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불화재현

2015. 6. 10. 12:18美學 이야기

 

 


       고려불화재현(1)| 불교미술

목인스님 | 조회 22 |추천 0 | 2007.06.11.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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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타삼존]

   오방색으로 두광과 신광을 두르고 삼존을 에워싸는 광배를 다시 둘렀다. 삼존은 마치 접었다 편 그림처럼 엄정한 좌우대칭으로 그려진 그림에 약간의 변화를 주고 있다. 가부좌를 한 설법형의 아미타불은 미타정인을 짓고 양손을 만자가 있는 가슴위까지 들어올렸다. 정병을 들고있는 관음의 사라에는 방사상의 원문을, 군의에는 거북무늬를 그렸다. 경권과 연화를 들고있는 세지의 사라는 거북무늬를, 군의에는 구름무늬를 그려 관음과 대조적인 느낌이 들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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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타삼존]

   내영하는 아미타삼존은 경건한 위의를 갖춘다. 삼존은 시선을 높이 들고 있으며 아미타여래의 손바닥에는 설법을 뜻하는 천복륜문이 두렷하므로 내영 자체라기보다는 왕생자에게 설법을 하는 장면으로 보인다. 협시보살의 머리에는 사라가 사라지고 보관이 보다 강조되어 있다. 관음은 양류와 정병을 들지 않았고 세지는 경권 대신 여의를 가볍게 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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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타 9존]

    아미타와 팔대보살이라고도 하는 이 도상은 대형 아미타도상과 소형 팔대보살을 아래 위로 배치한다. 이렇게 아미타불을 크게 그리는 것은 설법형일 경우가 많다. 왕생자를 내영할 때는 아미타불이 약간 크게 그려진다. 아미타불은 협시보살인 문수와 보현과 함께 삼존상을 이룬다. 양 옆으로는 관음과 세지를 세우나 이 그림처럼 세지 대신 지장이 자리하기도 한다. 다시 바깥으로는 미륵, 금강장, 허공장과 제개장을 세우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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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타 9존]

   두분 보살은 정면으로, 아미타와 보살들은 모두 그림 앞에서 보아 왼쪽으로 향하고 있다. 왼쪽은 그림 안에 들어가서 보면 오른쪽이기도 하다. 다시 동서로 놓으면 바깥에서 보아 서쪽이되 그림 안에서 보면 동쪽이 된다. 즉 그림의 위쪽에 천개가 암시하듯 아미타불의 서방정토로 왕생자를 영입한다는 구도가 되는 것이다. 강록사는 보살들의 사라를 모두 방사상의 사각형 문양으로 해석했다. 그래서 아미타 대의의 보상원문처럼 장식적이면서도 천의처럼 날아갈 듯한 경쾌한 모습으로 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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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타 9존]

    설법형의 아미타불과 경청하는 보살처럼 그려졌다. 팔대보살의 명호는 보통 문수-보현, 고나음 세지, 미륵-지장, 금강장-제장애보살을 배대한다. 불가에서는 좌체우용이라 하여 왼쪽에는 체에 해당되는 문수, 관음, 미륵, 금강장 보살이 자리하며 오른 쪽에는 용에 해당되는 보현, 세지, 지장, 제장애 보살을 세우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팔대보살만다라경에는 이 보살의 명호와 순서가 달라지기도 하므로 확정된 배치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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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월관음]

    관음의 기원 전후 네개의 얼굴을 가진 브라흐마의 속성과 권능을 계승하여 등장하낟. 먼저 성관음이 성립하여 여의륜, 십일면, 불공견삭, 천수, 준지, 마두관음으로 분화된다. 세월이 지나면서 33응신의 하나로 등장했다가 세인의 사랑을 독차지한 것이 수월관음이다. 보통 인도의 남쪽바다에 있는 보타락가산의 달빛 비치는 암좌에서 정병에 꽂힌 양류를 앞에 놓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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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월관음]

   고려불화의 수월관음은 대부분 사라를 쓰고 머리에는 보관에 아미타불을 모신 형태로 그려진다. 가슴에는 영락, 손에는 가끔 버들가지를 들기도 한다. 80억 나유타 항하사 유순 이라는 은하우주만큼 거대한 수월관음의 발치에는 화엄경, 입법계품에서 53선지식을 역참하는 선재동자가 먼지보다 작게 그려진다. 문수보살을 만나 역참권유를 받고 관음, 미륵, 마야부인등 선지식을 만난 후 선재동자는 보현의 10종광대행원을 듣고 법계에 든다. 선재동자의 역참은 생떽쥐베리의 어린왕자에도 영감을 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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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월관음]

    보타락가산은 관음의 정토이다. 거대한 인도에 비하여 작은 남쪽의 섬으로 그려진다. 화엄경의 입법계품에서 선재동자는 베쉬디라 거사의 천거를 받고 금강좌에 앉은 관음을 뵌다. 선재동자가 보살의 행과 보살의 도를 묻자, 관음은 중생의 공포를 여의게하며 다시 중생을 가르쳐서 그들이 불법을 일심으로 구하고자 하는 보리심을 내어 물러서지 않도록 서원했다는 대비행문을 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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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월관음]

    삼국유사에 의하면 용천팔부시종이 의상법사를 관음굴속으로 인도하였다. 법사가 공중을 향하여 참례하였더니 용천팔부시종이 수정염주 한꾸러미를 내어 주었다. 법사가 받아 물러나자 동해용도 여의보주 한알을 바쳤다. 관음을 친견한 의상은 쌍죽이 난 좌산의 산꼭대기에 불전을 지으라는 관음진신의 말에 따라 금당을 지었다. 금당을 짓자 대나무가 사라져 바야흐로 여기가 진신 관음보살의 주처라는 것을 알아 보타락가산을 본따 낙산사라 했다는 기록이 있다. 관음의 앞쪽 바위의 파랑새는 원효의 관음참례와 연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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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의관음]

    백의관음은 흰옷을 입은 관음으로 그려지지만 백처의 관음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백처란 보리심이다. 모든 부처는 보리심에서 태어나므로 백의관음은 관음의 어머니가 된다. 밀교에서는 모든 부처를 생성하는 불모로 등장한다. 그런데 고려불화에서 백의관음은 수염이 달린 남성으로 표현된다. 북방불교의 원형적인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고 믿어지는 히말라야의 알치 사원에서도 강건한 남성으로 해석된다. 관음은 이윽고 중국의 마랑부, 낭랑 등 민간신앙과 결합하여 본격적으로 여성화하는 경향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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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월관음]

    선재동자를 만난 관음은 연꽃을 가볍게 잡고 있다. 수월관음의 연화는 비로자나의 연화장 세계를 상징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연화장 세계는 비로자나불의 중중무진 화장세계를 일컫는 말이다. 중중무진이란 화장세계의 밑에서부터 수직으로 중첩된 세계를 말한다. 풍륜위에 향수해, 그 위에 일대 연화의 화장세계가 차곡차곡 함장된다는 뜻이다. 모두 화엄사상에 의한 불타와 중생의 세계관이다. 화엄경, 입법계품에 등장하는 선재동자가 암시하듯 고려불화의 수월관음도는 화엄사상에 깊이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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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월관음]

   수월관음이 들고있는 양류는 청관음경의 내용을 도해했다. 동진의 축난제가 번역한 밀교계 경전인 청관음경에는 돌림병을 고쳐준 관음의 영험이 실려있다. 비사리 성의 인색하고 탐욕스런 월개장자의 딸이 돌림병으로 죽게되어 석존에 눈물로 매달렸다. 석존의 가르침에 따라 장자가 치성을 올리자 아미타불이 관음 세지보살을 거느리고 광명으로 비춘다. 그러자 딸 뿐 아니라 성안의 돌림병이 사라졌다. 사람들이 버들가지와 정병을 관음에게 바치자 관음은 시방제불구호신주경을 설하였다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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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월관음]

    합장한 손재동자와 함께 그려진 수월관음의 사라에는 봉황이 그려져 있다. 봉황은 불교의 새가 아니다. 봉황은 한민족의 선조인이족이 활동하던 고대 중국에서 태평성대를 상징했다. 봉황은 원래 봉새였다. 황은 불꽃 황과 같고 다시 임금 황과 통한다. 그래서 태양이 순조롭게 만물을 비치고 절기를 어기지 않는 태평성대를 상징하기 위해 조류숭배사상을 대표하는 봉황이 등장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 민간신앙이 고려불화에 그려진다. 원융무애한 화엄의 사상에서 관음도상이 민간신앙의 태양과 같은 위의를 융섭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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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나한도]

   구름 위에서 연화대에 좌정한 석가불을 중심으로 문수보현이 협시하고 자유로운 포즈의 16나한이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석가불에 경배한다. 지물들도 갖가지이며 행색도 가지가지이다. 고려불화에서 이렇게 극채색의 구륵진채로 그려지는 경우는 석가불과 그려질 때로 보여진다. 오백나한도의 단편들이 수묵담채로 그려져 전해져 오는 것으로 보아 선종화의 융성에도 불구하고 예배용의 도상은 구륵진채를 고수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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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장 시왕도]

    상단에 장상명주를 들고 좌정한 지장보살이, 중단에는 무독귀왕과 도명, 마깥으로 사천왕, 보살형의 범천과 제석천이 그려졌다. 그 아래쪽의 하단에 면류관이나 익선관을 쓰고 홀을 든 시왕과 중국 관리의 옷을 입고 까만 감투를 쓴 판관과 녹사, 두루마리를 받쳐 든 사자를 그려 삼단도구가 되었다. 지장시왕사상은 당말의 위경인 불설예수시왕생칠경등에 근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위경은 인도와 서역에서 집결된 불설경전을 모방하여 중국인에 의해 만들어진 거짓 경전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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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왕도]

   첫번째 시왕인 진광대왕이 죽은 혼령을 판정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시왕도는 남송을 중심으로 성행했으므로 그 영향이 짙게 배어있다. 진광대왕과 판관 및 녹사는 중국옷을 입었다. 거대한 뱀과 맹조에 고통받는 여자와 남자 역시 중국인의 모습이다. 그래서 중국그림이 아닌가 하는 의문도 제기되었다. 그러나 시왕의 의자에 중국적인 산수화 가리개가 없는 점, 남송 지장시왕도의 특징인 빨강과 하양의 책상덮개가 없는 점이 지적된다. 고려불화만의 특징도 발견된다. 의자 등받이의 주름은 불보살의 군의 주름과 같고 물의 흐름은 금니로 그렸으며 뱀에 휘감긴 인물에는 하얀 안료가 고려불화의 배체 형식으로 칠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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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장보살]

    대좌 위에 지장보살이 반가형으로 앉아 있고 손에는 장상명주를 들었다. 좌상일 때는 석장을 짚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건을 쓴 모습은 중국적인 전통과 연관이 있음을 알려준다. 지장은 관음과 함께 아미타불의 협시로서 아미타 정토에 오아생자를 내영한다. 지장은 또 지옥중생을 구제하여 왕생케하는 보살로 알려져있다. 석존의 부촉을 받고 도리천에서 매일 아침 선정에 들어 석존 입멸 후에 미륵불이 하생할 때까지 미혹에 빠진 육도중생을 구출한다. 지장보살본원경의 주석에 이르되 지장보살은 중생을 험한 길에서 이끌어내주며 악도를 면제해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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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장보살]

   상단에는 장상명주를 들고 미타정인을 한 지장좌상을, 하단에는 석장을 짚은 도명스님과 관복차림에 경상을 받친 무독귀왕을 그렸다. 가운데는 사자를 닮은 선청이 앉았다. 환혼기에는 도명존자의 저승체험이 실려있다. 양주 개원사의 도명스님이 775년 2월8일 저승사자에 끌려갔다가 행정착오로 밝혀졌다. 이승으로 되돌아오면서 뒤돌아봤더니 화만과 영락을 두르고 두건을 쓴 지장보살이 선청을 데리고 앉아 있었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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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장보살]

    한 손에 장상명주, 다른 손에 석장을 짚은 지장보살은 머리에 두건 혹은 피건을 쓰고 있다. 지장보살본원경과 지장십륜경 등에 따라 그려질 때는 머리를 깎은 스님형으로 그려졌으나 환혼기의 이야기가 세상에 퍼지면서 두건을 쓴 모습으로 그려졌다. 또한 명부 시왕과 연관을 지을 때에 두건을 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상명주와 함께 두건은 다분히 중국적인 것이다. 당나라 구화산에서 수행했던 신라의 김교각 스님은 지장보살 혹은 지장왕으로 숭배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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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장보살]

    머리를 깍은 스님형의 지장보살은 장상명주를 높이 치켜들고 다른 손으로는 긴 석장을 짚고 서 있다. 발마다 하나씩 답할연대를 밟고 섰다. 이 지장보살도에는 중국 송대 불화의 영향이 보인다. 작은 머리와 날씬한 몸매, 우아한 중명도의 색채조화가 특징적이다. 그러나 이렇게 중국의 영향이 직접적으로 들어난 고려불화는 매우 드물다. 오히려 돈황이나 투르판 등 실크로드의 벽호나 백화 등에서 더욱 짙은 친연관계가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