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산사서 부처님 진신사리·사리장엄 발견 外

2015. 6. 22. 01:20경전 이야기

 

 

 

 

 

      

낙산사서 부처님 진신사리·사리장엄 발견
2006년 05월 19일 (금) 13:43:29 불교닷컴 webmaster@bulkyo21.com

   지난해 4월 산불로 큰 피해를 입은 강원도 양양 낙산사에서 석가모니의 진신사리가 사리장엄과 함께 발견됐다.





   낙산사 주지 정념 스님은 18일 오후 낙산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지난달 28일 낙산사 경내 공중사리탑(강원도 유형문화재 제75호)을 보수하던 중 탑 윗부분의 사리공에서 부처님 진신사리 1과와 사리를 감싸고 있던 관련 유물 18점을 발견했다"며 사리와 유물을 공개했다.

   진신사리는 사리공 안에 있던 원형의 청동합과 그 속의 은제합(銀製盒),금제합(金製盒)을 차례로 열자 자주빛 유리로 만든 구슬 모양의 사리호(舍利壺) 안에서 영롱한 유백색의 서광을 비추며 모습을 드러냈다. 사리를 본 단국대박물관장 정영호 교수는 "사리의 매끈한 형태와 색채,영롱함 등을 종합해볼 때 신라시대부터 봉안했던 불사리임이 틀림없다"고 밝혔다. 정 교수는 "이번에 발견된 진신사리는 지름 0.7~0.8cm로 이처럼 크고 유백색이 뚜렷한 사리는 매우 드물다"고 설명했다.

   청동합과 은제합,금제합은 각각 여러가지 색깔과 문양의 비단 보자기 8장으로 싸여 있었으며 특히 금합을 싼 보자기는 금실로 문양과 발원문을 새겨 넣어서 천과 복식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될 전망이다.



낙산사(양양)=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

불광출판사141008653-->
불국사 진신사리에 대하여 알고 싶습니다

 

   신라 선덕여왕 때의 자장(慈藏, 속명 金善宗)율사가 당나라에서 부처님의 사리(舍利), 정골(頂骨), 치아(齒牙). 가사(袈裟) 등을 우리 나라에 가지고 와서 5대 적멸보궁(寂滅寶宮)인 설악산 봉정암을 비롯, 오대산 중대사, 취서산 통도사, 사자산 법흥사, 태백산 정암사 등 5곳의 명당에 모셨습니다 라고 알고 있는데 불국사에 석가탑에도 진신사리를 모셨다고 하고 또 유명 사찰에 보면 그런데가 많이 있는데 예를 들어 불국사가 창건된지 약 1300년 불기로 보면 2600여년 즉 말하자면 많은 세월이 흐른 이후에 전파가 되었다는 말인지 또 불국사는 진신사리를 모셨다고 하는데 왜 적멸보궁이라 하지안는지 궁금 합니다

이준규 | 2013.08.22 09:55 수정됨 |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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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변 고마워요

       자장율사가 중국에 가서 부처님의 가사와 사리를 갖고와 적멸보궁을 지었다는 기록은 삼국유사에 기록된 내용입니다. 그러니 상당히 후대에 기록된 것이며 삼국유사의 내용이 구전으로 전해져 온 설화들을 주로 기록했기 때문에 의심스러운 내용 또한 많이 있습니다. 사실 자장율사의 정확한 생몰연대나 들고온 사리의 갯수는 알 수 없습니다. 유일한 기록은 삼국유사의 내용인데 그것이 완전히 신빙성이 있다고 볼수는 없습니다.

       자장율사는 590-658년에 살았고 불국사는 경덕왕때 김대성이 중건했다고 하는데 그시기가 751-774년 입니다.

    하지만 불국사는 그보다 훨씬 이전이 법흥왕때부터 있었고 불국사가 완공된 것은 김대성이 사망하고 나서 30년이나 더 걸렸기 때문에 이미 불국사는 왕실의 사찰로서 그 규모가 점점 더 커진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  

       여기서 석가탑에서 사리가 나왔다는 것인데, 부처님의 진신사리인가 아닌가 의심이 갈 수 있는데,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맞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탑 이름이 석가탑이므로 그 안에 모시는 사리는 다른 사람의 사리를 모실수가 없기때문입니다. 다보탑 안에도 사리함이 있었다고 알려져 있었으나 일제강점기 때 수리를 하면서 그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  

  •    그렇다면 불국사에도 진신사리가 있는데 왜 적멸보궁이라고 하지 않느냐라고 질문하셨는데, 앞서 말씀드렸다 시피 적멸보궁은 자장율사가 창건한 사찰들입니다. 거기에는 부처님 진신사리가 봉안되어 있어 따로 불상을 세우지 않습니다. 하지만 불국사는 자장율사가 세운 절이 아니며 그 이전부터 있었던 절입니다. 그러므로 적멸보궁이라고 이름을 명칭하지 않는 것입니다. 일부 유명사찰에서 부처님 진신사리가 있다고 하는 곳이 있는데 그부분은 상당히 의심스러운 면이 많습니다.

  •  

    2013.08.22 09:49 | 신고 답변 감사 합니다 이준규

 

 

   - 다음 TIP 자료에서 ......

 

 

신라 최초 부처님진신사리 모신 절

신라시대 최초로 부처님진신사리를 모신 절이 어디 입니까 ?

청암 | 2015.05.21 10:21 |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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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화사가 우리나라 최초의 진신사리 봉안 사찰이라고 합니다.

    2015.05.21 10:25 |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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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상남도 양산의 영축산에 있는

    통도사가 신라시대에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금강계단을 설립한 사찰입니다

    2015.05.21 10:27 |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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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나라에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절은 다섯군데가 있습니다. 이들 사찰은 신라시대 자장율사가 중국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받아와서 건립한 것인데 적멸보궁이라고 합니다. 오대적멸보궁은 ① 경상남도 양산 통도사(通度寺) ② 강원도 평창의 오대산 중대(中臺) 상원사(上院寺)의 적멸보궁, ③ 강원도 인제의 설악산 봉정암(鳳頂庵) ④ 강원도 영월 사자산 법흥사(法興寺) ⑤ 강원도 정선의 태백산 정암사(淨巖寺)의 적멸보궁입니다.

    전해져 오는 설화에 의하면 643년(선덕여왕 12)에 자장(慈藏)율사가 사리를 봉안할 곳을 찾던 중

    어디서인지 찬란한 오색빛과 함께 날아온 봉황새가 스님을 인도하는 것이었다.

  •  

       한참을 따라가다가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쳐진 곳에 이르렀고,

    봉황은 한 바위 꼭대기에서 사라져 버렸습니다다.

    그 모습이 봉황처럼, 부처님처럼 생긴 바위였습니다.

    "바로 이곳이구나."

    부처님의 사리를 모실 인연처(因緣處)임을 깨달은 스님은 탑을 세워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하고 조그마한 암자를 건립하는데, 이 때가 선덕여왕 12년(643)의 일이라고 전합니다.

    비슷한 시기에 통도사가 지어졌는데 아무래도 규모가 큰 관계로 646년 건립됩니다.

    2015.05.21 10:47 | 신고

 

 - 다음 TIP 자료에서 ......

 

 

 

중국 법문사에 모셔져 있는 부처님 진신사리에 관해서......

 

   우연히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중국 서안 법문사에 있는 부처님 진신사리에 관련된 내용을 보았습니다..

내용을 보니 유네스코의 9대 기적 중에 하나이며, 세계의 많은 부처님 진신사리 중 유일하게 문헌상으로 입증된

사리라고 합니다..

이 사리가 올해 우리나라에 온다고 하던데...

법문사 진신사리가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알고 싶습니다..

아시는 분들은 답변을 부탁드립니다...

 

성불하십시요.

 

오한량 | 2005.09.14 09:39 수정됨 | 신고 Daum카페 나무아미타불 에서 등록된 질문 | 답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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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안에서 서쪽으로 115km 떨어진 고찰로, 서기 300년인 후한시대에 창건되었다. 17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이 사찰이 유명하게 된 것은 법문사탑(法門寺塔)으로 인해서이다.

  • 법문사탑은 명(明)나라 때인 1579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8각 13층의 높이 47m가 되는 벽돌탑이다.

    석가모니 진신사리가 안치되어 있는 이름난 사원으로 원내에 중국 최대의 불탑지하궁이 있다.

    * 다음을 클릭 하세요. 관련기사들이 있습니다.

     

    http://www.buddhanews.com/cycle/c70.html

     

    http://www.munhwa.com/culture/200008/23/2000082317000101.html

  •  

    2005.09.14 09:39 | 신고

 

 

 - 다음 TIP 자료에서 ......

 

 

 

 

 

 

부처님 진신사리와 매화차...| 좋은 글귀방

불이(不二) | 조회 159 |추천 0 | 2015.04.01. 09:02

 

‘네놈이 차 맛을 알아?’…‘어쭈 요놈 봐라!’
아홉 번 덖은 작설차, 다시 또 불에 데워 마시는 이유
여수 남해사 혜신스님과 봄 향 가득한 매화차를 마시며...

 

 

 

 

 

 차 한 잔의 여유는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지요...

 

 

 

 

영취산 진달래축제가 열리는 진달래 군락지는 진달래꽃이 마구 피는 중이었지요.

 

 

 

 

매화, 진달래, 개나리, 목련, 벚꽃, 산수유, 동백 등….

 

 

   봄꽃 천지입니다. 덕분에 봄 향이 그윽합니다. 이런 때 봄바람에 실려 온 봄 향기를 흠뻑 맡아 주는 게 자연에 대한 예의지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라던 진달래꽃이 그리웠습니다.

 

 

지난 주말, 진달래꽃 보러 여수 영취산 자락으로 행했습니다. 이번 주, 진달래 축제가 예정되었기에 미리 가보는 것도 좋겠다 싶었지요. 영취산 진달래를 향한 등산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여수의 유혹, 시 한 구절로 대신하렵니다.

 

 

 

        여수 가는 길
                                           신 병 은

 

 

    자네,
    문득 세상살이 힘들 때가 있지
    세상에 덜렁 혼자뿐이라고
    아니다 아니다 이게 아니라고
    막다른 골목에서 고개를 흔들 때
    마음의 짐일랑 그대로 팽개치고
    빈 몸 그대로 여수로 오시게
    먼 길 달려온 자네에게
    늘 넉넉하게 일렁이는 바다가
    바람을 닮은 섬들이
    흔들리는 것은 결코 중심은 아니라고
    흔들리는 것은 잠시일 뿐이라고
    넌지시 귀뜸해 줄 걸세
    때로는 사는 것이 얼마나 가벼운 거냐며
    생미역 한 줄기 풀어
    엉기고 맺힌 생을 해장시켜 줄 걸세
    자네, 외로움이 얼마나 심했냐고
    겨울 이기고 돌아온 동백꽃 웃음이
    옷깃을 풀고 와락 안겨들 걸세

 

 

 

 

 

 올해는 진달래꽃 보다 토굴같은 절집과 인연이 닿았나 봅니다.

 

 

 

 

 지난해 올랐던 영취산 진달래 축제장

 

 

 

 

남해사의 소박한 법당입니다. 요기에 부처님 진신사리가 있었지요..

 

 

 

 

 

진달래꽃 보러 가던 중, 눌러 앉은 남해사와 차 한 잔

 

 

   진달래꽃 가득한 영취산. 올라갈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지난 해 여수 <영취산 진달래 축제> 끝물에 올랐던 지라, ‘에라 모르겠다’하고 눌러 앉은게 영취산 자내리 ‘남해사’였습니다. 죽공예 하는 지인이 몇 번이나 스님과 차 한잔을 권했는데, 이제야 그와 찾게 된 겁니다. 올해 ‘인연’은 진달래꽃보다 남해사에 닿은 게지요.

 

 

“스님, 절에 계십니까?”
“중이, 어디 가겠습니까!”

 

“스님, 차 한 잔 주세요.”
“언제든지….”

 

  남해사, 보통 절집이 아니었습니다. 그 흔한 마당도, 탑도 없었습니다. 초라한 흙집만이 서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저게 무슨 절이야~’란 말은 온당치 않았습니다. 흙집을 차지한 부처님 도량은 마음 가득 자리한 고정관념을 내려놓게 했습니다. 마음을 여니, 모든 게 새로웠지요.

 

 

“이게, 부처님 진신 사리야.”

 

   부처님 사리를 모신 절집은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 번도 직접 눈으로 본 적은 없지요. 다들 부처님 사리는 “머리카락 보인다, 꼭꼭 숨어라!”는 동요처럼 숨바꼭질 하듯, 꼭꼭 숨겨 두었기에, 중생이 접하기 어려웠지요. 진달래꽃을 대신한 발걸음이 횡재수가 될 줄이야!

 

 

 

 

진달래꽃의 향기가...

 

 

 

 여기에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담겨 있습니다.

 

 

 

 진달래곷의 유혹을 물리치고 갔던 남해사에서 부처님 진신사리를... 

 

 

 

 

요게 부처님 진신사리입니다. 두 종류지요.

 

 

 

 

‘네놈이 차 맛을 알아?’…‘어쭈 요놈 봐라!’

 

“무슨 차를 드릴까. 가만, 먼저 발효차부터 마실까.”

 

 

   ‘~까’, 다음에는 보통 물음표(?)가 오지요. 그런데 남해사 스님 어법은 특이했습니다. 인산당 혜신스님 말씀은 ‘~까’ 다음이 마침표(.) 비스므리 했습니다. 어법의 독특함에 앉았던 모양새를 다잡았습니다.

 

 

“여수 사람들은 작설보다는 발효차를 많이 마시드라고. 발효로 시작할까.”

 

 

   서로 통하면 됐지, 차 종류가 중요한 게 아니지요. 된장이 제 맛을 내기 위해 발효되 듯, 첫 만남을 ‘발효’로 준비하신 스님의 운치가 멋있거니 했습니다. 왜냐하면 첫 만남을, 발효차를 매개로 서로의 마음을 데우자는 의미였으니까. 슬며시, 혹은 잠시, 무릎 꿇어 ‘불(佛) · 법(法) · 승(僧)’의 예를 차렸습니다.

 

 

“차 맛이 기 막힙니다. 스님께서 차를 정말 잘 우리시네요.”
“물이 좋아서지요. 차는 요기 앉으신 장형익 씨가 우려내는 설차가 최고지요.”

“어디 물입니까?”
“지리산의 한 암자에서 떠왔습니다.”


“어쩐지, 차에서 지리산 향이 나더라니….”
“….”  

    '스님께서 ‘미소’ 지으셨습니다. 여기서 신구 선생님을 떠올렸지요. 그가 사바세계 대중에게 “니들이 게 맛을 알아?”라고 외치던 광고 장면과 함께. 이처럼 스님의 그윽한 미소에는 무언의 메시지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네놈이 차 맛을 알아?’, ‘네놈이 지리산 향을 알아?’를 넘어 ‘어쭈 요놈 봐라!’라는 놀라움이랄까. 

 

 

 

 

지난해 영취산 진달래 축제 끝물에 올라 찍었던 사진입니다. 

 

 

 

 

매화는 사군자지요, 왜?

 

 

 

 

매화차의 향이... 

 

 

 

 

 

아홉 번 덖은 작설차, 다시 또 불에 데워 마시는 이유

 

 

“스님, 이쯤에서 작설로 넘어가심이….”

 

  스님께서 라이터를 켰습니다. 그리고 작은 초에 불 붙였습니다. 불 위에서 작설이 덖어졌습니다. 향이 피어올랐습니다. 작년 기운으로 만들어진 작설 향의 여운이 복잡했습니다. 지난 해 가슴 아팠던 우리네 기운이 담긴 것 같습니다.

 

 

“차는 한 번 열면 눅눅해져. 제대로 마시려면 불에 살짝 덖어주는 게 좋아.”

 

 

  이게 어디 ‘차’ 뿐이던가요. 노동시장에서 단물 빼먹고 나면 버려지는 인생사. 그나마 다시 써 주는 것이 행운이지요. 이걸 아는 까닭에 아홉 번 덖어낸 작설까지 다시 또 불에 데워 맛을 음미하는 게지요. 다시 덖는 건, 소위 말하는 리모델링 혹은 업그레이드 과정이지요. 그렇게 다시 태어난 작설은 엄청 겸손한 맛입니다.

 

“스님, 다시 덖은 작설, 다른 잔에 주시면….”
“….”

 

   작설이 우러날 때쯤, 찻잔을 바꿔주시더군요. 그런데 제 잔만 바꿔주시는 거 있죠. 이유를 알 거 같았습니다. 두 분은 이미 예전부터 마시던 차라 맛의 진면목을 알기 때문인 듯했습니다. 그러니까, ‘너는 새 잔으로 마시면서 작설 고유의 맛을 탐닉해라’는 암묵적 강요였달까. 작설 향이 고스란히 입속에 안겼습니다.

 

 

 

 

우주의 기운을 담은 매화꽃...

 

 

 

 

매화 꽃봉우리를 따 말리면 매화차가 되지요... 

 

 

 

봄향기에 취해...

 

 

 

 

우리네 삶이 아름다운 향을 내기 위해서는….

 

“이번에는 봄 향을 맛볼까.”

 

   감지덕지. 봄 향을 간직한 차는 어떤 걸까? 스님께서 흐뭇한 미소를 머금고, 허리를 세워 병 하나 집으셨습니다. 그리곤 뚜껑을 열어 “봄 향 맡아 봐!”라며 코에 대 주셨습니다. 아~, 향이….

 

 

 

매화차를 담은 용기에 향이 가득하고...

 

 

 

 

요런 걸 따서 말려야 매화차가 되지요...

 

 

 

 

스님께서 작은 매화꽃 봉오리를 따 보여주시더군요.

 

 

 

“무슨 찬지 알겠지. 특별히 내는 매화차야.”

 

   매화차와의 첫 만남은 오로지 ‘감사’였습니다. 매화차는 스님께서 직접 만드셨답니다. “150도가 넘는 쩔쩔 끓는 방에서, 창호지 위에 놓고, 이틀 간 말려 차로 냈다”더군요. 그래선지, 목 넘김이 부드러웠습니다. 매화 향은 작설 향과 어우러진 봄의 교향곡이었습니다. 그만큼 신선하고 감미로웠달까.

 

 

“운명은 자신이 만드는 것입니다. 타인을 즐겁게 하고, 기쁘게 하며, 행복하게 하신다면 본인의 운명도 기쁘고 즐거우며, 행복한 운명이 되는 것입니다. 즐거운 이들과 함께 있으면 즐거운 물이 들고, 기쁜이들과 함께 있으면 기쁜 물이 들게 되며, 행복한 이들과 같이 있으면 행복이란 물이 곱게 물들어서 아름다운 운명이 되는 것입니다.”

 

 

   매화차. 아직도 입안에 달달한 봄 향기로 남아 있습니다. 매화차, 잊혀 지지 않는 맛으로 남은 이유가 있을 겁니다. 그것은 혹독한 겨울이란 시련을 이겨 낸 끝에, 꽃망울을 피워 낸, 인내의 향을 담고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네의 삶이 아름다운 향을 내기 위해서는….

 

 

 

여수 섬달천에서 본 매화, 다도해...

 

 

 

 

차는 여유지요...

 

 

 

- 다음 카페 < 여항산 성불사> 불이(不二) 님의 글 중에서 전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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