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상시件 外

2014. 12. 2. 13:47잡주머니

 

 

 

 

 

       박근혜 정윤회와 청와대 십상시 문건 파장 시사 논단

2014/11/30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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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가 정윤회와 십상시의 손안에서 놀아났다’고 지금 난리가 일어났다. 십상시(十常侍)는 청와대 이재만 총무비서관·호성 제1 부속비서관·안봉근 제2 부속비서관 등 박 대통령의 핵심 측근 3인방과 청와대 안팎의 관계자 7명을 말한다. 청와대 내에선 신동철 정무비서관·조인근 연설기록비서관·이창근 부속실 행정관·음종환 홍보수석실 행정관·김춘 국정기획수석실 행정관 등 5명이, 청와대 밖에선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캠프에서 활동한 새누리당 의원실의 A보좌관과 전직 청와대 행정관 B씨 등 2명이 십상시에 포함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십상시는 원래는 중국 후한 말기 조정을 농락한 열 명 불알 없는 환관들이었다.

 

   힘은 산을 뽑고 기세는 세상을 덮는다는 초패왕(楚覇王) 항우(項羽)와의 오년 전쟁 끝에 승리한 한고조(漢高祖) 유방(劉邦)이 한제국(漢帝國)을 세웠다. 그리고 사백년이 흐르자 제국말기 증상이 나타났다. 조정(朝廷)이 장양, 조충 등 열 명의 환관 중상시들, 곧 십상시들 손안에서 놀아났다. 임금이 장양을 ‘아버지’라고, 조충을 ‘어머니’라고 불렀다. 후한(後漢) 십이 대 임금인 영제(靈帝)는 원래 가난한 황족으로 앞의 임금이 아들이 없어 대를 이었는데 노새를 끌고 다니는 것, 개하고 노는 것, 봇짐 지고 장사하는 놀음만 좋아했다. 그러더니 매관매직(賣官賣職), 돈 버는 일에만 몰두했다.

 

   위의 내용은 정사소설 삼국지(유길만 지음, 한국방송출판)』의 머리말에 있는 것이다. 이 내용에 빗대어 말한다면 박근혜가 정윤회를 ‘아버지’라고 부르고 이재만을 ‘어머니’라고 부르고 있다. 박근혜의 십상시 문건은 세계일보가 보도했다. 그래서 청와대에서 그 신문사를 고소했다. 검찰이 조사하고 재판이 벌어지면 세계일보가 처벌을 받게 될 것이다. 이렇게 예상하는 이유는 십상시 문건의 아래 내용은 여기 블로그의 내용에(주1) 미루어 볼 때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청와대 감찰 보고서에 따르면 정씨와 이재만 총무비서관과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 등 청와대 핵심 비서관 3인을 비롯한 10인은 지난해 10월부터 매달 2차례씩 정기적으로 만났다. 모임 장소와 시간에 대한 연락과 준비는 이 모임의 막내인 K 청와대 행정관(김춘식? 비서관)이 맡았다. 날짜가 정해지면 강원도 홍천 인근에 머물던 정씨는 모임 날짜에 맞춰 상경했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이들 모임은 대개 < 안봉근 청와대 제2부속비서관과 행정관이 청와대 내부 사정과 현정부 인사동향을 보고하는 식으로 시작됐다. 정씨는 정부 고위관료 인사와 청와대 내부인력 조정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했으며, 안 비서관 등을 통해 상당히 구체적인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고 감찰 보고서는 기록하고 있다.

 

   위의 내용은 세계일보에서 청와대의 감찰보고서를 인용해 보도한 것이다. 이 보고서는 청와대의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비서실장에게 보고한 것이다. ‘청와대의 비서실장 교체설 등 VIP 측근(정윤회) 동향’이란 제목의 문건은 청와대의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작성했다. 박모 경정 그의 직속상관인 조응천 비서관 명령을 받아 작성했고, 조응천은 홍경식 민정수석에게, 홍수석은 김기춘 비서실장에 보고했다. 어떻게 해서 박모, 조응천, 홍경식, 김기춘이 그런 엉터리 문건에 관여를 하고 그 문건이 세계일보에 보도된 것인가. 이것에 대해서는 여기 블로그의 내용에 미루어볼 때 아래와 같이 추정할 수가 있다.

 

   박근혜 정부는 이재만, 정윤회, 박지만 세 갈래 라인이 실세이다. 노련한 정윤회는 이재만에게 순종하고 있고 병골인 박지만은 측근에게 의지하고 있다. 박지만과 정윤회는 원수 간이다. 따라서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자 박지만과 정윤회 라인 간에 치열한 암투가 벌어졌다. 이재만 라인이 청와대에서 기반을 다지자 박지만 라인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권력의 자리를 내놓아야하게 된 박지만 라인이 이판사판으로 이재만, 정윤회의 아킬레스건으로 보고 있는 것을 공격한 것이다. 박지만 라인이 만약에 여기 블로그의 글을 보았으면 그것은 아킬레스건이 아님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박지만 라인이 십상시 문건을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보도를 의뢰했는데 이들 신문사들이, 첫 번째 이유는 자신들과 이재만과의 관계 두 번째 이유는 그 문건이 터무니없는 내용 그러니 법적으로 처벌받을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관계로 거부했다. 그래서 박지만 라인이 할 수없이 이류 신문사인 세계일보를 통해 보도한 것이다.

 

   필자가 십상시 문건을 검토해보면 이 문건의 작성에는 박모, 조응천, 홍경식, 김기춘은 간여하지 않았다. 그런 내용으로 작성하라고 지시할 수는 있지만 그들은 그 문건에는 글자 하나도 넣거나 빼거나 하지 않았다. 그들의 부하들이 사실이라고 보고 있는 이야기들을 분석하고 어쩌고 해서 작성한 것이었다.

 

(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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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박근혜 정윤회와 청와대 십상시 문건 파장|작성자 yukin48

 

 

박근혜 정부 청와대 파워엘리트는 문고리권력 3인방,  박지만 만만회는 박지원의 소설 시사 논단

2014/09/22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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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이 여태껏 정윤회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그런데 산케이 사건이 그를 부각시켰다. ‘우리가 산케이신문을 고소하면 다친다.’는 청와대의 우려가 맞아 떨어졌다. 국민이 지금 ‘정윤회가 박근혜의 애인이다. 현정권의 실세다’라고 입방아를 찧고 있다. 정윤회가 난감하게 되었다. 그가 우둔한 국민이 자신보고 현정권의 실세라고 말하는 것은 이해해줄 수 있지만 똑똑한 국회의원들이 그런 것은 그래줄 수가 없다.

 

   청와대 사정에 밝은 모씨는, “문고리 권력 3인방은 박 대통령의 가신그룹인 이재만 비서관, 정호성 1부속실 비서관, 안봉근 2부속실 비서관이다. 이 3인방은 현재 정윤회 휘하에 있다.”고 말하고 있다.

   새정치연합 박영선 원내대표는 “이재만이 청와대 서류를 싸들고 청와대 밖으로 나간다는 소문이 사실상 확인됐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청와대 총무비서관으로서 인사 실무업무도 맡는 이재만이 정부요직 인사자료를 그림자 실세인 정윤회에게 보고하러 다닌다는 것이었다.

   박지원 의원은 ‘만만회’ 그러니까 이재만, 박지만, 정윤회가 현정권의 실세라고 말하고 있다. 문고리 권력 3인방의 정점에 커튼 뒤의 정윤회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정윤회는,‘자신은 3인방과 접촉이 없다. 정의, 도리로 볼 때 그들이 당연히 나에게 연락해야 하는데 하지 않고 있다. 나로서는 매우 섭섭하다. 그리고 만만회는 말할 가치도 없는 소설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역대 대통령도 비선이 다 있었죠. 김영삼 정부 시절 비선조직이 국정을 농단했다는 건 천하가 다 아는 사실 아닌가요. 물론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도 동교동 가신그룹이 있었죠. 노무현 정권의 386친노그룹, 이명박 정권의 영포(영일·포항)라인도 다 마찬가지였죠.”

   정윤회가 자신이 박근혜의 비선임은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실세는 결코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순신과 도요토미 히데요시(경향미디어 刊)》에 아래와 같은 내용의 글이 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1530년에 군 졸병의 아들로 태어났다. 여덟 살 때 아버지가 죽자 가난한 농부에게 다시 시집간 어머니를 따라가 천덕꾸러기로 자랐다. 의붓아버지의 학대를 못 견뎌 열여섯 살 때 집을 나가 종살이를 시작했다. 잔나비를 닮은 못난 얼굴에 작은 체구에다 일자무식의 까막눈이었지만 눈치있고 재주가 있어서 당대의 인물인 오다 노부나가의 당번병이 되었다. 노부나가는 불세출의 영웅이었다. 일본전역을 피로 물들인 백년 쟁패전 난국은 사실상 그에 의해서 평정되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그 마무리를 했을 뿐이다.

   노부다가를 따라다니는 당번병 히데요시는 겨울에 오다 노부나가가 신발을 섬돌에 벗어놓고 방에 들어가면 그것이 차가워질까봐 그의 신발을 자신의 품에 안고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지성으로 섬겼으니 오다 노부나가의 총애를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히데요시가 노부나가의 잔일을 도맡아 했다. 그러자 어느덧 권력이 히데요시의 손안으로 들어갔다. 불알 없는 몸종인 환관이 황제 시중을 들다가 국가 권력을 장악하게 되는 것과 같은 과정이다. 중국 진나라 시대의 환관인 조고는 황제 앞에다 사슴을 가져다 놓고 말이라고 우겼다고 한다. 어이가 없어진 황제가 조정 대신들을 불러 묻자 놀랍게도 대신들 모두가 사슴을 보고 말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진시황제와 노부나가는 문무 겸비의 완벽한 인물이었다. 두 사람은 유유상종 그런 인물을 심복으로 삼았다. 그런데 진시황제와 노부나가의 후계자가 된 사람은 그 심복이 아니라 두 사람의 밑을 닦아주던 천한 사람들이었다. 권력자의 곁에 하루 이십사시간 있는 사람이 권력을 장악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진시황제와 노부나가의 경우에 그랬다면 박근혜의 경우는 어떠하겠는가.

   새정치연합 박영선 원내대표가, “이재만이 서류를 싸들고 청와대 밖의 정윤회에게 자문을 구하려고 간다”고 말했는데 실제로는 다른 여러 사람에게 간 것이리라. 설령 그에게 갔다고 해도 최종결정권자인 박근혜의 곁에서 서류를 챙기는 사람인 이재만의 권력이 정윤회의 그것보다 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청와대 밖에 있는 정윤회로서는 현정권의 실세가 될 수가 없다. 이재만, 정호성, 안봉근은 한때는 정윤회의 부하였지만 현재는 그가 그들의 눈치를 보고 있다. 이 사실을 국회의원, 기자들이 전혀 모르고 있으니 정윤회가 뛰다죽을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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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만든 정호성 이재만 안봉근-베일을 벗고 알몸을 드러낸 정윤회..프로필.. 시사 논단

2014/09/22 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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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윤회는 1998년 박근혜가 정계에 입문할 때 그녀의 비서실장이었다. 이재만, 정호성, 안봉근은 그의 부하들이었다. 정윤회의 이력은 베일에 싸여있다. 박근혜의 비서실장을 역임한 사람의 학력조차 밝혀져 있지 않다는 것에 미루어 그가 부끄러워서 학력을 숨기고 있음을 짐작할 수가 있다. 정윤회는 원래 최태민의 운전수였다 한다. 학력, 집안 보잘것없는 사람이 최태민, 박근혜 두 거물의 일급참모가 되었으니 정윤회는 역사서에 올라가는 천재적 인물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유유상종이니까 그가 발탁한 이재만, 정호성, 안봉근도 그런 인물일 것이다. 정상적으로 공부하지 못한 천재 정윤회는 학력이고 무엇이고 최고인 세 사람에게 자신들의 능력을 최대한도로 발휘하게 했다. 그러니까 그들에게 모든 것을 내맡겼다. 그래도 자신이 박근혜의 그림자인지라 전권을 장악할 수가 있었다. 2007년, 악의 인물로 국민 사이에 알려진 최태민의 사위라는 핸디캡을 극복 못한 정윤회가 박근혜의 곁에서 떠났다. 이에 원래 실세인 이재만, 정호성, 안봉근은 완전 실세가 되고 원래 허세인 정윤회는 완전 허세가 되었다.

   박근혜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이재만, 안봉근, 정호성 덕택이었다. * 박정희의 후광 덕택에 당선된 것이 아닌 것에 대해서는 (주1)에서 상세히 밝혔다. ** 박정희를 혐오하는 국민이 많음은, 대통령에 당선된 김영삼이 박정희 세력의 처치에 나서자 김영삼의 지지율이 90% 하늘 높이 올라간 데에서 확인할 수가 있다.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50대 이상이 박근혜를 지지한 첫 번째 원인은 박정희의 딸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노인이 젊은 아들에게 의지하는 심리는 인간 유전자에 새겨져 있다. 노인들은 아들이 좋아하는 대통령후보에게 투표하게 되어 있다. 만약에 안철수가 나왔으면 그들이 박근혜에게보다 더 많이 그에게 투표했을 것이다. 노인들이 문재인을 철저히 외면한 것은 구제불능 고루한 인물로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박근혜에게 투표한 것은 그녀를 변화하는 시대에 맞는 유연한 인물로 보았기 때문이었다. (주2)

(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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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naver.com/yukin48/220103717032

* 이명박 정부 때 박근혜가 지지하는 사람이 무조건 당선되는 관계로 ‘선거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러나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의 오십대, 육십대 나이 지긋한 간부들은 ‘박근혜의 대권가도에 노란 불이 켜졌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세상 변화를 읽지 못하는 삼십대, 사십대 나이 적은 정호성, 안봉근, 이재만에게 의존하는 그녀로서는 결코 대통령에 당선되지 못한다고 말한 것이다.

http://blog.naver.com/yukin48/220130976181 

(주2)

* 박근혜가 김정일이 보내준 비행기를 타고 평양에 갔다가 왔다. 유신헌법은 옳은 것이라고 주장하다가 국민여론이 좋지 않자 즉시 광주 망월동 5.18 묘지로 달려가서 참배했다.

** 안철수가 한때 받은 80% 지지율 중 절반은 노인들의 것이었다. ― 뇌가 반쪽인 노인들은 젊은이들이 지지하는 사람을 지지한다. 그런데 안철수가 시대에 뒤떨어진 인물인 최장집, 윤여준 같은 사람들로 자신의 싱크탱크를 구성했다. 그래서 젊은이들과 노인들의 지지를 한꺼번에 잃어버렸다. 그래도 줏대 없는 노인들은 박근혜보다는 안철수를 지지했다. 그러나 그런 그들도 문재인만은 도저히 지지할 수가 없었다.

노인은 원래 보수층이다. 오늘날의 보수층은 진보주의자와 보수주의자를 포옹한다. 골수 보수우파와 골수 진보좌파를 배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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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대통령 선거 때 박근혜는 안봉근, 이재만, 정호성 덕택으로 골수 보수우파의 틀에서 빠져나왔는데 문재인만은 그 진보좌파의 틀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싱크탱크에서도 골수 진보좌파의 틀에서 빠져나와야 함을 알았지만 노쇠해버린 관계로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그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한 문재인으로서는 노인들한테 철저히 외면받을 수밖에 없었다.

 

 

 

 

 

대통령선거 - 박근혜가 당선된 이유,  안철수 문재인이 당선 안된 이유 시사 논단

2014/08/29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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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사람은 한없이 어리석은 존재이다. 육십세가 되어야 겨우 사려분별이 있게 된다. 얼마 전까지 지구상에 원시종족이 살아남았는데 그들이 노인을 존경하더라고 한다. 동양과는 달리 서양에서는 노인을 존경하지 않았다. 그러나 ‘육십 세가 되어야 비로소 지혜다운 지혜를 갖추게 된다’ 사실은 원시인들도 알았는데 서양인들이 몰랐을 리가 없다. 이들도 그 사실은 잘 알고 있었음은, ‘나이를 먹을수록 현명해진다’는 그들의 속담에 미루어 알 수가 있다.

 

   사람은 사십세가 되면 머리가 굳어져 주관을 확립하지만 변화에는 적응 못한다. 그래서 이민 사회에서 노인들이 홀대받았다. 한국 사회가 90년대에 인터넷 시대가 열려 이민사회처럼 되어버렸다. 이제는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은, 좀 어리석더라도 삼십대 이하에게 의존해야만 하게 되었다. 2002년 대통령선거에서 육십대 이상의 머리에 의존한 이회창이 사십대 이하의 머리에 의존한 노무현에게 패배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고건이 대통령이 되지 못한 이유도 육십대 이상으로 싱크탱크를 구성했기 때문이었다.

 

    오늘날 육십대 이상은 낙후한 세대라고 보아야 한다. 그들의 머리에 의존해서는 대통령에 당선될 수가 없다. 국민 80%의 지지를 받았던 안철수가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 것은 최장집, 윤여준… 칠십대로 싱크탱크를 구성했기 때문이었다. 박근혜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박정희의 후광 덕택이 아니라 90년대 이십대 그러니 오늘날 사십대로 싱크탱크를 구성했기 때문이었다.

 

   박정희의 후광 아래 이회창의 대항마로 나선 박근혜를 국민이 사정없이 내쳐버렸다. 이회창에게 실망한 그들이 그녀에게 몰려갔을 때 무명의 인물인 이명박이 ‘청계천 공적’을 들고 나오자 국민이 그녀를 다시 사정없이 내쳐버렸다. 그들이 대통령감 인물이 없는 관계로 할 수없이 그녀를 떠받들게 되었는데 이때 안철수가 나타나자 국민이 또다시 그녀를 내쳐버렸다. 안철수가 대통령이 되지 못한 것은 순전히 윤여준 같은 칠십대로 싱크탱크를 구성했기 때문이었다. 90년대 이십대 그러니 오늘날 사십대로 싱크탱크를 구성한 박근혜가 안철수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 박근혜의 싱크탱크에는 칠십대도 참여했다. 그러나 정치인을 극도로 혐오한 그녀는 최종결정은 사십대에게 내맡겼다. 안철수의 싱크탱크에는 이십대도 참여했다. 그러나 어리석은 그는 최종결정은 칠십대에게 의존했다.

(주1) http://blog.naver.com/yukin48/220106922285 

(주2) http://blog.naver.com/yukin48/220103717032 

      http://blog.naver.com/yukin48/220128878875 

(주3) 이회창, 정운찬, 안철수, 문재인의 낙선과 박근혜의 당선은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은 좌우 엘리트들과 결별해야 한다는 교훈 남겼다. 1945년부터 2012년까지 한국사회를 지배한 좌우 엘리트들 그들의 시대가 막을 내렸다. 정운찬, 문재인의 낙선과 박근혜의 당선은 이데올로기의 종언, 권력이동의 시대의 도래를 의미한 것이었다. 다니엘 벨과 앨빈 토플러의 《이데올로기의 종언》과 《권력이동》 책의 내용은 형편없지만 제목만은 오늘날 한국사회와 부합한 것이었다. 박근혜 정부는 우파 엘리트의 정부가 결코 아니다. 386(1930년대 생, 80세, 60년대…**1?)이고 누구고 간에 모두 허세이다. 박근혜 정부는 신시대의 인물인 이재만, 안봉근, 정호성이 이끌어 가고 있다.

(주4) http://blog.naver.com/yukin48/220101755010 

 

 

 

노무현 황우석 사태의 예고 - 조선일보 kbs의 몰락과 네이버 다음의 번창 시사 논단

2014/08/26 0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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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까지 조선일보의 사회에의 영향력은 어마어마하게 컸다. 그래서 박정희, 전두환 절대 권력을 행사한 대통령들도 그들의 눈치를 보았다. 김영삼은 조선일보의 적극적 지원 덕택에 대통령이 되었다. 김대중도 만약에 그들이 반대했으면 대통령이 될 수가 없었다. 이쯤 되면 진정한 대통령은 조선일보라고 해야만 한다. 그래서 그들이 ‘밤의 대통령’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회창과 노무현과 대통령 자리를 놓고 다투자 조선일보가 이회창을 지지하고 나섰다. 단순히 그런 것이 아니라 노무현을 매장시키는데 온힘을 쏟았다. 그런데도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말았다. 이것은 인터넷 때문이라고 당시 식자들은 말했다.

   인터넷이 그 시대 초창기에 조선일보를 죽사발 내버렸다. 그렇다면 인터넷 시대 절정기인 오늘날 그들이 어떤 위치에 있겠는가. 조선일보의 옛날의 영화는 이제는 완전히 사라져버렸다고 보아야만 한다. 그들이 그렇다면 동아일보, 중앙일보, kbs, mbc는 어떠하겠는가.

 

   지식인에게의 영향력에서, 원래는 관영방송인 관계로 조선일보 아래였던 kbs가 방송노조가 활성화함에 따라 그 위로 올라섰다. 그러나 kbs도 ‘밤의 대통령’ 자리에 올라갈 수가 없음은 ‘황우석 사태’가 확연히 밝혀주고 있다. 그때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 kbs, mbc… 모두가 합심해서 황우석을 밀어주었다. 그래서 그가 가장 존경받는 위인이 되었다. 이런 때에 그의 제자였던 사람들이 황우석을 반대하는 글을 인터넷에 올려놓았다. 그 글이 반향을 일으키자 조선일보, kbs… 신문사, 방송국이 일제히 그 글에 대하여 반박했다. 당시 조선일보 주필 김대중이 ‘누가 마녀 사냥을 하는가’라는 대문짝만한 제목 아래 황우석을 두둔하는 글을 조선일보에 올려놓았다. 그러나 그 효과가 전혀 없었다. 이에 네티즌 몇 사람과 신문사, 방송국 간에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다. 당시는 인터넷 이용자 수효가 오늘날의 반에서 반에 불과한 때인데 네티즌 몇 사람이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 kbs, mbc와 싸워 이겼다.

 

   현재 네이버, 다음은 인터넷에 올라온 네티즌의 글을 선별해서 노출시켜주고 구글은 그 순서대로 노출시켜주고 있다. 구글은 전세계에서 높은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는데 한국에서만은 그러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방문자 숫자는 구글이 네이버와 비슷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한국에서도 크나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보아야만 한다. 사회에의 영향력에서 네이버, 다음, 구글이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 kbs, mbc를 압도하는 것은 시간문제로만 남은 것으로 보인다.

 

 

박원순 김무성 문재인 안철수 정몽준 김문수 차기 대선후보 대권주자 - 대통령 되려면 명심해야 할 일 시사 논단

2014/09/24 0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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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의 후임 대통령을 노리는 박근혜가 조선일보 간부고 군 간부고 누구고 간에 그들의 말을 듣지 않고 어린 데다 모자라는 사람들인 정호성, 안봉근, 이재만의 말만 들었다.(주1) 그녀가 대통령이 되면 큰일 난다고 판단한 우파 엘리트들이 서울대학교 총장인 정운찬을 박근혜의 대항마로 내세웠다. 그러나 국민이 그를 외면했다. 우파 엘리트들이 이회창을 밀었을 때에도 그랬는데(주2) 이번에도 그런 것이었다. 전번에는 우파 엘리트들이 밀어준 이회창은 떨어졌지만 좌파 엘리트들이 밀어준 노무현은 당선되었는데 이번에는 이들이 밀어준 문재인도 떨어졌다.(주3)

 

1990년대 인터넷 시대가 열려 한국이 이민사회처럼 되었다. 이제는 사십대 이상은 우파고 좌파고 간에 모두 정치, 사회, 문화, 교육 전반의 지도자 자리에서 물러나야만 했다.(주4) 이에 삼십대 이하의 지지를 받은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386 청와대 브레인이 나라를 제대로 꾸려가지 못했다. 이에 크게 실망한 국민이, 그들 브레인이 정치, 사회, 문화, 교육 전반의 지도자 자리에서 몰아낸 자들을 불러들여 그 자리에 다시 앉혔다. 그러나 이들은 인터넷 시대를 이끌어갈 인물들이 결코 아니었다. 이것을 절감한 국민이 노무현을 박정희보다 훨씬 훌륭한 인물로 여기게 되었다. 이런 때에 박근혜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니 이것은 전적으로 정호성, 안봉근, 이재만 그러니 인터넷 시대의 인물들 덕택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한때 국민 80%의 지지를 받았던 안철수는 자신이 인터넷 시대의 인물인데도 싱크탱크를 구시대의 인물로 구성한 관계로 낙마하고 말았다.

 

 

(주1) http://blog.naver.com/yukin48/220106922285 

(주2) http://blog.naver.com/yukin48/220103717032 

      http://blog.naver.com/yukin48/220128878875 

(주3) 이회창, 정운찬, 안철수, 문재인의 낙선과 박근혜의 당선은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은 좌우 엘리트들과 결별해야 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1945년부터 2012년까지 한국사회를 지배한 좌우 엘리트들 그들의 시대가 막을 내렸다. 정운찬, 문재인의 낙선과 박근혜의 당선은 이데올로기의 종언, 권력이동의 시대의 도래를 의미한 것이었다. 다니엘 벨과 앨빈 토플러의 《이데올로기의 종언》과 《권력이동》 책의 내용은 형편없지만 제목만은 오늘날 한국사회와 부합한 것이었다. 박근혜 정부는 우파 엘리트의 정부가 결코 아니다. 386(1930년대 생, 80세, 60년대…??)이고 누구고 간에 모두 허세이다. 박근혜 정부는 신시대의 인물인 이재만, 안봉근, 정호성이 이끌어 가고 있다.

(주4) http://blog.naver.com/yukin48/220101755010 

 

 

 

진보좌파 보수우파 뉴라이트의 의미 : 이인호 조갑제는 보수우파가 아니다 - kbs 노조 시사 논단

2014/09/07 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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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보좌파, 보수우파라는 말은 한국사회에서 전자는 공산주의, 후자는 자본주의 옹호자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 말의 어원은 프랑스혁명 때 혁명가들의 모임에서 급진파는 좌측에, 신중파는 우측에 앉았고 그래서 진보좌파, 보수우파라는 말이 생겼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중국에서 옛날부터 동등한 계급의 사람들 가운데 우수한 사람들이 좌측에 앉았다. 오른손이 노동일을 많이 하기 때문에 우측을 정신적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의 자리로 배정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유럽에서도 그랬을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프랑스혁명 때 급진파가 좌측에 앉았을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해방 이후 진보는 좋은 의미, 보수는 나쁜 의미로 사용했다. 그래서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가 진보파, 보수파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좌파, 우파라는 말을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좌파라는 말은 나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랬는데 그 생각은 옳지 않은 것이었다. 앞에서 밝힌 것처럼 한국이고 미국이고 동양이고 서양이고 간에 옛날부터 좌파는 우수한 사람들을 의미했다. 한국에서 좌파를 높게 여기는 풍조가 수천년간 지속되었으므로 그것이 한국인의 유전자에 새겨졌지 않았겠는가.

 

   공산주의 사상은 원래 노동자들이 생각해낸 것이 아니라 지식인들이 생각해낸 것이었다. 머리좋은 사람들, 젊은 사람들은 태반 공산주의 사상에 빠졌다. 그 사상이 워낙 허점이 많기 때문에 지적 능력이 높은 유럽인은 그 사상에 함몰되지 않겠지만 낮은 미국인은 함몰될 가능성이 있었다. 그래서 미국에서 공산주의자들을 무조건 배격하는 운동이 일어났다. 그러나 민주국가에서 그런 운동은 힘을 얻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공산주의자들은 무조건 죽인다는 법을 제정해놓았다. 그래서 민중이 좌파를 무조건 기피하게 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은 그렇지 않다는 것은 김대중,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된 데서 확인할 수가 있다. 김대중은 국민 사이에 공산주의자로 알려졌고 노무현의 아내의 아버지는 실제로 악질 공산주의자였다.

 

  옛날부터 오늘날까지 보수우파는 머리 나쁜 평범한 사람들 그러니 국민 대다수를, 진보좌파는 머리 좋은 특별한 사람들 그러니 국민 소수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공산주의자들이 보수우파이고 자본주의자들이 진보좌파이다. 보수우파가 한국사회에서는 냉전반공시대에는 공산주의자들을 무조건 배격하는 사람들이었으나 오늘날에는 전쟁을 반대하고 공산주의자들을 포옹하는 사람들을 의미하고 있다. 그러므로 공산주의자는 무조건 배격하고 전쟁도 마다 않는 사람들인 김용갑, 조갑제, 김동길… 그들은 결코 보수우파가 될 수가 없다.

 

   1980년대 구미에서 뉴라이트 운동 일어났는데 이것을 한 마디로 설명한다면, “진보좌파 측의 주장이 옳지 않음이 명백해졌다. 그러므로 옛날 자유주의 사상에 허점이 있더라도 그대로 따르자.”라는 운동이라고 할 수가 있다. 본질적으로는 옛날 것과 같지만 ‘다시 한다’는 의미에서 ‘뉴’라는 접두사를 붙인 것이었다.

뉴라이트의 의미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한국의 지식인들 가운데에는 극히 적었다. 그래서 2000년대 들어, 냉전반공 시대의 지배 세력이었던 보수우파 내지 그들을 추종하는 자들이 뉴라이트라는 기치 아래 모여들어 운동을 벌였고 진보좌파가 한심한 그 운동을 어찌할지 몰라 우왕좌앙했다. 뉴라이트가 대통령 선거 때 이명박, 박근혜을 지지했는데 이것은 두 사람에게 득보다 실이 많았다고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표를 얻었더라도 그들을 혐오한 사람들의 표 그러니 보다 많은 표를 잃었기 때문이다. 현재 박근혜 정권이 뉴라이트의 지도자인 이인호를 kbs의 이사장으로 임명했는데 이로 인해 손실 볼 것이다.

 

 

인터넷 시대의 권력이동 : 힘있고 돈있는 사람에게서 힘없고 돈없는 사람에게로 시사 논단

2014/08/24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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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날부터 오늘날까지 엘리트들이 세상을 지배했다. 국민 80%는 그들이 시키는 대로만 하는 우매한 사람들이었다. 우매한 그들의 아들 가운데 아주 똑똑한 사람은 엘리트들에게로 흡수되고 보통으로 똑똑한 사람은 매장되었다. 국민 80%는 자신들의 처지를 바꾸어보려고 해도 방법이 없었다. 칼마르크스는 노동자 혁명을 통해 바꿀 수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 주장의 그름이 확연히 밝혀졌다. 하층민 보통으로 똑똑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영영 펼칠 수가 없음이 밝혀진 것이었다.

 

   인터넷이 엘리트들의 세상을 바꾸어 놓았다. 미래학자들이 인터넷 시대를 전혀 예측 못했다고 반성하고 있는데 사실인즉 그들의 예측은 그것뿐만이 아니라 다른 것들도 틀렸다. 미래학자들은 자신들의 예측은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그들의 그것을 모아놓은 엘빈토플러의 저서 《미래의 충격》, 《제삼의 물결》을 보면 그 주장이야말로 엉터리임을 확연히 알 수가 있다. 하여튼 고집 센 미래학자들도 인터넷 시대를 예측 못했다는 것만은 인정하고 있다. 그들은 뒤늦게 ‘인터넷으로 인해 권력이 상층부에서 하층부로 이동하게 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그런데 그들의 그 주장의 알맹이를 다룬 엘빈토플러의 《권력이동》책은 50년 뒤는 고사하고 5년 뒤의 예측도 그르쳤음을 드러내고 있다. 권력이 상층부에서 하층부로 이동하게 된 이유는, “하층부가 사용하는 인터넷이 상층부가 사용하는 신문, 방송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는 한 마디로 요약해 말할 수가 있는 데 그 책에 그 말은 없고 다른 이야기로 수백 페이지를 채우고 있다.

 

   조선일보를 위시해서 신문사들의 판매부수가 해마다 10% 씩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학자들은 그 이유로 장광설(長廣舌)을 늘어놓고 있는데 그 이유도 한 마디로 말할 수가 있다. 신문은 수십 명의 기자가 쓴 내용이라고 해도 실상은 간부 몇 사람의 견해를 나타내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신문의 독자수효 그러니 판매부수는 허수(虛數)라고 해야만 한다. 실수(實數)가 되려면 판매부수가 더욱 줄어들어야만 한다. 방송의 경우는 그 기자들의 견해가 매체 특성으로 인해 제대로 나타나기도 한다. 방송 노조가 활성화함에 따라 관영 방송국인 KBS조차도 기자들이 자신들의 견해를 때때로 그대로 나타내고 있다. 그래서 오늘날 매체 신뢰도에서 KBS가 조선일보를 훨씬 앞지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방송국의 기자들은 원래 엘리트거나 그들에게로 흡수된 사람들이다. 따라서 우매한 국민 80%는 자신들의 주장을 펼칠 길이 없었다. 이런 상황이 인터넷 시대가 열림에 따라 바뀌게 되었다. 문창극 사태 때 신문사, 방송국이 합심해 그를 밟아버리려고 했다. 이런 때에 네티즌이 그를 두둔하는 글을 자신의 네이버 블로그에 올려놓았다. 그러자 삼일 후에 상황이 반전(反轉)되었다. 네이버 블로그의 글 한 마디가 조선일보, KBS의 기사 백 마디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었다.

 

   네이버, 다음 회사에서도 네티즌의 글을 모두 노출시켜주지는 않고 선택해서 노출시켜준다. 그러나 신문사, 방송국의 간부는 많아야 수백 명의 글을 검토하기 때문에 선별(選別)할 수가 있지만 네이버, 다음의 간부는 적어도 수천 명의 글을 검토해야 하기 때문에 신문사, 방송국의 그들처럼 선별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네이버에서 간부 직제를 아예 없애버리고 전직원을 평사원으로 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이것은 네이버가 우매한 국민 80%의 견해를 명실상부 반영하게 되었음을 의미 것이었다. 그렇다면 네이버, 다음… 인터넷 회사들이 그들한테 전폭적인 지지를 받을 것이므로 조선일보, KBS… 신문사, 방송국 위에로 올라설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 언젠가 애인과 함께 영업택시를 탄 국회의원 모씨가 그녀의 젖가슴을 더듬었다. 다음날 그 택시 운전사가 모씨에게 전화를 걸어, “당신이 택시 안에서 한 행위가 모두 녹화되었다. 돈을 내놓지 않으면 그것을 인터넷에 올려놓겠다.”고 협박했다. 이 사건은 인터넷 시대가 열림에 따라 권력이 힘있고 돈있는 사람에게서 힘없고 돈없는 사람에게로 넘어가고 있음을 단적으로 나타낸 것이었다.

 

 

 

 

      - 네이버 블로그 <역사연구> yukin48 님의 글 중에서 전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