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문화유산 /북한 ㅡ 고구려 고분군

2013. 5. 28. 22:08우리 역사 바로알기

 

 

 

 

 

고구려 고분군

(The Complex of the Koguryo Tombs; 2004)

 

 

 

 

 

 

 

  고구려 고분군(高句麗 古墳群)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있는 고구려시대 후기의 고분군이다. 대부분이 평양직할시와 평안남도 남포에 걸쳐 있다. 2004년 7월 1일, 유네스코 세계유산 위원회(WHC) 쑤저우(蘇州) 회의에서, 중화인민공화국 랴오닝 성과 지린 성에 걸쳐 소재하는 고대 고구려 왕국의 수도와 무덤군과 함께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세계 유산에 등재된 북조선의 고구려 유산은 5개 지역 고분 63기(벽화 고분 16기 포함)로 구성되어 있는데 중국에 있는 고구려 유산에 비해 규모는 적은 편이다. 강서 대묘(江西大墓)를 포함해 동명왕릉(東明王陵), 쌍영총(雙楹塚), 약수리 무덤, 수산리 무덤 등이 대표적이다. 안악 3호분처럼 많은 무덤 안에 아름다운 벽화가 있다. 벽화는 10,000여 개의 고구려 고분 중 90곳에서만 발견된 매우 드문 것으로 고분군의 주인은 왕족이거나 계급이 높은 귀족일 것으로 여겨진다.

 

강서대묘

 

 

 

안악 3호분

 

 

무용총

 

 

 

 

 

덕흥리 고분

 

용강대묘

 

약수리 고분

 

동명왕릉

 

 

 

       중국과 한반도에서 발견된 10,000기 이상의 고분들 중에서 거의 절반이 고구려 고분이며, 이러한 고분들은 왕을 비롯한 왕족, 귀족들의 시신을 매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고분의 벽화는 당시의 생활상을 독특한 방식으로 보여 주는데 많은 고분 중에서 90기에서만 이러한 벽화를 찾아볼 수 있다. 북한의 5개 지역에 있는 63개의 고분이 고구려 고분에 포함되는데 이들은 5~6세기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그 중 강서 삼묘(江西三墓)와 동명왕릉, 그리고 16개의 다른 고분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다. 고구려의 범위는 오늘날 중국 북동부의 지린(吉林) 성에서부터 북한의 평양시까지 아우르고 있으므로, 양국의 역사 유적들은 오랫동안 고구려의 역사적 기원을 둘러싼 분쟁의 소재가 되었다. 북한이 역사적인 증거를 바탕으로 고구려가 한반도의 옛 왕국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중국의 역사가들은 고구려의 유물들이 지리적으로 중국 국경 안에 있으며 중국이 소유하고 관리해 왔다는 점에서, 고구려가 중국 역사의 일부라고 주장해 왔다. 양국은 각자의 영토에 모두 속한 고구려의 유산을 별도로 세계유산목록에 등재하는 것을 ‘비정치적’인 행위로 여기는 데 동의했고, 현재 유적을 보존하는 동시에 관광지나 연구 자원으로 활용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당시에 한반도의 삼국 중 하나였던 고구려는 700년 동안 26명의 왕이 통치하며 존속했다. 그들은 모두 고구려인의 행복을 향상시키는 동시에 군사력을 증강하려고 노력했다. 고구려는 북방의 침략자들에 대항해 싸워야 했기 때문에 고구려 사람들은 조직적으로 단결되어 있고, 전술 또한 잘 습득하고 있었다. 고구려에는 독특한 문화와 더불어 높은 수준의 교육, 사회, 정치, 군사 체계가 발달했다. 고구려의 고분 벽화들은 풍부한 색채와 색조를 갖추고 있다. 벽화에 그려진 춤추는 여인, 훈련 중인 전사, 하늘의 새와 용, 강의 물고기, 숲의 짐승, 바람, 구름 등은 매우 현실적이고 생생하여 마치 그림 속에서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역사적 배경; 고구려는 기원전 277년부터 서기 688년까지 1,000여 년 가까이 존속한 왕국이다. 중국 랴오닝(遼寧) 성 환런(桓仁) 현에 세워진 고구려는 3세기에 지린 성 지안(集安) 시의 국내성으로 수도를 옮겼다가 427년에 오늘날의 평양시 태성산 지역으로, 그 후에는 오늘날 평양시 중심부의 장안성이 있는 곳으로 수도를 옮겼다. 평양 지역은 오랫동안 고대 왕국 고조선의 수도로서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라는 전략적 위치를 점하고 있기 때문에, 고구려는 수도를 이곳으로 옮겨와 국가 발전에 무척 힘을 썼다. 고구려는 중국 북동부에서부터 한반도의 절반에 이르기까지 영토를 확장시키며 동아시아의 강력한 왕국으로 부상했다가 668년에 멸망했다. 고구려에서 가장 유명한 문화유산은 돌과 흙으로 된 봉분으로 덮인 수백 개의 석조 고분들이다. 고구려가 평양으로 수도를 옮기면서 흙 봉분이 덮이고 벽화들이 그려진 고분이 일반화되었고, 다른 지역에서도 이러한 고분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고구려 고분은 대개 지난 수천 년 동안 몰래 발굴되어 왔기 때문에, 과학적인 방법에 의해 발굴된 고분은 그 수가 매우 적다. 따라서 발굴된 유물 역시 온전한 것이 매우 적다. 많은 고분이 일반인들에게 공개된 1905년에 이르러서야 고구려 고분은 비로소 세계적인 관심을 끌게 되었다. 이 시기는 일제강점기였기 때문에 최초의 과학적인 연구 및 기록은 1911년과 1940년대 사이에 일본 학자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정기적인 연구와 발굴, 기록은 1945년 이후에도 지속되었다. 고분에 들어가는 것을 제한하거나 새로운 입구를 만드는 등의 소소한 보존 조치는 1940년대 초반에 이루어졌다. 정기적인 관리와 보호, 보존 활동은 적절한 법적 조치가 마련되고 유산 관리자를 지정한 1946년에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