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5. 29. 04:22ㆍ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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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해각안(梵海覺岸)선사의 행다법
◦ 장 소 :
일로향실(一爐香室), 쾌년각(快年閣), 남암
◦ 인 원 :
범해, 성학(찬민), 원응(계정), 금명(의준), 취운(혜오)
◦ 의 식 :
생활차 행다법
◦ 문 헌 :
범해선사 유고, 다가(茶歌), 다구명(茶具銘), 다약설(茶藥說)
◦ 연 대 :
1820(조선 순조 20) ~ 1896(고종 건양 1년)
◦ 의 의 :
대흥사 제 13대 강사로서 선교(禪敎)에 회통한 분이다. 조선조 마지막 대 강백으로 그 문하에서 수많은 강사들이 배출되었다. 차의 맥은 초의선사의 다맥을 이었으며 실질적이고 합리적인 차생활을 하였다. 조선조에서 개화기를 맞는 시기에 생존하여 그의 제자들은 모두 일제 암흑기에 활동을 했다. 조선에서 일제시대로 이어지는 시기에 차문화를 계승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였으며, 더욱이 다가(茶歌)와 다약설(茶藥說) 그리고 다구명(茶具銘)과 34수에 이르는 차시(茶詩)는 선사의 차생활을 명확하게 관조해 볼 수 있는 귀중한 문헌들이다. 그리고 당시에 이름난 전국의 명차들을 소개하고, 그 차의 특성까지 열거한 점은 해박한 차지식과 차생활의 체험담들이다. 이러한 차생활과 차 정신은 그의 제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 해 설 :
범해선사는 조선이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는 마지막 해에 입적을 하였다. 조선의 마지막 역사와 함께 조선조 마지막 대강사로서 명을 같이 한 것이다. 두륜산의 호의(縞衣), 하의(荷衣), 초의(艸衣) 등 세 사람을 “두륜삼의(頭輪三衣)”라고 불렀는데, 이 분들은 당시 조선불교의 거목들로 선교에 능통하고 시, 서, 화(詩書畵)에도 조예가 깊었다. 범해선사는 호의스님의 전법제자로서 하의와 초의선사에게 수학을 하였다. 그래서 당대 최고의 석학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차에 대해서도 달인의 경지에 이르렀다.
당시 대흥사에는 이름난 다인들이 많았다. 이들은 모두 시인이요 선사(禪師)들로 한 시대를 풍비하던 사람들로 만나면 차 달여 마시고 시를 짓고 참선삼매에 들며 자유자재하게 살았다. 그 가운데 손꼽히는 이가 범해선사이다. 스님은 평생을 대흥사에서 보냈는데 잠시 천하를 유유자적 유람한 적도 있다. 수년에 걸쳐 남으로는 제주도 동으로는 김해 경주 서로는 묘향산 북으로는 금강산에 이르기까지 유람하면서 시를 지어 남겼다. 이 때 명산, 명차를 모두 얻어 마셔보고 품격을 논했다. 이것이 다가(茶歌)이다. 차를 좋아해서 비교와 품평을 세밀하게 해놓은 글이다. 이 글에서 스님의 정밀한 안목을 엿볼 수가 있다.
■ 다 구 :생활차 다구, 잎차용, 떡차용 다구
◦ 다조(茶竈): 차 부뚜막
◦ 다로(茶爐): 차 화로
◦ 탕관(湯罐): 돌 솥, 옹기 탕관
◦ 다 관 : 백자다관, 옹기다관(瓦罐)
◦ 찻 잔 : 백자차잔
◦ 차 : 잎차, 떡차, 초의차, 보림작설, 화개차, 무등차, 백양차, 덕용용단, 월출작설
◦ 찻잔받침 : 백자, 나무
◦ 물 병 : 백자, 옹기
◦ 차숟가락 : 놋쇠
◦ 차 통 : 백자, 옹기
◦ 차 수 건 :베
◦ 차 상 : 나무, 경상(經床)
◦ 부 채 : 화롯불 피우는 대롱
■ 행다순서
1) 전다법(前茶法)
◦ 남암(南庵) 뜰에 자그마한 다조(茶竈)를 만들어 놓고 매일 차를 달여 마셨다.
◦ 남암에서 이질에 걸려 다 죽게 되었었다. 이 때 사형 무위(無爲)와 사제 부인(富仁)
스님이 찾아와 차를 달여 주어 마시고 나았다.
◦ 이 때 비로소 차가 약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다약설(茶藥說)을 지어 후세에 전하고
평생 차를 사랑하게 되었다.
◦ 뒤뜰에서 맑은 샘물을 길어다가 다조에 옹기탕관을 올려놓고 찻물을 끓인다.
◦ 한편 법당 마루에는 다구를 준비해 놓고 차 달일 다구들을 청결하게 씻어낸다.
◦ 차 물이 다 끓으면 옹기 탕관을 들고 마루 위로 올라와 다관에 탕수를 조금 부어 냉기를
가셔낸다.
◦ 다관을 데운 물은 찻잔에 부어 찻잔을 데운다. 이 때 옹기다관은 오른쪽에 백자찻잔은
왼쪽에 둔다.
◦ 다관에 차를 넣고 탕수를 부어 넣는다. 그 양은 손님의 수에 따라 결정한다.
◦ 찻잔의 물을 버리고 다관의 차가 알맞게 우러났는지 살펴서 찻잔에 골고루 나누어
따른다.
◦ 찻잔에 차를 다 따르고 나면 손님에게 차를 권한다.
◦ 손님이 차를 마실 때까지 계속해서 차를 끓여 대접한다. 하루종일 다담을 나누며 차를
마시기도 한다.
◦ 대개 사원의 차 생활은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분방하며 차를 마시는 시간도 구애
받지 않고 작게는 몇 시간에서 길게는 밤을 새우기도 한다.
◦ 다구를 들고 골짜기 계곡 갓에 가서 차를 달여 마시기도 하고 높은 산꼭대기 바위 위에
올라가 차를 달여 마시기도 한다.
2) 팽다법(烹茶法)
◦ 대흥사, 운흥사 등 초의선사와 인연이 있는 곳에서는 모두 떡차를 만들었다.
◦ 운흥사가 있는 덕용산 용단승설차는 그 이름이 매우 높았다. 운흥사는 초의선사가
출가한 사찰이다.
◦ 운흥사와 불회사, 도갑사, 무위사, 보림사등은 초의선사의 제다법을 전수 받아 계승
되어온 곳이다.
◦ 다로에 돌솥을 깨끗이 씻어 올려놓고 찻물을 끓인다.
◦ 찻물이 잘 끓도록 대나무 대롱으로 바람을 불어넣는다. 대롱으로 불면 불티가 날지
않고 숯불이 잘 일어난다.
◦ 찻물이 다 끓으면 한 바가지를 떠내서 찻잔을 데운다. 그리고 알맞은 물의 양을
가늠하여 떡차를 넣는다.
◦ 떡차를 가루 내지 않고 그대로 돌솥에 넣고 뚜껑을 덮고 불기운을 올려 차를 끓인다.
◦ 이 때 불기운을 세게 하려면 대롱으로 바람을 불어넣는다.
◦ 차가 끓으면 거품이 일고 그 기운이 밖으로 새어 나온다. 거품이 넘쳐 나오면 차는
다 익은 것이다.
◦ 이 때 돌 솥 뚜껑을 열고 표주박으로 떠내서 찻잔에 나누어 따라 마신다.
◦ 돌 솥 안에는 차가 남지 않아야 하며 곧바로 냉수를 부어 다시 찻물을 끓인다.
◦ 찻물이 끓으면 표주박으로 떠내서 찻잔에 나누어 따라 마신다. 이 백비탕은 고려 때는
약이라고 했지만 입가심의 물이며 차맛을 다시 느끼게 해주는 후미차이다.
◦ 떡차를 끓이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는데 다른 하나는 잎차 끓이듯 다관에 넣어
우려마시는 방법이다.
◦ 떡차를 다관에 넣고 탕수를 부어 우려낸다. 차가 알맞게 우러나면 찻잔에 나누어
따른다.
◦ 차를 끓이는 방법은 잎차 우리는 방법과 같다. 다만 차맛이 다 우러나오지 않는다.
- 다음 블로그 < 정명 스님의 수행 나눔> 정명 스님의 글 중에서 전재 ......
http//blog.daum.net/kimjungmyeong/2064
***** 이 글에서 전다법(前茶法)이라 함은 전다법(煎茶法)의 오기로 보이며,
행다(行茶)의 내용상 충포법(冲泡法) 또는 포다법(泡茶法)인 차우리기를 뜻한다.
차달이기를 뜻하는 팽다법(烹茶法)은 중국과 한국의 다서나 시문(詩文)들을 살펴 본 결과
달이는 시간의 장단에 따라서 몇시간이나 한나절 이상의 비교적 장시간 달일 때는 전다법(煎茶法)으로,
수분~30분 정도 일때에는 자다법(煮茶法)으로 쓰여져 왔었다. 성당시대에 성행한 육우의 자다법은
팽다법과 서로 혼용된다.
이 글에서 차우리기를 전다법으로 쓰고 있는 것은 대일항쟁기 때 일본식 다도를 배운 분들의
관습적 표현에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닐까 하고 짐작된다.
일본에서 녹차를 전차(煎茶)라고 부르고, 녹차와 같은 산차(散茶) 우리기를 전다법(煎茶法)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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