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룡산과 도참설

2013. 6. 13. 13:05나의 이야기

 

 

 

 

계룡산 정도령이란 누구인가?

 

         

                                   

1. 계룡산 정도령이란?

   계룡산 정도령이란 계룡산(鷄龍山)에 정씨(鄭氏) 왕조가 등극하여 어진 재상, 슬기로운 장수, 문인 등이 많이 나타나 예악(禮樂)의 문민정치로 도탄에 빠진 민생을 구제하고 8방 12제국으로부터 조공을 받아 일등국가 일등국민으로 만든다는 도참설(圖讖說)로 된 일종의 국가운명 예언서이다

 

2. 도참설이란?

   도참설(圖讖說)이란 국가의 흥망성쇠와 인물의 출현에 대하여 은어적이고 비유적으로 예언한 설로서, 주(周)나라 태사(太史)가 진(秦)나라 헌공(獻公)을 만난 자리에서 “진나라가 처음에는 주나라와 합치고, 합쳤다가 떨어지는데 ... 500년 이후에 합치게 되고 그 이후 17년이 경과하면 패왕(覇王)이 나올 것입니다.” 라고 한 말이 나오는데 그 예언이 적중하여 진나라 소왕(昭王)이 주나라를 합치고, 17년 이후에는 시황제(始皇帝)가 천하를 통일하여 패업(覇業)을 성취하였다.

 

   진시황제본기(秦始皇帝本紀)에는 도사(道士) 노생(盧生)이 진시황에게 진언하기를 “진나라를 망하게 하는 것은 호(胡)입니다.” 라고 했다. 진시황은 그 말을 믿고 호족(胡族)의 침범을 막기 위하여 만리장성을 쌓았으나 실제로는 진나라를 망친 것은 진시황의 작은아들 호해(胡亥)의 학정(虐政) 때문에 나라가 망하게 되었다.

   고려의 건국과 관련된 도참설로는 삼국사기 최치원전(崔致遠傳)에, “계림(鷄林)은 누른 잎이고 송악(松嶽)은 푸른 소나무(鷄林黃葉 松嶽靑松)” 란 구절이 있는데, 이 말은 신라는 망하고 고려가 일어난다는 말이다. 그 말을 왕건의 아버지 왕룽이 믿고 그 기틀을 잡아 왕건이 삼국을 통일하였다.

   조선의 이성계는 무학대사(無學大師)에게, ‘석가래 셋을 지고 다닌 꿈‘을 해몽해 달라고 묻는다. 무학대사는 석가래 셋을 지고 다니는 꿈은 임금 왕(王)이 될 꿈이라고 해몽을 해준다.

   정감록(鄭鑑錄)도 이와 같은 비결의 하나로, 풍수(風水)와 도참(圖讖)을 결부시켜 정씨 왕조가 출현하여 계룡산에 도읍을 하여 새세상을 연다는 일종의 도참설이다.

 

3. 도참설에 대한 비판

   왜 도참설이나 비결, 점쟁이, 무당들이 판을 치는 것일까?

그것은 정치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종교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사회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민중의 심리가 불안하여 도참설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렇다고 민중의 허탈한 심리를 달래 줄 도참설(예언설)이 없다면 그 사회는 더욱 더 희망을 상실한 광란과 광폭의 사회가 될 것이다.

   마치 로또 복권 하나에 실날같은 희망을 걸고 살아가는 살아가는 사람처럼, 민중들은 현기증 나는 정치 구조, 국가경제의 파탄, 썩어빠진 교육제도, 동방예의지국이 아닌 무례지국, 퇴폐문화, 희망을 상실한 사회부조리의 체제와 모순을 볼 때마다 이를 근본적으로 개혁하고 일등국가 일등민족의 반석 위에 우뚝 올려놓을 구제주(救世主)와 같은 인물이 출현하기를 학수고대하는 기대 심리에 의해서 도참설이 나타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4. 정감록이란?

   정감록이란 고도령(高道寧), 도선(道詵), 무학(無學), 정북창(鄭北窓), 이토정(李土亭), 이서계(李西溪) 등 술사들을 총망라한 통합 예언서로

여기에는 약 50여종이 있으며 그 중 대표적인 것은 감결(鑑訣)과 삼한 산림비기(三韓山林秘記) 등으로 이들 대부분 지리쇠운설(地理衰運說)에 기초를 두고 역대 왕조에 대한 운수를 예언을 하고 있다.

 

5. 정감록이 나온 시기

   정감록의 저자나 연대는 미상이나 조선 초에 정도전(鄭道傳)과 조선 중엽에 정여립(鄭如立)이 지었다는 설이 분분하지만 확실한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나타난 시기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백성의 뜻을 저버린 당파싸움과 삼정의 문란, 경제 궁핍, 민심흉융의 시기에 나타나지 않았나 추측할 따름이다.

 

6. 왜 정감록의 주인은 왜 鄭씨인가?

   우주에는 불생불멸과 인과응보의 이치가 있다. 착하면 복을 받고 악하면 죄를 받으며, 주면 받고 받으면 주는 이치가 있다.

이씨 왕조 개국 초기에 이성계와 이방원은 만고충신 정몽주(鄭夢周)와 개국공신 정도전(鄭道傳)의 피로써 재물을 삼아 건국하였고, 그 흘린 억울한 피가 차기 왕조를 일으킨다는 인과업보의 원인자 역할을 하기 때문에 비결은 자연스럽게 정 씨를 택하지 않았나 본다.

   만일 정감록 설이 정씨를 택하지 않고 김도령, 이도령, 박도령, 최도령, 조도령, 장도령, 노도령 등의 성을 선택하여 비결을 조작했다면 그 비결은 씨알머리가 먹혀 들어갈 수 있을 것인가?

 

   정감록설은 이씨 왕조의 탄생과 더불어 희생물이 되었던 정몽주와 정도전을 중심으로 최 영 장군과 두문동 72현, 사육신, 생육신 등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않으면 안될 원죄의식(原罪意識)에서 나온 보상 심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조선중기 이후부터 조정의 무능과 당파 싸움, 경제 궁핍 등은 더 이상 이씨 왕조에 기대할 수 없어 태양과 같이 밝은 새인물이 나타나기를 바라는 기대심리에 의하여 계룡산 정도령 설이 증폭이 되었고, 여기에 정여립(鄭如立)은 세계 최초로 <백성의 백성에 의한 백성의 정치>를 부르짖는 이른바 공화정치를 주장하였으나 결국 정철(鄭澈)의 밀고에 의하여 삼족(三族)과 수천 여명이 도륙을 당하는 참변을 당하고 만 것이다. 정여립 사건 이후에도 조정에서는 정씨가 등장될 것을 염려하여 요시찰 인물로 감시를 해야 했고, 해방 이후에도 경계의 수위를 낮추지 아니함으로 정씨들은 멸족을 당하는 정치나 군부보다 경제나 문화계 방면으로 진출하여 숨을 죽이듯이 보신(保身)을 해왔던 것도 사실이었다.

 

   이처럼 계룡산 정감록설은 정씨들에게 피해를 받아야 했고, 삼족이 도륙 당하는 처참한 환경 속에서도 도대체 정감록설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고 연구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을 것이며, 정치가 불안하고 경제가 궁핍하여 탐관오리의 횡포와 수탈을 당할 모습을 볼 때마다 더욱 더 태양과 같은 밝은 정치를 갈구해 왔을 것이다.

따라서 하늘은 반드시 한이 많은 사람에게 한을 풀어주듯이 인과업보(因果業報)와 원죄탕감(原罪蕩減) 논리에 의해, 만고충신 정몽주(鄭夢周)와 개국공신 정도전(鄭道傳), 세계 최초로 <공화정치>를 주장하다가 억울하게 도륙당한 정여립(鄭如立)의 피가 흐르는 그 후손에서 출현하게 될 것이다..

 

7. 정감록의 내용

   정감록은 이씨조선(李氏朝鮮)의 조상인 이심(李心)과 정씨의 조상인 정감(鄭鑑)이 조선 팔도 산맥을 현지 답사하면서 운이(運移)현상을 풍수적으로 토론한 것이다.

정감록의 원본인 감결(鑑訣)의 지리쇠운설(地理衰運說)에 보면 금강산으로 내려간 운이 태백산과 소백산에 이르러 산천의 기운이 뭉쳐서 계룡산에 들어가 정씨가 팔 백년 도읍을 할 땅이라고 언급을 하고, 그 이후에는 운이 가야산(伽倻山)으로 돌아가 조(趙)씨가 천년을 도읍하며, 전주(全州)는 범(梵)씨가 600년 도읍을 하고, 다시 왕(王)씨가 송악(松嶽)에서 일어나며 그 이후에는 상세히 무엇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적혀 있다.

 

   또, 삼한산림비기(三韓山林秘記)를 보면 ‘계룡산 아래에 도읍할 땅이 있으니 정(鄭)씨가 나라를 세우리라. 밝은 임금과 의로운 임금이 연달아 나고 어진 신하, 슬기로운 장수, 문인 등이 왕국에 많이 나서 일대에 예악(禮樂)이 찬란하게 장식하리로다.’ 라고 정씨 성을 가진 진인(眞人)이 출현하여 새로운 세계를 연다고 왕도회귀(王道回歸)를 예언하고 있다.

   이와 같이 정감록 설이란 임진란 이후 민심은 도탄에 빠지고 사회질서가 혼란 되자 세상 인심은 이씨 왕조에 대한 신망을 져버리고 있는 상황하에서 민심을 바로 잡아 줄 수 있는 희망을 정감록의 예언대로 계룡산에 등극하는 정씨 왕조가 도탄에 빠진 민생을 구제하고 8방 12제국으로부터 조공을 받아 만민풍락(萬民豊樂)과 태평성대(太平聖代)를 누린다는 그럴듯한 내용으로 되어 있다.

 

   여기에 조정에서는 팔도에 산재한 정감록을 모조리 거두어 불태우고 아울러 신도안에 민간인 거주를 금한다는 조치를 취했으나 동학혁명을 비롯한 조선조 말기에 도처에서 민란이 일어나 반왕조적인 말세론적 사대관만 더욱 커졌다.

   더욱이 이조가 망하고 일제시대가 들어서자 이상향(理想鄕)인 남조선신앙(南朝鮮信仰)을 믿는 신흥 종교단체와 무속들이 계룡산 주변으로 몰려들어 무려 104개의 단체가 되자, 정부는 1974년도에 계룡산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하여 공원법과 산림법으로 신흥종교 무리를 단속하다가 일부 종교단체에서 혹세무민을 하자 정부에서는 유사종교 단체를 통제하던 중 결국 육해공군 사령부가 신도안 자리에 들어서 종교단체를 이전시키고 계룡산의 주인이 된 것이다. 계룡산의 주인공이 된 신도안의 계룡대를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여기에 이 나라 이 민족의 밝은 정치와 천도 및 통일, 우주 정치에 무슨 묘수가 있는 것이 아닐까?!

 

8. 계룡산에 얽힌 실화

   계룡산의 지맥을 살펴보면, 백두산에서 뻗어 내린 태백 산맥이 금강산과 설악산을 거쳐 남하하다가 태백산에서 서쪽으로 굽이쳐 소백 산맥을 이루고, 그 줄기는 덕유산에 이르러 다시 북쪽으로 올라가다가 금강과 마주치는 지점에 계룡산이 위치하고 있다.

   풍수 지리적으로 계룡산은 대단히 뛰어난 형국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남쪽의 신도안 지역이 명당으로 꼽히고 있는 이유의 특징은,

 

첫째가 산태극(山太極), 수태극(水太極)의 지세(地勢)이다.

   덕유산에서 북쪽으로 산줄기가 뻗어 올라가다가 운장산과 대둔산을 거쳐 금강과 마주치는 지점에 계룡산이 우뚝 솟아 있으며, 다시 계룡산에서 ‘ ☯ ’형으로 구부러져 서남쪽으로 뻗어 나가는 모양이 태극형(太極形)을 이루고 있다. 물은 계룡산에서 발원한 두계천이 남쪽으로 흐르다가 동진하여 갑천과 합류하여, 북쪽으로 흐르다가 금강과 다시 합류하여 서남쪽으로 흐르는 형상이 ☯ 형으로 또한 태극형(太極形)이어서, 신도안 지역은 음양조화(陰陽調和)의 대길지(大吉地)라 한다. 중국의 자금성(紫金城)은 산태극(山太極)의 형세, 일본의 천황이 살고 있는 황거(皇居)는 수태극(水太極) 형세지만 계룡산은 산과 물이 태극도형(太極圖形) 으로 되어 있는 산태극수태극(山太極水太極) 형세인 것이다.

 

둘째는 회룡고조(回龍顧祖)의 지세(地勢)이다.

   계룡산 일대의 산세는 용이 꿈틀거리며 승천하는 형국이며(回龍), 덕유산에서 분기한 산줄기가 계룡산에서 서남쪽으로 ‘↶’형으로 구부러진 형상이 계룡산의 조산(祖山)인 덕유산을 바라보는 고조(顧祖)로서 용(龍)이 승천하며 마지막으로 조산을 바라다보는 형태의 명당이라고 한다.

 

셋째는 계룡산의 형국을 금계가 알을 품고 있는 금계포란형(金鷄砲卵形)이라고 할 때 신도안은 그 난구(卵丘)에 해당하는 곳으로서 신도안을 중심으로 동쪽의 관음봉-시루봉 줄기가 좌청룡을 이루고, 서쪽의 향적산-양정고개-천호산 줄기가 우백호를 이루어 좌우에서 신도안 지역을 옹위하고 있으며, 북쪽은 계룡산의 주봉인 천왕봉이 현무의 역할을 하고, 남쪽으로는 두마면 대왕리의 대왕산(242m)이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소위 안산(案山)으로서 주작을 이루어 남북을 수호하고 있다. 따라서 신도안은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사신사(四神砂), 즉 좌청룡(左靑龍), 우백호(右白虎), 북현무(北玄武), 남주작(南朱雀)의 풍수 수호신이 보호하는 명당으로서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계룡산이라는 명칭은 삼한 시대에는 천태산(天台山), 고려 시대에는 옹산(翁山)으로 불리어 오다가 이성계가 신도안 지역을 새로운 도읍 예정지로 정하고 친히 답사한 후 무학 대사가 산의 협곡이 금계포란형(金鷄砲卵形), 비룡천형(飛龍天形)이라 하여 하늘의 주체인 계(鷄)와 땅의 주체인 용(龍)을 따서 계룡산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또한 산의 생김새가 마치 <닭벼슬 닮은 뿔을 가진 용>처럼 생겼다 하여 계룡산이라 하였다. 이 태조가 계룡산에 매료되어 신도안을 천도 후보지로 선정했던 역사적 사실이나 계룡산에 불교의 영산(靈山)으로 인식되어 많은 사찰이 세워져 있고 또한 우리 나라 근세 민중의 염원이 깃들인 민중 신앙의 중심지로 여겨졌던 사실 모두가 계룡산에 대한 풍수지리(風水地理)와 도참설(圖讖說)에 기인하고 있다.

 

   태조 이성계가 계룡산 신도안에 천도를 서두른 이유는 이미 기운이 쇠한 개경은 자신의 왕조에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풍수와 도참설, 그리고 최영 장군을 죽인 민심의 흉흉한 변화에서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데서 출발을 하였다.

   그 당시 태조로부터 명을 받고 경기도와 충청북도, 전라도, 경상도 지방에 왕실안태(王室安胎) 땅을 살피던 중 권중화(權仲和)가 올린 <계룡산도읍도>를 본 태조의 마음이 크게 쏠려 즉위 2년 1월 19일 날 서둘러 현지답사 길에 올랐다. 2월 8일 현지에 도착한 태조는 신도안 산수 형태를 살펴보고 수행한 신하에게 교통, 도로, 성곽 축조, 종묘(宗廟), 사직(社稷), 궁전, 조시(朝市) 등에 대하여 관찰 평가를 하도록 했다. 이 때 무학은 지세를 살펴본 바 물이 부족하고 교통이 부적절하여 회의적인 생각이 들었으나 왕이 묻자 ‘중의(衆議)에 따르소서!’ 하고 답변만 하였다고 한다. 태조는 5일간 머무르면서 지형을 살핀 후 대단히 만족하여 신도감영(新都監營)을 설치하고 공사를 진행하다가 그 해 12월 1일 경기도 관찰사 하륜(河崙)의 상소에 의하여 그만 공사를 중지하고 말았다.

 

   하륜의 상소 요지는 도읍은 한나라 중앙에 있어야 의당한 일인데 계룡산은 동서북과 거리가 멀고 신도안은 형국(形局)이 넓지 못하며 서울의 삼각산에 비하여 경관이 수려하지 못할 뿐 아니라 조수(潮水)가 적어 배를 이용하는데 불리하며 그밖에 경제적인 요인을 들었다. 오늘의 시각으로 보면 신도안과 한양을 놓고 비교해 볼 때 하륜의 상소는 과학적으로 타당하다는 해답이 명백한 것 같다.

   한편, 공사 중단과 관련된 꿈 이야기를 하면 그 당시 도읍 공사가 한창이던 날 이태조의 꿈에 백발 할머니가 나타나,

“ 이 땅은 정씨네 땅이니 여기에 도읍을 하면 천벌을 받는다.” 하고 말한 후 사라지자, 그 떡장수가 신(神)의 화신(化身)임을 알아차리고 궁궐 공사를 중지시킨 후 자기를 일깨워 준 신에게 감사드리기 위해 신은사(神恩寺)라 이름 붙여 제사를 지내 주었는데 이것이 지금의 신원사(新元寺)가 되었다고 한다.

 

    신도안(新都內)이란 이름은 예로부터 이 지역 이름이 임금의 도읍지라 하여 제도(帝都)로 불리어 오다가 당(唐)나라 장수 <설인귀>가 이곳에 와서 말하기를,

“ 중국에 황제(皇帝)가 있는데 어찌하여 소국(小國)에 제도(帝都)라는 명칭이 있을 수 있겠느냐? 마땅히 제거하라! ”

하므로 부득이 제(帝)자를 떼어 내고 신도(辛都)로 불리어 오다가 이 태조가 이곳을 신도읍지로 정하고 건설 공사를 하면서부터 신도(新都)로 구획되었으며 안쪽 지역을 신도안(新都內)라고 호칭 한데서 유래하고 있다.

   어쨌든 계룡산 신도안은 조선조의 도읍지로 선정되어 근 1년간 공사를 진행한바 있어 그 당시 궁궐 건설에 사용할 예정이었던 100여 개의 주춧돌이 계룡대 동문 위병소 근처에 남아 있을 뿐이다.

 

9. 한양터와 계룡터

   국가의 운명도 수도권을 어디에 잡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일어나는 터는 생기(生氣)가 돌고, 망하는 터는 패기(敗氣)가 돈다. 풍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체인 혈(血)을 잡는 것이다. 통상 혈은 조종산(祖宗山)과 주산(主山)의 기운을 받고, 좌청룡(左靑龍)과 우백호(右白虎)의 기운을 받으며, 안산(案山)의 보호와 수구(水口)가 좋고 그 혈맥(血脈)이 좋아야 명당(明堂)이 된다.

   따라서 장사치도 윗사람으로부터 도움도 못 받고, 좌우 친구가 빈곤하고 ... 손님도 없으면 돈벌이를 찾아 이사(移徙)하듯, 나라도 당쟁이 그치지 않고, 국론이 분열되며, 민심이 이탈되면...당연히 천도(遷都)하여 새출발을 해야 하는 것이다.

 

   태조 이성계가 개성을 버리고 계룡산으로 천도를 서두른 이유는 이미 기운이 쇠한 개경은 자신의 왕조에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풍수와 도참설, 그리고 최영 장군을 죽인 민심의 변화에서 새술은 새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데서 출발을 하였다.

이성계가 천도를 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점은,

① 새정신을 가질 수 있다. (불교 → 유교)

② 새로운 사람으로 새틀을 짤 수 있다. (수구세력→ 신진세력)

③ 개헌(改憲)과 개혁(改革)이 아니라 창헌(創憲)과 창혁(創革)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왕씨 → 이씨)

 

   이성계가 하륜(河崙)의 상소를 받아들여 계룡산 터를 버리고 한양에다 수도를 결정하여, 조선의 27대 519년과 일제 36년...그리고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수도가 된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수도는 이미 포화상태가 되어 버렸다. 수도권은 서울을 중심으로 인천, 부평, 시흥, 광명, 안양, 과천, 성남, 하남, 분당, 구리, 미금, 의정부, 고양, 일산 등 수도권 인구는 1860만명, 매일 70여만 명이 통근하고, 하루 차량 운행 대수는 200만대, 교통 인구 2,460만명....전국토의 0.6%에 불과한 서울시가 전국 경제의 31.8%, 재정규모는 중앙부처 예산의 1/4, GNP의 25.1%, 은행예금 52.8%. 소득세 51.5%, 법인세 71.9%, 하루에 물이 500만톤 ... 바로 이것들이 지방경제, 농촌 경제의 싱싱한 산소를 흡입하면서 ... 온갖 오염 물질을 생산하는 마치 암덩어리와도 같은 존재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안보면에서는 취약점이 노출되어 있다. 만약, 김정일이가 불장난을 일으킨다면 전기 단전, 수돗물 단수, 통신 불통, 가스 폭발 ... 외국자본이 이탈되고 ... 이미 수도권은 그들의 손안에 잡혀 있는 꼴이 아닐까?

   현상황하에서 제갈량과 같은 인물이 100명 태어난다 하더라도 수도권 의 인구 집중, 교통 체증, 공해 문제, 부정 부패. 은폐성 심리를 해결할 길이 없을 것이다.

   노무현이 서울을 버리고 충청도로 수도를 옮기겠다는 발상은 암덩어리 수도를 치료해보겠다는 발상이 아닌가 한다.

수도권의 포화상태를 저절로 해결하면서 새 정신을 가질 수 있고, 새 로운 사람에 의한 새 틀을 짤 수 있는 묘수의 땅이 계룡산으로 떠오르게 될 것이다.

 

10. 삼군본부가 계룡대로 된 일화

   그렇다면, 계룡산(鷄龍山)이 주는 의미는 어떤 것이 있을까 ?

계룡산의 원명은 계룡산(鷄龍山)이 아니라 봉룡산(鳳龍山)이다.

그런데 봉룡산이라 부르지 않고 계룡산이라 부르는 이유는 현상 세계에서는 봉황이 없음으로 봉황과 유사한 계(鷄)를 대신하여 계룡산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참고적으로 삼군사령부 명칭이 계룡대로 명명된 일화를 소개한다.

1970년대 육군본부가 서울의 용산에서 신도안으로 이전해 오자 삼군본부의 명칭을 공모하였다. 여기에 대령급 이상 장교들이 모인 가운데 집단 토론이 벌어졌는데, 육군 민심참모부 조경제 대령이 삼군본부 <계룡대>라고 명명을 해야 한다고 주장을 하였다. ,

첫째. 계룡대는 계룡산의 정기를 받을 수 있는 상징적 이름이며,

둘째, 계(鷄)는 지상과 하늘을 통하는 12지(支)의 하나로 천상을 제패(制覇)할 수 있는 천군(天軍)이 될 수 있고,

셋째. 용(龍)이라는 글자는 서울의 용산(龍山)에서 새로운 용산(龍山) 의 터로 이동하므로 용산 앞에다 계(鷄) 자만 넣으면 자연스럽게 계룡산(鷄龍山)으로 연결이 될 뿐아니라 지상과 바다에서 활동하는 용(龍)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으므로 <계룡대>라 명명하여야 한다고 주장을 하였다.

 

   토론장에서는 태극대(太極臺), 삼정대(三正臺), 통일대, 충성대, 화합대 등 여러 가지 안의 주장이 분분하였으나, 조 대령은 추가적으로 전통 혼인식 때 닭을 교배 상위에 올려놓는 이치를 들어 설명을 하였다.

“ 총장 님은 결혼식 때 신식 결혼을 하였습니까? 구식 결혼을 하였읍니까? ”

" 우리야 뭐 ... 신식이 있었나. 구식 결혼이었지.”

“ 그럼, 구식 결혼식 때 교배 상위에 닭이 올라갔습니까 안 올라갔습니까? ”

“ 씨암탉과 수탉이 올라가 있었지? ”

“ 그럼, 왜 인륜지사의 중대한 혼인식에 왜 닭이 올라갔을까요? ”

“ .... ”

 

   모든 장교들이 숨을 죽이고 있었으나 그 누구도 전통 혼인식 때 닭을 올려놓은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다.

조 대령은 설명을 했다.

” 우리 민족은 봉황 민족(鳳凰民族)으로 신라의 박혁거세와 알령 부인이 출현한 곳이 계림(鷄林)입니다. 남녀가 결합하여 자식을 생산하면 봉황과 같은 천자(天子), 강한 자식을 만들어 달라는 의미에서 봉황을 대신한 닭을 올려놓는 것입니다. 따라서 계룡대로 명명해야 육해공군이 계룡산의 기운을 받아 천군만마(天軍萬馬)의 위력을 발휘하여 강군으로 용틀임할 수 있을 것입니다. “

동시에, 와 - 하는 함성 소리와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을려퍼졌다.

삼군본부의 명칭이 <계룡대>로 결론이 난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조 대령을 비롯한 우수한 장교들이 있었음은 불문가지(不問可知)다.

 

11. 게룡산이 주는 의미

 

 

   그렇다면 <계룡산>의 글자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일까 ?

계(鷄)는 하늘을 뜻하고,

용(龍)이란 지상과 바다를 상징하며,

산(山)은 사람을 상징한다

 


계(鷄)

 

 

하늘(天)

 

 

 

 

태극

 

 

일원(一圓)

 

 

 

양심본능

 

 

 

거울

 


룡(龍)

 

 

땅 (地)

 

 

 

음양

 

 

이상(二相)

 

 

이성본능

 

 

 

 

 


산(山)

 

 

 

사람 (人)

 

 

 

조화

 

 

삼화(三和)

 

 

동물본능

 

 


사랑

 
계(鷄)란
봉황을 대신한다.

   천상적인 하늘같은 존재다. 모양은 ○이다. 하늘은 절대의 태극 상대로 존재하여 천일(天一)이라 부른다. 하늘(天)은 일원, 본질, 형이상학이라고도 부르며, 이를 대행하는 사람을 천자, 하나님, 옥황상제, 신, 창조주, 조물주, 창조주라 부른다.

   하늘은 말이 없고 텅 비어 있지만 ... 이것에 의하여 우주 만유는 성주괴공으로 운행을 하고, 춘하추동으로 변화를 하며, 인생은 생로병사의 길을 걷는다. 질병도, 가뭄도, 해일도, 태풍도, 천둥과 벼락도, 전쟁도, 혁명도, 평화도, 성현 출현도 모두가 하늘에 의하여 일어난다.

 

   참으로 위대한 신의 모습이 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하늘을 믿는 경천의 자세, 절대성, 자유성, 평등성, 평화성, 포용성을 가져야 하며, 하늘에 대한 위대함에 경외심을 갖고 경배(敬拜)하는 길이 곧 봉황(鳳凰)에 대한 도리일 것이다.


용(龍)이란
땅과 바다를 상징한다.

   강력한 힘의 승리자, 권력자. 지배자로 출현하여 모과 물질을 다스린다. 봉(鳳)이 머리를 다스리는 정신적 지도자라면 용(龍)은 몸과 물질을 다스리는 육신적 지도자이다. 모양은 □ 꼴로 나타나며, 지이(地二)라 부른다.

   지상적인 존재는 반드시 음과 양, 남성과 여성, 곡(曲)과 직(直), 내(內)와 외(外), 방어와 공격, 체(體)와 용(用), 이(理)와 사(事), 동(動)과 정(靜), 불변과 변, 일원과 다원, 획일과 다수, 영과 육, 정신과 과학, 폐쇄와 개방, 수동과 능동, 연역과 귀납, 시간과 공간, 수직과 수평, 평화와 투쟁, 짝수와 홀수, 상과 하, 좌와 우, 동과 서, 남과 북, 진보와 보수, 적과 아군의 이분(二分)으로 나타난다.

  용(龍)은 현실에서 정의롭게 투쟁하는 전사요, 승리자이다.

따라서 우리는 정의롭게 투쟁하여 승자가 된 강력한 용의 힘과 파사헌정(破邪憲正)의 덕에 순응을 해야 할 것이다.

 
산(山)이란
사람을 뜻한다.

   인간적인 존재다. 대자비화합(大慈悲和合)의 뜻이 있다. 일본인들은 대화(大和:야마또)라 부른다.

모양은 으로 표시한다. 인간적인 존재는 반드시 하늘(天一)과 땅(地二)을 배합한 중도, 중화, 조화로 나타난다. 인간은 절대수인 1과 상대수인 2수를 결합한 3수의 길로 걷는다.

따라서 우리는 중용(中庸), 중도(中道), 중화(中和), 대화(大和), 화백(和白), 조절(調節)하는 길을 걷는 것이 산(山)에 대한 도리일 것이다.

 

   계룡산은 우리를 부르고 있다. 天地人이 우리를 부른다,

계룡산의 의미에는 이 나라 이 민족을 구원할 대사상, 대정치, 대경제의 이론이 있고 → 사회통합도 남북통일도 할 수 있는 대이론이 내재되어 있으며, 한민족의 초능력을 개발할 그 무엇이 있기에 사람들은 그렇게 계룡산을 신성시하고 몰려드는 것이다. 무속이나 미신으로 취급하기에는 너무나 위대하고 신묘한 한국적인 묘수가 숨어 있기에 계룡산을 찾는 것이 아닐까?!

 

11. 가정(假鄭)

   정감록설은 지세쇠운설(地勢衰運說)과 결부된 설이다.

오늘의 한양 땅은 생기가 도는 땅이 아니라 썩은 땅이 되어 버린 것이다. 서울을 중심으로 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는 부정 부패, 경제적 낭비, 사회정의 상실, 환경오염, 입시 지옥, 붉은 악마들로 ... 썩은 땅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제 정치인들에게 우리의 희망을 건다는 것은 무리이다. 그렇다고 기성의 종교는 희망과 구원은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기존의 종교인들은 오히려 세속인들 보다도 더 추잡하게 타락되어 버린 것이다. 무엇인가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하다. 우리의 체질에 맞는 새로운 이념, 새로운 집, 새로운 사람이 필요하다. 그래서 계룡산 정도령은 더욱 더 우리를 설레게 만들고 끌어당기는 것이다.

 

   정감록이란 불교에서 미륵부처님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기대 심리나 기독교에서 구세주가 이 땅에 내려 주기를 바라는 것이나, 선도에서 진인(眞人)이 출현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나 같은 기대 심리이다.

   이와 같은 기대 심리는 혹세무민의 성격도 띠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신라 말기에 궁예가 미륵불이라고 자칭하여 백성을 혹사시킨 일도 있고, 강증산은 상제, 차경석은 천자, 백백교 교주는 미륵불, 문00은 참아버지, 조00은 정도령이라고 주장을 하며, 오늘 이 순간도 50~60여명이 자칭 정도령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또 대통령 선거에 뛰어든 인물도 있다. 물론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꿈을 현실화시키기 위하여 온갖 노력을 다하였으나 ... 결국은 시운이 맞지 않고 사리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여 꿈속에 헤매다가 결국 혹세무민으로 종말을 고하고 말았다.

   진짜가 나타나기 전에 초랭이가 춤을 추듯, 진정(眞鄭)이 나타나기 전에 가정(假鄭)들이 출현을 하여,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교훈을 남기고 사라져 버린 것이다.

 

12. 현대적 의미로 보는 정도령

   계룡산은 밝은 희망의 상징이며, 정도령은 양심의 화신으로 밝은 세상을 다스리는 지도자를 말한다.

단군 할아버지가 말씀하신 홍익인간(弘益人間)이나 공자가 말한 군자(君子), 예수가 말한 인자(仁者), 석가가 말한 불자(佛子), 도가에서 말하는 진인(眞人), 쇼펜하우어가 말한 초인(超人), 니체가 말한 슈퍼맨 ... 자이언트, 巨人, 大人, 미륵, 구세주와 같은 인물이 바로 정도령과 같은 인물들이다.

   성씨로 말하면 정(鄭)씨로만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김․ 이․ 박․ 최․ 조 ... 어떤 성씨를 선택하지 않고 바른 양심, 바른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 정도령(正道令)이다.

 

정도령의 참 모습은

1) 하늘(천일, 진, 성, 양심, 통일) 을 잘 섬기는 분이다.

2) 부모님에게 효도하고 가정을 잘 다스리는 분이다.

3) 국민의 의무(근로, 납세, 교육, 국방)를 잘 지키는 분이다.

4) 이웃과 친하게 지내는 분이다.

5) 각종 국법과 규정을 잘 지키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분이다.

6) 피와 땀의 노동을 즐기는 약속과 신용을 잘 지키는 분이다.

7) 나를 나타내지 않고 화합과 단결을 잘 하는 분이다.

8) 우주의 삼라만상과 일체 생명체와 함께 하는 분이다.

9) 늘 배우기를 좋아하는 분이다.

10) 정직하고 상식적으로 살아가는 분이다.

11) 좀 바보스럽고 어리석은 사람처럼 보인다. 욕심을 안차리기 때뭄에!

 

   정도령은 절대 특이하고, 기이하고, 위대한 모습으로 출현하지 않는다.

우리 민족이 일등 국가 일등 민족을 이룩하지 못하는 것은 위대한 인물과 좋은 법망이 없어서 아니라, 지극히 쉽고 간단하며 상식적인 일을 피땀의 행동으로 실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병은 지극히 상식적인 행동을 망각하고 툭히하고, 기이하고, 걸출하고, 말 잘하고, 학력있고, 머리 영리하고, 권력이 높은 자들에 의해 저질러진 결과다. 그들은 머리와 입으로만 했지, 정직한 피땀의 행동과 밝은 양심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던가?

   정도령은 부자나, 정치인이나, 장군으로 출현하는 것이 아니다. 나타니얼 호오손이 말한 <큰바위 얼굴>처럼 보통 사람, 상식이 통하는 평범한 사람으로 출현을 하는 것이다.

   계룡산 정도령 정치는 이와같이 상식이 통하는 평범한 인물들을 수천만명을 출현시켜 일등인간. 일등민족, 일등국가, 일등세계인을 만드는데 있으며 → 이러한 인물이 출현하도록 모든 정치체제가 당이 아닌 국민에 의하여 참사람을 뽑는 제도를 가지고 등장할 것이다.

 

 

                              

 

                          

 

 

                                                                                                                           다음 블로그 <얼의 신>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