나 시신을 정리함으로써, 세계 산악계에 히말라얀 
휴머니즘을 제창하고자 한다.

북릉~북동릉 : 1960년 중국대에 의해 초등된 루트로서 티벳에서 접근해서 북쪽 안부
(North Col, 6,990m)를 통해서 북릉으로 올라 북동 주능선으로 오르는 루트로, 
초모랑마(에베레스트의 티벳어)의 노말 루트로 매년 봄 시즌 많은 등반대가 몰리는 
루트이다. 이 루트의 노스콜 부터 암벽지대가 정상까지 이어지며 8,300m의 최종캠프 
위로는 퍼스트스텝과 최난 구간인 세컨드스텝(8,600m) 그리고 정상직하의 서드스텝
(8,750m)을 거쳐야만 정상에 이를 수 있다. 계명대학교 원정대의 박무택 등반대장은 
서드스텝 지점, 그리고 백준호 원정부대장과 장민 대원 퍼스트스텝의 중간지점(8,450m )
에서 발견된 것으로 추정된다.

1. 등정 전후의 운행 및 캠프상황
1조박무택, 장민, 이정면, 락파(셰르파)
2조백준호, 배두찬, 누리(셰르파)
ABC대장, 쿡 1명
BC박무원, 쿡1명

[ 5.16 ]
16시1조
2조
C4 (7800m) 진출 
C3 (7100m) 진출, 셰르파는 뒤에 따로 출발
대장 ABC 도착 

[ 5.17 ]
08시1조
2조
C5 (8300m) 로 출발 
C4로 출발 
14시셰르파 2명(누리, 리마) C3로 출발
17시1조

2조
C5도착 (교신불능) 당일 밤10시 정상공격 출발예정 알려옴 
C3에 도착한 리마의 무선중계로 ABC로 알려옴 
C4 도착

[ 5.18 ]
08시1조
2조
ABC와 교신불능 
C5 로 출발, 셰르파 2명(누리,리마)는 C3에서 C5로 출발 


일 자일 수내      용비 고
3월 7일선발대 출국현지준비
14일1본대 출국출국
15일2카투만두고소적응 등반
16일3카투만두 - 루크라 - 팍딩(2,750m)
17일4팍딩 - 남체바자르(3,440m)
18일5남체바자르
19일6남체바자르 - 텡보체(3,800m)
20일7텡보체 - 딩보체(4,530m)
21일8딩보체 - 추쿵(4,730m)
22일9추쿵
23일10임자체(6,189m)등반
24일11추쿵 - 남체바자르
25일12남체바자르 - 루크라
26일13루크라 - 카투만두
27일~31일14-18카투만두현지준비
4월1일19카투만두 - 코다리 - 장무(2,300m)상행
카라반
2일20장무-니알람(3,700m)
3일21니알람 체류(고소적응)
4일22니알람 - 딩그리(4,200m)
5일23딩그리 체류(고소적응)
6일24딩그리 - 베이스캠프
7일25베이스캠프(5,200m) 구축고소적응
8일26캠프설치(5,800m)
9일~10일27-28전진캠프(ABC)설치(6,300m)
4월 11일~30일29-48Camp1 설치(7,010m)캠프설치,
산소 및
장비 데포
Camp2 설치(7,700m)
Camp3 설치(8,300m)
Camp4 설치(8,500m)
5월 1일~18일49-66현장접근 및 수습, 하강수습작업
19일~21일67-69고소캠프철수위령제
22일~24일70-72위령제 및 철수준비
25일73베이스캠프 철수 - 니알람하행 카라반
26일74니알람 - 장무
27일75장무 - 코다리
28일76코다리 - 카투만두
29~30일77-78현지업무귀국준비
31일79카투만두 - 서울귀국

[출



                             - 네이버 블로그 < Gajap > 수댕님의 글 중에서 전재 ....처] 

[펌] 2005 Chomolangma 휴먼 원정대|작성자 수댕

 

blog.naver.com/gajap/60013367705   무형의 선물





[펌] 박무택씨 시신수습을위한 엄홍길의 약속... ^^

2005.09.03. 03:37

           http://blog.naver.com/scdjlsm/40017045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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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자유롭게 | 자유롭게
원문 http://blog.naver.com/jauropge/13415422

   산사나이들의 가슴적시는 감동의 드라마......나는 이 기사와 글을 읽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산을 사랑하다가 영원히 산에 묻힌 故박무택 대원의 명복을 빈다.

 

히말라야 울린 ‘엄홍길의 약속’…박무택씨 시신 수습

 

'2005한국Chomolanma원정대'관련 뉴스 모음

 http://news.joins.com/chomolangma/01_01.html


   “죽음의 문턱을 함께 넘나들며 등반했던 동지의 시신을 수습하니 숙제를 해결한 기분이다. 이제 홀가분한 마음으로 히말라야를 등반할 수 있을 것 같다.”

세계적인 산악인 엄홍길(45·트렉스타 이사) 등반대장이 이끄는 ‘2005 한국 초모랑마(에베레스트의 티베트 명칭) 휴먼원정대’가 지난해 에베레스트에서 숨진 박무택(당시 35세) 씨의 시신을 29일 수습하는 데 성공했다.

박 씨는 지난해 5월 계명대 에베레스트 원정대 등반대장으로 후배 장민(당시 26세) 씨와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한 뒤 하산 길에 해발 8750m의 가파른 절벽인 서드스텝 인근에서 숨을 거뒀다. 장 씨도 이들을 구조하러 올라온 동료 백준호(당시 37세) 씨와 하산하다 해발 8450m 지점에서 함께 목숨을 잃었다. 

 

   원정대와의 위성전화 통화에 따르면 셰르파 9명이 29일 오전 10시 해발 8750m 지점에서 박 씨의 시신을 발견해 수습하는 데 성공했다. 중간 퍼스트스텝(해발 8500m)에서 장 씨와 백 씨의 시신 수색작업을 하느라 뒤늦게 도착한 엄 대장은 심한 눈보라로 원정대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세컨드스텝(해발 8600m) 위에 돌무덤을 만들어 박 씨의 시신을 안치했다.


 

   당초 계획은 티베트 자롱북 사원에서 티베트 불교의식으로 화장을 한 뒤 유해를 가족에게 인도할 예정이었다.

엄 대장은 “두 대원(장 씨와 백 씨)을 찾지 못해 여전히 마음이 무겁다”고 아쉬워했다.

산악인 시신 수습은 1999년 영국 BBC가 주축이 된 원정대가 1924년 에베레스트 정상 인근에서 실종된 조지 말로리의 시신을 찾아 돌무덤을 만들어 준 것이 유명하다.

 

 

[휴먼 원정대] 100㎏ 시신 100m 옮기는 데 2시간"

정상 턱 밑 8750m 절벽서 발견 원정대 조난 우려 "여기서 장례"

 "보인다. 그런데 완전히 얼음덩어리다."

초모랑마 휴먼원정대가 인천공항을 떠난 지 77일째. 드디어 시신 수습 선발대가 초모랑마(에베레스트의 티베트 지명)의 턱 밑 8750m 지점에서 로프에 매달린 고 박무택씨를 발견했다. 29일 오전 9시쯤. 그러나 박씨의 시신은 마치 '얼음 고치'상태로 100㎏이 넘었다. 3m 길이 로프를 당겨도 꿈쩍하지 않는다. 절벽에 들러붙어 있는 것이다.

"자일을 타고 내려가서 피켈을 이용해 떼어내. 시신이 다치지 않도록 조심하고." 후발대로 떠난 엄홍길 대장이 무전기를 통해 소리쳤다. 엄 대장은 자꾸 하늘을 쳐다본다. "날씨가 계속 좋아야 하는데…."

셰르파들이 시신을 절벽에서 분리해 등반로 쪽으로 옮겼다. 발견한 지 3시간여 만이다. 얼음덩어리인 시신이 너무 무겁고 몸을 구부린 상태여서 구조용 색에 들어가지 않는다. 엄 대장은 로프를 이용해 묶어 운반하라고 지시했다.  순간 하늘이 어두워지고 정상 부근에 눈보라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히말라야 특유의 변덕스러운 날씨다. 운구하던 셰르파들이 "무겁고 길이 평탄하지 않아 하산이 힘들다"고 소리친다. 시신을 묶은 로프를 잡고 보조를 맞춰 내려오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엉금엉금 내려오기를 2시간. 서드 스텝(8700m) 아래에서 엄 대장 일행과 만났다.

겨우 100m 내려온 상황이다. 그런데 눈보라와 함께 강풍이 몰아친다. 오늘 중 캠프 3(8300m)까지는 가야 제대로 하산할 수 있는데,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다. 특히 세컨드 스텝 50m 절벽 구간이 문제다. 바로 백준호.장민 대원이 실종된 구간이다. 날씨가 좋아도 힘든 상황인데, 박무택의 시신을 운구하면서 안전하게 하산하기는 무리다. "안 되겠다. 여기서 장례를 치른다. 빨리 돌과 바위를 모아라!" 엄 대장은 눈시울을 붉힌 채 결정했다. 자칫하면 원정대가 조난당할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셰르파들이 돌덩이를 모으기 시작한다.

   당초 계획은 베이스 캠프까지 운구해 거기서 1시간30분 거리인 티베트 사원으로 옮기는 것이었다. 거기서 제를 지낸 뒤 화장해 유골만 수습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날씨는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금세 돌 무덤(케른)이 만들어졌다. 주위로 눈사람이 된 셰르파들이 모여들었다. 엄 대장은 무전기를 들었다. "베이스 캠프 나와라. 운구가 불가능하다. 케른을 만들어 장사를 지내겠다." 베이스 캠프는 순간 '아-'하는 탄식이 나왔다. 한쪽에서는 "산사람이 산에 묻히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등반로 바로 옆이니 후배 산악인들이 초모랑마에 오를 때 만날 수도 있고"하는 말도 나왔다.

엄 대장은 박씨의 한국의 유족에게 전달하지 못한 것도 그렇지만 두 대원을 찾지 못해 마음이 너무 무겁다고 했다. 어렵사리 구성된 휴먼원정대. 게다가 기상 악화로 수습 일정마저 차질을 빚어 D-데이가 두 차례나 연기됐다. 그러나 6월 초까지 미룰 수는 없었다. 악명 높은 몬순이 시작되는 것이다. "케른도 산악인에 걸맞은 장례다. 이제 시신 수습은 끝났다"고 했다. 현재의 과제는 원정대원들이 무사히 캠프 3으로 하산해 베이스캠프까지 내려가는 것이다.

 

故 박무택 대원이 전하는 지난 1년간 이야기
...... 2004년 5월18일 오전 10시10분

   나,박무택은 후배 장민과 함께 초모랑마(8천8백50m,에베레스트의 티베트 이름) 정상을 밟았다.홍길 형과 함께 네팔에서 에베레스트 정상을 밟은 후 2년 만이다.우리 둘은 정상에서 간단한 기념 촬영을 했다.그리고 스노 피라미드를 거쳐 세컨드 스텝 위까지 내려오는 동안 히말라야 원정이 처음인 장민이 탈진상태를 호소했다.아직도 갈 길은 먼데 걱정이다.게다가 나는 설맹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앞이 안보이니 움직이기가 어렵다.

어떡해야 하나.그렇다고 민이에게 나를 끌고 가라 할 수도 없다.그것은 내 욕심이다.잠시 고민하다 (민이에게) 힘들더라도 혼자 내려가 셰르파를 데려오라고 말한다.8천7백m 죽음의 지대에서 혼자 있는다는 것은 죽음을 자초하는 것이지만 이 길만이 둘 이 살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법인 것 같다.민이와 헤어지고 나니 나도 더 이상 움직일 수가 없다.게다가 산소도 떨어진다.고통스럽다.



   정상 아래에는 천국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옥의 공포도 공존한다.우리는 탈진과 설맹으로 하산 속도가 너무 느렸기 때문에 정상에서 얼마 내려오질 못했다.얼어죽지 않으려면 오직 텐트가 있는 캠프3(8천3백m)까지 내려가야 했다.어떻게 해서든 텐트를 찾아가야 했다.

그러나 죽음의 지대에서 너무 오랜 시간 노출되다 보니 마취 상태인 것처럼 느껴져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근육은 마비되고 의식은 흐릿해 지고 산소 부족으로 인해 거친 숨을 몰아 쉬는 동안 내 의지는 사라져 버린다.

벌써 죽음의 기운이 나를 감싼다.저 아래서는 무전기를 통해 나를 깨우지만 정신은 자꾸 혼미해져 간다.내가 정상을 등정한 것은 살기 위해 내려가는 것이지 죽어서 내려가는 것은 아니었다.그런데도 내 의지는 의식과 상관없이 겉돌고 있다.

나는 세상을 초자연적인 눈으로만 보지는 않는다.그 동안 히말라야 등반을 통해 얻은 경험이지만 이 고도에서도 사랑하는 아내와 귀여운 찬민이에게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생각은 한번도 한 적이 없다.

4년 전 생각이 주마등처럼 흘러 간다.2000년 봄,내가 처음으로 홍길 형과 칸첸중가(8천5백86m) 원정을 떠났을 때 우리는 8천5백m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비부악(숙박장비 없이 밖에서 그대로 하룻밤을 보내는 것)을 하고 다음날 아침 정상을 밟았다.그 때를 생각한다면 이 것은 별 것도 아닌데…




   날이 저문다.움직일 수 없는 상태로 로프에 매달려 설사면 위에 누워 있는다.내가 말을 할 수 있고 사람들에게 내 목소리가 들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그러나 지금은 모든 것이 내게서 멀리 떨어져 있다.내 생명조차도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듯하다.

아름답게 빛나는 보라색이 정상 주변에 비춘다.심연 속에 흐르는 롱북 빙하는 안개 속에서 잿빛 강물이 흐르는 것처럼 보인다.주위의 모든 것은 소리없이 고요하다.길게 뻗은 짙은 안개가 서쪽에서 피어 오르더니 산쪽으로 다가온다.그리고 이내 어둠이 온 사방을 감싼다.눈 덮인 정상에서 반사된 달 빛이 산허리 위에 희미하게 빛난다.오래지 않아 날은 밝아오고 태양은 다시 떠오르겠지.

골골거리는 내 마지막 숨소리가 얼마나 더 오래 갈까.나는 이제 생각도 할 수도,말할 수도 없다.추위와 고통과 절망 때문에 너무 지쳐 봉우리에 둘러 싸인 채 잠이 든다.아직 여명이 비치기도 전이지만 푸른 초모랑마의 윤곽이 되살아난다.창백한 노란색이,그리고 생기있는 푸른 잿빛이 정상에서 흘러 내린다.그리고 태양은 정상에 찬란한 금빛을 쏟아 붓는다.




   벌써 하룻밤이 지났다.다른 팀의 원정대원 누군가가 고정 로프에 걸쳐 있는 나의 캐러비나를 벗긴다.그리고 나에게는 눈 한번 돌리지 않고 위로만 올라간다.새벽녘 누군가 나를 흔든다.준호 형이다.나는 말을 하지만 준호 형은 알아듣질 못한다.(당시 베이스 캠프에서 백준호 씨와의 무선 교신에 의하면 박무택씨는 얼굴에 이미 동상이 3도로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누구도 내 말을 더 이상 듣질 못한다.내 목에서 소리가 나지 않는 것일까.아닐 것이다.나는 존재하지만 의식은 서서히 꺼져 간다.

나는 세상과 작별하고 다른 세계에 와 있다.이제 모든 것이 불확실해졌다.아무도 나를 구해 주지 못할 것이다.나를 일부러 데리러 오지 않는 한 나는 조용히 언제까지고 여기 누워있게 될 것이다.검은 색과 흰 색만이 존재하는 하늘아래서 내 육체는 굳어가고 내 영혼은 다시 자라나겠지.




  구름만 무심히 스쳐 지나간다.그리고 한참을 지나 거대한 산 아래 롱복 계곡에도 짧은 한 여름이 왔다.초모랑마에서 내려다 본 산 언덕들은 연한 초록색이 되고 해가 비추는 공중에는 새와 나비들이 날아다니고 세상은 여러 가지 소리로 가득하다.빙하사이로 녹은 물은 시내를 이루며 우렁찬 소리로 흘러내린다.그러나 이러한 모습도 이내 사라지고 벌써 가을로 접어든다.저 산 아래에 어디서 많이 듣던 목소리가 준호 형과 나,그리고 민이의 이름을 목놓아 부른다.(지난 해 10월 손칠규,엄홍길,정오승 씨는 현지 상황파악을 위해 초모랑마 베이스 캠프를 찾았다.)그리고 그 소리마저 추운 겨울 바람에 묻혀 버린다.매서운 바람이 사면으로 불어 닥치고 정상 부근에는 거센 눈보라가 구름을 만든다.

마침내 건조한 겨울과 거센 바람이 지나면서 파란 색의 우모복에 황색 신발을 신은 내 모습도 다시 드러난다.




   내가 초모랑마 정상을 밟고 하산하다 눈을 감은 지 1년이 지났다.나하고 세 번이나 원정을 다녔고 지난 해 내가 사고 났을 때 다른 팀 셰르파로 하산 길에 옆에서 도움을 줬던 짐바 셰르파가 내 위로 지나가며 나를 쳐다본다.손을 흔들고 싶지만 이미 나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그리고 며칠 후 홍길 형과 셰르파들이 나를 찾아왔다.이들은 나를 산 아래로 옮기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발을 옮긴다.나는 이들을 보며 '이루려고 해도 이루지 못하는 목표를 향해 도전하는 인간의 위대한 이상'을 다시 한번 발견했다.너무나 반가웠다.

프랑스의 산악 작가인 가스통 레뷔파는'히말라야는 신비의 왕국이다.이 곳에 들어가는 무기는 의지와 애정뿐'이라고 말했다.나도 끊임없는 한계상황 속에서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며 자아를 발견하기 위해 이러한 의지와 애정으로 무장하고 히말라야로 발길을 돌렸었다.

그리고 황량한 산중에서 꼬박 1년을 보내고 지난 해 정상을 밟을 때와는 다른 모습으로 문명의 불빛으로 밝은 인간 세계에 다시 나왔다.이를 데 없이 멀고 먼 길이 오랜 시간에 걸쳐 나를 인간의 문명으로부터 떼어놓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은 에드먼드 힐러리 경과 텐징 노르게이 셰르파가 에베레스트 정상을 밟은 지 52년 되는 특별한 날이다.지난 24년 에베레스트 초등을 위해 초모랑마를 등반하다 숨진 조지 멀로리의 시신도 75년이 지난 1999년 5월1일 미국 에베레스트 원정대의 콘래드 앵커에 의해 8천2백50m 지점에서 발견됐다.이에 비하면 나는 지난 1년간 외롭게 이름없는 벽 아래서 홀로 지낸 것이다.이제 더 이상의 후회는 없다.

그 동안 히말라야 창공에서 외롭게 떠돌던 혼을 거둬줄 수 있도록 도움을 준 모든 이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할 따름이다.정상 아래 스노 피라미드에서 베이스 캠프까지 정상적인 걸음이라면 3 ̄4일이면 족하지만 우리는 '영원'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blog.naver.com/scdjlsm/40017045999   그날이 오면.....





영화

휴먼 원정대가 찾은 박무택 대원?? 
              

이번에 휴먼원정대있잖아요..

박무택대원등 3명의 시신을 찾으러 갔다가

왔다고 그러던데.. 박무택 대원이 누구인가요?

이분에 대한 정보좀 알고싶네요..

얼마전에 남극일기를 본뒤라.. 관심이 가져서..

부탁드립니다 ^^





작년 에베레스트 등반중.. 사고로. 목숨을

잃어 버리신 분이구요..

휴먼원정대에서 박무택씨와함께 2명의 대원의

시신을 찾으러 떠난거예요..

이분 프로필은...


박무택 *사망  
직업 : 산악인
출생일 : 1969년 6월 22일
사망일 : 2004년 5월 20일
학력 : 계명대학교
출 생 지 : 서울
특이사항 : 히말라야 8000m급 고봉 6개를 등정한 산악인, 2004년 에베레스트 도전 중 사망
  관련사항
약력
1989년 : 추계 히말츄리(7,893m) 원정
1994년 : 춘계 탈레이 사가(6,904m) 원정
1996년 : 춘계 가샤브럼 2(8,068m) 등정
1997년 : 하계 난다다비 동봉(7,432m) 원정
2004년 5월 18일 : 초모랑마(Chomolangma; 에베레스트) (8,848m) 등정 
  수상경력 
2005년 5월 체육훈장 맹호장 추서
 저도 남극일기를 본뒤 뉴스를 접하게 되어서..

관심을 가져.. 찾아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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