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슈퍼알피니즘의 대가 박영석 과 한국산악인의 영웅적 도전사

2014. 8. 22. 19:39산 이야기






       


세계적인 슈퍼알피니즘의 대가 박영석 과 한국산악인의 영웅적 도전사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8천미터급 14좌등반 7대륙 최고봉등정 여기에 남극과 북극점까지 탐험하여 성공한 세계최초의

그랜드슬렘의 산악 등반 및 탐험의 새역사를 쓴 박영석은 그의 천국이었던 산에 묻혔지만 그가 삶에서 보여주었던 끊임없는

도전정신은 세계최초로 에베레스트르 오른 전설의 산사나이 힐러리경이 박영석을 극찬한것처럼 무사안일에서 안주하는 젊은이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집념의 사나이로 영원히 기억될것이다.

 

 

고상돈


 

                                                                                박영석





허영호




 





 

박영석/ 엄홍길





 

고미영





 

엄홍길과 지현옥

 

 

 

   한국 악회의 에베레스트 도전사를 보면 62년 한국산악대가 다울라기리봉을 정찰한후 71년도에 김기섭 형제들에의해 에베레스트 마나슬루부터 도전이 처음 시작되는데 71년 김기섭대장은 마나슬루 정상 400미터지점에서 돌풍으로 추락사망하였고 72년 그의형인 김호섭팀 도전, 76년 큰형 정섭팀이 연이어 도전하였으나 눈사태로 사망하며 안타까운 실패가 계속되었다.


   에베레스트 도전 준비 원정대가 설악산에서 동계훈련중 14명이 눈사태에 사망하는 엄청난 희생을 치룬후 77년 9월 한국인 최초로 고상돈이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르는 퀘거를 이루어 한국산악인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구가하였으나 79년 북미 메킨리봉을 등반하고 내려오다가 추락사하였다.

그후 허영호라는 걸출한 등반가가 나와 여러 가지 테마적 탐험으로 국민들에게 지속적인 도전과 성취라는 자신감과 즐거움을 심어주고있다.



   이어 에베레스트 8천미터급 14개봉을 세계 최초로 오른 세계적인 이태리출신 알피니즘의 등반의 대가인 라인홀트메스너가 한것처럼 한국의 위대한 등반가 엄홍길이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14개봉을 오르는 놀라운 저력을 발휘하여 세계등반사를 놀라게 하였다. 뒤이어 14좌를 오른 한국의 등반가로 박영석, 한왕룡, 홍보성(세계 최단일기간 기록등정 5년4개월소요),오은선(여성세계최초)로 한국등반대의 실력과 위력을 전세계 산악계에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할것이다.


   여성 최초로 14좌에 도전하다 99년에 4번째 도전인 안나푸르나에서 희생된 청주 서원대학교출신 지현옥대장의 도전도 전설로 남아있고, 에베레스트 14좌중 11봉을 오르고 2009년 12봉째인 낭가파르트에서 희생한 청주대 중어중문학과 출신인 세계적인 여성알피니스트 고미영도 에베레스트에 묻혀있다.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에 1953년 세계최초로 오른 영국의 에드먼트 힐러리경은 어떻게 에베레스트를 올라가셨읍니까하고 물으니 한발짝 한발짝 걸어서 포기의 유혹이 엄습했지만 좌절하지않고 끈질기게 노력하다보니 정상을 밟게되었읍니다하고 답하였다. 정상에서 느낀 소감을 묻자 자연의 위대함에 경탄과 경외감을 느꼈으며 동시에 자부심이 그리고 겸손함이 교차되었다고 말하고있다.


    그의 자서전 모험없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를 발표하면서 모험은 나처럼 평범한 사람도 할수있는 일이라며 전세계인들에게 모험과 탐험의 정신을 일깨워 크게 일깨워 주었다할것이다.

   그보다 앞서 프랑스의 모리스에르족은 1950년 세계최초로 8천미터급 안나프르나봉을 올라 인류역사상 고산등반에 있어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하였다. 그는 정상에서 내려오다 악천후를 만나 당시 현장에서 손가락 발가락을 잘라내는 극심한 고통의 사투를 벌였고 후에 프랑스 체육부장관까지 지내는 프랑스가 자랑하는 세계적 등반가로서 지금도 존경받고있다.


    2011년 10월에 안나푸르나 남벽을 오르던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등반가 박영석대장, 신동민 강기석대원이 조난 실종되어 한국산악회가 현지 수색하였으나 결국 찾지못하고 11월3일 영결식을 치뤘다.

이미 8천미터급 14좌에 성공한 박영석대장은 이 14좌를 넘어서 새로운 험난한 루트를 14좌에 난코스 신루트를 개척한다는 도전을 하고 있는중이었다.

험난한 등정방식으로 오르는 알파인리즘에서 더나아가 슈퍼알피니즘을 추구하는 수천미터의 거벽등반, 무산소등정, 속도등반등의 대가였다.


   정상정복을 목표하는 등정주의를 마감하고 극심한 악조건의 자연상태에서 자기극복을 실현하고 자아를 발견하면서 심화시키는 또다른 진정한 산사나이의 모습이 아닐수없다할것이다.

그의 실종소식은 세계적인 산악전문뉴스 싸이트인 익스플로러스웹에서 세계로 타전되었는데 세계 산악 탐험계의 독보적인 존재인 박영석이 안나푸르나에서 사고를 당했다고 보도하였으며 한국 산악계는 가장 빠른속도로 8천미터급 봉우리를 정복하였는데 그모든것은 박영석대장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인정하고있음은 박영석이 세계최고의 등반가였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것이다.



   박영석의 집은 산악계의 사랑방으로 불릴만큼 동료와 후배들에게 아낌없이 퍼주는 장소로 유명하였으며 엄홍길(51)보다 3살아래인 박영석(48)은 30대때 네팔 카트만두에서 처음만나 함께 장사도하고 여행사도 하였던 애뜻한 정을 생각하며 14좌는 물론 남극. 북극점, 코리안루트등을 계속도전하는 박영석의 지칠줄 모르는 불굴의 투혼정신에대해 (그는 당뇨도 있었고 엄청난 탐험도전 시행으로 무릎연골이 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엄홍길은 후배인 박영석을 존경하지 않을수 없다고 말할정도이다.



    산은 속세의 논리로는 따질수없는 깊은 영혼을 울리는 매력이 숨어있고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을 보면서 고통의 인간사를 씻어낼수있는 대우주와 한인간과의 포용된 모습을 가감없이 보여주고면서 환희의 일체가될수있게 하므로 산 그자체가 바로 산악인들의 유토피아이며 무릉도원이며 파라다이스가 아닐수 없다할것이다. 산 그자체가 천국이므로 그들은 천국에서 영원한 기쁨을 누릴것이다. 선배들의 뜻을 이어 또다른 선각자들의 도전과 탐험은 지속될것이며 이러한 위대한 희생은 영원한 역사발전의 추동력으로 계속작용 될것이기에 그들의 숭고한 도전의 희생은 결코 헛될수 없다할것이다.

 

                                           칼럼리스트 김병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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