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제목 : | 말씀의 초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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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예언자는 군사적 강대국 아시리아의
임금에 대한 진노의 벌을 전한다. 이스라엘을 파괴시킬
힘과 권리가 있다는 그들을 주님께서 벌하실 것이다.
그들이 으스대는 영화와 권세를 사라지게 하실 것이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며 하느님 아버지를 찬미하신다.
세상의 슬기롭다고 하는 자들이 아니라 아버지를 알려 주도록
선택한 순박한 이들에게 당신을 드러내 주셨기 때문이다(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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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끼가 도끼질하는 사람에게 뽐낼 수 있느냐?>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10,5-7.13-16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불행하여라, 내 진노의 막대인 아시리아!
그의 손에 들린 몽둥이는 나의 분노이다.
나는 그를 무도한 민족에게 보내고,
나를 노엽게 한 백성을 거슬러 명령을 내렸으니,
약탈질을 하고 강탈질을 하며 그들을
길거리의 진흙처럼 짓밟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그러한 뜻을 마음에 품지도 않았다.
오로지 그의 마음속에는 멸망시키려는 생각과,
적지 않은 수의 민족들을 파멸시키려는 생각뿐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내 손의 힘으로 이것을 이루었다.
나는 현명한 사람이기에 내 지혜로 이루었다.
나는 민족들의 경계선을 치워 버렸고, 그들의 재산을 빼앗았으며,
왕좌에 앉은 자들을 힘센 장사처럼 끌어내렸다.
내 손이 민족들의 재물을 새 둥지인 양 움켜잡고,
버려진 알들을 거두어들이듯 내가 온 세상을 거두어들였지만,
날개를 치거나 입을 열거나 재잘거리는 자가 없었다.”
도끼가 도끼질하는 사람에게 뽐낼 수 있느냐?
톱이 톱질하는 사람에게 으스댈 수 있느냐?
마치 몽둥이가 저를 들어 올리는 사람을 휘두르고,
막대가 나무도 아닌 사람을 들어 올리려는 것과 같지 않으냐?
그러므로 주 만군의 주님께서는 그 비대한 자들에게
질병을 보내어 야위게 하시리라. 마치 불로 태우듯,
그 영화를 불꽃으로 태워 버리시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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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롭다는 자들에게는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25-27
그때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아들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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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태생의 영국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20세기가 낳은 진정한 사유의 천재입니다.
그는 날카롭고 깊이 있는 통찰로 철학의 새로운 전환을 이루었습니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모름지기 침묵해야 한다.”라는
그의 책 『논리 철학 논고』의 마지막 문장은
신학에 큰 도전이 되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는 학문적으로 신에 대해 접근하려는 자들에게는 비판적이었으나
소박하고 참된 신앙인들의 진정한 믿음은 무척 존경하였습니다.
그는 이러한 사람들이야말로
삶의 의미를 제대로 깨달은 이들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는 톨스토이가 전해 주는 러시아 민담
‘세 명의 노인’ 이야기를 매우 좋아하였습니다.
여행 중인 한 주교가 섬에 은자들이 산다는 말을 듣고
어부를 채근해 그 섬을 찾아가 세 노인을 만납니다.
그들은 하느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제대로 된 기도문 하나 모른 채
다만 “당신도 셋이요 우리도 셋이니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라고
기도할 뿐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를 답답하게 여긴 주교는 해가 질 때까지 그들에게
‘주님의 기도’를 알려 주려고 애썼답니다.
주교는 일을 마치고 뿌듯한 마음으로 돌아오는 배를 탔는데,
갑자기 멀리서 무엇인가 빛을 내며 물 위를 걸어 다가오는 모습을 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세 은자였고, 그들은 주교에게 주님의 기도가
잘 기억나지 않으니 미안하지만 다시 가르쳐 주십사고 청하였습니다.
주교는 이렇게 답합니다. “그대들의 기도야말로 주님께 올라갈 것입니다.
그대들, 하느님의 거룩한 사람들이여, 난 그대들에게 가르칠 것이 없습니다.
부디 우리 불쌍한 죄인들을 위하여 기도해 주십시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가장 큰 신비는 바로 하느님 아버지와
당신의 일치이며, 그 신비는 지혜롭다는 자들이 아니라
단순하고 진심 어린 믿음을 지닌 이들에게 선사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신앙인에게 성찰과 숙고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근본인 것은 앞의 이야기에 나오는 은자들처럼 단순하고
무조건적인 믿음과 신뢰의 마음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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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매일 미사-
♬ 알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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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사즐모(댄스스포츠 사교댄스모임 - 라틴, 모던, 사교, 리듬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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