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동과 요서의 기준이 요수가 아니라 의무려산일 수도 있다.

2015. 5. 26. 12:34우리 역사 바로알기

 

 

 

 

요동과 요서의 기준이 요수가 아니라 의무려산일 수도 있다. view 발행 | 조선중후기영토

 

 

만주몽골조선땅임 2009.07.27 15:37

 

  

   십오국풍지도를 보면 뜻밖에도 의무려산을 기준으로 요서와 요동을 가른 것을 알 수 있다.

즉 요수가 꼭 요서와 요동을 구분한 기준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의무려산을 기준으로 요서와 요동이라고 쓰인 것을 보시라 혹시 요수 근처에 의무려산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北鎮醫巫閭山並於定州

북진 의무려산은 정주에서 관리한다.

송사

 

 

中山府,次府,博陵郡。建隆元年,以易北平?來屬。太平興國初,改定武軍節度。本定州

중산부는 박릉군이고 역수의 북평에 속한다. 본래 정주이다. 중략

송사

 

 

 

 

 

 

 

화이도상의 정주와 북평

 

송나라때 의무려산은 뜻밖에도 정주에서 관리한다고 한다. 즉 이곳은 내가 생각한 공손도의 요서군지역이다. (공손도는 후한의 요동군태수로 있다가 요동군을 쪼개어 요서군과 중요군을 두었다) 공손도가 후한의 요동군을 쪼갤 때 그 근거가 혹시 요수가 아니라 의무려산이 아니었을까?

 

놀랍게도 송나라때 의무려산은 정주에 있었다. 즉 현재 호타하 상류근원지 근처이다.

 

 

閭州。羅吉王牧地,近醫巫閭山。在遼州西一百三十里,西北至上京九百五十里。

여주는 나길왕 땅인데 의무려산이 가깝고  서쪽 1백3십리에 요주가 있다. 서북은 950리에 상경이 있다.

 

顯州,奉先軍,上,節度。本渤海顯德府地。世宗置,以奉顯陵。顯陵者,東丹人皇王墓也。人皇王性好讀者,不喜射獵,購書數萬卷,置醫巫閭山絕頂

현주 봉선군은 본래 발해 현덕부땅인데  의무려산이 있다. 중략

요사

 

 

 

 

 

                                                           거란지리도상의 현주와 요주 전부 소요수즉 난하의 서남쪽에 있다.

 

地理志四

南京道   商京析津府,本古冀州之地。高陽氏謂之幽陵,陶唐曰幽都,有虞析為幽州。商並幽於冀。周分並為幽。《職方》,東北幽州,山鎮醫巫閭

남경도는 본래 기주땅인데  동북에 유주에 의무려산진이 있다. 중략 

요사

    요사는 원래 요나라기록을 바탕으로 원나라 말기 승상 탈탈이 쓴 것이다. 그러니 특정지명의 연혁은 당연히  요나라 기록일 것이고 산이름은 탈탈이 아는 산위치를 적었을 가능성이 높다. 즉 원나라 말기 의무려산의 위치를 감안해 그가 적었을 것이다.

송사 역시 청나라때 다시 쓰여졌다. 그러니 참 애매하다. 다만 이렇게 의무려산의 위치가 송사는 정주라 하고 요사는 난하서쪽이라 하면 서쪽에 있는 것이 훨씬 고대라고 봐야한다.  한족들이 지명을 동으로 이동시키지 서로 이동시킬 가능성은 없지 않은가...

 

   명나라 전기 산해관은 북경의 동남쪽 현재의 영정하 하류에 있었고 연산도라는 명나라고지도를 보면 요수는 난하 압록은 서요하로 나온다. 즉 의무려산은 원나라 말기에 난하의 서쪽에 있었다. 이를 명나라도 그대로 표기한 것으로 보인다.

 

 

   용왕봉(龍王峯)ㆍ보주봉(保住峯)ㆍ망해봉(望海峯)ㆍ분수봉(分水峯)ㆍ망성강(望城岡)ㆍ녹하봉(祿河峯) 등 여러 봉우리가 있는데, 통틀어 그를 ‘의무려산(醫巫閭山)’이라고 했습니다. 이 역이 바로 그 양지쪽에 있기 때문에 여양역이라 이름한 것입니다. 일찍이 듣건대, 유관(楡關)을 나오면 동남쪽은 바다에 가깝고 북쪽은 큰 산이 가로막혀 있는데, 모두 토질이 거칠고 나빠서 초목이 나지 않고 주산(主山)이 험준하고 높이 솟아서 공중에 닿아서 푸르다고 하였는데, 바로 의무려산을 두고 말한 것입니다.
표해록(漂海錄) 제3권무신년(1488, 성종 19) 5월15일

 

  흑산(黑山)ㆍ기산(岐山)ㆍ사산(蛇山)이 있는데, 그 산들은 모두 의무려(醫巫閭)의 동쪽 지맥(支脈)이었습니다.
표해록(漂海錄) 제3권무신년(1488, 성종 19) 5월20일

 

   고돈포(高墩鋪)를 지나서 신관문(新關門)에 이르니 긴 토성(土城)이 있었는데, 북쪽으로 장성(長城 만리장성)에 붙어서 남쪽으로 뻗었고, 관문(關門)은 바로 그 복판에 있었으니 곧 성화(成化) 연간에 새로 쌓은 것입니다. 또 대대(大臺)ㆍ삼관묘(三官廟)ㆍ하만포(河灣鋪)를 지나서 삼차하(三汊河)에 이르니, 삼차하는 곧 요하(遼河)였습니다

 표해록(漂海錄) 제3권무신년(1488, 성종 19) 5월22일

 

삼차하가 요하이고 당시의 난하이다. 표해록저자는 의무려산을 지난뒤에 7일뒤에 현재의 난하에 도착했다. 그가 아직 지금의 산해관을 지나지 않은 것은 22일자에 장성 아래 명나라가 새로 쌓은 토성의 신관문을 벗어나지 않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乾州西北有梁山,接岐山縣界

명사

건주서북에 양산이 있고 기산현 경계에 접한다.

 

 

거란지리도에 건주가 현주 위에 있다. 즉 거란지리도 요사 명사의 기록이 모두 일치한다. 공통적으로 의무려산은 난하의 서쪽에 있었다.

 

즉 결론은 송사에 나온 정주에 있는 의무려산은 당나라때 요서군과 요동군의 기준이 된 공손도가 후한의 요동군을 요서군으로 쪼갤 때 기준점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이고 요사 명사에 나오는 의무려산은 바로 그 후대의 요서군과 요동군의 기준이 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세조때 작성된 동국지도 지도에 고요동과 압록을 기억하시라

 

의무려산을 왜 찾았냐면 바로 조선영토를 나타낸 동국지도의 고요동 때문이다. 조선은 고요동이 자기땅이라고 썼는데 고요동의 기준을 찾기 위해서였다. 조선이 기준으로한  것은 바로 의무려산으로 이곳 동쪽이 고요동이고 여기는 조선땅이라는 것이다.

결국 동국지도의 고요동이란 원나라 말기에서 명나라 후기까지 난하 서쪽에 있었던 의무려산을 기준으로 동쪽이라는 것이다.

 

 

 

 

 

 

   건주여진은 조선에 세종 세조때 대대적으로 토벌되었다. 이들은 조선에 충성했으며 조선이 임진왜란으로 주도권을 상실하자 세력을 키워 동쪽으로 진격해왔다. 건주여진추장 누르하치는 요하일대에서 대동시까지를 기반으로 한뒤 몽골을 병합하고 조선에서 이탈한 타타르세력도 포함하여 사실상 요제국에 버금가는 영토를 누렸다. 누르하치는 조선에게 예의가 깍듯했다. 그가 보낸 서신에도 조선을 생각하는 마음이 적혀 있더라.

 

 

 

 

  • 댓글
  • 제가 보기엔 송사의 기록은 의심스럽고 요사의 기록이 사실과 부합하다고 봅니다.

    일반적으로 요수를 기준한 것으로 생각들을 하지요. 그리고 동서로 위치한 것으로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요서와 요동은 남북으로 있었고, 그 기준은 요수이며, 그 요수는 대요수의 4 개 지류 중에서
    동북류하여 요동군 방현에 이르러 대요수에 합쳐진다는 백랑수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님의 글을 읽으며 의무려산이라는 기준이 옳을 수 있다고 보았고, 요동군의 서부도위치소인 무려현에 있는
    의무려산과 백랑수는 당연히 가까이 있었을 것이라는 심증이 가는 것입니다.

    그동안 무려현의 의무려산은 고려치 않았는데 님께서 깨우쳐 주시네요.
    그래서 이렇게 정리가 되더군요.

    현재 반가구수고 부근에서 서쪽으로 물길이 하나 있는데 이것이 백랑수이고,   이 백랑수가 지도상으로 난하와 만나는데,
    이 부근에서 난하 동쪽으로 서남류하는 지류가 또 하나 있는데 이것이 지금 폭하라고 부른답니다.

    이 폭하가 한서 지리지, 수경주가 말하는 망평현 요수이며 대요수의 원 물길이라고 봅니다.
    요동군은 백랑수와 망평현 발원 대요수를 잇는 선의 북쪽에 있었던 것이라고 정리해 봅니다.

    이 지역 서쪽에 무려현이 있었고 의무려산이 있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분명히 15국풍지도에는 동서로 있지만 요서군은 난하의 하류에 위치했었습니다.
    이 닥터
    의무려산을 요동군과 요서군의 분계점으로 본 것은 정확히 본 것 같습니다.
    일부 사람들이 산서성 좌권이 요동군과 요서군으로 나누는 기준점일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하나 좌권은 고대의 요와는 아무 관련도 없는 지명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의무려산이 지금의 어느 산을 말하는냐 하는 것이 문제로 남는데 내가 보기에 지금의 내몽골 오란찰포시 상도(商都)가 요 상경임황부(사서들에 요동 서안평에 임황부가 위치한다고 하였음)로 비정되므로 고대의 의무려산은 상도의 서쪽에 위치한 지금의 대청산을 말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참고 하십시요.        
    그리고 위 십오국풍지리지도가 어느 시대 제작된 지도인지 모르겠지만 경사와 북경을 따로 표시해 놓았네요.
    경사와 북경이 다른 지역이라?  
    閭州。羅古王牧地,近醫巫閭山。在遼州西一百三十裏,西北至上京九百五十裏。
    아마 최초의 의무려산도 산서성 요주의 서쪽 130리에 있었을 겁니다. 이후에 요수가 청장하에서 영정하로 옮겨지면서 의무려산도 같이 옮겨졌을 것이고 역시 요나라의 요주의 서쪽 130리에 있었을 겁니다. 요수가 이동하면 의무려산도 같이 이동하면서 고대의 요동군과 요서군이 갈린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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