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제목 : | 말씀의 초대 |
글쓴이 : | |
| | |
예레미야 예언자는 주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새 계약을 맺을 그날이 오리라고 예언한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법을 사람들의 가슴에 새겨 주시어
그들이 주님의 백성이 되게 하실 것이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을 사람들이 누구라고
하는지 물으신 뒤 이제 제자들의 답이 무엇인지 질문하신다.
시몬 베드로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시라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는 그를 반석으로 삼아
교회를 세울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처음으로 수난과 부활에 대한 예고를 하신다(복음).
| |
<나는 새 계약을 맺고 죄를 기억하지 않겠다.>
▥ 예레미야서의 말씀입니다. 31,31-34
보라, 그날이 온다. 주님의 말씀이다.
그때에 나는 이스라엘 집안과 유다 집안과 새 계약을 맺겠다.
그것은 내가 그 조상들의 손을 잡고 이집트 땅에서
이끌고 나올 때에 그들과 맺었던 계약과는 다르다.
그들은 내가 저희 남편인데도 내 계약을 깨뜨렸다.
주님의 말씀이다. 그 시대가 지난 뒤에 내가 이스라엘 집안과
맺어 줄 계약은 이러하다. 주님의 말씀이다.
나는 그들의 가슴에 내 법을 넣어 주고,
그들의 마음에 그 법을 새겨 주겠다.
그리하여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
그때에는 더 이상 아무도 자기 이웃에게, 아무도 자기 형제에게
“주님을 알아라.” 하고 가르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모두 나를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이다. 나는 그들의 허물을 용서하고,
그들의 죄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 |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13-23
예수님께서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에 다다르시자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그런 다음 제자들에게, 당신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분부하셨다.
그때부터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반드시 예루살렘에 가시어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흗날에
되살아나셔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밝히기 시작하셨다.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하기 시작하였다.
“맙소사, 주님! 그런 일은 주님께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
오늘 복음은 ‘베드로의 수위권’의 근거가 되는 대목이자 교회의
기원과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성찰하게 하는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이 복음을 한 구절씩 묵상해 나가다가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신앙 고백을 들으신 뒤 그에게 이르신 말씀에 머뭅니다.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인간적인 차원에서 스승으로만 바라보는 것을 넘어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라는 결정적 고백을 합니다.
이는 어디선가 떠도는 이야기나 누군가 알려 준 사실을 그저 반복하며
인정한 것이 아니라 가슴속에서 솟아난 진심 어린 고백이었습니다.
자신의 삶을 그분께 송두리째 바쳐야 함을 예감한 대답이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자신의 신앙 고백은 ‘깨달음’의 언어이기도 합니다.
신앙인에게 깨달음과 자각의 과정은 신앙의 성숙에 반드시 필요합니다.
몇 년 전에 세상을 떠난 독일의 시인 힐데 도민은
문화적으로 높은 수준에 오른 독일에서 나치즘의 광풍이
휩쓴 이유를 ‘스스로의 머리로 사고하는 사람’이
너무나 적었기 때문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저 폭넓은 지식과 높은 교양은 위기의 시대에 너무나 나약했습니다.
신앙에도 스스로 깨닫고 성숙시킨 신앙의 언어들이 있는 곳에서만
예수님의 인격과 삶을 닮아 가는
그리스도인의 길이 끝까지 투명하게 드러납니다.
그렇지 않을 때에는 배타적 광신이나 율법주의,
자기 합리화나 시대에 영합하는 모습이 득세하고 복음은 왜곡됩니다.
그러나 스스로 깨달아 발견하는 신앙 고백과 언어는
사실은 자기 자신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닙니다.
자기보다 더 큰 진리의 빛이 이끄는 대로 주님께서 가슴속 깊이
들려주시는 소리를 듣는 이만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늘의 아버지 안에서 비로소
우리의 고유하고 참된 모습을 발견하기에 그렇습니다.
|
-출처 매일 미사-
♬ O christ Domine Jesu - 오 주님(그리스도)
|
|
|
|
출처 : 사즐모(댄스스포츠 사교댄스모임 - 라틴, 모던, 사교, 리듬짝)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