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창제 반대 상소문

2013. 6. 16. 23:10우리 역사 바로알기

 

 

 

훈민정음 창제 반대 상소문

      최만리 등

崔萬理等 諺文創制 反對上 文 (世宗實錄 券一百三 十九張)

최만리등 언문창제 반대상소문 (세종실록 권일백삼 십구장)

臣等伏覩諺文制作 至爲神妙 創物運智 出千古 然以臣等 區區管見

尙有可疑者 敢布危懇 謹疏于後 伏惟聖裁

 

신등(臣等)이 엎드려 언문의 제작을 살피옵건데,

지극히 신묘(神妙)하와 창물운지(創物運智)가 멀리 천고에 뛰어나나,

신등의 구구(區區)한 관견(管見)으로는 오히려 의심스러운 바가 있사옴으로,

감히 위간(危懇)을 베풀고 삼가 뒤에 조목(條目)을 드는 바입니다.

엎드려 생각하옵는 바, 거룩한 재결(裁決)을 바라는 바입니다.

 

【漢字】覩:볼 도 諺:상말 언 妙:묘할 묘 疑:의심할 의 懇:정성 간 謹:삼갈 근 疏:상소할 소 聖:성인 성 裁:결단할 재

 

[참고]신등(臣等)....여기 신등이라고 한 것은 한 사람이 아니고 이상소에 여러 사람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창물운지(創物運智)....創物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냄을 말함. 運智는 슬기의 운용, 즉 지식을 짜내어 일을 이루는 것을 말한다.

관견(管見)....좁은 所見이라는 말로 원뜻은 대나무통 같은 좁은 것으로 세상일을 내다본다는 뜻이다.

위간(危懇)...위험을 무릎쓰고 간청하는 것.

 

【解設】이것은 세종 26년 2월20일에 최만리를 중심으로 한 집현전의 일부학자들이

훈민정음의 창제를 반대하기 위하여 세종에게 올린 상소문의 서두에 해당하는 대목이다.

이 반대 상소에 가담한 대표적인 학자는 최만리, 신석조, 김문, 정창손, 하위지, 송처검, 조근등으로 알려져 있다.

이 사람들은 당시 집현전을 대표하던 쟁쟁한 학자들로 당대의 학풍을 주름잡던 사람들이다.

이에 흥미있는 사실은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에 참여한 사람도 집현전 학자요, 반대한 사람들도 집현전의 학자라는 사실이다.

이것은 집현전 내부의 갈등과 학문적 바탕의 대립을 뜻하는 것이라고도 볼수 있다.

또한 여기 보인 반대상서의 내용은 어떤의미로는 당대 학계의 여론을 집약한 것이라고도 할만하다.

이런 의미에서 이 반대 상소문은 훈민정음을 연구하는데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지고 있다.

 

一, 我朝自祖宗以來 至誠事大 一遵華制 今當同文同軌之時 創作諺文 有駭觀聽 曰 諺文皆本古字 非新字也

則字形雖倣古之篆文 用音合字 盡反於古 實無所據 若流中國 或有非議之者 豈不有愧於事大慕華

 

우리나라는 조종조이래로 지성으로 사대(事大)하고, 한결같이 중화의 제도를 준수하여

지금 동문동궤(同文同軌)의 때를 당하옵는데 언문을 창작하신 것을 듣고 봄에 이상히 여길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이럴 때 혹시 말하기를 언문은 모두 옛글자를 근본으로 삼은 것으로 새로운자가 아니라고 하신다면

곧 자형(字形)은 비록 옛날의 전문(篆文)을 모방하였더라도 용음(用音)과 합자(合字)가 옛것과 반대되는 일이며,

실로 근거할바가 없는 바입니다. 만약 중국에 흘러가서 혹시 옳지 못함을 의논하는 사람이 있을때는

어찌 사대모화(事大慕華)에 부끄럽지 않겠습니까.

 

【漢字】遵:좆을 준 軌:범 궤 駭:놀랄 해 :혹시 당 倣:본받을 방 篆:전자 전 據:의거할 거

 

[참고]사대(事大)...작은 나라가 큰나라를 섬기는 것. 조선은 건국때부터 명나라를 섬기는 것을 국시(國是)로 삼아왔다.

동문동궤(同文同軌)...同文은 같은 문자를 사용하는 것. 同軌는 모든 규범, 곧 법률제도를 한가지로 한다는 것.

전문(篆文)...전(篆)문자(文字). 篆은 고대 한자체의 하나.

용음(用音)...음(音)의 운용에 관한 규칙. 한자의 음가를 표기하기 위해서는 주로 반절법(反切法)을 이용해 왔는데

훈민정음으로써 표기하는 방식은 그러한 반절법과 다르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 것이다.

합자(合字)...반절법과 한글표기법의 차이를 말한다. 반절법에서는 東을 德紅切로 표기하는것과 같이

두자의 음을 축약해서 표시하게 되어 있으나,

훈민정음은 ㄷ+ㅗ+ㅇ과 같이 세 조각으로 나누어 바로 표시하게 되어 있음을 말한다.

 

[解說】지금까지 써오던 한자를 버리고 새로이 훈민정음을 만드는 것은 동문동궤라는 사대의 기본정신에

크게 벗어나기 때문에 사대모화에 위배된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一, 自古九州之內 風土雖異 未有因方言而別爲文字者.

惟蒙古 . 西夏 . 女眞 . 日本 . 西蕃之類 名有其字

是皆夷狄事耳 無足道者 傳曰 用夏變夷 未聞變於夷者也

歷代中國 皆以我國 有箕子遺風 文物禮樂 比擬中華

今別作諺文 捨中國而自 同於夷狄 是所謂棄蘇合之香

而取 螂之丸也 豈非文明之大累哉

 

둘째, 예로부터 구주(九州)의 안에 풍토가 비록 다르나, 방언으로 말미암아 따로이 문자를 만든일은 없었습니다.

다만 몽고, 서하, 여진, 일본 서번의 무리들이 각각 문자를 가지고 있으나,

이는 모두 이적의 일일뿐 족이 말할것이 못되옵니다.

전(傳)에 이르기를 오랑케를 중화(中華)로 변(變)케 한다고는 하였으되,

중화로 하요금 오랑케로 변케 한다는 말은 듣지 못 하였습니다.

역대(歷代)로 중국에서는 우리나라를 기자(箕子)의 유풍(遺風)이 있다고 하였고,

예악(禮樂)과 문물이 중화에 견줄만하다고 하였는데,

이제 따로이 언문을 지어 중국을 버리고 스스로 이적(夷狄)과 함께하니

이야말로 소합(蘇合)의 향(香). 소합(蘇合)의 향(香)을버리고 당랑( 螂)의 환(丸)을 취하는 것이라,

어찌 문명의 큰 누(累)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漢字】狄:오랑캐 적 箕:키 기 擬:비길 의 棄:버릴 기 螂:사마귀 랑 丸:알 환 累:더럽힐 루

 

[참고]구주(九州)...中國. 옛날에 중국이 아홉으로 나뉘어 있었다.

전(傳)...전해 내려오는 古典.

향(香)...페르샤등지에서 나오는 낙엽교목(落葉喬木)의 나무껍질속에서 딴 기름. 약용으로 쓰임.

당랑( 螂)의 환(丸)...쇠똥구리의 환약.

壯子에 나오는 말로 눈앞의 이익을 탐내어 뒷날의 병환을 돌아보지 않는것에 비유해서 일컫는 말.

 

【解說】한자를 버리고 새로운 문자를 만드는 것은 문화안으로써 긍지를 버리고

후환을 만드는 근거가 된다고 주장한 앞항의 내용을 부연함

 

一, 新羅薛聰吏讀 雖爲鄙俚 然皆借中國通行之字 施於語助 與文字元不相離

故雖至胥吏僕隷之徒 必欲習之 先讀數書 粗知文字

然後乃用吏讀 用吏讀字 須憑文字 乃能達意 故因吏讀而知文字者頗多

亦興學之一助也 若我國元不知文字 結繩之世 則姑借諺文 以資一時之用猶何 而執正議者

必曰與其行諺文以姑息 不若寧遲緩而習中國通行之文字 以爲久長之計也

而況吏讀行之 數千年 而簿書期會等事 無有防礎者 何用改舊行無弊之文 別創鄙諺無益之字乎

 

셋째, 신라 설총의 이두(吏讀)는 비록 비루(鄙陋)하고 속(俗 된다고 하더라도

모두 중국에서 통용하는 글자를 빌려서 어조사에 쓰는 까닭에 문자(文字)와 더불어 본시 서로 떨어진 것이 아니옵니다.

그런 까닭에 서리(胥吏)나 하인의 무리들까지도 반드시 이를 배우자면 먼저 몇가지의 글을 읽고,

얼마만큼의 문자를 안 연후에라야, 이두를 쓰게 되옵고 이두를 쓰는 사람은 모름지기 한자에 의지해야만,

이에 능히 뜻에 통달할수 있으므로 이두로 말미암아 한자를 알게되는 일이 매우 많아

역시 학문을 일으키는데 일조(一助)가 된다고 하겠습니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처음부터 글자를 알지 못하고 결승(結繩)의 세상과 같다면

곧 비로소 언문을 빌려서 한때의 쓰임으로 삼는 것은 오히려 가당하겠다고 할수 있으나,

바른 생각을 가진 사람은 반드시 언문을 써서 고식적(姑息的)인 편의를 도모하기보다는

차라리 늦고 느리더라도 중국에서 통행하는 문자를 익히어 오래고 긴 계책을 삼는 것보다 못하다고 할 것입니다.

하물며 이두가 통행된지 수천년에 관청의 문서기록(簿書)나 약속으로 쓰임(期會) 등의 일에 탈이 없었거늘

무엇 때문에 예로부터 행함에 폐단(弊端)이 없는 글을 고치어서

따로이 비언(鄙諺)하고 이익됨이 없는 자를 창작하고자 하시나이까.

 

【漢字】薛:나라이름 설 鄙:더러울 비 俚:속될 리 胥:아전 서 僕:사내종 복 隷종 례 憑:기댈 빙

頗:자못 파 繩:줄 승 資:재물 자 況:하물며 황 簿:장부 부 礎:주춧돌 초

 

[참고}이두(吏讀)...한자(漢字)의 훈(訓)이나 음(音)을 이용해서 한문에 토(토)를 달거나

혹은 국어의 표기에 이용한 표기법의 일종을 일컫는다.

문자(文字)...여기서 말하는 문자는 전부 漢字를 지칭한다. 이에비해 우리 글을 諺文이라 하고 있다.

결승(結繩)...일정한 사상이나 개념을 끈의 매듭으로 표시하는 방법이다.

이러한 방법은 인류가 문자를 발명하기 이전에 기억을 오래 간직하거나,

상대방에 무엇을 전달하기 위하여 기호로 쓴 것이다.

비언(鄙諺)...야비하고 속된 것.

 

若行諺文則爲吏者 傳習諺字 不顧學文 文字吏員岐而爲二

苟爲吏者以諺文而宦達 則後進皆見基如此也 以爲二十七字諺文

足以立身於世 何須苦心勞思 窮性理之學哉

如此則數十年之後 知文字者必少 雖能以諺文而施於吏事 不知聖賢之文字

則不學墻面 昧於事理之是非 徒工於諺文 將何用哉 我國家積累右文之化

恐漸至掃地矣 前此吏讀 雖不外於文字 有識者尙且鄙之 思欲以吏文易之

而況諺文與文字 暫不于涉 專用委巷俚語者乎

借使諺文 自前朝有之 以今日文明之治 變魯至道之意 尙지循而襲之乎

必有更張之議者 此約然可知之理也 厭舊喜新 古今通患

今此諺文 不過新奇一藝耳 於學有提 於治無益 反覆籌之 未見其可也

 

만약에 언문이 통행하게되면 관리된자는 오로지 언문자만 익히고 학문을 돌아보지 않게되어

한자와 관리는 갈라져 둘이 될 것이오며, 진실로 관리된자가 언문만으로 환달(宦達)하게되면

곧 후진들도 모두 이와 같이됨을 보고 스물일곱자의 언문만으로도능히 세상에 입신할 수 있다 할 것이니

무엇 때문에 고심 노사(勞思)해서 성리의 학을 궁구하려고 하겠습니까.

이와같이하여 수십년이 지낸 다음에는 한자를 아는 사람이 반드시 적을 것이오며

비록 언문으로서 관공서의 일을 수행할 수 있다고 하온들 성현의 한자를 알지 못함은

곧 배우지 못함이 담장을 면대한 것과 같아, 사리의 옳고 그름을 가리는데 어두울것이오니

부질없이 언문에 힘쓴들 장차 무엇에 쓰겠나이까?

우리나라는 누대(累代)로 쌓여온 우문(右文)의 풍화가 점차 땅을 쓴 듯 없어져 버릴지 두렵나이다.

앞서 쓰여온 이두는 비록 문자에 벗어남이 없음에도 유식자들은 아직도 이것을 비루히 여겨

이문(吏文)으로써 이것을 바구고자 생각하거늘 하물며 언문은 한자와는 조금도 상관함이 없는 것이며

시장거리의 속된 말만을 쓰는것임에 있어서야(더 무엇을 말하겠나이까) .

가사(假使) 언문이 전조(前朝)에서 있어온 것이라 하더라도 오늘날 같은 문명의 정치에 있어서

變魯至道로 아직도 옳다고 여기어 그대로 이어받아 습용할만한 것이오리까?

반드시 다시 의논할자가 있을 것임은 작연히 알 수 있는 이치이옵나이다.

옛것을 싫어하고 새것을 좋아하는 것은 고금의 통환이라 하겠거니와

지금 이언문도 신기한 재주에 지나지 않을 따름입니다.

학문에 손해됨이 있고 정치에 이익이 없는 것인바, 뒤엎어 이를 헤아려도 옳은 점을 발견할 수가 없는 바입니다.

 

【漢字】宦:벼슬 환 昧:어두울 매 漸:차차 점 暫:잠깐 잠 涉:건널 섭 魯:노나라 로 循:좆을 순

襲:엄습할 습 覆:되풀이할 복 籌:꾀할 주

 

[참고]환달(宦達)...관리로써 입신함

우문(右文)...文을 중히 여기는 것 여기서 文은 漢字

이문(吏文)...옛날 하급 관료들이 사대교린(事大交隣)이나, 일상의 잡무 처리에 사용하던 독특한 문체의 한가지

變魯至道...變魯는 魚魯混眞과 같은 말이다.

어로혼진은 글자를 혼동해서 서로 뒤섞여 쓰는 것을 말한다. 至道는 도리에 맞다는 뜻.

 

【解說】앞 조문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것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가를 가히 짐작할 수 있다.

모든 문화의 척도를 한자 한문을 기주능로 해서 생각하던 사대주의 한학자들의 그릇된 생각이

얼마나 민족주체성에 병들어 있었는가를 가히 알만한 것이다.

 

一, 若曰 如刑殺獄辭 以吏讀文字書之 則不知文理之愚民 一字之差 容惑致寃

今以諺文 直書其言 讀使聽之 則雖至愚之人 悉皆易曉而無抱屈者

然自古中國 言與文同 獄訟之間 寃枉甚多 借以我國言之 獄囚之解吏讀者

親讀招辭 知其誣而不勝楚 多有枉服者 是非不知招辭之文意 而被寃也 明矣

若然則雖用言文 何異於此 是知刑獄之乎不乎 在於獄吏之如何 而不在於言與文之

同不同也 欲以諺文而乎獄辭 臣等未見其可也

 

넷째, 혹시 말하기를 형살(刑殺)과 옥사(獄辭)같은 것도 이두로써 이를 쓰게 되면,

문리(文理)를 알지 못하는 우민(愚民)도 한글자의 차이로 말미암아 간혹 원통하게 될 것도

이제 언문으로써 그말을 바로 쓰고서 이석을 읽어 듣게 한다면

비록 지극히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다 쉽게 알아 듣게 되어 억울하게 당할 사람이라도 다 쉽게 알아듣게 되어

억울하게 당할 사람이 없다고 할 것이오나,

자고로 중국은 말이 글과 같은데도 옥송(獄松)간에 원통하게 당하는 사람이 대단히 많습니다.

만일에 우리나라로 말할 것 같으면 옥수(獄囚)중에 이두를 해득하는 사람이 몸소 초사(招辭)에 이기지 못하여

왕복(枉服)하는 사람이 많이 있사오니, 이는 곧 초사의 글뜻을 몰라서 원통하게 당하는 것이 아님은 명백한 일입니다.

그러하온즉 비록 언문을 쓴들 무엇이 이것과 다르겠습니까.

이러써 죄인을 다스리는 일공평함과 불공평함은 옥리(獄吏)의 여하에 있고

말이 글과 같고 같지 않음에 있지 않음을 알수 있을 것이옵니다.

언문으로써 옥사를 공평하게 하고자 하신다면 신등은 그 타당함을 찾지 못하겠나이다.

 

【漢字】獄:송사 옥 寃:원죄 원 悉:다 실 曉:깨다를 효 枉:굽힐 왕 囚:사둘 수 誣:꾸밀 무

 

[참고]형살(刑殺)..법을 어긴 죄인을 다스리는 것.

옥사(獄辭)...율법(律法)

옥송(獄松)... 법을 다스리는 것.

옥수(獄囚)...죄를 범해 옥에 갇힌 사람..

초사(招辭)...자기가 법한 죄를 자백하는 말

추초( 招)...매를 치는 것.

왕복(枉服)...굽혀서 복종하는 것.

 

【解說】이것은 훈민정음이 지닌 편민주의(便民主義)를 부당하다고 반박한 대목이다.

세종은 훈민정음의 서문에서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바가 있어도

제뜻을 베풀지 못하는 사람이 많도다"고 한 점을 상기할 것이다.

진실로 훈민정음 창제의 근본동기는 이 서문에서 명확히 들어나는 바,

최만리등이 이 대목을 들고 나온 것은 사전에 세종이 이러한 내용을 설명한바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서 우리는 훈민정음이 백성을 위한 백성의 글이 되게 하고자 한 세종의 참뜻을 이해할 수 있을 곳이다.

 

一, 凡立事功 不貴近速 國家此來措置 皆務速成 恐非爲治之體 曰諺文不得已而爲之

此變易風俗之大者 當謀及宰相下至百僚 國人皆曰可

猶先甲先庚 更加三思 質諸帝王而不悖考諸中國而無愧 百世以俟聖人而不惑 然後乃可行也

今不博採群議 驟令吏輩十餘人訓習 又輕改古人已成之韻書 附會無稽之諺文 聚工匠數十人刻之

劇欲廣布其於天下 後世公議如何 且今淸州椒水地幸 特慮年? 扈從諸事 務從簡約

比之前日 十減八九 至於啓達公務 亦委政府 若夫諺文 非國家緩急 不得已及期之事

何獨於行在 而汲汲爲之 以煩聖躬調燮之時乎 臣等尤未見其可也

 

다섯째, 무릇 일의 공(功)을 세움에 있어서 가깝게 속히하는 것을 귀히여기지 않사온데

국가의 근래의 조치(措置)가 모두 속성으로 힘쓰시오니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에 어긋날까 두렵습니다.

만약 이르기를 언문을 부득이 쓰지 않을수 없다 하오면 이는 풍속을 바꾸는 큰 일이라,

마땅히 재상(宰相)에게 상의하셔야 하옵고 아래로 백관에 이르기까지 나라의 사람들이 모두 옳다고 이를지라도

선갑선경(先甲先庚)으로 거듭 생각을 더 하시옵고 여러 제왕에게 물어 어그러지지않고

중국에 상고하여 부끄러움이 없으시옵고

백세에 성인이 나타나셔도 의심스러운바가 없은 연후에야 이에 가히 행하실 것이옵나이다.

이제 여러 사람의 의논을 널리 들으시지도 않으시고

갑자기 하급관리(吏輩) 십여인으로 하여금 익히어 배우게 하옵시며,

또 경솔히 옛사람의 이미 이루어 놓은 운서를 고치어 근거없는 언문으로 부회(附會)하고

공장(工匠)수십인을 모아 이를 새기어 급히 천하에 광포하고자 하시니

후세에 공의(公議)가 어떠하겠습니까.

또 지금 청주(淸州) 초수(椒水)의 행차에 있어서는 염려하시어

호종(扈從)하옵는 공무(公務)까지도 대신들에게 위임하고 계시온데,

저 언문은 국가의 완급함이 부득이 기한(期限)에 미칠 일도 아니온데,

어찌하여 유독 행재(行在)에서 급급하게 하시어 성궁의 조섭(調燮)하실 때를 번거롭게 하시나이까.

신등이 더욱 그 타당함을 알지 못하겠습니다.

 

【漢字】悖:이그러질 패 採:캘 채 稽:상고할 계 劇:바쁠 극 ?:흉년들 겸 扈:뒤따를 호

煩:번거로울 번 躬:몸 궁 尤:더욱 우

 

[참고]선갑선경(先甲先庚)...역(易)의 "先甲三日 後甲三日"이라는 말에서 따온 것이다.

새로 만드는 법령으로 백성들이 아직 익지 못한 까닭에

반포하기 삼일전에 은근히 타이르고 반포후 삼일만에 실시한다는 뜻이다.

언문부회(諺文附會)...세종은 25년 12월에 훈민정음을 지으시고 곧 달아서 26년 2월 집현전 학사들에게 명하여

중국의 고금운회거요(古今韻會擧要)의 언해(諺解)를 명하였다. 여기서는 이 운해 언해의 작업의 추진을 이르는 것이다.

호종(扈從)...호위하여 따름

계달(啓達)...글을 써서 임금에게 올리는 것.

조섭(調燮)...조리(調理) 조화(調和)와 같은 말로 조절해서 알맞게 한다는 뜻.

 

【解說】이 대목은 세종의 결심과 결의, 그리고 굳은 신념이 여하한 반대에도 굴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여기에는 그러한 세종의 의지에 대한 몇가지 중요한 내용을 내포하고 있다.

(1) 여러 사람의 의논도 듣지 않고 자신의 확고한 신념에 따라 추진했다.

(2) 제작과 동시에 이배에게 훈습시켰다.

(3) 운해의 언해를 촉진하고 빠른 시일안에 인각시키고자 했다.

(4) 훈민정음의 창제를 국가의 여하한 일보다도 중요한 과업으로 생각했다.

 

一, 先儒云 凡百玩好 皆奪志 至於書札 於儒者事最近

然一向好着 亦自喪志 今東宮 雖德性成就 猶當潛心聖學 益求其未至也

諺文縱曰有益 特文士六藝之一耳 況萬萬無一利於治道

而乃硏精費思 竟日移時 實有損於時敏之學也

臣等 俱以文墨末技 待罪侍從 心有所懷 不敢含默 謹 肺腑 仰瀆聖總

 

여섯째, 옛 유학자가 이르기를 법백의 완호(玩好)가 모두 뜻을 빼앗는다고 하였는데

서찰에 이르러서는 유학자에게 가장 가까운 일이나

오로지 그 일만을 좋아해서는 또한 스스로 뜻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동국(東宮)께서는 비록 덕성이 성취되었다 하시더라도

오히려 성학(聖學)에 잠심(潛心)하시어 더욱 그 이르지 못한 것을 구함이 마땅할 것이옵나이다.

언문이 비록 유익하다고 이르더라도 특히 문사의 육예(六藝)의 하나에 지나지 않을 뿐입니다.

하물며 만만으로 치도에는 조금도 이(利)가 없는 것이온데

이에 정신을 연마하시고 생각을 허비하심에 날을 다 하고 때를 옮기시나이까.

실로 현시점에서 학문의 손실됨이 있는 것이옵니다.

신등은 다함께 문묵(文墨)의 말기(末技)를 가지고 상감을 모심에 대죄하옵는 터이므로

마음에 품은 바를 감히 함묵(含默)할 수가 없어 삼가 마음에 있는 말씀을 다아뢰어

우러러 성총(聖總)을 더럽히옵나이다.

 

【漢字】玩:즐길 완 奪:빼앗을 탈 札:편지 찰 縱:비록 종 敏:민첩할 민

肺:허파 폐 腑:장부 부 瀆:더럽힐 독

 

[참고]. 완호(玩好)...익히고 즐기는 것.

성학(聖學)...성인의 학문, 동국정운 서문에서는 '성인의 도'라고 하였다.

성인은 유교의 가르침을 남긴 사람을 말하기도 하고, 송(宋)의 성리학에서는 우주의 기본이념을 가르치는 뜻으로 되어 있다.

잠심(潛心)...온마음을 다하는 것.

육예(六藝)...예(禮) . 악(樂) .사(射) . 어(御) . 서(書) . 수(數)의 여섯 가지를 말한다.

옛날 주나라에서 국자(國子)를 교육하는데 이 여섯가지로써 행했다고 한다.

예는 예절, 악은 음악, 사는 활쏘기, 어는 말타기, 서는 글자를 쓰는 것, 수는 수학이라는 뜻이다.

언문은 글자로써 육예의 하나인 서(書)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문묵(文墨)의 말기(末技)...문묵은 글과 먹이니 글을 쓰고 학문을 닦음을 말하며, 말기는 조그마한 재주라는 뜻.

함묵(含默)...입을 다물고, 가만히 보고만 있는 것.

성총(聖總)...임금의 슬기로움을 높여서 이르는 말.

 

* 강원대 국문과 교수 손주일님의 옛이야기 사랑방(http://cc.kangwon.ac.kr/~sulb/)에서 자료를 얻어와 편집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