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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 13. 16:42ㆍ차 이야기
- 우리 차문화의 시원을 밝히는
<한국의 차그림 다화 茶畵>
<The Tea Painting of Korea>
/ 오병훈 지음,
차의 세계, 2014.11.20일 발간
야정 오병훈(野丁 吳秉勳) 선생님의 우리 차문화의 시원을 밝히는
<한국의 차그림 茶畵>라는 책이 오랜 산고 끝에
작년 연말에 월간 <차의 세계>사에서 출간되었다.
책표지화에는 단원 김홍도 선생님의 초원시명도(蕉園試茗圖)를 실었다.
이 그림에서는 거문고 앞에 서있는 사향노루가 팽주격이고,
잎이 여러 갈래로 찢겨진 파초가 찻손님(茶客)으로 등장한다,
풍로에 부채질하며 차를 달이는 다동(茶童)이 단원(檀園) 자신으로 보인다.
다동의 머리묶음이 두개인 것으로 보아
상원사 문수동자상에서 보이는 머리묶음과 같다,
단원의 또다른 그림인 <송하취생도 松下吹笙圖>에서
생황을 부는 선인(仙人)의 머리묶음도 이 다동의 머리묶음과 같다.
어느 경지에 오르면, 팽주와 다동의 수직적 신분의 구별이 없어진다.
정성껏 차를 다려 산중 이웃친구인 사향노루에게 팽주를 일임함은
현실 일탈의 표현이 아니라,
인간과 축생의 경계를 허물어버리는 보현행이다.
문수동자인 단원 자신이 보현행을 하고자 함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잎이 여러 갈래로 그려진 바나나잎(파초잎)은 남국의 열정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올곧게 살아가는 젊은 청빈한 선비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개혁을 주장하다가 기득권을 가진 세력에게 강풍을 맞아
잎이 갈기갈기 찢어졌으나, 새로 솟아나는 말려있는 새잎이
하늘과 태양을 향하여 똑바르게 솟아남은
올곧은 강직한 성품을 가진 선비의 기상을 나타내고 있는 것 같다.
사색당쟁의 소용돌이 속에 직접 어느 선비의 용모나 인물을 표현하기 보다는
상징성을 가진 노루나 파초로 표현함으로서
당사자에게 더 큰 피해가 감을 피하고,
화공에게 닥쳐올지도 모를 필화를
피해가고자 하는 지혜를 내포하고 있음이다.
그러면서도 찻자리를 빌어 서로 화해와 위로를 겸한
시간을 갖고자 함을 표현한 명작으로 보인다,
검은 학의 울음소리를 닮은 거문고로 <영산회상>이나
<유초신지곡>을 탄주하여 우주운행의 질서 속에서
인간의 삶의 덧없음을 넌지시 율려로 표현함으로
당쟁의 사화도 결국 덧없는 것이라는 것을
알림으로 자신의 마음속 깊이 내재되어 있는 우주관과 인생관
그리고 삶의 도리를 음악에 실어 세파에 찢겨진 상대방의 마음을 위로하고,
화경(和敬)으로 서로 화합하고 존경하는 자리임을 암시한다.
차와 율여와 시와 그림(畵)는 서로 별개의 것이 아닌
하나로 통섭(通攝)된 한몸(一體)임을 서안(書案) 위에 놓여져 있는
거문고, 찻사발,벼루와 연적 등이 상징하고 있다.
차화로 앞에 쭈그리고 앉아 부채질하는 다동(茶童)을 자청하며
차를 달이는 단원(檀園)은
한재 이목(寒齋 李穆) 선생님의 다부(茶賦)에 나오는
<내 마음의 차(오심지차 吾心之茶)>의 경지에 들어가
이미 청적(淸寂)을 즐기고 있음이리라.
우리가 살아가면서 불이문(不二門)이 대도무문(大道無門)과
같은 뜻의 말씀이라는 것을 알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초원시명도(蕉園試茗圖), 단원 김홍도(檀園 金弘道) 작,
종이에 담채. 37.8*28cm , 간송미술관 소장
<한국의 차그림 茶畵> 173쪽에서 ....
무릇 세상살이에 소용되는 모든 물건들은 그 자체의 물질인 체(體)와
그 물건들을 인간생활과 정신함양에 사용하는 쓰임새(用)의
두가지 측면을 모두 지니고 있다.
차(茶)라는 물건도 생산농가에서 각종 차예절교육단체에 이르기 까지
차산업관계자들은 차라는 것의 체(體) 그 자체를
더욱 중요하게 여기게 될 것이고,
차를 사랑하고 자주 마시는 일반인들은 차의 용도인 용(用)을
더욱 중요하게 여기며 차생활을 해나갈 것이다.
야정 오병훈 선생님의 <한국의 차그림 (다화 茶畵)>라는 책에서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부터 조선조 후기에 이르기 까지
우리 배달민족 선조들의 차관련 그림들에 대한 방대한 자료 중에서
정선된 그림자료들을 집대성하여,
우리 선조들의 차생활의 단면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발간의 큰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당시에 그려졌거나 쓰여진 각종 차그림과 시문(詩文)들을 서로 비교하고
대비함으로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에 피폐해진 경제로 인한 생활상 때문에
일시 맥이 단절된 선조들의 차생활에 대한 전반적인 상황을
마치 퍼즐을 맞추어 나가듯이 하나하나 맞추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 발간된 <한국의 차그림>에서 나타난 우리 배달민족의 선조들의 차생활은
행다나 음차 그 하나에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차와 시서화(詩書畵), 그리고 음악(율여 律呂)을 동시에 즐김으로서
대우주 속에서 자신의 호연지기(浩然之氣)를 키워나가는 용(用)으로
쓰였을 뿐만 아니라, 찻자리라는 공간을 이용하여 찻손님(茶客)과의
소통과 교류의 장으로서 시서화 그리고 율려를 서로 주고받는 행위를 통하여
차라는 물건의 체(體)의 외연부를 넓혀가는 시공간을 구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차와 찻자리를 통하여, 오롯히 흘러 전해지고 있는 차의 정신은
눈맑으신 선배님들의 차생활과 이러한 차그림과 시문들을 통하여
오늘날 까지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단원 김홍도作-선인송하취생도(仙人松下吹笙圖)
고려대학교 박물관 소장
" 자유는 책임이다."라는 영국의 철학자 버나드 쇼우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오늘날 우리 한국의 차계가 가지고 있는 차의 체(體) 위주의 차문화를 개선하는 데,
이 <한국의 차그림>이라는 책이 시금석의 역할을 할 것을 기대한다.
광복 후 일본의 정형화되고 의식화된 왜색다도를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는가 했더니,
근래에 와서는 중국차 위주의 다법에 탐닉하고 있는 한국의 차계를 보면서
차문화의 저변확대에 힘써야 할 분들이 오히려 노차(老茶)나,
청차, 백차, 황자, 오룡차 등 차의 체(體)만을 즐기는 풍조가
만연되고 있는 현실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바쁜 시간을 쪼개어 음다하는 분들의 현실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 아니나, 휴일이나 휴가 때에는 우리 선조들이 즐기셨던 자연속에서
시서화(詩書畵) 그리고 율려(律呂)를 곁드린 차모임을 얼마든지 가질 수 있다.
결국 차라는 물건은 본질적인 체(體)란 면에서 보면
나뭇잎 말린 것에 지나지 않으며,
노차라는 것은 가지에서 딴지 오래된 썩은 나뭇잎에 지나지 않는다.
차라는 물건의 체(體)에서 벗어나 차문화 외연확대로 가는 것이
우리 배달민족 뿐만 아니라 세계인들의 차문화계에서
하루 속히 이루어져야 마땅할 것이다.
동양3국의 차문화를 뒤늦게 전수받은 유럽의 차문화계 보다 오히려 뒤지는,
차의 체(體)에만 빠져들고 있는 한국의 차계의 현실을 되돌아 보면서
이 한권의 책이 차문화의 저변을 확대하고 차문화의 외연부를
넓혀가는 데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어떤 다포(茶布)
<상산사호도 商山四皓圖> - 부분
백련(白蓮) 지운영(池雲英) 작,
비단에 담채, 85.5 * 131 cm , 개인소장
- <한국의 차그림 茶畵> 188쪽에서....
제가 얼핏 아는 사람이 그려준 다포(茶布)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자! 김진홍목사의아침..
2009/01/05 07:15
http://blog.naver.com/kjyh47/140060667159
[출처]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자!|작성자 치술령
“유다 족속 중에서 피하고 남은 자는 다시 아래로 뿌리를 내리고 위로 열매를 맺자.”(열왕기하 19장 30절, 이사야 37장 31절)
[출처] 네이버 블로그 <치술령 메아리>에서 발췌 ....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자!|작성자 치술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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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비어천가 제 2장
"불휘 기픈 남간 바라매 아니 뮐쌔, 곶 됴코 여름 하나니
새미 기픈 므른 가마래 아니 그츨쌔, 내히 이러 바라래 가나니. "
뿌리가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아니하므로 꽃이 좋고 열매가 많이 열립니다.
원천이 깊은 물은 가뭄에 끊이지 아니하므로 시내를 이루어 바다로 흘러갑니다.
" 별을 따는 소년들은 한편의 시를 위한 길을 가다"
*****< 별을 따는 소년들 > : 설악산 토왕폭 동쪽에 있는 암벽소요코스의 이름.
< 한편의 시를 위한 길 > : 외설악 소토왕골에서 노적봉을 암벽산책하는 루트이름.
추사 김정희 선생님의 대련
(정좌처다반향초) 靜坐處茶半香初
(묘용시수류화개) 妙用時水流花開
에 대한 여러가지 해석들을 덧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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靜坐處 茶半香初 - 정좌처 다반향초
妙用時 水流花開 - 묘용시 수류화개
고요히 앉은 자리, 찻잔를 반쯤 비우니 향은 처음 그대로
미묘한 움직임이여, 물 흘러 꽃이 피네
※ 작가미상의 시(詩). 추사(秋史) 고택(古宅)에 추사의 필치로 된 주련(柱聯)이 걸려 있으나
이 시 황산곡(黃山谷)의 시에서 유래하였다.
※ 작가미상의 중국화 <옥천품명(玉川品茗)>
靜坐處茶半香初 妙用時水流花開(정좌처다반향초 묘용시수류화개)
-중국 송나라 황정견(黃庭堅, 號는 山谷)의 시
<추사 김정희>가 <초의선사>께 보낸 편지에 적힌 다송(茶頌)인데, 참선과 차가 어우러지는 다선일미(茶禪一味)의 경지입니다. 우선 문자 그대로 해석을 하면, "정좌처에 차잔을 반쯤 마시니 향기가 돌기 시작하고, 묘용시 물이 흐르고 꽃이 핀다네" 의역하면, "고요히 앉아 찻잔를 반쯤 비우니 감로향이 돌기 시작하는데 미묘한 움직임이여, 물 흘러 꽃이 피어나는군" 차를 마실때 먼저 코를 사용하여 차의 향을 음미합니다. 찻잔의 반 정도를 마셨을 때, 마신 차는 목으로 흘려보내고, 나머지 반으로 차의 맛과 향을 음미하게 됩니다. 입안에는 감로가 고이고, 감로의 향이 혀 끝에 느껴집니다. 우리가 참선을 할때 혀끝을 입천장에 붙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혀끝은 임맥(任脈)과 독맥(督脈)을 연결하는 스위치 역할을 합니다 온 몸으로 기운이 흘러 돌게 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혀끝을 타고 감로가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이 감로의 맛과 향을 무엇으로 표현할까요, 이 세상에서 이 처럼 맑고 깨끗하고 달콤한 맛과 향기는 달리 없을 겁니다. 아무튼 감로가 고이면 꼴깍 꼴깍 침을 삼키게 되고, 감로수가 경락(氣가 흘러 다니는 길)을 따라 흐르게 되고, 기혈이 열리면서 생명력의 환희를 느끼게 됩니다. 마치 봄비에 시냇가의 버들강아지가 피어나 듯이 우리 몸에 생명의 꽃이 피어나게 됩니다. 이 것을 '수류화개'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그래서 '묘용시 수류화개'라고 하는 것입니다. 다음의 시도 황정견의 것입니다. 萬里靑天 雲起雨來( 만리청천 운기우래)
가없는 푸른 하늘에
의역하면, 푸른 하늘(마음 하늘)에 태양(깨어있음,覺 과 비춤,照)이 있어 산하대지(몸 안팎)를 비추니 생명의 물(물기운)은 하늘로 올라 구름(따뜻하고 부드러운 선정의 기쁨)이 되고, 이 구름이 비(불기운이 정화 되어 서늘하고 달콤한 감로)가 되어 산하대지를 적시니 물이 흐르고 꽃이 피누나. 좌선에 취미를 붙여 계속해나가다 보면 아랫 배에 팡팡하게 힘이 붙으며 단전이 따뜻해져온다. 이 때 지속적으로 정진해나가면 물기운은 위로 상승하고 불기운은 아래로 내려온다.
몸 안을 타고 흐르는 경락이 통하면 물기운과 불기운이 서로 섞여서 오묘한 기쁨(禪悅, 法喜, 선열 법희)을 느끼게 된다. 몸이 텅 비워진 듯, 마음이 활짝 열려 만물을 포용하되 흔적이 없으니 세계가 일화(世界一花)로다. 이것이 '수류화개'의 소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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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지식 in의 자료 중에서....
(1)다반향초 묘용시 수류화개
- bdukun
- 2008.09.30 17:48
추사 김정희가 초의선사에게 보낸 서찰에 적힌 다송인데,
인터넷상을 검색을 해보아도 해석상 의견이 분분한 것 같아서
참선과 녹차를 즐기는 다선일미의 입장에서 해석을 붙여 본다.
(정좌처다반향초) 靜坐處茶半香初
(묘용시수류화개) 妙用時水流花開
-중국 송나라 황정견
茶禪一味(다선일미)를 알아야 위 시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선 문자 그대로 해석을 하면
"정좌처에 차는 반이고 향은 시작되는데,
묘용시 물이 흐르고 꽃이 핀다네"
의역하면
"고요히 앉아서 차를 마시면 감로향이 시작되는데
묘하게 운용하면 물이 흐르고 꽃이 핀다네"
이렇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茶半香初는 차를 마실때 먼저 코를 사용하여 차의 향을 음미하고,
찻잔의 반정도를 마시고, 마신 차의 반정도는 목으로 흘려보내고,
나머지 반으로 차의 맛과 향을 음미하면 입안에 감로가 고이고,
감로의 향이 혀 끝에 느껴지는데 이 향이 다반향초의 향초입니다.
그래서 茶半이라 하고 香初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따라서 다반향초는 "차를 마시면 감로향(다반향)이 시작되는데" 라고 해석해야 합니다.
여기서 茶半은 그냥 차를 마신다로 해석하는 것이 부드럽습니다.
사람에 따라서 반잔을 마셔도 감로향을 느끼는 사람이 있고,
열잔을 마셔야 감로향을 아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생각만 해도 감로수가 흐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에 따라서 다른 것이지요.
따라서 茶半은 "차를 마신다"로 해석하는 것이 제일 무난합니다.
우리가 참선을 할때 혀끝을 입천장에 붙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혀끝은 임맥과 독맥을 연결하는 스위치 역할을 합니다
이윽고 화두를 들어서 몰입하면 몸이 이완되고 몸이 이완되면 기혈이 열리게 됩니다.
그리고 혀끝을 타고 감로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감로는 쉽게 말해서 침이 고인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이 감로의 맛과 향을 무엇으로 표현할가요,
이 세상에서 이 처럼 맑고 깨끗하고 달콤한 맛과 향기는 달리 없을 겁니다.
아무튼 감로가 고이면 꼴깍 꼴깍 침을 삼키게 되고,
감로수가 경락을 따라 흐르게 되고,
감로수가 흐르는 곳에 기혈이 열리면서 생명력의 환희를 느끼게 됩니다.
마치 봄비에 시냇가의 버들강아지가 피어나 듯이
감로수가 흐르는 곳에 기혈이 열리면서
우리 몸에 생명의 꽃이 피어나게 됩니다.
이 것을 수류화개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녹차를 마시면 녹차가 막혔던 경락을 이완시키고 유통시켜 줍니다.
또한 차를 마시면서 혀끝으로 차의 맛과 향을 음미하노라면
혀끝을 타고 감로가 고이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계속 차를 마시면서 감로를 음미하고 감로수를 흐르게 하면,
역시 기혈이 열리면서 우리 몸에 생명의 꽃이 피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것을 다선일미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묘용시 수류화개라고 하는 것입니다.
다음의 시도 황정견의 시입니다.
萬里靑天 雲起雨來( 만리청천 운기우래)
空山無人 水流花開 (공산무인 수류화개)
가없는 푸른 하늘에
구름 일고 비 오는데
빈 산엔 사람하나 없어도
물 흐르고 꽃은 피네
푸른하늘에 태양이 있어 산하대지를 비추니
생명의 물은 하늘로 올라 구름이 되고
이 구름이 비가 되어 산하대지를 적시니
물이 흐르고 꽃이 피누나
이를 일컬어 水昇火降이라 하니
이로 인하여 천지가 살아 숨을 쉰다네
어디 여기에 사람을 거론하랴만
차 한잔 잘 마시면 사람이 곧 자연이라네
"정좌처 다반향초 묘용시 수류화개"의 깊은 뜻이 여기 있다네
(2)re: 차(녹차)예찬하는 한문시나 칠언절구
- koreanaya
- 답변채택률86.5%
- 2006.07.15 14:31
답변 추천하기
질문자 인사
<<<KIN_COMMENT>>> 좋은글 감사합니다,
또 다른 괴목 전통차 탁자에 양각으로 서각될 예정입니다.
글씨가 좀 크게될 것 같네요.
靜坐處茶半香初(정좌처다반향초)
妙用時水流花開(묘용시수류화개)
작자와 해석이 정확하지 않고 분분합니다만
대체로 다음과 같은 풀이들이 있더군요.
고요히 앉은 자리에
차를 반 넘게 마시도록 타는 향은 처음과 같고
고요히 흐르는 시간에도
물은 흐르고 꽃은 피더라.
조용히 앉아 차를 마시면 향기는 언제나 처음 그 맛.
신묘한 마음(지혜)의 작용은 물이 흐르고 꽃이 피네.
고요한 자리에 앉아, 눈으로는 색깔을
코로는 향기를 입으로는 맛을 음미하며
차를 마시니 어느 때인지
물 흐르고 꽃피는 곳에 와 있구나.
고요히 앉은 이곳 차는 반 줄었어도 향기는 여전하네
신묘한 작용이 일어나니 물 흐르고 꽃 피어나는구나.
고요한 좌선실에 차 맛은 반잔의 맛, 향기는 첫 향기
묘용을 쓰는 시간에 물이 흐르고 꽃이 피나니.
<능가산 개암사 들꽃다회(2)>에서 발췌
나무는 절집에 드나드는 사람들을 쭉 보아 왔겠지만.......
말이 없다..........
그러나 고요에 잠기면 나무가 말을 걸어 온다.........
이 고요에 잠기는 데 도와주는 매개물인 체(體)가 바로 차(茶)이다.
다선(茶仙) 추사 김정희 선생님은 대련(對聯) 글씨에서
정좌처다반향초(靜坐處茶半香初)
묘용시수류화개(妙用時水流花開)
라고 설파하였다.
첫련의 다반향초를 놓고서 차를 우위로 하는 분들과 향을 우위에
놓는 분들 사이에 여러가지 구구한 해석과 주석들이 붙어 왔으나,
불이문을 주창하신 원효의 발자취가 배인 능가산에 와서
구구한 설명은 피하기로 한다.
마지막 련의 수류화개는 물이 흐르고 꽃이 피는 대자연의 현상을
읊은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고, 사람이 차를 마시면(水流)
꽃은 마음을 연다(花開)라고 정서적이고 심리적인 해석이 가능하다.
차를 마시면 소우주라는 인체 내부에서도 기혈(氣血)을 따라서
다기(茶氣)가 흐르고, 장기에서 흡수된 정갈한 찻물이 흐른다(水流).
이로 인하여 정신은 맑아지고, 새로운 창작열 또는 선정(禪定)의
희열을 느끼게 한다(花開).
그래서 묘용시 수류화개(妙用時 水流花開)이다.
대부분 훈고학적인 학문의 방편에 젖어 있던 사람들이나,
대일항쟁기(일제강점기의 정식명칭이 근자에 국회에서 수정결의됨)나
그 이후의 정형화된 일본식 다도를 접하고 배운 사람들은 체(體)와 용(用)을
정형화시키려 서로 구구한 설명을 하고 있다.
앞련의 다반향초(茶半香初)에서 체는 차(茶)와 향(香)이고, 용(用)은 반(半)과
초(初)이다. 이 반과 초를 놓고서 차를 반쯤 마실때 향이 시작된다느니
차례의 반은 향례에서 시작한다느니 등등의 해석을 하고 있다.
한심하다. 추사가 분명히 다음 련에서 묘용시(妙用時)라고 큰 글씨로 분명하게
써놓았는 데에도 이를 무시한 해석들이 많았다. 그때그때 천후(天候)나, 찻자리의 성격,
찻손님의 인격과 품위, 찻자리의 규모 등등에 따라서 적절하게 차와 향을 사용하라는
것이 묘용시(妙用時)의 본 뜻이다.
우리 한국다례의 특징은 정형화된 것이 없이
그때그때의 상황에 알맞게 무한한 변용이 가능한 것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북방 유목민들에서 기원된 노마드 정신이다.
20100929 다 종 삼가 씀.........
야정 오병훈 선생님의 역저인 <한국의 차그림 茶畵>라는 책을 읽고나서,
차의 용처를 잘 알고서 차의 체(體)의 외연을 넓혀가면
" 시서화(詩書畵) 그리고 음악(律呂) 등 각종 문화 장르의 내실을 키워갈 수 있고,
따라서 화경청적(和敬淸寂)이 생활화되어 거침없고 막힘이 없는
전인격체의 형성과 공동선을 위한 사회발전에 크게 기여한다."라는 것이
묘용시수류화개(妙用時 水流花開)의 큰 뜻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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