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승골성의 위치 - 자료

2015. 5. 2. 11:39우리 역사 바로알기

 

흘승골성의 위치 - 자료

 

    

<삼국사기 지리지>

통전(通典)을 살펴보건대 『주몽(朱蒙)이 한나라 건소(建昭) 2년(서기전 37)에 북부여(北扶餘)에서 동남쪽으로 가서,

보술수(普述水)를 건너 흘승골성(紇升骨城)에 이르러 머물렀다.

 국호를 구려(句麗)라 하고, 고(高)를 성씨로 삼았다.』라고 하였고,

 

고기(古記)에 『주몽이 부여(扶餘)에서 난을 피해 도망하여 졸본(卒本)에 이르렀다.』고 하였으니,

 흘승골성과 졸본은 한 곳인 듯하다.

 

 한서지(漢書志)에 『요동군(遼東郡)은 낙양(洛陽)에서 3,600리 떨어져 있고,

속현(屬縣)에 무려(無慮)가 있었다.』고 하였으니,

 곧 주례(周禮)의 북진(北鎭)인 의무려산(醫巫閭山)이다.

 요나라[大遼]가 그 아래에 의주(醫州)를 설치하였다.

 

[또] 『현도군(玄菟郡)은 낙양에서 동북쪽으로 4,000리 떨어져 있고, 소속된 현(縣)이 셋이었는데,

고구려(高句麗)가 그 중의 하나』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이른바 ‘주몽이 도읍한 흘승골성·졸본’이라는 것은 대개 한나라 현도군의 경계이고,

요나라[大遼國] 동경(東京)의 서쪽이니,

한지(漢志)의 이른바 ‘현도속현(玄菟屬縣) 고구려(高句麗)’는 이것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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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는 현도군에 속한 고구려현이 졸본이자 흘승골이라고 했습니다.

몽골학자인 슈미야바타르는 고주몽의 건국설화에 나오는 흘승골이 몽골의 할힌골 강이며,

 비류수는 몽골의 부이르 호수라고 했습니다.

박창범 교수의 고구려 일식 관측지 위치와 동일한 학설입니다.

요녕성 요양 서쪽에 있는 의무려산은 정경이 수려하여 천산(千山),

백두산과 함께 만주 땅의 3대 명산 중 하나입니다.

의무려산 남쪽, 그리고 대릉하 동쪽에 북진北鎭(지금의 광령)이 있습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 흘승골성이 대요의 의주 ,

 

즉 지금의 중국 요령성 북진시 의무려산 일대라고 비정하고 있는 데 비하여

 

일부 소장파  재야사학자들은  

 

 

 " 왕검성과 졸본성은 한민족 상고사의 양대 산맥과 같은 곳이다.

왕검성은 현 중국 하북성 보정시 만성현 일대에 위치하였으며,

신라인들이 떠나온 고향인 낙랑 땅이었다.

 

졸본성은 현 중국 하북성 천진시 계현 일대에 위치하였으며,

백제인들이 떠나온 고향이자 고구려가 건국한 터전인 졸본부여 지역이었다.

하루빨리 고구려 초기 수도인 졸본성의 위치를 바로잡아야 한다."

 

라고 주장하고 있어서, 그 내용을 아래에 인용한다.

 

 

한편 <한민족사중앙연구회>의 김진경은 그의 논문 <해모수 흘승골성의 위치에 관한 연구>에서

"천제(天帝) 해모수(解慕漱)가 내려온 흘승골성(訖升骨城)

현재의 산서성 좌권(左權)현 주변 인근지역으로 추정할 수 있다." 라고 주장하고 있다.

 

 

 

 

 

졸본성(흘승골성)의 위치

졸본성의 위치 비교

 

 

 

   현 강단사학계의 통설에서는 졸본성의 위치를 현 중국 요령성 본계시 환인현에

위치한 오녀산성 일대로 비정하고 있는데,

이러한 견해는 통설의 원조격인 이병도가 『삼국사기』를 주해하면서

‘졸본천’을 다음과 같이 해설한 까닭이다.

 

   “호태왕(광개토왕)비에는 비류곡홀본서성산沸流谷忽本西城山이라 하고,

졸본의 주에는 위서를 이끌어 [지흘승골성]이라 했으니,

졸본은 바로 졸홀·승흘골의 이칭으로 볼 것이며, 고구려 최초의 수도인 만큼 저명한 곳이니,

지금 환인에 비정한다. 그러면 졸본천은 환인을 흐르는 혼강을 별칭한 것이라고 본다.”

『삼국사기』‘고구려본기 1 주(15)’

 

   통설에서 졸본성을 환인 일대로 비정한 사유가

고 이병도 박사의 “고구려 최초의 수도인 만큼 저명한 곳이니, 지금의 환인에 비정한다.”는 주장에 근거하고 있다.

 납득할 만한 어떠한 고고학적, 문헌학적 사료도 없다.

오늘날 통설은 이병도의 이런 주장에서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참으로 허무하기 짝이 없는 주장이 해방 이후 7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통설의 행세를 하고 있는 것이다.

 

 

   3. 마무리 글

 

   지금까지 고구려의 천문도인 『천상열차분야지도』와 『한서』‧『수경주』및 『삼국사기』와

광개토태왕비문』등의 사료들을 토대로 졸본성의 위치를 추적해 보았다.

그리고 졸본성의 위치에 대한 통설의 문제점도 살펴보았다.

 

   『천상열차분야지도』에 의하면 졸본성은 위도 39〬에서 40〬 사이에 위치하였다. 그

리고 『한서』「지리지」및『수경주』에 나타난 현토군 고구려현의 기록을 참조하면

졸본부여는 현 중국 하북성 천진시와 당산시 및 진황도시 일대였다.

 

또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졸본성은 바닷가에 위치하였으며,

고구려의 요동성 지역이며 한나라 시절에는 요동군 양평성 지역에 해당하였다.

마지막으로 『광개토태왕비문』에 따르면 졸본성은 성산城山 위에 위치하였는데,

중국 고지도인 『당토명승도회』에는 성산城山의 위치가

현 중국 하북성 천진시 계현 일대로 나타나고 있다.

 

   위의 4가지 사료들을 종합해보면 고구려 초기 수도인 졸본성은

현 중국 하북성 천진시 계현 일대였다.

천진시 계현 일대는 위도 40〬 에 위치하고 있으며, 바닷가에 위치하였으며,

한나라 요동군 양평현에 해당하며, 성산城山이라는 지명이 존재하였다.

그러므로 현 중국 하북성 천진시 계현 일대는

위의 사료들에 나타난 졸본성 관련기록들을 완벽하게 충족하는 곳이다.

 

ㅡ 중략 ㅡ

 

   왕검성과 졸본성은 한민족 상고사의 양대 산맥과 같은 곳이다.

왕검성은 현 중국 하북성 보정시 만성현 일대에 위치하였으며,

신라인들이 떠나온 고향인 낙랑 땅이었다.

 

졸본성은 현 중국 하북성 천진시 계현 일대에 위치하였으며,

백제인들이 떠나온 고향이자 고구려가 건국한 터전인 졸본부여 지역이었다.

하루빨리 고구려 초기 수도인 졸본성의 위치를 바로잡아야 한다.

 

 

- 다음 카페 < 우리역사문화연구모임> 사람이 하늘이다 님의 글 중에서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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