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그라드 전투 미드웨이 해전보다 빛나는 요심전역의 배후에는 한국인… 김일성장군 연구

2015. 7. 19. 17:44병법 이야기

 

 

 

 

 

      

스탈린그라드 전투 미드웨이 해전보다 빛나는 요심전역의 배후에는 한국인… 김일성장군 연구

2015.07.17.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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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그라드 전투, 미드웨이 해전보다 빛나는 요심전역 승리의 배후에는

한국인 독립운동가 이희산(허형식)이 있었다

 

 

 

  모택동의 홍군은 일본군과 정면대결을 벌여, 이겨본 적이 없다. 홍군은 항일전쟁 내내 도망만 다녔다. 중국 인민들의 간절한 소망은 ‘홍군이 일본군과 대결하여 이겼다’는 소식을 한 번이라도 좋으니 듣는 것이었다. 그래서 임표 부대가 일본군 수송부대를 공격하여 트럭 몇 대를 부수자 ‘그가 일본군과 정면대결을 벌여, 이겼다’는 소문이 났다. 이 소문을 들은 인민들은 감격할 수밖에 없었다. 

 

   임표가 일본군한테 빼앗은 망토를 걸치고 다니며 으스댔다. 그러다가 그를 일본 장교를 오인한 홍군 병사의 총에 머리를 맞았다. 임표가 목숨은 건졌으나 그 후유증이 심각했다. 현재 홍군이 유지되는 것은 임표의 명성 덕택이었다. 만약에 그가 불구자가 되었다는 소문이 나면 그들은 끝장이 날 것이었다. 그래서 모택동이 임표를 모스크바로 보내놓고는 ‘그가 선진국 소련으로 가서 군사학을 배우고 있다’고 인민들에게 거짓말을 했다. 소련에서의 무료한 생활을 못 견딘 임표가 귀국했다. 홍군 간부들에게 그는 골칫덩어리 존재였다. 그들이 그를, 소련군이 점령하고 있는 만주로 보냈다.

 

    공산당과 국민당의 싸움, 내전이 일어났다. 이에 미국이 국민당에게 군수물자를 지원해주었다. 소련은 공산당에게 지원해주고 싶은데 나라 형편상 해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국민당 군대가 공산당의 본거지인 옌안을 점령하게 되었다. 장개석은 국공내전은 국민당의 승리로 끝났다고 판단했다. 공산당에게 동북야전군이 남아 있으나 그는, 만주국군으로 편성한 그 부대를 군대로 보지 않았다. 중일전쟁 때 국민당과 공산당의 군대가 한심했지만 만주국군은 더욱 한심했다. 요심에서 국민당 군대와 동북야전군이 붙었다. 기가 막히게도 요심전역에서 국민당 군대가 동북야전군한테 완패당했다. 이에 인민들이 공산당에게로 붙었다. 이로 인하여 국민당 군대가 공산당 군대한테 연전연패했다.

 

   스탈린그라드전투를 계기로 독일이 패망했다고 군사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전투가 아니더라도 독일이 영국, 미국으로부터 지원받는 소련한테 패망할 수밖에 없었다. 미드웨이해전을 계기로 일본이 패망했다고 군사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 해전이 아니더라도 일본은 물량전인 태평양전쟁에서 패망할 수밖에 없었다. 국공내전의 경우는 국민당의 군대가 공산당의 본거지인 옌안을 점령하여 국민당의 승리가 확정되었다. 이런 판국에 동북야전군이 요심전역에서 승리하여 전세를 역전시켰다. 요심전역은 스탈린그라드전투, 미드웨이해전보다 백배 위대한 승리였다. 그런데 동북야전군은 그 사령관 임표는 정신불구자이고 그 지휘부는 수준 낮은 만주국군 출신이었다. 게다가 편성한지 얼마 되지 않은 부대였다. 동북야전군이 요심전역에서 승리한 이유를 국내외 군사전문가들이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원래 만주국군 내부에 반일파가 있었다. 이들이 행정력이 느슨한 북만주에서는 동북항일연군 노골적으로 도와주었다. 반일파 만주국군 장교들이 만주국의 패망 후에 그것을 인정받아, 공산당군대의 장교가 되었다. 이들이 동북야전군을 편성했다. 이에 따라 북만주의 동북항일연군출신이 중용되었다. 이들은 학교 문턱에도 못가 본 무식한 사람들이라 일선 대대장이 되었다. 요심전역의 승리는 만주국군출신 야전 지휘부와 동북항일연군출신 일선 대대장이 거둔 것이었다. 전자가 원래 수준 낮은 장교들이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 승리에 후자가 더욱 기여했다.

 

   요심전역을 승리로 이끈 임표는 정신병자였다. 만약에 그가 정상인이었으면 당연히 국가원수가 되었을 것이다. 요심전역을 승리로 이끈 지휘부는 일본의 괴뢰국가인 만주국의 장교 출신들이라 장성으로 진급하지 못했다. 동북항일연군 출신 일선 대대장들은 학교 문턱에도 못가본 무식한 사람들이라 진급하지 못했다.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후에 ‘요심전역 논공행상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일어났다. 이에 일선 대대장으로 참전한 동북항일연군출신 가운데 열 명이 소장 계급을 받았다. 지휘부의 장교들이었던 사람들은 일본의 괴뢰국가 만주국의 장교로 복무했다는 전력 때문에 이때에도 장성 계급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이들을 표창 안 하면 논공행상이 ‘앙꼬 빠진 찐빵’이 되고 말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 대신에 동북항일연군 간부를 역임한 周保中、李延祿、馮仲雲、於天放에게無銜將軍 계급을 주었다(동북야전군은 순전히 동북항일연군출신으로 구성되었다고 억지를 부린 것이었다). 양정우, 조상지 그 계급을 못 받았다는 점에 미루어 볼 때 그 표창은 정치적인 것이었다(양정우, 조상지는 이미 죽었으므로 동북야전군 속의 동북항일연군과 관련이 없다고 또 억지를 부렸다.).

 

   동북항일연군을 실제적으로 총지휘한 사람은 허형식이었다. 이점을 중국 인민들도 모두 인정하고 있었음은 아이가 울면 ‘양정우나 조상지가 온다!’고 말하지 않고 ‘이희산(허형식)이 온다!’고 말했다는 사실에서 확인할 수가 있다. 아이가 울다가 ‘이희산’ 말만 들으면 울음을 그쳤다고 한다. 그 시대에 중국에서 세 살 먹은 아이도 모택동이나 임표는 몰라도 이희산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요심전역 논공행상'을 국적을 안 따지고 정치적 의도 없이 했으면 허형식이 (그의 말단 부하였던 사람도 ‘소장’ 계급을 받았다는 점에 미루어 볼 때) ‘원수’ 계급을 받았을 것이다.

 

요심전역 기념관


동북항일연군 기념관에 있는 허형식의 사진과 권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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