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란 독립운동(2)

2015. 5. 5. 09:34우리 역사 바로알기

 

 

 

 

거란 독립운동(2) | 역사에 관하여

 

대연림 2014.12.07 14:50

 

      

1. 돌궐의 제의


   대패 소식을 들은 측천무후는 또다시 경악했다. 북방에서 돌궐을 동쪽에서는 거란을 그리고 서쪽에서는 토번이 당시 당은 3개의 전선에서 전쟁 중이었다. 만약 거란의 봉기를 지금 저지하지 못한다면 당의 이민족 통치체제는 뿌리채 흔들릴 수 밖에 없었다. 측천무후는 건안왕 무유의에게 청변도행군대총관에 임명하여 거란을 어떻게든 진압하게 하였다.


   이처럼 당이 거란의 봉기에 쩔절매고 있을때, 측천무후에게 돌궐의 사신이 도착한다. 696년 9월 18일 카파간 카간은 측천무후에게 제안을 한다. 거란을 토벌해 주겠으니 당의 왕자와 자신의 딸의 혼인을 요구한 것이다. 처음에 측천무후는 고민했다. 오랑캐로 오랑캐를 막는 것은 당의 전통적인 대외정책이기도 했다. 문제는 돌궐을 믿을 수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돌궐은 해마다 당의 영토를 침범했고, 사신을 보내는 지금 이 순간에도 량주도독 허흠명을 사로잡는등 돌궐은 여전히 당을 침략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카파간 카간의 속셈이 뻔했다. 거란의 토벌해 주겠다는 것은 명분이고, 실제로는 거란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고, 동방에 까지 세력을 떨치겠다는 속셈이었다.


측천무후는 돌궐의 제의를 거절했다. 그러나 전황은 당에게 계속 불리하게 돌아갔다.


2. 돌궐이 거란의 뒤를 치다.


   돌궐이 당에게 접근하던 9월의 어느날 이진충이 세상을 떠났다. 무상가한이라 칭하며 거란의 독립된 국가 건설을 염원했고 황장곡을 당군의 시체로 메웠던 거란의 영웅이 죽은 것이다. 그의 빈자리를 매운 것은 손만영이었다.


   이진충의 영전 앞에서 손만영은 맹세했다. 반드시 거란의 나라를 세우겠다고. 그는 곧바로 기주를 공략하고 기주자사 육보적을 비롯한 관리와 주민 수천을 도륙했다. 이어 안동도호부 예하의 기미주를 공략해 나갔다.


   그런데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햇던 존재가 당과 거란의 전쟁에 뛰어들었다. 돌궐이었다. 11월 돌궐의 카파간 카간은 송막을 습격하여 이진충과 손만영의 처자를 사로잡아 갔아. 이어 영주를 약탈했다. 돌궐은 거란만을 공격한 것이 아니었다. 11월 25일 승주를 노략질하였다. 돌궐은 당과 거란 모두에게 한번씩 무력시위를 한 것이다.


   처음 손만영은 송막이 돌궐에게 공격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을 것이다. 당만으로도 벅찬데 돌궐이 당과 협공한다면 그것은 재앙이었다. 그러나 돌궐이 당의 승주를 공격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는 안도했을 것이다. 대신 송막의 신성을 보수하고 매부인 을원우로 하여금 지키게 하는 등 송막의 수비를 강화했다. 그리고 자신은 안동도호부를 공격했다.


   당시 거란은 당의 본토와 안동도호부의 당군 사이에 끼어있었다. 봉기 초기 안동도호부의 당군을 상대하는 역할은 고구려인들이었다. 대규모 당의 토벌군을 황장곡에서 격파한 이후 손만영은 고구려인들과 함께 안동도호부를 좀더 확실하게 정리하려고 하였다. 돌궐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는 상황에서 배후를 안정시킬 목적이었다.


 

 

3. 동협석 전투


   안동도호부가 위치한 신성을 포위한 거란군은 포로로 잡은 허흠적으로 하여금 안동도호 배현규에게 항복을 권고하게 했다. 그러나 허흠적은 배현규에게 항전할 것을 권유했다.

미친 도적에게는 하늘의 재앙이 내려 조석 간에 멸망할 것이니, 공은 다만 병사들을 격려하여 부지런히 지키면서 충절을 온전히 지키시오.

 

분노한 손만영은 허흠적을 죽이고, 신성을 공격했는데, 요동주도독 고구수의 저항으로 신성 점령에 실패하였다.


   이처럼 당군은 거란과의 대결에서 밀리고 있었다. 측천무후는 거란을 제압하기 위해 두번째 대규모 토벌군을 조직했다. 바로 청변도행군이었다. 697년 2월 수십만 군사를 모병하고, 왕효걸, 소굉휘등을 배속한 청변도행군대총관 무유의는 안동도호부 예하의 자사, 장수, 부족들에게 격려하는 서신을 보냈다. 그런데 이 서신의 대상자 중에 안동도호 배현규가 빠져 있었다. 이는 안동도호부가 있는 신성이 함락되었음을 의미했다.


697년 3월 드디어 청변도행군이 출병했다. 무유의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며 승전을 기원했다. 동협석에서 당의 대군과 손만영이 이끄는 거란군이 격돌했다. 3일간의 격전끝에 당은 총관 왕효걸이 죽는 등 처참한 패배를 당했다. 거란의 대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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