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주 천전리 암각화의 '동심원'과 '겹마름모' 문양에 대한 새 해석

2015. 5. 4. 03:53우리 역사 바로알기

 

 

코리안들이 신대륙발견 (175)

 

<코리안 신대륙발견> 천전리 암각화의 '동심원'과 '겹마름모' 문양의 해석 | 코리안들이 신대륙발견
오두 2009.10.30 14:27

 

      

- 코리안 신대륙발견 -

 

 

울주 천전리 암각화의 '동심원'과 '겹마름모' 문양에 대한 새 해석 

 

-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의 칼럼 '울주 천전리 암각화'에 답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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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천전리 암각화의 겸마릅모꼴 문양.

신화학적으로 그 해답을 풀 수 있다.  

 

   필자가 '코리안들이 신대륙을 발견했다'는 운동을 펼치면서 울산반구대의 고래 암각화를 부각시키고 있다. 선사시대 코리안들의 고래토템 숭배 및 고래사냥 암각화는 세계적으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 만큼 알라스카까지 고래사냥이 연결되어 있는 지형적 위치에 있는 코리아는 고래문화가 전통역사 깊숙히 스며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필자는 울산 반구대 고래 암각화와 3천년전 코리안 온돌이 발굴된 알라스카 아막낙 섬에서 아메리카 대륙을 따라 내려간 와카산 인디안 유적 지역의 고래 암각화와의 유사성과 그 역사적 연계성을 강조하여 아메리카 대륙의 암각화와 울산 반구대 암각화의 유사함을 강조해온 것이다. 이러한 코리안 신대륙발견과 고래 암각화의 홍보와 함께 근간에 고래 관련 뉴스가 함께 터지면서 오늘자 조선닷컴에서는 전 문화재청장인 유홍준씨의 칼럼에서 '울주 천전리 암각화'와 미국의 유타주에 있는 뉴스페이퍼락(Newspaper Rock) 암각화를 언급하는 것을 보았다.

 

*아일랜드 노스(Knowth) 봉토분 옆의 작은 묘

코리안 고분을 닮아 있다.

 

   유 전 청장이 필자의 '코리안 신대륙발견론'이나 코리안 고래사냥이 알라스카까지 미쳐 있었다는 조선닷컴에서 필자의 홍보 글들을 보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시의적절한 칼럼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울주 천전리 암각화 기하문양은 유타주 Newspaper Rock 암각화보다는 아일랜드 뉴그란지(Newgrange) 암각화와 더 유사하다는 의견을 필자가 강조해 두고자 한다.

   

   1971년 발견된 울산 반구대 암각화는 대곡리 암각화를 말하며, 거기에서 안쪽으로 오리쯤 더 올라가면 천전리 암각화가 있다. 반구대 암각화가 국보 285호라면 천전리 암각화는 국보 147호로서 신라의 화랑들의 기록도 함께 새겨져 있는 특징이 있다. 선사시대 코리안들의 고래문화가 새겨져 있는 골짜기에 신라시대 사람들도 그러한 영향을 받아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는 역사적 고리가 되는 암각화라 할 수 있겠다.

 

   특히 화랑들이 이곳에 왔다는 것은 '심신 수련장'이라는 기존 군사훈련과 같은 의식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화랑은 지금도 동해안에서 '화랭이 굿'으로 남아 있듯이 무속적인 전통을 가진 집단들이었다는 점을 간과하기 쉽다. 울산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암각화가 있는 태화강 계곡에는 선사시대 때부터 기원의 제의적 제단으로서 암각화가 있던 곳이기 때문에 훈련장이 아니라 무속적 제의목적으로 화랑들이 다녀갔다고 보아야 옳을 것이다. 

 

   그래서 천전리 암각화에는 영랑(永郞), 수품(水品) 등 실재 역사 속에 나오는 신라 화랑들이 새겨져 있다. 생각컨대 아래쪽 반구대 암각화는 고래사냥을 위한 기원의 제단의 의미를 가졌다면, 천전리 암각화는 보다 추상적이고 있었던 일을 기록하는 일종의 'Newspaper Rock'과 같은 곳이었기 때문에 아래쪽 대곡리 반구대 고래 암각화 쪽이 보다 제의적인 곳이기에 거기에는 글씨를 쓰지 않고 천전리 암각화에 글자를 새긴 것으로 나는 판단한다.

 

   특히 신라시대 각석으로 보이는 천전리 암각화에 새겨진 글씨들을 '천전리 서석(書石)'이라고 하는데 그 내용은 기원 525년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신라 진흥왕의 아버지인 갈문왕이 여동생 어사추여랑(於史鄒女郞)과 함께 이곳에 와서 골짜기 이름으로 '서석곡(書石谷)'이라 명명한 내용을 새겨놓고 있다. 대곡리 암각화에는 보다 선사시대적인 원시 상형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은 시대적으로 천전리 암각화보다 먼저인 것 이상 보다 제의적인 신성한 곳으로 여겼을 것으로 생각된다.

 

*천전리 암각화 바위는 아메리카 인디안들의 Newspaper Rock 암각화가 새겨진 바위처럼

경사진 바위이다.

 

*천전리 앙각화의 화랑 글씨.

왼편이 먼저 쓰인 것이고 오른편이 그것을 보러왔다는 기록이다.

 

 

*천전리 암각화에 남아 있는 진흥왕의 아버지 갈문왕의  '서석곡(書石谷)' 명명에 대한 내용 각석. 

 

 

 

*'서석곡(書石谷)' 명명에 관한 원문을 보러온 추명.

 

  

   서석곡(書石谷) 명문(銘文)에는 원명(原銘)이 있고 나중에 추가로 새긴 추명(追銘)이 있는데 그 주요부분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 있다. 

 

원명(原銘)


乙巳 沙喙部葛()文王 覓遊來始得見谷

을사년 사훼부의 갈문왕께서 이곳에 유람하여 처음으로 골짜기를 보았.

 

之古谷无名谷善石得造□□以下爲名書石谷字作之

오래된 골짜기인데도 이름이 없어 좋은 바위를 찾아 ‘서석곡(書石谷)’이라 칭하고 명문을

새기게 했다.

 

幷遊友妹聖□光妙於史鄒郞王之

함께 이곳에 유람한 누이 연인(友妹)은 전에 없는 아름다운 추여랑님이다

 


추명
(追銘)

 

過去乙巳年月十八日昧 沙喙部徙夫知葛文王 妹於史鄒郞王 共遊來以後□□八□年過去

지난 을사년 6 18 새벽에 사훼부의 사부지 갈문왕과 누이 추여랑님께서 함께 놀러오신 이후 (..)8년이 지나갔다.

 

妹王考 妹王過人 丁巳年 王過去 其王妃只沒尸兮妃愛自思 己未年七月三日其王與妹共見書石叱見來谷

누이님을 생각하니 누이님은 돌아가신 분이고, 정사년에 (갈문)왕도 돌아가시니, 그 왕비인 지몰시혜비께서 애달프게 그리워하시다가 기미년 7월 3일에 그(갈문)왕과 누이가 함께 보고 글 써놓았다는 바위를 보러 이곳 골짜기에 오셨다.

 

此時 共王來 无卽知太王妃 夫乞支妃 徙夫知王子郞 深□夫知共來.
이때 함께 오신 님은 무즉지태왕의 왕비인 부걸지비와 사부지(갈문)왕의 아드님이신 심□부지님이시다.

 

 

 

   이 내용은 신라의 왕과 왕비가 되기 전에 화랑 남녀가 이곳에 들렀던 풍습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신라의 풍류신선도로 보면 신령한 이곳 계곡에 찾아와 제사하고 맹세했던 선인풍습이 있었음을 볼 수 있다.

 

   신라인들보다 이곳에 앞서 오랜 세월 전에 새겨진 그림이 천전리 암각화이다. 천전리 암각화가 본래는 기하학적 추상문양이 새겨지기 전 위쪽 부분에 사슴 등의 동물들이 새겨져 있다. 특히 그곳 천전리 암각화에는 인물상도 새겨져 있는데 유홍준씨에 의하면 "그 중에는 가면을 쓴듯 머리가 유난히 크고 성기가 긴 남자도 있다. 모두가 풍요를 비는 성(性) 신앙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고 했다.

 

   그 사람은 분명 고래사냥과 관련한 무속적 지위를 가진 인물로 작살잡이일 것이라는 필자의 앞선 글에서 말한 '처용'과 같은 인물일 수 있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가면을 쓴듯 머리가 유난히 크고'라고 표현한 것은 이를 뒷받침하는 해석으로 볼 수 있다.

 

   이미 앞선 글에서 논했지만, 고래 사냥과 관련하여 이러한 성적인 심볼이 튀어나오게 표현한 것은 고래사냥을 전후하여 성적인 관계를 삼가했던 고래잡이 전통의 문화인류학적 배경이 성적인 힘이 강하게 표출되어 고래토템 숭배에 대한 의식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유 전 문화재청장의 칼럼에서 천전리 암각화와 유타주 뉴스페이퍼락 암각화의 비교는 코리안 고래 암각화와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고래 암각화를 연상 비교하는 한 분위기 조성에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아메리카 대륙 해안선에 있는 고래 암각화 등의 여러 다른 암각화와 반구대 및 천전리 암각화를 비교했더라면 더 적절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륙지방인 유타주의 뉴스페이퍼락 암각화는 고래와는 관련이 없는 내륙 동물들의 암각화(petroglyphs)가 주종이고 천전리 암각화와 같은 '마름모꼴 도안을 비룻하여, 3중의 동심원 무늬, 4중의 나선형 무늬 같은 신비로운 추상 도안들"은 그곳에는 없기 때문이다. 

 

한반도 암각화와 아메리카 암각화의 비교 시도는 시의적절하다.

그러나 울주 천전리 암각화 기하문양은 유타주 Newspaper Rock 암각화'보다는

아일랜드 뉴그란지(Newgrange) 암각화와 더 유사하다

 

   필자가 오래 전에 가본 뒤에 몇해 전에 다시 가본 그곳에서 느낀 점은 아메리카 인디안들의 선사시대 및 역사시대의 암각화인 'Newspaper Rock'은 그 이름이 적절하지 못하다는 점이다. '신문'이란 역사적 누적 현상보다 한꺼번에 보는 순간적인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여러 시대를 거쳐 쓴 것을 신문으로 표현한 것은 아메리카 인디안들의 유구한 역사를 '짧은 단면처리'하는 느낌을 주는 이름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백인들은 'History Book Rock'이라고 명명하기가 꺼려졌던 결과가 Newspaper Rock이라고 나이브하게 그리고 서구문명의 아류로 치부한 이름지었던 것으로 필자에게 다가왔다. 

 

   필자가 찍은 사진을 오늘 다시 보니 Newspaper Rock의 전체적인 모양이 거대한 '고래 입' 처럼 생겼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필자가 고래를 앞세운 '코리안 신대륙발견론'을 강조해 오고 있는 요즈음의 이미지 추적 영향 때문으로도 여겨지지만, 실제는 암각화들이 단순하게 새겨졌다기 보다 때로 거대한 입을 벌린 것과 같은 지역에 암각화를 새기고 있다는 면을 지나칠 수 없다. 선사시대 코리안들의 울산 반구대나 천전리 암각화도 그러한 어딘가 거대한 입처럼 경사져 들어간 곳에 암각화가 만들어져 있으며, 유타주 Newspaper Rock 또한 거대한 입처럼 생긴 바위 형상에 칼로 자른듯한 경사진 곳에 새기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아래는 필자가 촬영한 Newspaper Rock의 전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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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오래 전에 유타주 'Newspaper Rock' 현장에서 찍은 사진.

거대한 고래 입같이 생긴 것 외에 고래와 관련한 암각화(glyphs)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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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wspaper Rock은 천전리 암각화와 같은 원형과 사각형의 연결된 유사한 것은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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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전리 암각화. 바위 위쪽 전체를 보면 거대한 '고래 입' 같은 바위의 단면에 새겨져 있다.

모양은 뉴스페이퍼락과 유사하다 그러나 해안과 내륙의 차이가 있어 새겨진 짐승은 뉴스페이퍼락에는 고래와 배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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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전리 암각화. 물도리동에 배치되어 있다.

'경맥' 풍수로 보면 고래 머리 부분에 해당하는 곳에 암각화를 새겨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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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전리 암각화에 뜬 무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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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반구대 인근 대곡리, 천전리 계곡의 전경.

'고래등 같은 지붕'은 고래등 같은 '경맥' 모양에서 나온 말이라고 생각한다. 

 

  

   울산시(蔚山市) 울주군(蔚州郡) 두동면(斗東面) 천전리(川前里)에 있는 천전리 암각화는 천전리 각석(川前里 刻石)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 암각화는 1970년 12월 문명대 (文明大)씨에 의하여 반구대 주변을 탐사하던 중에 발견되었던 것으로 반구대 암각화에서 5Km, 반구대에서는 약 2Km 상류에 위치해 있다. 그 문양들은 내륙이 아닌 세계 여러 먼 지역의 해안 지역에 위치한 암각화에는 유사한 마름모꼴 문양과 동심원 문양들이 함께 발견된다.

 

 

 

 

 

*천전리 암각화 전체 모양의 그래픽

 

   천전리 암각화에 새겨진 동심원 문양에 대한 해석은 그동안 태양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되어 왔으나 일부에서 물을 나타내는 상징일 수도 있다는 해석이 있어 필자는 주목한다. 김호석씨의 해석에 따르면 동심원 문양 물을 나타내기 위한 빗방울 형상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소용돌이 문양은 태양보다는 '연못이나 호수 등 물이 고여 있는 부위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필자는 강릉 굴산사지 부도의 '운문'이 구름문양이 아닌 선사시대의 동심원 문양이 이어받은 바다의 물결문양으로 그린 것으로 바다의 해신 숭배의 잔재라고 해석한다. 이에 대하여서는 필자가 <심청(沈淸)이 타고 올라온 것은 연꽃 아닌 가리비 조개 >에서 다룬 바가 있다.

 

*구름무늬로만 볼 수 없는 강릉 굴산사지 '운문 '

소라 고등의 나선형과 또는 파도 문양과 관련하여 바다의 여신(고래) 전통의 파도 문양일 수도 있다.

http://cafe.chosun.com/club.menu.bbs.read.screen?page_num=1&p_club_id=dreamview&p_menu_id=2&message_id=551035 

 

 

 

*아일랜드 뉴그란지. Newgrange Entrance Stone

http://home.earthlink.net/~laurieyoung/newgrange.html

 

  

*뉴그랜지 고분 입구의 나선형과 연속된 겹마름모 문양.

천전리 암각화의 문양과 닮아 있다.

Tri-spiral Etchings on Newgrange Entrance Stone

 

 

   나선형 또는 '소용돌이형'과 동심원은 차이가 있지만, 세계 전역에 걸쳐 나타나는 암각화에는 두 가지 모두 유사하게 새겨져 있다. 천전리 암각화가 바다에 이어진 태화강 안쪽이라는 점에서 물과 유사하다는 동심원 해석은 그래서 필자에게는 오히려 '운문' 문양의 프로토타임으로 생각한다. 이러한 동심원 = 물 문양의 해석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태양 문양'을 고수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이상목 박사는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더불어 전호태 울산대 교수(한국고대사)도 “상징문양은 누구라도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다. 김 씨의 연구는 하나의 새로운 견해 정도로 받아들일 수 있다”라고 김호석씨의 동심원 = 물문양 해석에 대하여 새로운 견해로 긍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아일랜드의 선사시대 유적들은 한반도의 고대 유적들처럼 호석이 있는 봉분 고분들이 있기도 하고 울산 반구대 암각화들처럼 마름모꼴 문양이나 동심원 문양이 함께 새겨진 암각화들을 볼 수 있다. 필자가 세계 여러 지역의 암각화들을 볼 때 해안선을 따라 일정한 유사성이 세계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내륙으로는 오히려 그 차이가 더 많이 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아일랜드의 뉴그란지(Newgrange), 바로 옆의 노우스(Knowth) 및 로프크루(Loughcrew)의 봉분형 고분(conical mound)은 봉토분으로 봉분의 아래쪽 둘레를 한국의 고분처럼 호석 (Kerbstones ; 지탱석)을 두르고 있다. 그 호석에 기하무늬들이 새겨져 있는데 천전리 암각화와 유사한 것들을 볼 수 있다.

 

   아일란드의 선사시대 봉토분의 호석에 새겨진 암각화의 겹마름모꼴과 나선형 문양이 울산 천전리 암각화의 문양과 유사할 뿐만이 아니라 그 봉토분의 호석 모양도 우리 민족의 고대 봉토분과 유사하다는 면에서 서로 해안선을 따로 선사시대에 오갔을 수도 있다는 개연성을 부정할 수 없게 된다.

 

*아일랜드 노스(Knowth) 고분. 뉴그랜지(Newgrange) 인근에 있다.

큰 봉분 옆에 작은 봉분들이 붙어 있는 것도 동아시아 고분군과 유사한 면이 있다.
Scattered about the Knowth site are a number of smaller mounds,

some are located very close to the larger tomb.  

 

 

 

*아일랜드 노스(Knowth) 봉토분 옆의 작은 묘

코리안 고분을 닮아 있다.

 

 

 

*신라 신문왕릉 호석

 

 

 

*아일랜드의 뉴그란지 호석과 문양이 그대로 울산 반구대의 그것과 닮아 있다.

 

 

 

*동심원과 겹마르모꼴이 다중으로 되어 있다.

 


*동심원과 다중 겹마르모꼴을 보여주는 천전리 암각화 기하문양.

왼편에 사람 얼굴 '탈' 형상도 새겨져 있다.

 

 

 

*천전리 암각화. 동심원. 태양일까 물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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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전리 암각화 부분.

고래가 기하학적으로 표시된 그림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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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구대 인근에서 고래잡이하는 상상도

울산 반구대 방문센터 2층 디오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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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전리 암각화의 기하문양의 겹마름모꼴 (복제)

위쪽 사진의 아일랜드 뉴그란지 문양과 닮아 있다.

선사시대 해안 지대는 서로 연결된 문명을 지녔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삼좌점 암각화]

 

* 중국 서랴오허 유역인 네이멍구 자치구 츠펑(赤峰) 인근의 마름모와 나선형 문양.

천전리 암각화와 유사하다고 알려져 있다.

이 정도의 문양이 화제가 된다면 필자가 비교하는 내용들이 얼마나 더 강한 유사성이 있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http://soundwave.egloos.com/6489708  

 

 

   선사시대 암각화에 새겨진 기하학적인 문양들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것이 사실이다. 특정 한 시대의 경향이 아닌 수천년 동안 지역이 다른 곳에서 다른 선사시대적 종교 사상 문화에 영향을 받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특정 문양들이 특정 지형들을 가진 지역에 나타나는 세계의 암각화들은 서로 유사한 영향을 이어받았을 수는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현대문명만이 '세계화'가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고대 선사시대 문명들도 '비자없이 왕래하는' 해안선을 따라 항해를 하여 몇년 안에 쉽사리 먼 지역의 문화를 전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5-6세기 신라인들은 이미 트라키아(Thracia, 오늘날 불가리아 헝가리 일대) 지역의 캘트족과의 문화적 교류를 했을 개연성을 보여주는 유물이 신라의 미추왕릉에서 발굴되었던 금제감장보검(金製嵌裝寶劍, 보물 635호)에서도 볼 수 있듯이 고대 문명의 교류의 폭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의 원거리의 교류가 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미추왕릉에서 발굴된 금제감장보검(金製嵌裝寶劍, 보물 635호)

캘틱족과의 교역의 결과로 보는 학설이 있다.

 

   아일랜드 및 스코틀랜드의 캘틱족은 동유럽 트라키아인들의 문화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해양문화의 연결이 거리 문제를 넘어선 유사한 문화의 파급을 가져온 것으로 볼 수 있다. 선사시대 코리안 문화 및 삼국시대 신라의 문화가 캘틱문화와 유사한 것은 여러 차원에서 보다 더 깊이 추적해 볼 필요가 있다.

 

   고대 인도에서 건너온 문화가 한반도의 남단 해안가에서 발견된다면 역으로 인도양 해안선의 문화가 홍해로 들어가 육지를 잠깐 넘어 지중해로 들어갈 수 있으며, 다른 한편 해안선을 따라 아프리카를 돌아 유럽으로 갈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해안선 가까이에 살아가는 선사시대 해양성 사람들은 세계의 모든 해안선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아일란드에서 발견되는 동아시아 고분군은 바이킹족들의 근거지인 스칸디나비아에서도 곧잘 발견되는 것은 그때문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 한국의 고고학계에서 지나치게 먼 지역의 암각화와 한반도의 암각화를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는 것은 먼 지역의 육지 내륙 깊숙한 곳 외에는 해안선을 따라 유사한 성향의 암각화를 만들 수 있다는 필자의 견해를 새롭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울산 반구대 및 대곡리 암각화와 천전리 암각화가 세계로 열려 있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시각으로 세계 전역의 암각화들에 대하여 보다 세밀히 '한국적인 요소'를 찾는데 관심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필자는 생각해오고 있다. 아래는 천전리 암각화의 부분들을 모은 것이다.

 

   필자가 동해안 울산 반구대 천전리 암각화와 영국 옆의 아일랜드의 뉴그란지(Newgrange) 암각화와 유사성을 강조할 때 많은 '전문가들'은 거리가 멀다고 반대할 것이다. 그러나 시각을 바꾸어야 한다. 세계지도를 동서로 놓고 서단끝에서 동단끝이 너무 멀게만 보는 의식화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선사시대는 수렵시대였기 때문에 이상향을 또는 이상향의 섬(유토피아, 율도국 등 모두 섬이다)을 향해 떠나는 여정이기 때문에 돌아올 것을 생각하지 않는 여정(journey)이었다. 돌아오는 고향 개념은 농경시대 이후의 문화일 뿐이고 인류역사 전체에서 아주 짧은 기간에 고향문화가 있었을 뿐이다. 지금도 세계문명은 '비니지스 수렵 문명'으로서 이상적인 비지니스 지역을 찾아 여정을 떠나는 문명권에 들어와 있다. 이에 대하여서는 필자가 시카고 코리안 동포 교회 가운데 가장 큰 헤브론 교회에서 강연한 바 있는 <고향과 이상향>에 대한 축약글에서 다룬 바가 있다.

 

 

 

*아일랜드 뉴그란지의 호석을 두른 봉토형 고분

 

 

 

*신라 선덕여왕릉. 사적 182호. 필자촬영. 2013.

 

 

 

 

*신라 35대 경덕왕릉의 호석. 경주 내남면 부지리.

 

 

 

*신라 신문왕릉 호석. 사적 181호

 

 

 

신라 진덕여왕릉 사적 24호

 

 

 

 

*신라 49대 헌강왕릉 (재위 875∼886). 사적 187호

 

   선사시대의 항해술 선박건조술이 약했다고 하더라도 해안선만을 따라가면 동해안에서 인도를 거쳐 남아프리카를 돌아 유럽 연안의 영국 아일랜드는 쉽게 갈 수 있는 것이다. 아일랜드의 많은 문화들이 바빌로니아 문명 수메르 문명과 유사한 것은 동아시아 코리안들의 선사시대 문화와도 그 어떤 유관성이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호석이 있는 봉토분, 겹마름모 문양과 나선형문양이 함께 있는 뉴그란지(Newgrange)의 암각화는 울산 천전리 암각화의 문양과 같은 수도 있는 배경이 되는 것이다. 이미 필자는 앞선 글들에서 신라인들의 신목숭배와 아일랜드인들의 신목 간지를 비교한 바가 있다.

 

   한편 선사시대 코리안들이 해안선을 따라 알라스카로 갈 수 있었다면 북극해 연안을 통하여 그린랜드 아이슬란드 아일란드로도 갈 수도 있었다는 것을 상정해야 한다. 호카이도 아이누(Ainu) 사람들이 러시아에서 건너온 것이 아니라 북극해를 넘어온 유럽인일 수 있다는 이론은 아일랜드의 선사시대 문화가 동아시아 선사시대 코리안들이 북극해를 넘어 아일랜드에 도달한 영향일 수도 있다는 역발상을 전제하는 이론이 아니던가.

 

   필자는 다음 글에서 뉴그란지(Newgrange)와 그 바로 옆의 노우스(Knowth) 및 로프크루(Loughcrew)의 고분들에서 고래와 관련한 이미지들을 울산 반구대와 아막낙 섬에 연결하여 그 선사시대적 유사성과 연계성을 추적하게 될 것이다. 특히 아일랜드인들도 '고래장'을 했다는 것을 고분들의 구조에서 밝히게 될 것이다. 

 

   이 글을 맺기 전에 유홍준 전 문화재 청장이 천전리 암각화의 겹마름모꼴과 동심원에 대한 해석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필자가 여기에 그 대답을 해두려 한다.

 

   결론적으로 동심원과 연속된 겹마름모꼴의 문양들은 해신(또는 용왕)으로 숭배되었던 고래 이미지이며 동심원은 바다의 수평선으로 지는 태양 형상과 함께 고래가 돌아가며 춤출 때 물결 문양으로 볼 수 있다. 겹마름모는 고삐처럼 이어 나타나기를 바라는 고래떼를 의미하며 나선형 또는 동심원들은 고래가 나타나는 바다의 물결이라고 필자는 풀이한다. 겹마름모꼴은 자세히 보면 선사시대 암각화에 자주 나타나는 톱니모양의 뱀과 같은 문양과 같은 계통으로 볼 수 있다. 

 

   톱니 모양이 될 때는 암수 양끝으로 머리가 보이는 반면에 겹마름모 문양은 암수가 서로 꼬고 있는 모양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꼬는 모양은 서양의 '용그림'인 이브에게 나타난 뱀 모양이나 복희 여와의 그림 등에서도 보인다.  둥근 것은 선사시대 암각화의 태양이자 바다의 해신이 올라오는 소용돌이 물결이며 그와같은 문양과 함께 다리를 꼰 모습이 겹마름모꼴로 표현된 것이 천전리 암각화나 아일랜드 뉴그랜지 암각화의 비밀이라고 필자는 밝혀둔다.

 

   선사시대 암각화는 제의적으로 그린 것이기 때문에 고고학만 가지고 안된다. 신화학적인 해석이 들어가야 한다. 겸마름모가 기본적인 쌍고래에서 비롯된 '쌍용문양'에서 점차 기하학적으로 보다 많은 겹마름모 문양으로 확대시켜 표현되었을 수가 있다. 그래서 동심원도 여러개로 표현되듯이 겹마름모도 여러개로 표현되었을 수가 있는 것이다.

 

   바위에 새기려면 복희-여와 또는 아담 이브 또는 환인(태양) 또는 생명수(물)과 함께 신단수에 서로 얽혔을 환웅과 웅녀의 표현은 간단하게 동심원과 겹마름모의 연속적으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다.

 

 

*톱니바퀴 문양의 쌍두사. 아메리카 인디안 암각화.

그 위에 태양-물결 문양이 있다.

 

 

 

00chun2.jpg

*천전리 암각화 기하문양. 동심원과 연속된 겹마름모꼴의 문양들이 있다.

 마름모꼴의 겹무늬 문양 옆에 톱니문양이 있다.  

 

 

Peruvian Textile;ca.300-200 BCE

*페루의 2천년 이상 된 '겹마름모' 문양

Peruvian Textile: Late Paracas, ca. 300-200 BCE

 Peruvian textile ("Part of a border in covering stem stitch showing two intertwined snakes with lizards and mice.

 Late Paracas, c. 300-200 BCE," Anton, 1987:80) that would be well suited to the main thrust of Jeremys Narby's

The Cosmic Serpent: DNA and the Origins of Knowledge (Jeremy P. Tarcher / Putnam, New York, 1998)

 

 

   2천년 이상 된 페루의 문양에는 천전리 암각화의 '겹마름모' 문양과 같은 문양이 있다. 이것은 복희-여와나 아담-이브의 하체와 같은 동물토템시대의 잔재로서 '쌍용 형상'이기도 하다. 남미 페루의 겹마름모 형상의 '쌍용'은 메소아메리카의 아즈텍 인디안들의 전통에서도 나오는 쌍용문양에도 나타난다. 

 

 

 

*복희-여와 신상

원형(동심원)의 상하(태양과 바다)와 '겹마름모꼴'과 닮은 겹선의 꼰 하체의 모양이 고래를 닮아 있다.

용은 용왕(고래)에서 나와 나중에 뱀과 유사하게 발전해 간 것이다.

그때부터 쌍으로 꼬는 하체는 없어지게 되었다.

 

 

 

*아담 이브와 하체를 꼬고 있는 뱀 (두 존재로서 꼬고 있다)

둥근 사과는 겹마름모와 함께 암각화에 나타나는 동심원으로 볼 수 있다. 

 

 

 

*천전리 암각화와 닮은 뉴그랜지 고분 입구의 나선형과 연속된 겹마름모 문양.

Tri-spiral Etchings on Newgrange Entrance Stone

 


*천전리 암각화의 동심원 문양과 겹마름모 문양.

해신(또는 용왕)으로 숭배되었던 고래 이미지이며

동심원은 바다의 수평선으로 지는 태양 형상과 함께 고래가 돌아가며 춤출 때 물결 문양으로 볼 수 있다.

 

 

   위의 사진들의 비교에서 원형(동심원)의 상하(태양과 바다)와 '겹마름모꼴'과 닮은 겹선의 꼰 하체의 모양이 고래를 닮아 있다. 용은 용왕(고래)에서 나와 나중에 뱀과 유사하게 발전해 간 것이다. 그때부터 쌍으로 꼬는 하체는 점차 없어지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태양숭배보다 더 먼저 달에 대한 숭배시대가 오랜 선사시대 문화를 장악했다. 음력의 역사는 그렇게 더 강하고 오래되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동심원 또는 나선형은 달과 감응하는 바다물의 물결 상형이라고  할 수 있다. 달은 한 달에 한번 변화를 주는 큰 이미지를 주지만 해는 같은 모양으로 매일 떴다가 지기 때문에 오히려 선사시대에는 달보다 '우주 대자연' 개념에서 덜 중요하게 받아들여졌다. 달은 밀물 썰물에 영향을 주어 그대로 바다와 관련이 있고 여성의 월경과 관련하여 달은 직접적으로 '대자연의 신'의 위치에 설 수 있었다. 달과 물 그것이 물결문양의 의미를 가지는 중요한 의미를 지녔던 것이다.

 

   이 아이디어를 인용할 때는 필히 필자의 글에 대한 인용을 정확히 해주어야 한다. 논문이란 것이 아무리 길어도 근본적인 발상의 아이디어가 중요하다. 필자의 이와같은 천전리 암각화 해석은 분명 새로운 시각을 던져줄 것이라고 자부한다.

 

   천전리 암각화의 겹마름모와 나선형 문양을 복희-여와 신상과 비교하는 것이 우리민족과 좀더 친근하게 비교할 수 없겠는가? 그 해답은 바로 다음 글에서 따로 다루겠다. 이른바 '태극문양의 가장 오래된 전형'으로 알려진 감은사 장대석이 그 정답이기 때문이다.  태극마크 나선형과 함께 마름모 문양이 함께 있다는 그 비밀의 해답을 명확히 제시해 보이겠다. 그 다음은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이 글에 답해주면 오죽하겠나. (10/22/09 오두)

 

- 다음장에서 계속 -

<코리안 신대륙발견> 물도리동의 반월성은 울산 반구대 고래잡이 배 형상

 

 

  ㅡ 다음 블로그 <오두막 위에 서린 무지개> 오두(김성규) 님의 글 중에서 전재 ......

blog.daum.net/odu1893/116  

 

 

 

 

蔚州川前里刻石-原銘(乙巳銘)

 

乙巳▨


沙喙部葛


文王覓遊來始淂見谷▨


之古谷无名谷善石淂造書


以下爲名書石谷字作之


幷遊友妹麗德光妙於史


安郎三之


食多煞作功人尒利夫智


悉淂斯智大舍帝智作食人


榮知智壹吉干支妻居知尸奚夫人


眞宍智沙干支妻阿兮牟弘夫人


作書人慕尒智大舍帝智

 

 

을사년에

사달부 갈

문왕이 찾아 놀러와 처음으로 골짜기를 보았다.

고곡인데 이름없는 골짜기이므로 좋은 돌을 얻어 짓고

서석곡으로 이름을 삼아 글자를 만들었다.

함께 놀러온 이는 사랑하는 누이와 여덕광묘한 어사

추안랑 셋이다.

행차준비인은 이리부지 대나마와

실득사지 대사제지이며 밥지은 사람은

영지지 일길간지의 아내 거지시해부인과

진육지 사간지의 아내 아혜모홍부인이고

글쓴 사람은 모모이지 대사제지이다.

 

 

천전리각석 과거명 금석문

2009/09/02 22:25

복사 http://blog.naver.com/sohoja/50070559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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過去乙巳年六月十八日昧沙喙」


部徙夫知葛文王妹於史鄒安郎」


三共遊來以後▨年八巳年過去妹王考」


妹王過人丁巳年王過去其王妃只沒尸兮妃」


愛自思己未年七月三日其王与妹共見書石」


叱見來谷此時共三來 另卽知太王妃夫乞」


支妃徙夫知王予郎深▨夫知共來此時▨」


作功臣喙部知夫知沙干支▨泊六知」


居伐干支臣丁乙尒知奈麻作食人眞」


宍知珎干支婦阿兮牟呼夫人尒夫知居伐干支婦」


一利等次夫人居次▨干支婦沙爻功夫人分共作之」

 

 

지난 을사년 6월 18일 새벽 사달

부 사부지갈문왕과 여동생과 어사추안랑

3인이 함께 놀러온 이후 口년이다. 8년전 을사년 과거에 여동생은 왕을

여동생의 왕으로 생각하고 사람들을 상대했다. 정사년에 왕은 과거의 왕비 지몰시혜비를

사랑하여 스스로 생각했다. 기미년 7월 3일에 그 왕이 여동생과 더불어 함께 서석을 보러

계곡으로 왔다. 이 때 함께 셋이 왔는데 영즉지태왕비 부걸

지비와 사부지왕여랑과 심口부지가 함께 왔다. 이때 

행차를 준비하는데 애쓴 신하는 달부 지례부지 사간지와 口박육지

거벌간지이며 예를 담당한 신하는 정을이지 나마이다. 밥지은 사람은 진

육지 파진간지의 아내인 아혜모호부인과 이부지 거벌간지의 아내인

일리등차부인과 거례차 口간지의 아내인 사효공부인으로 나누어 함께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