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마총

2013. 6. 5. 16:03우리 역사 바로알기

 

 

 

 

개마총 - 금관총금관,돌방무덤,벽화고분,상형토기





개마총 (鎧馬塚)
평양직할시 삼석구역 노산동에 있는 고구려시대의 벽화고분. 설명
평양직할시 삼석구역(三石區域) 노산동(魯山洞)에 있는 고구려시대의 벽화고분. 1916년에 발굴, 조사되었다. 무덤의 구조는 널길[羨道(연도)]과 널방[玄室(현실)]만을 갖춘 외방무덤[單室墓(단실묘)]으로 널방 천장은 말각조정(末角調程) 형식이다. 두터운 회벽 위에 그려진 벽화는 크게 손상되어 있는데 남아 있는 벽화는 널방 북벽의 현무도(玄武圖)로 생각되는 그림의 일부와 천장의 일상(日象)·월상(月象) 그리고 남녀 인물들의 행렬도(行列圖)이다. 현무도는 아랫부분이 지워졌으나 뒷부분에 두 마리의 뱀이 대칭으로 감겨 있으며 이 그림으로 미루어 볼 때 널방의 나머지 세 벽에도 사신도(四神圖)가 그려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행렬도는 둘인데 하나는 남쪽 천장 받침에 그려진 것으로 귀부인과 세 여인의 모습이다. 다른 하나는 서벽에 <총주착개마지상(塚主着鎧馬之像)>이라는 먹으로 쓴 명문(銘文)과 함께 무덤 주인이 승천하는 장송행렬도(葬送行列圖)가 그려져 있다. 일상·월상은 천장하단과 당초문(唐草文)의 장식문양대 사이 동서 중앙에 배치하였는데 일상에는 삼족오(三足烏)를,

월상에는 웅크린 두꺼비와 불로약(不老藥)을 찧고 있는 토끼를 의인화하여 그려넣었다. 벽화의 연대는 인물의 모습 및 현무의 화법이 아직 고식을 띠고 있고, 거북을 감은 뱀이 엉켜 있는 모습이 북위(北魏)의 묘지장식에서 보이고 있으므로 6세기 전반경으로 추정된다.

 





개마총 - 금관총금관,돌방무덤,벽화고분,상형토기

 

 

 

 

 

개마무덤 ㅡ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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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 고구려 개마무덤(개마총)  평양특별시 삼석구역 노산리 nkmhjpyungyang
 
    개마무덤(개마총)은 사신도가 그려져 있는 단실묘이다. 무덤칸은 안길과 안칸으로 이루어졌고, 방향은 남향이다. 무덤 안길은 안칸 남벽 복판에 나있다. 안칸은 장방형이고 그 천장은 평행삼각고임식이다. 개마총 역시 도굴로 인해 파괴가 심하고 벽화의 대부분이 흐려졌거나 박락되었다. 얼마 남지 않은 벽화편들을 통해 원래의 벽화가 매우 우수한 것이었음을 추정해 볼 수 있었으나 그나마도 한국전 당시 완전히 파괴되고 말았다. 여기에서는 천장부에 남아 있던 일부 벽화만이라도 소개하고자 한다. 

    이 무덤의 안칸 네 벽에 사신도를 배치하여, 남벽에는 주작을 그렸을 것이나 완전히 박락되었다. 천장에도 여러 가지 그림을 그려 넣었는데, 그 가운데 주의를 끄는 것이 무덤 주인공이 개마를 타려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천장평행고임부에는 금관을 쓴 남자가 서있고, 무사 한 사람이 갑옷을 입힌 개마를 끈 채, 한 무릎을 꿇고 남자를 향해 무언가 말하고 있다. 개마 뒤에는 역시 부하인 듯한 무사들이 주인을 향해 고리자루 긴 칼을 받들고 서있다. 이 그림 위에는 "무덤주인이 개마를 타는 모습(主着鎧馬之像)"이라는 해서체 명문이 있다. 따라서 그림 내용과 명문으로 미루어 무덤 주인공이 개마를 타려는 장면을 묘사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이에 개마총이라는 이름도 얻은 것임을 아울러 확인할 수 있다. 
 
그    림은 비록 작으나마 부드러운 선, 선명한 색채, 잘 짜여진 구도 등으로 박력이 있으면서도 우아한 고구려 벽화의 우수성을 잘 보여주며, 또한 고구려의 금관과 개마를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어 당시 풍습의 이해에도 훌륭한 자료임이 인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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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속의 옥토끼와 계수나무

 

 

휘영청 밝은 달, 달나라의 계수나무

 

달 속의 옥토끼와 계수나무

 

 

달 구경. (19세기 후기 조선회화 ‘경직도 병풍’ 부분도)

 

 

 

    우리 조상들은 한가위가 되면 휘영청 밝은 보름달을 쳐다보며 한 해 동안 고생으로 얻어진 수확의 넉넉함을 즐겨왔다.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로 이어지는 윤극영의 동요처럼, 계수나무 아래서 떡방아를 찧고 있는 토끼의 모습을 가슴에 담아 천년만년 오순도순 평화롭게 사는 이상향을 그려온 것이다.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조금은 혼란스러워하면서도 달나라 이야기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두의 낭만이자 꿈이었다. 비록 1969년 7월20일, 아폴로 11호가 달에 내려서면서 꿈은 깨져 버렸지만 마음속의 달에는 계수나무도 옥토끼도 그대로 살아 숨 쉰다.

 
    그러나 우리와 계수나무와의 첫 만남은 달나라가 아니라 《삼국유사》 가락국기 안에서 이루어졌다. 김수로왕이 허왕후를 모시러 바다 가운데로 신하를 보낼 때 좋은 계수나무로 만든 노로 저어 가게 했다는 내용이 있다.

 

 

 

 

 

아리송한 나무 ‘계수나무’

 

    아득한 옛날부터 민속신앙의 한 가운데 있던 달은 나라마다 여러 가지 신화와 전설을 만들어냈다. 특히 달 표면의 거무스레한 얼룩은 나름대로의 독특한 상상력을 불러일으켰다. 우리는 중국의 영향을 받아 계수나무와 토끼 이야기가 만들어졌는데, 먼저 중국의 이야기를 잠깐 살펴보자.


    옛날 중국의 오강(吳剛)이라는 사람은 신선이 되는 수련을 하고 있었다. 그는 잘못하여 월궁(月宮)의 계수나무를 자른 죄로 옥황상제로부터 벌을 받게 되었다. 결국 그는 달나라로 귀양을 가서 도끼로 계수나무를 찍어 넘기는 힘든 일을 계속해야만 했다. 그러나 애처롭게도 오강이 계수나무를 찍을 때마다 상처 난 곳에서 금세 새 살이 돋아났다. 오강의 처절한 도끼질은 지금도 계속되지만 달나라의 계수나무는 넘어지지 않고 영원히 건재하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도끼로 계수나무를 찍어 넘기는 오강(吳剛).

 

 

    또 회남자에 실린 중국의 고대신화에는 달 이야기가 다르게 실려 있다. 항아(姮娥)라는 여인은 남편 예(羿)가 신선 서왕모(西王母)로부터 어렵게 구한 불사약을 놓고 잠깐 외출한 사이, 혼자서 두 사람 분을 먹어치우고 그대로 달나라로 도망쳐버린다. 그녀는 달나라에서 두꺼비가 되었다고도 하고 토끼로 변했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나중에 달의 여신으로 등장한다.

 

    세월이 지나면서 이런 저런 설화들이 뒤섞여 달 속에 계수나무가 있고 토끼가 떡방아를 찧는다는 내용으로 우리에게 전해지게 된 것이다.

 

 

달나라로 도망가는 항아(姮娥).

 

 

    달을 대상으로 한 옛사람들의 시나 노래에 계수나무가 수없이 등장한다. 실제로 지구상의 어떤 나무를 형상화한 것인지, 아니면 단순한 상상 속의 나무일뿐인지 궁금하다. 그러나 <유양잡조>에는 ‘달 가운데의 계수나무 같은 것은 땅의 그림자이고, 빈 곳은 물의 그림자이다’라 하여 달의 실체를 벌써 알고 있었던 듯도 하다.


    그렇다면 계수나무의 실체에 접근해보자.

    당나라 시인 왕유는 "산속에 계수나무 꽃이 있으니, 꽃이 싸락눈 같을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빨리 돌아오시구료"라고 하였다. 또 조선 중기의 문신 윤휘는 중국 수도에 가서 9월에 계수나무 꽃이 한창 핀 것을 보았는데, 꽃의 작기가 싸락눈 같다고 하였다. 또 성종14년(1483) 중국 사신이 임금에게 지어 올린 시에 ‘늦가을 좋은 경치에/……계수나무 향기가 자리에 가득하네.’라고 하였다. 이런 기록을 바탕으로 계수나무가 실제로 무슨 나무인지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싸락눈 같이 작은 꽃, 피는 시기는 가을, 향기가 강한 꽃 등이 특징이다. 기록과 일치하는 나무는 따뜻한 지방에서 흔히 정원수로 심는 ‘목서’라는 나무로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아름드리로 자라지 않으므로 달 속의 계수나무 모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계림(桂林)의 계수나무 목서

중국 사람들은 목서 종류를 은계, 금계, 단계(丹桂) 등으로 부른다.

 

 

 

 

    중국의 이름난 관광지 계림(桂林)의 계수나무는 바로 이 목서다. 중국 사람들은 목서 종류를 은계, 금계, 단계(丹桂) 등으로 부른다.

 

    그 외 우리 주변에 흔히 자라는 나무 중 달나라의 계수나무와 혼동되는 이름의 나무가 몇 있다. 월계수부터 알아보자.


    희랍 신화에 나오는 해의 신 아폴론은 짝사랑하던 다프네를 끈질기게 쫓아가자 그녀는 한 그루의 나무로 변해버린다. 그 후 아폴론은 이 나무로 머리장식을 만들어 항상 몸에 지니게 되었다. 사람들은 이를 본 따 승리자에게 나뭇가지로 얽어 짠 월계관을 씌워 주어 월계수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름 그대로 뜻을 밝히면 ‘달나라의 계수나무’가 되니 누구라도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정확히 따지자면 지중해 연안이 고향인 ‘월계수’는 우리나라의 남부지방에서 일부러 키우거나 잎에서 향료를 얻기 위해 심는 나무에 불과하다.

 

 

희랍신화에 나오는 해의 신 아폴론(Apollon).

 

    희랍 신화에 나오는 해의 신 아폴론은 짝사랑하던 다프네를 끈질기게 쫓아가자 그녀는 한 그루의 나무로 변해버린다. 그 후 아폴론은 이 나무로 머리장식을 만들어 항상 몸에 지니게 되었다. 사람들은 이를 본 따 승리자에게 나뭇가지로 얽어 짠 월계관을 씌워 주어 월계수라는 이름이 붙었다.

 

 

    또한 수정과의 톡 쏘는 매운 맛을 내는 데 향신료로 쓰이는 계피나무와, 한약재로 주로 이용되며 약간 단맛과 향기가 나는 육계나무도 달나라의 계수나무와 헷갈린다. 이들은 원래 중국남부에서 자라며 늘푸른잎을 달고 있는 평범한 나무일뿐인데 이름에 들어 있는 글자 탓에 흔히 계수나무로 불린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수목도감에도 ‘계수나무’란 이름을 가진 나무를 심고 가꾼다. 예부터 우리 강토에 자라던 나무가 아니다. 중국과 일본을 원산지로 하는 수입 나무다. 특히 우리 주변에 보이는 계수나무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부터 들어온 것들이다.

 

 

‘광릉 수목원’에 있는 계수나무.

(사진출처 / Daum blog ‘추억여행’님)

 

 

 

    그들은 한자로 ‘계(桂)’라고 쓰고 ‘가쯔라’라고 읽는다. 처음 수입한 분이 글자만 보고 계수나무라고 하여 그대로 공식 이름이 되어버렸다. 우리에게 꿈과 추억을 남겨준 달 속의 계수나무와 같은 이름을 쓰게 되었으나, 달나라 계수나무도 옥토끼도 이 나무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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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마총   / 다음백과

 

 

    평양특별시 삼석구역 노산리에 있는 고구려 벽화고분.

    1916년 세키노 다다스[關野貞]가 조사했다. "冢主着鎧馬之像"이라고 쓴 묵서에서 개마총이라는 이름을 따왔다. 고분의 봉토는 원형이며, 내부구조는 정4각형에 가까운 널방[玄室]과 동남향의 널길[羨道]로 된 외방무덤[單室墳]이고, 천장은 4벽 위에 평행 굄돌 2단을 얹고 그 위의 4모서리에 삼각굄돌 1단을 얹은 뒤 1장의 판돌을 덮은 모줄임천장이다. 벽화는 4벽에 사신도를, 천장에 인물풍속도를 그렸는데 손상이 심하며, 그중에 북벽의 현무도(玄武圖) 일부와 천장의 해·달·구름무늬 그리고 인물행렬도가 남아 있다. 행렬도는 맨 앞에 선도인물, 그뒤에 시인(侍人)으로 보이는 인물, 두 마부가 끄는 말이 따르고 있다. 말 위에 주인공이 없는 것으로 보아 영혼이 승천하는 장송행렬도로 생각된다. 널길에도 인물상이 그려져 있는데 분명하지 않다. 이 벽화고분의 연대는 대체로 6세기 전반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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