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 태종무열왕의 둘째 딸 요석공주와 정을 나눠 설총을 낳게 되는데 이때의 파계는 원효의 사상이 더욱 깊어지는 계기가 된다. 이때부터 원효는 자신을 복성거사라 칭하고 광대 복장을 하고 민중 속으로 뛰어들어 ‘모든 것에 거리낌 없는 사람이라야 생사의 편안함을 얻나니라’라는 무애가(無碍歌)를 부르며 다닌다. 원효의 무애행은 당시 수행자들에게 비난을 받기도 하여 백고좌(百孤坐) 법회에 끼지 못하기도 한다. 그러나 훗날 황룡사에서 ‘금강삼매경’의 강설을 듣고는 모두가 부끄러워했다고 한다. 이후 원효는 입적 때까지 저술에 전념, ‘대승기신론소’ ‘금강삼매경론’ 등 100여부 240권(10부 22권만 현존)을 남긴다.
개심사 스님들은 뒷산의 울금바위(禹金巖) 중에서 왼쪽 동굴을 장군방, 오른쪽 동굴을 원효방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원효방은 정남향으로 5평이 될까 말까 하고, 장군방은 수백 명이 들어갈 수 있는 큰 동굴입니다.” 나그네는 문득 고개를 끄덕인다. 분열을 지양하는 원효의 화쟁이야말로 다인들이 실천해야 할 차원 높은 다도(茶道)가 아닐까도 싶기 때문이다.
☞ 가는 길 서해안고속도로에서 부안나들목으로 나와 고창 방면 23번 국도를 타고 10여분 가다 보면 개암사 진입로와 이정표가 나온다. 거기서 개암사까지의 거리는 2.4km이다. (끝)
- 네이버 블로그 < 동성 주막> 동성님의 글 중에서 전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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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주의 茶人기행|태고 원효대사]다도란 차 한 잔에 분열을 씻어버리는 차(茶)
2014. 11. 26. 18:02ㆍ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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