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6. 22. 04:45ㆍ우리 이웃의 역사
제 환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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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공(桓公, ? ~ 기원전 643년, 재위: 기원전 685년 ~ 기원전 643년)은 춘추시대의 제나라의 제16대 후작이다. 성은 강(姜), 휘는 소백(小白), 시호는 환공(桓公). 춘추 시대의 패자이다. 포숙아의 활약에 의해 공자 규와의 공위계승 분쟁에서 승리해 제나라의 군주가 되었다. 관중을 재상으로 삼고 제나라를 강대한 나라로 만들었으며, 실권을 잃어버린 중국 동주 왕실을 대신해 회맹을 거행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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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위전 상황[편집]
아버지는 희공(僖公), 형은 양공(襄公)이다. 양공은 비정상인 성격으로, 친누이동생 문강과 내연의 관계에 있어, 문강이 노나라의 환공(桓公)에게 시집갔지만, 장공을 낳은 후에도 관계가 계속 되었었다. 화난 노의 환공이 문강을 꾸짖으면, 문강은 양공에 밀고해, 양공은 일족 공자 팽생(公子彭生)이라고 하는 남자에게 명령하고 환공을 죽이게 했다. 노나라에 소문이 돌자, 팽생을 죽여 변명을 하였다. 그 이외에도, 양공은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차례차례로 죽였기 때문에 제나라는 혼란했다.
소백은 거(莒)에, 형 공자 규는 노나라에 망명했다. 양공은 그 후, 사촌형제인 공손 무지에게 암살되었다. 양공이 죽은 후에, 공손 무지가 제공에 즉위 했다고 칭하고 국정을 관리하지만, 공손 무지도 또 곧바로 암살되었다. 공손 무지 사후, 소백과 같이 노에 망명한, 노의 후원자를 얻고 있던 형 공자 규와의 사이에 후계자 싸움이 생겼다.
이 때, 공자 규의 심복인 관중이 소백을 매복해 암살하려고 하고 있었다. 관중은 활을 쏘아 맞혔다. 화살은 소백 배에 맞아, 소백은 쓰러졌다. 이에 관중은 기뻐하고, 공자 규에게 소백을 죽였다고 보고했다. 소백이 죽어 경쟁 상대가 사라진 공자 규는 노의 군사를 뒤로 천천히 제나라에 들어오려고 했다. 그러나, 소백이 이미 먼저 제나라에 들어와 제나라 공이 되어 있었다. 공자 규는 기다리고 있던 소백에 공격을 받고 노나라로 도망쳤다. 실은 관중의 화살은 배에 명중된 것처럼 보였지만, 실은 허리띠의 쇠고리에 꽂쳤었던 것이었다.
제 환공의 업적[편집]
제나라 공의 자리에 오른 소백 환공은 관중이 자신을 죽이려고 한 사실에 화를 내어 관중도 죽이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환공의 심복이며, 관포지교라는 말의 뿌리가 될 만큼 관중의 좋은 친구이기도 한 포숙아의 설득으로 환공은 관중을 살려주었으며 재상으로 임명했다.
환공의 생각은 현명했다. 재상이 된 관중은 개혁을 추진해, 국력, 군사력, 문화 향상에 성공했다. 벌써 주왕실은 쇠퇴하고 있어, 제후 사이의 대립을 억제하는 일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관중의 개혁을 받아 들인 제의 환공은 주변 국가에 그 명성이 전해져, 주변 제후는 주나라 대신해 제후 사이의 문제를 환공에게 묻게 되었다. 장강 유역의 현재의 호북성을 중심으로 한 지대를 지반으로 해 남방에서 세력을 늘려, 주왕실이나 제후를 위협하기 시작하고 있던 초나라를 환공은 제후를 인솔하고 초나라를 공격하였다. 기원전 651년 환공은 회맹을 거행해 패자가 되었다.
가계[편집]
관련 항목[편집]
전 임 공손 무지 |
제16대 제나라 후작 기원전 685년 ~ 기원전 643년 |
후 임 제후 무궤 |
[숨기기]
중국 춘추 시대의 나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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