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6. 4. 21:38ㆍ우리 역사 바로알기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국보 285호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 산 234-1
반구대 암각화는 바위에 새겨진 단순한 그림이 아니다. 암면에 그림을 그리거나 새기는 문화는 세계적으로 구석기 시대 후기부터라고 한다. 예사 그림이 아니라는 것은 서북러시아 해안에 새긴 바위그림이나 몽골 알타이 지방의 암각화를 접해 본 사람일수록 울산의 반구대 암각화에 대한 찬사는 그칠줄 모른다. 더구나 반구대 암각화의 형상이나 선묘를 한번이라도 그려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더더욱 반구대 암각화에 대한 황홀경에 빠지게 된다는 사실이다.
반구대 암각화의 조형미는 시대를 통털어서 가장 앞서 있다. 바위에 새겨 넣은 여유로운 공간의 배치나 여백의 아름다움을 살려낸 절대미와 오묘하게 선묘된 음양각의 처리는 찬사와 예찬을 능가하는 초월적인 힘과 여유마저 느껴진다.
- 반구대 암각화의 위치와 역사-
반구대란 이름은 절벽이 있는 산등성의 암반모습이 마치 앉아있는 거북 같다하여 불리워진다. 반구대 암각화는 반구대에서 남쪽으로 1Km 떨어져 있다. 1971년 12월 25일 동국대 문명대 교수에 의해 발견되어 우리나라 선사시대 바위 그림 연구에 획기적인 계기를 마련해 준 귀중한 유적이다. 울주구 언양면 대곡리 대곡천 중류(사연댐의 상류)의 암벽에 새겨져 있는데 평균 70m 높이에 하류로 이르는 계곡 오른쪽 절벽에 석재병풍을 이어 놓은 듯한 형상을 취하고 있다. 가장 많이 쪼아 새겨진 암벽부분은 석양무렵을 제외하고는 하루종일 햇볕이 들지 않는 곳이다. 즉, 옛날에는 북쪽을 향하고 있으므로 풍화에 의한 침식이 진행되었으나 현재에는 몰속에 침수되어 있어 풍화나 인위적인 해악, 결빙과 같은 온도에 의한 균열이 방지되고 있다. 원래는 물에 잠기지 않았지만 현재는 사연댐 속에 잠겨 있어서 심한 갈수기를 제외 하곤 볼 수 없는 실정이다.(발견 당시 이미 댐이 있었다.) 반구대 암각화는 1971년에 발견해 낸 것으로 배, 고래, 거북, 사슴, 범, 족제비, 멧돼지, 사람 같은 형상들이 새겨져 있다.
"한국미술 오천년전"이라는 역사성을 내세우는 주된 문화 유산이 바로 반구대 암각화이다. 오천년이라는 연대 추정의 근거는 분분하다. 신석기에서부터 청동기, 초기철기시대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청동기나 초기 철기시대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것은 포경에서 작살같은 그림이나 암각화를 새기기 위해 청동이나 철기같은 도구가 사용됐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석기시대의 정교한 도구들은 모두 돌로 다듬어낸 것들로 미루어 볼 때 돌을 가장 손쉽게 쪼아 낼 수 있는 것은 청동이나 철보다는 숙련된 솜씨로 석기를 다등어 내듯 돌로 쪼아내는 것이 한결 수월하다는 주장을 해 본다. <방패든 사람> <멧돼지> <작살꽂힌 고래> <수직으로 서있는 호랑이> <표범> <고래> <인면상> <방패든 사람> <사슴과 족제비> <잉태한 고래> -반구대 암각화의 규모와 양식 반구대 암각화는 너비 6.5m 높이 3m 가량의 중앙암면으로서 중심으로 좌우 15∼16m에 걸쳐 짐승이나 사람, 수렵이나 어로를 위한 물품 등 200여개 정도의 형상들이 음양각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것들은 바위를 쪼아 형상을 나타낸 뒤 그 위에 다시 그림을 새기는 겹새김과 오랜 세월 동안 비와 바람으로 말미암은 풍화와 침식 등으로 인하여 내용을 알기 어려워진 부분도 많다. 암각화가 새겨진 면은 중앙 암면을 포함하여 모두 9개에 이른다. 그림은 표현대상의 내부를 음각으로 모두 쪼아낸 "음각면쪼으기", 음각으로 쪼아내면서 부분적으로 형상을 양각으로 남긴 "음양각면쪼으기", 윤곽선만으로 쪼아낸 "음각선쪼으기", 윤곽선과 투시골격선을 함께 살린 "투시음각선쪼으기"에 의한 그림으로 크게 나누어진다.
-반구대 암각화의 표현 기법
1) 위의 예시된 암각화의 부분을 보면 이러한 형상들은 여러 세대를 거치는 동안 중첩된 표현 기법들이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이것은 기존의 선대 집단들이 남긴 형상에 담긴 상징적 의미 또는 세력, 권위를 부정하기 위한 또 다른 표현을 함으로써 자신들을 신성시하거나 권위를 내새우기 위한 목적으로 선대의 흔적에 덧쪼으기를 하였던 것 같다. 마치 어린아이들이 이미 그려진 그림이 자신의 시각에 맞지 않으면 가필하여 자신의 시각을 만족해 하는 것처럼, 그러나 이러한 흔적이 극히 일부분에 나타나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우리의 선대들의 역사성에 대한 존귀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2) 암각화에 새겨진 표현기법들은 대부분 음각기법이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오랜세월을 거치는 동안 그들의 능숙하고 다양한 표현기법의 발전상을 엿볼 수 있다. 그 발전적인 표현 기법의 변천은 다음의 과정으로 나타난다.
음각선쪼으기 : 초기 표현에서 나타나는 표현기법으로 외곽의 윤곽선만으로 쪼아낸다. 음각선무늬쪼으기 : 윤곽선의 기교에서 무늬를 표현하는 기교로 발전한다. 투시음각선쪼으기 : 윤곽선에 따른 표현이 능숙해지면 형상의 내부를 표현해 내는 기법으로 발전한다. 마치 동물의 몸 속 내부를 꽤뚫어 보는 듯한 투시기법이나 골격을 과감하게 표현해 내게 되는 것이다. 음각면쪼으기 : 쪼아내기 기법이 능숙능란해지면 선쪼으기에서 면쪼으기로 넘어간다. 즉, 구석기시대의 사실적인 묘사에서 신석기 시대의 단순화된 형상으로 바뀌듯이 과감하게 단순화되어 전체면을 쪼아내는 형상으로 바뀌어 간다. 음양각면쪼으기 : 전체면을 음각으로 쪼아내다가 세부의 형상을 남기는 표현기법으로 발전한다. 고래의 몸에 작살을 남기거나 잉태한 고래를 표현하는 방법으로 발전한다.
- 반구대 암각화 이야기
표현기법에서 음각면쪼으기 기법에는 고래그림이 많이 있는데 돌고래, 향유고래, 솔피, 큰고래, 혹등고래, 흰긴수염고래 등 6종이 있다. 이것은 그 옛날 이곳 가까이가 모두 바다였음을 나타내는 것이며 조선시대의 문헌에는 16세기까지만 해도 바닷물이 현재의 태화강 하구에서 10km위쪽에 해당하는 학성 근처까지 미쳤다는 기록이 있다. 최근에도 암각화에서 20km떨어진 울산만에는 고래가 발견되고 있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볼 때 그동안 한반도 정착집단들이 농경과 기마민족의 특성을 지녔다는 설과 함께 배와 고래 작살 등의 그림이 있는 것으로 보아 어로기술도 함께 하였음을 알 수 있다.
반구대 암각화가 물속에 잠깁니다.
안녕하세요. 문화재청 5기 블로그 기자 김천성입니다.
국립 고궁박물관에서는 지난달 4월 21일부터 오는 5월 19일까지 '국보 반구대 암각화' 기획특별전을 진행중에 있답니다. 일상생활과 문화재보호라는 민감한 측면에서 반구대 암각화는 최대 이슈(Issue)가 되고 있는데요 ~ 이번 기획특별전을 통해 볼 수 있는 반구대 암각화 이야기와 문화재청의 계획을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1. 국보 제285호 '반구대 암각화'
(위부터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전경, 반구대 암각화를 3차원 스캔 이미지한 모습)
바위에 도구를 사용해 그린 그림을 '암각화(巖刻畵)'라고 부릅니다. 반구대 암각화 또한 그 중에 하나인데요.
1971년 울산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 대곡천변 암벽에서 처음 발견된 반구대 암각화에는 고래를 비롯한 해양동물 90여점, 호랑이·사슴 등 육지동물 100여점 등 약 300여점의 그림이 새겨져 있습니다.
동물 그림 외에도 샤먼, 얼굴, 배, 미늘, 고래잡이 모습 등 선사인들의 생활상이 생생히 묘사된 것이 특징이며 특히, 고래잡이 모습은 세계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표현된 것으로 선사시대 인류 문명사 연구에 중요하다고 합니다.
(左 : 훼손이 진행된 모습 , 右 : 반구대 암각화의 원래 모습) ⓒ문화재청 내 '반구대 암각화, 그 30년간 훼손 비교'
암각화의 이러한 중요성 덕분에 1995년 국보 제285호로 지정, 2010년에는 천전리 각석, 주변의 공룡발자국 등과 묶어 세계문화유산(UNESCO World Heritage) 등재 준비를 위해 잠정목록에 등록되어있는데요.
안타깝게도 1965년 사연댐이 만들어진 후 반구대 암각화가 발견된 탓에 호수의 저수량에 따라 물속에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하며 수십년 간 서서히 훼손이 진행되었고, 지금 또한 훼손은 진행중인 상황입니다.
사연댐의 최고 수위가 해발 60m까지 오르는데 반해, 반구대 암각화의 위치는 53m에 위치해서 연중 약 8개월가량이 물속에 잠기고 이 때문에 표면 갈라짐, 색깔 변화, 강도 약화 및 부식 등의 피해가 발생하는 것이죠.
2. '반구대 암각화' 이렇게 보존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의 반구대 암각화를 보존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한걸까요? 이번 기획특별전을 통해 문화재청은 다음과 같은 보존계획을 널리 알리고자 합니다.
대곡천의 다양한 문화유산을 '명승'으로 지정합니다. (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대곡천주변, 공룡발자국화석, 천전리각석) ⓒ문화유산신문
반구대 암각화가 위치한 대곡천은 수려한 자연경과 덕분에 과거부터 명승지로 많은 사랑을 받아온 곳입니다. 그리고 이곳에는 천전리각석, 공룡발자국화석, 반구서원 유허비 등 많은 문화재가 산재해 있어 개별적인 관리와 더불어 모든 문화재를 함께 관리하기 위해 2013년 대곡천 주변을 '명승'으로 지정하고자 합니다.
반구대 암각화를 '세계유산'으로 등재합니다. ⓒ유네스코한국위원회
관심과 보존이 필요한 반구대 암각화를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게되면 지금은 국보로서 우리의 문화재지만, 이제는 세계인이 보호하는 문화유산으로 더욱 발전하게 됩니다. 그것은 곧 문화도시 울산의 관광산업 활성화와 더불어 지역 주민들의 자부심에도 효과를 줄 수 있습니다.
반구대 암각화는 2010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준비 작업으로 '잠정목록'에 올랐기에 현재는 위원단의 평가를 받아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자격이 있는 상태인데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기 위해서는 유물의 외형적 보존 뿐 아니라 주변 환경요소도 함께 보호해야 하기 때문에 문화재청에서는 사연댐 수위조절을 통해 반구대 암각화를 보존하고 2017년까지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고자 합니다.
3. 우리 모두의 관심이 필요합니다 !
이렇듯 반구대 암각화는 우리의 국보로 뿐만 아니라 세계유산으로서도 그 가치가 충분한 문화재입니다. 그래서 이번 기획특별전에서는 이러한 반구대 암각화에 대한 소개와 보존의 필요성을 중점으로 전시하고 있습니다.
▲ 각 부분에 대한 탁본. 그려진 그림 문양을 자세하게 볼 수 있습니다. ▲ 1972년 제작된 반구대 암각화에 대한 탁본들 ▲ 반구대 암각화에 그려진 그림만을 부각해서 소개하는 자료
현재는 많이 훼손이 진행된 상태지만 발견 당시에 제작된 원형 탁본 및 전체 형태를 볼 수 있는 거대한 탁본, 암각화에 그려진 그림에 대한 설명 등 반구대 암각화에 대한 다양한 자료를 볼 수가 있답니다.
오랜 기간 우리의 유산으로 이어져 왔지만 그 소중함을 모르는 사이 서서히 잊혀져 가고 있는 반구대 암각화..
이번 기획특별전을 통해 반구대 암각화의 독자성과 우수성, 그리고 인류 문명사에서 지니는 큰 의미를 직접 느껴보고 반구대 암각화의 보존 필요성을 적극 공감해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기획특별전>
경복궁 옆 국립고궁박물관 내 기획전시실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5번 출구로 바로 연결) 5월 19일 (일) 까지 전시 무료 입장
반구대 암각화 지키기
안녕하세요, 제5기 문화재청 블로그 기자단 류누리입니다.
최근 문화재청과 울산광역시가 보존방법을 둘러싸고 논쟁 중인 '반구대 암각화'에 대해 여러분은 알고 계신가요? 오늘은 반구대 암각화를 둘러싼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합니다.
▶ 반구대 암각화란 무엇인가요?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국보 제258호)
높이 3m, 너비 10m의 'ㄱ'자 모양으로 꺾인 절벽암반에 여러 가지 모양을 새긴 바위그림이다. 바위그림을 '암각화'라고 하는데, 이는 선사인들이 자신의 바람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커다란 바위 등 성스러운 장소에 새긴 그림이다. 전 세계적으로 암각화는 북방문화권과 관련한 유적으로 우리 민족의 기원과 이동을 말해주는 자료이다.
바위에는 육지동물, 바다고기, 사냥하는 장면 등 총 200여 점의 그림이 새겨져 있다. 육지동물은 호랑이, 멧돼지, 사슴 등이 묘사되어 있는데, 호랑이는 함정에 빠진 모습과 새끼를 밴 호랑이의 모습 등으로 표현되어 있다. 멧돼지는 교미하는 모습을 묘사하였고, 사슴은 새끼를 거느리거나 밴 모습 등으로 표현하였다. 바다고기는 작살 맞은 고래, 새끼를 배거나 데리고 다니는 고래의 모습 등으로 표현하였다. 사냥하는 장면은 탈을 쓴 무당, 짐승을 사냥하는 사냥꾼, 배를 타고 고래를 잡는 어부 등의 모습을 묘사하였으며, 그물이나 배의 모습도 표현하였다. 이러한 모습은 선사인들의 사냥활동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길 기원하며, 사냥감이 풍성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바위에 새긴 것이다. 쪼아낸 윤곽선을 갈아내는 기법의 사용으로 보아 신석기 말에서 청동기시대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선과 점을 이용하여 동물과 사냥장면을 생명력 있게 표현하고 사물의 특징을 실감 나게 묘사한 미술작품으로 사냥미술인 동시에 종교미술로서 선사시대 사람의 생활과 풍습을 알 수 있는 최고 걸작품으로 평가된다. 또한 주변에는 선사시대 인물화, 추상 암각화가 많이 발견되고 있고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의 글씨, 사람 발자국 모양의 그림이 많아 국보 제147호 천전리 암각화와 함께 '대곡천 암각화군'으로 주목받고 있다.
▶ 그런데 왜 문제가 되고 있나요?
ⓒ 네이버지도
반구대 암각화는 동물과 사냥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한 사냥미술, 종교미술로 당시 생활모습을 보여주는 것이기에 그 가치가 높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재목록에 등재될 정도로 중요한 문화재입니다.
문제는 반구대 암각화가 사연호에 있다는 점입니다. 사연호에는 1965년 울산공업단지의 공업용수와 인근 지역 주민의 생활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사연댐을 세웠고, 그 후 사연댐은 울산시민의 청정 식수원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사연댐이 세워진 이후, 1971년 겨울 가뭄 때 물이 빠지면서 반구대 암각화가 드러났고 그때 반구대 암각화를 발견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연댐으로 반구대 암각화는 1년에 9개월 정도 물에 잠겨 있습니다. 겨울과 봄 사이, 갈수기에만 물 밖으로 나옵니다. 즉 물이 차고 빠지고가 반복하면서 반구대 암각화가 빠르게 훼손되고 있는 것입니다.
울산광역시와 문화재청은 모두 반구대 암각화를 보존해야 한다는 것엔 동의합니다. 그 방법에 입장이 다른 것이지요.
▶ 반구대 암각화를 둘러싼 울산시와 문화재청의 입장
반구대 암각화에 관한 이야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처음 반구대 암각화가 발견되었던 1970년대부터 반구대 암각화가 국보로 지정된 1990년대를 거쳐 오랫동안 반구대 암각화를 어떻게 보존해야 하는가는 지속해서 논의한 문제입니다.
그러나 그 방법에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의견이 제대로 모으지 못해 지금껏 해결하지 못했던 셈입니다.
반구대 암각화는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로 선사시대 모습을 보여주는 유적지입니다. 우리 문화재의 '맏형'이라고도 불리며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재목록에 올라와 있지요. 그러므로 우리가 반구대 암각화를 지켜내야 한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입니다.
그동안 문화재청과 울산광역시는 반구대 암각화를 사연댐 수위 조절과 수문설치를 통해 보존하기로 하고 울산광역시가 필요로 하는 맑은 물을 확보하도록 관계부처와 함께 대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또 두 입장 모두 반구대 암각화가 더 훼손되지 않아야 하고,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통해 울산광역시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이 되도록 노력한다는 데에는 뜻을 모으고 있습니다.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반구대 암각화가 보호될지는 계속 논의해야 할 부분이지만, 반구대 암각화의 완전성과 진정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 또한 변하지 않지요.
반구대 암각화를 지키는 것은 울산광역시와 문화재청뿐이 아닙니다. 암각화에 대한 관심이 있는 우리가 모두, 반구대 암각화를 지키기 위한 반구대 암각화 특공대! 아닐까요?
선사시대부터 지금까지 반구대 암각화를 통해 선사시대의 모습을 보존해왔듯이 앞으로도 오랜 시간 반구대 암각화와 함께하길 바랍니다.
반구대 암각화 ㅡ 고래잡이
선사시대에도 고래를 잡았을까? 고래를 만나 보기는 했을까? 선사시대 사람들은 어떠 종류의 고래를 알고 있을까? 이 많은 궁금증을 한번에 알려주는 그림하나!!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는 모든 정답을 알려주는 타임 캡슐같은 그림입니다. 누가 언제 어떻게 그렸는지 알수는 없지만 그 속에 품고 있는 그림 속 이야기는 너무나 많은 고래 이야기를 들려 준다고 하는데 한번 살펴 볼까요?
반구대 암각화로 가는 길에는 울산 암각화 박물관의 모습도 볼 수 있는데요 작은 오솔길을 따라 암각화 만나러 가는길에 봄꽃이 한창입니다. 암각화 박물관은 건물 모양이 좀 특이하다고 생각하고 다시 살펴보니 고래의 모습을 표현했다고 합니다. 명확한 꼬리 모양과 고래의 머리가 그대로 표현된 것 같습니다.
계곡의 물 건너의 바위에 새겨진 암각화는 망원경으로 살펴보면 그 모습이 뚜렷하게 보이는데요 바닥이 조금 젖어 있는 부분의 윗쪽에 그래들이 새겨져 있다고 하는데 그림이 새겨진 바위의 특성상 비가 와도 그림이 있는 부분이 비에 잘 젖지 않는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물속에 자주 잠겨 부식도 많이 되고 파손되는 속도도 빨랐다고 하는데 지금은 상류에 댐이 건설되어 물속에 잠겨 있는 시간이 많이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이 곳에 암각화가 있는 이유 중에 하나는 선사신대에 어업활동을 할때 바다에서 강으로 통하는 이곳으로 만쪽으로 고래를 몰아 잡았다고 하는데 실제로 이곳에서 직선거리로 10km에 울산 앞바다가 있다고 합니다.
암각화에 대한 해설사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면 더 선명한 고래 그림이 눈에 들어오는데 이곳의 그림들 중 고래가 유명한 것은 300여점의 그림 중 고래 그림이 58개로 가장 많기도 하지만 선사시대에 그려진 고래 그림이 너무나 자세히 잘 표현되어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고래 그림들 중에는 고래등 위에 작은 고래 그림을 볼 수있는데 고래는 폐로 호흡하는 동물이기때문에 수중에서 30초 이상 있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린 새끼고래를 등에 태우고 이동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지금 그런 모습들이 과학자들에게 관찰 되어진다고 합니다.
또한 이 곳에는 고래의 다양한 모습들이 잘 표현되어 있어 귀신고래의 아가미 부분의 줄무늬 모양이나 북방 긴 수염고래가 물을 뿜어 내는 모습의 특징있는 모습들도 표현이 아주 세밀하게 표현 되어있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바다 생물들도 잘 표현되어 상어와 바다 거북과 물고기 그리고 그물과 작살을 이용하여 사냥과 포경하는 모습이 잘 표현되어 있다고 하는데 선사시대의 포경 장면의 한 페이지를 보는 듯 한 느낌입니다.
역사 속 생활이 그대로 느껴지는 울산 반구대 암각화는 눈으로 직접 보며 그 감동이 더 해지는 것 같습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 타임 캡슐을 타고 떠난 여행 같아 더 감동적인데 역사 속 고래의 숨은 매력에 푹 빠진 느낌입니다. 울주군 대곡리 암각화는 울산역의 여행센타에 문의 하거나 울산 시티투어버스를 이용하면 해설사 선생님의 이야기와 함께 쉽게 방문 가능합니다. 울산 암각와 박물관은 월요일 휴관이고 반구대 암각화는 평일과 주말 모두 방문 가능합니다.
울산 반구대 암각화, 선사인들의 염원을 들여다보다
우리는 종이에 글씨를 쓰고 생각을 표현합니다. 요즘은 인터넷 상에도 생각을 올릴 수 있습니다. 그 때, 선사인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았으며 어떻게 살았을까 궁금하다면 '반구대 암각화'(국보 제285호)에 가보시는 것도 좋습니다. 세계적으로도 드물게 약 300점 정도의 다양한 그림이 새겨져 있어 더욱 가치 있는 유적입니다.
이 사진은 얼마 전,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찍어왔습니다.
우선 울산암각화전시관에 먼저 들러서 암각화에 대해 충분히 알고 난 후, 암각화를 직접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아무런 기본 정보 없이 암각화를 감상하러 간다면, 그 희미한 그림들을 잘 알아볼 수도 없을 뿐더러 그냥 의미 없는 낙서처럼 보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출처 :풍수와 함께하는 문화답사 원문보기▶ 글쓴이 : 이순자
전시관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선사게이트입니다. 선사의 탑과 문양을 상징하는 선사의 벽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반구대 암각화의 내용 중 동물과 수렵 중심의 육상문화는 대체로 시베리아 암각화와 맥락이 같습니다. 하지만 고래를 중심으로 한 해양문화는 동아시아에서 반구대암각화만이 가진 특징입니다.
암각화의 종류와 제작기법, 도구, 판독법 등을 다양한 방법으로 알려줍니다.
반구대 암각화 실물모형입니다.
선사시대 생활 모습을 상상해서 연출했네요. 벽에 사람들이 뭔가를 그리고 있죠? 바로 저기가 반구대 암각화가 있는 곳이랍니다.
얼마 걷지 않았는데 금방 도착했네요. 지난번에 갔을 때는 물이 거의 말라있어서 암각화 바로 근처에서 볼 수 있었는데 이 날에는 물이 가득 차 있어서 강 건너편에서 망원경으로밖에 볼 수 없었습니다.
반구대 암각화는 북태평양 연안의 독특한 해양어로문화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유산임에도 불구하고 매년 침수와 노출을 반복해서 훼손되고 있습니다. 울산시의 식수공급 문제 때문에 수위를 쉽게 낮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문화재청은 올해 중에 반구대 암각화를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할 방침입니다. 암각화를 지키기 위한 해결책이 곧 확실하게 나오겠지요. 그 때가 되면 암각화를 바로 앞에서 자세히 보러 다시 한 번 가야겠습니다.
반구대 암각화
요즘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국보285호 반구대암각화다.
蔚山廣域市 蔚州郡 彦陽邑 大谷里에 있는 盤龜臺巖刻畵는 國寶 第二八五號로 一九七一年 東國大學校 學術調査團에 의해 發見되었다. 太和江의 支流인 對谷川의 絶壁面에 새긴 것인데, 江 下口에 貯水池가 생기면서 絶壁面이 물에 잠겨 있는 狀態이다. 너비 六.五미터 높이 三미터의 壁面에 새겨진 그림들은 大略 二百余 點으로 사람·動物·배·木柵·그물 등인데, 이들 가운데 가장 큰 比重을 차지하는 것은 動物들로 거의 全 壁面에 分布하고 있다.
巖刻畵가 새겨진 年代는 新石器時代 末期에서 靑銅器時代에 이르는 때에 形成이 되었고, 이 지역의 狩獵 漁撈人들이 사냥의 豊盛과 繁殖을 祈願하는 마음으로 만든 사냥미술이라고 할 수 있다. 二千十二年 十二月 韓國古中世史辭典의 內容을 引用하여 우리의 偉大한 文化遺産인 盤龜臺巖刻畵의 保存을 念願하는 마음으로 써 보았다 章川 金星泰 이 암각화는 1971년도에 동국대 문명대 교수님(참고로 나의 대학원 지도교수님이다)을 중심으로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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