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5. 29. 05:08ㆍ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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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丁若鏞)의 행다법
◦ 장 소 :
다산초당, 보은 산방 품석정
◦ 인 원 :
다산, 윤동외 제자들, 초의, 혜장
◦ 의 식 :
생활차 행다법
◦ 문 헌 :
여유당전서, 다암시첩, 사경첩, 차시 47편
◦ 연 대 :
1762년(조선 영조 38)~1836년(헌종2년)
◦ 의 의 :
실학자로서 다산 정약용 선생의 차생활은 다분히 실리적이고 합리적이면서 풍류 적인 멋이 있었다. 다산 초당의 뜰 앞에 자그마한 차 부뚜막(다조)을 만들어 놓고 솔방울을 주어다 불을 지펴 돌솥에 차를 끓이는 장면은 한 폭의 실경 산수화이다. 더욱이 나이 어린 제자 윤동은 차 끓이다 말고 졸고 늙은 스승은 시를 짓는다. 때로는 차를 달여 마시며 연못가를 배회하고 몸에든 병마는 차를 마셔 물리친다. 한편의 걸명소는 이를 잘 증명해주고 있는데 옥고와 형벌로 망가진 몸과 마음을 차로서 달래는 장면이 이채롭다. 다산 선생에게 차는 약이요 때로는 말없는 벗이었다. 이러한 차생활이 꺼져 가는 조선조 말기에 우리나라의 차문화를 다시 잇는 계기가 되었으니 그 의미하는 바가 크다.
◦ 해 설 :
다산 선생은 지리산 상무주암에서 수도하고 있는 연담유일대사를 찾아가 하룻밤을 같이 지내면서 차를 얻어 마신 일이 처음 차생활을 시작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 후 강진으로 유배를 가서 그곳에서 혜장선사를 만나 차 대접을 받고 나서 차생활에 불이 붙었다. 실로 강진으로 유배를 간지 4년(1804)만의 일이다. 그해 겨울은 혜장선사의 배려로 고성사의 서쪽 방 하나를 얻어 살게 되었다. 이곳에서 다산선생은 그 유명한 걸명소(乞茗疏)를 지어서 혜장선사에게 보낸다. 걸명소란 차를 구걸하는 글이다. 그 글에서 몸에 든 병을 치료하는 약으로 삼고 또 때로는 즐겨 마시기도 한다고 하였다.
이처럼 시작된 차생활은 초의선사를 만나면서부터는 그 격조가 자못 높아져 풍류의 멋이 한껏 더해 졌다.
다산 초당의 뜰 앞에 흙과 돌멩이로 자그마한 다조를 만들어 놓고 매일같이 차를 끓여 마셨으며, 시를 짓고, 연못을 만들고 기이한 형상을 한 괴석들을 모아다가 배치하고 난을 기르고 잉어를 키우며, 꽃을 가꾸고 약천을 팠다. 이는 다산선생의 차생활이 얼마나 많은 부분에 이르기까지 발전하였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이다. 훗날 유배지에서 풀려 고향으로 돌아갈 때에는 제자들과 함께 다신계(茶信契)를 조직하고 계목을 지었으며 그 절목에 보면 고향으로 돌아간 뒤에도 차생활 할 수 있도록 다산초당의 주위에 있는 차나무에서 차잎을 따 잎차와 떡차를 만들어 보내라고 하였으며 시를 지어 함께 보내라고 하였다. 이는 차를 통한 스승과 제자의 정분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 다 구 :생활차 다구, 떡차용 다구
◦ 다 조 : 차 부뚜막, 뜰에 설치
◦ 탕 관 : 돌솥(石鼎)
◦ 다 관 : 백자, 옹기, 은병
◦ 찻 잔 : 백자, 청자, 찻종, 다구
◦ 차 : 잎차, 떡차, 초의차, 혜장차, 작설차, 엄다(釅茶), 소용단(小龍團)
◦ 찻잔받침 : 백자, 나무
◦ 물 병 : 백자, 옹기
◦ 차숟가락 : 놋쇠
◦ 차 통 : 백자, 옹기
◦ 차 수 건 : 베
◦ 차 상 : 나무
◦ 연 료 : 솔방울
■ 행다순서
(1) 전다법
◦ 뜰에 있는 다조에 약천의 물을 길어다가 부어 넣는다. 돌솥은 깨끗이 씻어내고 차 끓일
물을 넣는다.
◦ 뒷산에서 주어온 솔방울로 불을 지핀다. 차 끓이는 일은 제자 윤동이 도맡아서 했다.
◦ 다조에서 물이 끓는 사이에 다관과 찻잔 등을 깨끗이 씻어서 다산초당의 마루에 올려
놓는다.
◦ 다조의 물이 끓으면 탕병에 물을 떠내어 담아 가지고 초당마루로 올라간다.
◦ 마루에서 차상의 다관에 물을 부어 다관을 데우고 찻잔도 데운다.
◦ 다관의 물을 버리고 차를 넣고 탕수를 부어 차를 우린다.
◦ 차가 울궈나면 찻잔의 물을 버리고 찻잔에 차를 나누어 따른다.
◦ 찻잔에 따른 차를 다산선생에게 드린다. 이 때 다른 제자들은 선생께 드린 뒤에
나누어 마신다.
(2) 팽다법
◦ 뜰에 있는 다조의 돌솥을 깨끗이 씻어서 올려놓고 약천의 물을 떠다가 부어 끓인다.
◦ 돌솥의 물이 다 끓으면 떡차 한 덩어리를 넣고 뚜껑을 덮고 다시 끓인다.
◦ 떡차는 가루를 내지 않고 그대로 덩어리로 넣어 끓인다.
◦ 초선말기에 해남, 강진 일대에서는 떡차를 많이 만들어 마셨는데, 덩어리 차를 그대로
돌솥에 넣어 끓여 마셨다.
◦ 너무 오래 끓이면 맛이 쓰기 때문에 알맞게 울궈날 정도로 끓인다.
◦ 차가 다 끓어서 익으면 표주박으로 차를 떠내서 찻잔에 고루 나누어 따른다.
◦ 차를 다산 선생께 가져다 올리고 나머지 차는 제자들이 나누어 마신다.
◦ 이 때 차가 진하게 울궈나 맛이 쓰고 떫은 차를 엄차(釅茶)라고 하였다.
ㅡ 다음 블로그 < 정명 스님의 수행 나눔> 정명 스님의 글 중에서 전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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