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와 몽골어의 계통적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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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와 몽골어의 계통적 위치 (최기호) | 몽골어 어원

 

나비우스 2015.12.22 16:14

 

 

    

한국어와 몽골어의 계통적 위치


                                                                 최기호(상명대학교 국어교육과)




1. 계통 연구의 과제


    한국어가 어디에서 왔으며, 그 계통적 위치는 어떠한가? 19세기 말엽에 서양의 비교언어 학자들에 의하여 처음 제기될 때는 ‘한국어는 우랄 알타이어족’이라 하였다. 그리고 20세기 들어서 람스테트 등은 ‘알타이어족’에 속한다고 하였다. 몽골어도 똑같이 설명하였다.

그러나 우랄알타이어족설이나 알타이어족설은 서양의 역사언어학자들이 내세운 가설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오늘날 많은 언어학자들에 의하여 비판을 받았고, 부정되는 가설이다. 예컨대, 벤징이나 리게티 같은 학자들은 ‘반알타이어족설’을 내세우며 몽골어튀르크어는 차용관계에 있는 것이지 계통적으로 같은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서양의 학자들이 알타이어족설반알타이어족설이 주장되는 사이에 우리나라는 이들을 깊이 있게 연구할 겨를도 없이 알타이어족설을 그대로 수용하였다. 그리고, 마치 한국어가 알타이어족에 속하는 것으로 단정하여, 중․고등학교에서 교육하였다.


   하나의 학설이 성립하기 위하여 우선 가설(hypothesis)을 세우고, 이를 여러 가지로 증명(proof)한 뒤에 비로소 학설로서 확정(establishment)지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확정되지도 않은 가설인 알타이어족설을 정설인 것처럼 가르치는 일은 명확함을 요구하는 학교 교육의 특성에 비추어 봐도 잘못된 일이다.

따라서 우리는 한국어와 몽골어의 계통적 관계를 연구하여 우리의 정체성을 밝힐 필요성을 갖게 된다.



2. 연구사

   한국어의 계통 연구는 19세기 후반 로니(Rosny,1864), 달레(Dallet, 1874), 로스(Ross,1878) 등이 최초로 한국어타르타르어에 유형적인 유사성을 제시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구체적인 비교언어학적 언어 사실을 비교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시라도리(白鳥庫吉)가 595개에 이르는 한국어 낱말을 알타이제어와 비교한 일이 있은 뒤 뽈리바노프(Polivanov,1927)는 최초로 음운과 형태적 측면으로 한국어와 알타이제어의 친근성을 논증하면서 알타이어족설은 태동하였다고 볼 수 있다.

   람스테트(G.J.Ramstedt)는 우랄어족과 알타이어족을 분리시켰고 알타이어족설의 창시자로 등장하였다. 그는 1907년에 ‘알타이어의 수사에 관하여‘라는 글을 발표하여 알타이어족설을 수립하는 기틀을 쌓아 갔다. 그는 헬싱키대학에서 “원시 튀르크-몽골어의 형태론”“몽골, 튀르크어의 음운사” 등을 강의하면서 1912년에는 “몽골어, 튀르크어의 동사어간 형성론”을 간행하였다. 그리고 람스테트는 “한국어에 대한 관견(1928)”을 발표하여 알타이 어족설에서 한국어의 위치를 논하였다.

그는 한국어와 알타이 제어의 친근성을 증명하려고 하면서 외견상의 유형적 유사성이나 비슷한 낱말을 나열하지 않고 진정한 비교언어학적 방법에 의해서 일정한 음운 대응을 관찰하고 또 문법 형태소를 분석하여 그 일치하는 것을 찾으려고 노력하였다.

   포페(N. Poppe)는 “알타이언어학서설(1965)”에서 한국어의 계통이 분명치 않다고 전제하고 한국어의 계통에 관해서 (1)과 같은 세 가지의 가능성을 제시하면서 한국어가 알타이제어와 친근관계가 있음을 논하였다.


(1) ① 한국어는 알타이 제어와 친근 관계가 있을 수 있다.

② 원시 한국어는 알타이 통일체가 존재하기 전에 분열했을는지 모른다(즉 분열 연대가 대단히 이르다)

③ 한국어에는 알타이어 기층 밖에는 없다. (즉 한국어는 기원적으로 비알타이어인데 이것이 기층 언어인 고대 알타이어를 흡수했던가 혹은 기층 언어인 알타이어 위에 얹혔을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기문 교수<국어사 개설>(1961)에서 한국어가 알타이어족에 속한다는 것을 다음 그림 (2)로 제시한 바 있다. 이것을 그대로 인용한 포폐(1965)의 그림을 또다시 이기문은 ‘한국어 형성사’(1967)에서 한국어의 계통적 위치를 밝히는 그림으로 제시하였다.

김방한은 1976년에 “한국어 계통의 문제점”을 통하여 한국어의 저층에 잠정적으로 ‘원시 한반도어’라고 부르는 어떤 미지의 언어가 있지 않을까 하는 가설을 제시한 바 있고 1984년에는 저서 <(韓國語 系統>을 발표하였다. 



   한편 알타이어족설에 대하여 이를 부정하는 반알타이어족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다.

벤징은 알타이어족설을 부인하는 이유로 알타이제어 사이에는 공통된 수사가 없음을 지적했고, 또한 알타이어족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이 친근성을 제시하기 위하여 든 보기가 의심스럽거나 어원 해석을 잘못했다는 점을 들고 있다.

반알타이어족설의 강경한 입장을 취하는 클로슨 알타이제어에는 수사와 같은 공통된 기초어휘가 없으며, 튀르크어와 몽골어의 공통된 낱말들은 대부분이 튀르크어에서 몽골어로 차용된 것으로 보고 있다.

김방한 교수한국어의 계통(1983)>이라는 책을 쓸 때에 한국어가 알타이제어와 친근관계에 있다는 입장에서 썼는데, 1989년에는 알타이어족설을 부정하고 있다.



3. 한국어와 몽골어의 동질성


3.1 역사, 지리학적 동질성


   동북아시아의 중심지인 만주는 우선 기원전부터 우리 민족의 땅이었다. 고조선을 비롯하여 부여, 고구려, 발해로 이어지면서 만주 대평원은 수천년 동안 우리 한민족이 다스리던 땅이었다. 그런데, 몽골족은 8, 9세기경에 역사에 나타나며, 마침내 13세기에는 칭기스한만주 하일라르 평원을 중심으로 등장하여 세계에서 제일 거대한 몽골제국을 세웠다. 그후 17세기에는 여진족누르하치청나라를 세우고, 19세기초까지 만주지역을 지배해 온 것이다. 이처럼 몽골족과 만주퉁구스족과 우리 한민족은 만주 하일라르 대평원과 대싱안링 산맥 지역을 활동 무대로 아주 오랜 옛날부터 살아왔다. 그래서 만주의 역사는 곧 이 세 민족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아무튼 한민족과 몽골족과, 만주족은 지리적으로 동북아시아의 핵심인 만주 대평원에 본거지를 두고 공통된 역사적인 활동을 한 것이다.


3.2 체질인류학적 동질성


   몽골사람만주사람한국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닮은 사람들이다. 체질인류학적으로 얼굴과 몸매와 골격이 아주 비슷한 것으로 나타난다.

   갓난아기의 엉덩이에 나타나는 푸른 반점을 ‘소아반’, ‘아반’ 혹은 몽골반점(Mongolian spot)이라고 하는데 이것이 95% 이상 나타나는 민족은 몽골족과 만주퉁구스족과 우리 한민족뿐이다. 튀르크 민족에도 몽골반점이 나타나는 경우가 있지만 20% 미만이고, 일본민족이나 아메리카 인디언의 경우에도 15% 정도가 나타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1994년 한국몽골학회흥안령산맥 소수민족 학술조사에서도 만주퉁구스족이나 다오르족, 어원키족, 오르친족의 어린이 궁둥이에서 몽골반점을 조사 확인한 바가 있다.

   1994년에는 일본의 쯔지 교수가 혈청을 연구했는데, 그 결과도 유전자지도에서 몽골, 부리야트족, 만주족우리 민족이 가장 가까운 것으로 나타났다.


3.3 민속학적 동질성


   체질인류학적으로 같을 뿐만 아니라 몽골인들의 표정이나 모습이나 행동 양식에서도 우리와 매우 흡사한 것을 볼 수 있다. 몽골인을 처음 만났을 때 시골의 가까운 친척을 만난 느낌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한국인을 보고 자주 ‘사둔’이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에서 사돈은 결혼으로 맺어진 관계이지만 몽골에서 사둔은 ‘일가친척’이라는 뜻이므로 한국인을 가까운 친척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속담에 “아침에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고 한다. 몽골어로 까치는 ‘차스가이’인데 “까치가 울면 정다운 손님이 온다”는 똑같은 속담이 몽골에도 있어서 친근감을 느끼게 한다.

   몽골인들은 음식을 먹을 때 ‘하늘(텡거리)’과 ‘땅(가잘)'과 ‘사람(훈)’에게 세 번 고시레를 하고 먹는데 우리와 유사한 민속적인 습속을 느끼게 한다. 길을 가다가 쌍갈래길이 나오면 손바닥에 침을 뱉고 손가락으로 쳐서 침이 튀는 방향으로 가는 것도 우리와 같다. 제기차기, 공기놀이, 실뜨기, 씨름하기 등의 민속놀이도 같다. 씨름이라는 말은 몽골어에서도 똑같기에 더욱 흥미롭다.

   몽골과 한국은 설화가 같은 것이 많다. 1995년도 바이칼호수가 있는 부리야트 몽골에서 ‘나무꾼과 선녀'의 설화를 채록하였다. 여기에서 ‘나무꾼’ 대신에 수렵 민족의 전통답게 ‘사냥꾼’으로 변이되어 있는데 그 모티브가 유사한 것이 재미있었다.

   또한 동몽골 할힝골부이르호수에서는 담딩바오(67세)라는 노인으로부터 ‘박타령’의 설화를 채록하였다. 한국설화에서는 농경사회의 전통으로 ‘제비’가 박씨를 갖다 주어서 부자가 되는 내용의 박타령인데, 내몽골이나 다른 몽골 지방에서는 유목사회답게 ‘황금매’로 대체되고 있다. 그러나 이곳 동몽골은 제비나 황금매가 아니고 그 중간의 성격으로 보이는 ‘금제비’라는 어휘로 나타나서 흥미있는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동몽골 할힝골은 역사적으로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 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지역이며, 지금도 몽골의 국영농장이 있는 지역으로 농경문화와 유목문화, 수렵문화가 접합되는 지역이라는 점에서 ‘금제비’ 설화는 더욱 큰 의미가 있는 것이다.


3.4 중국 역사서에 나타난 동질성


   중국의 옛 사서(史書)인 위서(魏書) 북사(北史), 신당서(新唐書) 등에서는 위진 남북조 시대, 우리의 부여(扶餘), 예맥계의 언어가 몽골의 조상인 실위(室韋)의 언어와 일치하다고 볼 (2)와 같은 기록이 있다.


(2)① 두막루국은 옛 북부여이었다. 본래는 예맥의 땅이었다

豆莫婁國….舊北扶餘… 或言本穢貊之地也 (魏書 豆莫婁傳)

② 실위국은 고막계와 더불어 같은 말을 썼다. 거란, 두막루국도 같았다

失韋國…語與庫莫奚… 契丹, 豆莫婁國同 (魏書 室韋傳)

③ 실위국은 거란의 무리다. 말은 고막계, 거란, 두막루국과 더불어 같았다

室爲國…蓋契丹之類…語與庫莫奚, 契丹, 豆莫婁國同 (北史 室韋傳)

④ 달말루는 스스로 북부여 후예라고 한다. 고구려가 그 나라를 멸하였다.

達末婁, 自言北扶餘之裔, 高句麗滅其國 (新唐書 유귀전)


   그러니까 우리 조상인 부여, 예맥계의 두막루, 고막계, 달말루의 몽골의 조상인 실위의 언어와 같았다는 역사적 증거가 밝혀진 것이다. 이것은 한국말과 몽골말이 계통적으로 같다는 근거로 될 수 있다.



4. 언어학적 동질성으로 본 한국말과 몽골말


   몽골어와 한국어의 친족관계를 밝히려면 우선 몽골어와 한국어 사이에 수사, 대명사, 신체어, 친족어 등 기초 어휘를 면밀하게 검토하여 유사성을 증거로 제시해야 한다. 또한 음운론적으로 음운대응이 이뤄지는지를 검토해야 한다.

그래서 필자는 우선 비교 가능한 신체어 목록을 작성하여 검증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가능성이 있는 것을 제시해 연구 논문(1993)으로 제시한 바가 있다. 예컨대, ①눈(眼): ② 코(鼻): ③ 귀(耳): ④ 입(口): ⑤ 혀(舌): ⑥ 궁둥이(臀): 등 많은 신체지칭어가 몽골어와 한국어가 일치하고 있다. 이들을 깊이 있게 연구하고 음운대응도 고찰하여 비교언어학적 방법에 맞는 연구를 계속한다면 좋은 결과가 나올 것으로 생각한다.

   그 외의 수사, 대명사, 친족어, 색채어 기초어휘 분야에서 얼마든지 비교 가능한 어휘가 많이 있고, 필자가 검토한 바 있는 <몽골비사>(蒙古秘史), <몽어노걸대> 몽학삼서에도 귀중한 비교 어휘 자료가 많이 있다.

그리고, 몽골어와 한국어의 명사의 준굴곡과 동사의 굴곡에서도 공통점이 많음을 밝힌 바(최기호;1985) 있다. 이렇게 볼 때 세밀한 연구를 더욱 계속하면 그 계통을 밝힐 수 있는 문법적 요소가 많이 나올 것으로 본다.


5. 맺음말


   우리 한민족과 몽골족, 만주족은 고고학적으로 같은 문양의 토기를 사용했으며, 신화나 전설이 같은 것이 많으며, 민속학적으로도 샤만이나 한국의 서낭당과 같은 ‘어워’ 따위가 유사한 점이 많고, 인종적으로도 몽골반점이 가장 많이 나타나는 민족들이다.

그래서 이들 민족은 그 뿌리가 거의 같으며, 그들의 문화 전통도 유사하고 언어도 같은 계통의 언어를 사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논한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람스테트포페같은 알타이어족설을 주장하는 서양 학자들이 연구의 초점을 맞춘 것은 그들을 기준으로 볼 때 가까운 튀르크어와 몽골어의 비교에서 시작하였으므로 한국어가 알타이어족 중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것으로 본 점이다. 이것은 전적으로 기준점을 잘못 설정하였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기준점을 바꾸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므로 튀르크어를 포함하여 몽골어, 만주퉁구스어, 한국어 등이 알타이어족에 속한다는 말은 틀린 말이다.

둘째. 반알타이어족설을 주장하는 이들의 말대로 알타이제어에는 차용어가 있을 뿐이고 기초어휘가 부족하며 문법 요소가 거의 같은 것이 없다. 그러나 그들의 관점은 대부분 튀르크어와 몽골어의 차용 관계를 대상으로 설명한 한계가 있다. 그러한 차용 관계가 몽골어, 만주어, 한국어에는 동일하게 적용되지 않는다. 튀르크와 몽골은 수 세기 동안 서로 지배하고 지배받은 역사적 사실 떄문에 언어의 차용 관계가 매우 심화된 것이다.


   다음 다양한 분야에서 본 한국말과 몽골말의 관계는 동질성이 뛰어나다.

첫째, 몽골, 만주, 한국은 역사적으로나 지역적으로 같은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었다. 만주 하일라르 초원 지대와, 싱안링(흥안령) 산맥헤이룽(흑룡)강 부근에서 같은 역사를 공유하며 살아온 것이 밝혀졌다. 인종적으로도 몽골반점이 있고, 체형인류학적 형질이 유사하게 나타나며, 고고학 유물이 유사하고, 민속학적으로도 매우 비슷하게 나타난다.

   한편 몽골어와 한국어가 같다는 중국 사서의 문헌자료에 따르면 위서(魏書) 북사(北史)신당서(新唐書)에는 우리 부여(扶餘) 예맥계의 언어와 몽골의 실위(室韋)의 언어가 같다고 기록하고 있다.

둘째, 언어학적 동질성의 방면에서 보면 몽골어와 한국어에서는 신체어(눈, 코, 귀, 입, 혀, 갈비, 궁둥이, 손가락, 불알, 젖, 머리, 발, 팔 등) 다수가 음운과 형태상으로 유사성을 보여 주고 있다. 몽골어와 만주어와 한국어는 의성어 의태어에서 일치하는 것이 대량으로 존재하는 것을 확인하였다. 정밀한 연구와 음운대응 등을 세밀하게 검토해야겠지만 깊이 있게 연구하면 이들 언어 사이에 기초어휘가 확보되는 결과가 될 것이고, 같은 계통의 연구에 큰 증거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이것은 이들 언어가 동북아시아어족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간접적인 증거이다. 따라서 이들은 언어도 같은 계통의 언어에서 갈라졌을 것으로 보고, 우선 이들 몽골어, 만주어, 한국어동북아시아어족’(North-East Asian langueage family)으로 묶을 수 있다는 가설을 세우고 집중적으로 연구할 것을 주창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차적으로 튀르크어 일본어도 대비하여 연구하며, 나아가 아메리카 인디언의 언어도 대조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우리 국어와 어느 정도는 관련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출처:현대몽골연구원 다음카페

 

blog.daum.net/pance73/2459   영어어원연구

 

 

 

 

 

 

한국어와 몽골어의 계통적 위치 (최기호)| 몽골연구 공개자료

simple life | 조회 31 |추천 0 | 2015.09.15. 17:18

 

 

한국어와 몽골어의 계통적 위치

                                                                                 최기호(상명대학교 국어교육과)


1. 계통 연구의 과제

한국어가 어디에서 왔으며, 그 계통적 위치는 어떠한가? 19세기 말엽에 서양의 비교언어 학자들에 의하여 처음 제기될 때는 ‘한국어는 우랄 알타이어족’이라 하였다. 그리고 20세기 들어서 람스테트 등은 ‘알타이어족’에 속한다고 하였다. 몽골어도 똑같이 설명 하였다.

그러나 우랄알타이어족설이나 알타이어족설은 서양의 역사언어학자들이 내세운 가설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오늘날 많은 언어학자들에 의하여 비판을 받았고, 부정되는 가설이다. 예컨대, 벤징이나 리게티 같은 학자들은 ‘반알타이어족설’을 내세우며 몽골어와 튀르크어는 차용관계에 있는 것이지 계통적으로 같은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서양의 학자들이 알타이어족설과 반알타이어족설이 주장되는 사이에 우리나라는 이들을 깊이 있게 연구할 겨를도 없이 알타이어족설을 그대로 수용하였다. 그리고, 마치 한국어가 알타이어족에 속하는 것으로 단정하여, 중․고등학교에서 교육하였다.

하나의 학설이 성립하기 위하여 우선 가설(hypothesis)을 세우고, 이를 여러 가지로 증명(proof)한 뒤에 비로소 학설로서 확정(establishment)지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확정되지도 않은 가설인 알타이어족설을 정설인 것처럼 가르치는 일은 명확함을 요구하는 학교 교육의 특성에 비추어 봐도 잘못된 일이다.

따라서 우리는 한국어와 몽골어의 계통적 관계를 연구하여 우리의 정체성을 밝힐 필요성을 갖게 된다.

2. 연구사

한국어의 계통 연구는 19세기 후반 로니(Rosny,1864), 달레(Dallet, 1874), 로스(Ross,1878) 등이 최초로 한국어와 타르타르어에 유형적인 유사성을 제시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구체적인 비교언어학적 언어 사실을 비교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시라도리(白鳥庫吉)가 595개에 이르는 한국어 낱말을 알타이제어와 비교한 일이 있은 뒤 뽈리바노프(Polivanov,1927)는 최초로 음운과 형태적 측면으로 한국어와 알타이제어의 친근성을 논증하면서 알타이어족설은 태동하였다고 볼 수 있다.

람스테트(G.J.Ramstedt)는 우랄어족과 알타이어족을 분리시켰고 알타이어족설의 창시자로 등장하였다. 그는 1907년에 ‘알타이어의 수사에 관하여‘라는 글을 발표하여 알타이어족설을 수립하는 기틀을 쌓아 갔다. 그는 헬싱키대학에서 “원시 튀르크-몽골어의 형태론”과 “몽골, 튀르크어의 음운사” 등을 강의하면서 1912년에는 “몽골어, 튀르크어의 동사어간 형성론”을 간행하였다. 그리고 람스테트는 “한국어에 대한 관견(1928)”을 발표하여 알타이 어족설에서 한국어의 위치를 논하였다.

그는 한국어와 알타이 제어의 친근성을 증명하려고 하면서 외견상의 유형적 유사성이나 비슷한 낱말을 나열하지 않고 진정한 비교언어학적 방법에 의해서 일정한 음운 대응을 관찰하고 또 문법 형태소를 분석하여 그 일치하는 것을 찾으려고 노력하였다.

포페(N. Poppe)는 “알타이언어학서설(1965)”에서 한국어의 계통이 분명치 않다고 전제하고 한국어의 계통에 관해서 (1)과 같은 세 가지의 가능성을 제시하면서 한국어가 알타이제어와 친근관계가 있음을 논하였다.

(1) ① 한국어는 알타이 제어와 친근 관계가 있을 수 있다.

② 원시 한국어는 알타이 통일체가 존재하기 전에 분열했을는지 모른다(즉 분열 연대가 대단히 이르다)

③ 한국어에는 알타이어 기층 밖에는 없다. (즉 한국어는 기원적으로 비알타이어인데 이것이 기층 언어인 고대 알타이어를 흡수했던가 혹은 기층 언어인 알타이어 위에 얹혔을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기문 교수는 <국어사 개설>(1961)에서 한국어가 알타이어족에 속한다는 것을 다음 그림 (2)로 제시한 바 있다. 이것을 그대로 인용한 포폐(1965)의 그림을 또다시 이기문은 ‘한국어 형성사’(1967)에서 한국어의 계통적 위치를 밝히는 그림으로 제시하였다.

또 김방한은 1976년에 “한국어 계통의 문제점”을 통하여 한국어의 저층에 잠정적으로 ‘원시 한반도어’라고 부르는 어떤 미지의 언어가 있지 않을까 하는 가설을 제시한 바 있고 1984년에는 저서 <(韓國語 系統>을 발표하였다.

한편 알타이어족설에 대하여 이를 부정하는 반알타이어족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다.

벤징은 알타이어족설을 부인하는 이유로 알타이제어 사이에는 공통된 수사가 없음을 지적했고, 또한 알타이어족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이 친근성을 제시하기 위하여 든 보기가 의심스럽거나 어원 해석을 잘못했다는 점을 들고 있다.

반알타이어족설의 강경한 입장을 취하는 클로슨은 알타이제어에는 수사와 같은 공통된 기초어휘가 없으며, 튀르크어와 몽골어의 공통된 낱말들은 대부분이 튀르크어에서 몽골어로 차용된 것으로 보고 있다.

또 김방한 교수도 <한국어의 계통(1983)>이라는 책을 쓸 때에 한국어가 알타이제어와 친근관계에 있다는 입장에서 썼는데, 1989년에는 알타이어족설을 부정하고 있다.


3. 한국어와 몽골어의 동질성 


3.1 역사, 지리학적 동질성

   동북아시아의 중심지인 만주는 우선 기원전부터 우리 민족의 땅이었다. 고조선을 비롯하여 부여, 고구려, 발해로 이어지면서 만주 대평원은 수천년 동안 우리 한민족이 다스리던 땅이었다. 그런데, 몽골족은 8, 9세기경에 역사에 나타나며, 마침내 13세기에는 칭기스한이 만주 하일라르 평원을 중심으로 등장하여 세계에서 제일 거대한 몽골제국을 세웠다. 그후 17세기에는 여진족의 누르하치가 청나라를 세우고, 19세기초까지 만주지역을 지배해 온 것이다. 이처럼 몽골족과 만주퉁구스족과 우리 한민족은 만주 하일라르 대평원과 대싱안링 산맥 지역을 활동 무대로 아주 오랜 옛날부터 살아왔다. 그래서 만주의 역사는 곧 이 세 민족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아무튼 한민족과 몽골족과, 만주족은 지리적으로 동북아시아의 핵심인 만주 대평원에 본거지를 두고 공통된 역사적인 활동을 한 것이다.


3.2 체질인류학적 동질성

몽골사람과 만주사람과 한국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닮은 사람들이다. 체질인류학적으로 얼굴과 몸매와 골격이 아주 비슷한 것으로 나타난다.

갓난아기의 엉덩이에 나타나는 푸른 반점을 ‘소아반’, ‘아반’ 혹은 몽골반점(Mongolian spot)이라고 하는데 이것이 95% 이상 나타나는 민족은 몽골족과 만주퉁구스족과 우리 한민족뿐이다. 튀르크 민족에도 몽골반점이 나타나는 경우가 있지만 20% 미만이고, 일본민족이나 아메리카 인디언의 경우에도 15% 정도가 나타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1994년 한국몽골학회의 흥안령산맥 소수민족 학술조사에서도 만주퉁구스족이나 다오르족, 어원키족, 오르친족의 어린이 궁둥이에서 몽골반점을 조사 확인한 바가 있다.

1994년에는 일본의 쯔지 교수가 혈청을 연구했는데, 그 결과도 유전자지도에서 몽골, 부리야트족, 만주족과 우리 민족이 가장 가까운 것으로 나타났다.


3.3 민속학적 동질성

   체질인류학적으로 같을 뿐만 아니라 몽골인들의 표정이나 모습이나 행동 양식에서도 우리와 매우 흡사한 것을 볼 수 있다. 몽골인을 처음 만났을 때 시골의 가까운 친척을 만난 느낌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한국인을 보고 자주 ‘사둔’이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에서 사돈은 결혼으로 맺어진 관계이지만 몽골에서 사둔은 ‘일가친척’이라는 뜻이므로 한국인을 가까운 친척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속담에 “아침에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고 한다. 몽골어로 까치는 ‘차스가이’인데 “까치가 울면 정다운 손님이 온다”는 똑같은 속담이 몽골에도 있어서 친근감을 느끼게 한다.

몽골인들은 음식을 먹을 때 ‘하늘(텡거리)’과 ‘땅(가잘’)과 ‘사람(훈)’에게 세 번 고시레를 하고 먹는데 우리와 유사한 민속적인 습속을 느끼게 한다. 길을 가다가 쌍갈래길이 나오면 손바닥에 침을 뱉고 손가락으로 쳐서 침이 튀는 방향으로 가는 것도 우리와 같다. 제기차기, 공기놀이, 실뜨기, 씨름하기 등의 민속놀이도 같다. 씨름이라는 말은 몽골어에서도 똑같기에 더욱 흥미롭다.

몽골과 한국은 설화가 같은 것이 많다. 1995년도 바이칼호수가 있는 부리야트 몽골에서 ‘나무꾼과 선녀의’ 설화를 채록하였다. 여기에서 ‘나무꾼’ 대신에 수렵 민족의 전통답게 ‘사냥꾼’으로 변이되어 있는데 그 모티브가 유사한 것이 재미있었다.

또한 동몽골 할힝골의 부이르호수에서는 담딩바오(67세)라는 노인으로부터 ‘박타령’의 설화를 채록하였다. 한국설화에서는 농경사회의 전통으로 ‘제비’가 박씨를 갖다 주어서 부자가 되는 내용의 박타령인데, 내몽골이나 다른 몽골 지방에서는 유목사회답게 ‘황금매’로 대체되고 있다. 그러나 이곳 동몽골은 제비나 황금매가 아니고 그 중간의 성격으로 보이는 ‘금제비’라는 어휘로 나타나서 흥미있는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동몽골 할힝골은 역사적으로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 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지역이며, 지금도 몽골의 국영농장이 있는 지역으로 농경문화와 유목문화, 수렵문화가 접합되는 지역이라는 점에서 ‘금제비’ 설화는 더욱 큰 의미가 있는 것이다.


3.4 중국 역사서에 나타난 동질성

   중국의 옛 사서(史書)인 위서(魏書)와 북사(北史), 신당서(新唐書) 등에서는 위진 남북조 시대, 우리의 부여(扶餘), 예맥계의 언어가 몽골의 조상인 실위(室韋)의 언어와 일치하다고 볼 (2)와 같은 기록이 있다.

(2)① 두막루국은 옛 북부여이었다. 본래는 예맥의 땅이었다

豆莫婁國….舊北扶餘… 或言本穢貊之地也 (魏書 豆莫婁傳)

② 실위국은 고막계와 더불어 같은 말을 썼다. 거란, 두막루국도 같았다

失韋國…語與庫莫奚… 契丹, 豆莫婁國同 (魏書 室韋傳)

③ 실위국은 거란의 무리다. 말은 고막계, 거란, 두막루국과 더불어 같았다

室爲國…蓋契丹之類…語與庫莫奚, 契丹, 豆莫婁國同 (北史 室韋傳)

④ 달말루는 스스로 북부여 후예라고 한다. 고구려가 그 나라를 멸하였다.

達末婁, 自言北扶餘之裔, 高句麗滅其國 (新唐書 유귀전)

그러니까 우리 조상인 부여, 예맥계의 두막루, 고막계, 달말루의 언어가 몽골의 조상인 실위의 언어와 같았다는 역사적 증거가 밝혀진 것이다. 이것은 한국말과 몽골말이 계통적으로 같다는 근거로 될 수 있다.


4. 언어학적 동질성으로 본 한국말과 몽골말

   몽골어와 한국어의 친족관계를 밝히려면 우선 몽골어와 한국어 사이에 수사, 대명사, 신체어, 친족어 등 기초 어휘를 면밀하게 검토하여 유사성을 증거로 제시해야 한다. 또한 음운론적으로 음운대응이 이뤄지는지를 검토해야 한다.

그래서 필자는 우선 비교 가능한 신체어 목록을 작성하여 검증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가능성이 있는 것을 제시해 연구 논문(1993)으로 제시한 바가 있다. 예컨대, ①눈(眼): ② 코(鼻): ③ 귀(耳): ④ 입(口): ⑤ 혀(舌): ⑥ 궁둥이(臀): 등 많은 신체지칭어가 몽골어와 한국어가 일치하고 있다. 이들을 깊이 있게 연구하고 음운대응도 고찰하여 비교언어학적 방법에 맞는 연구를 계속한다면 좋은 결과가 나올 것으로 생각한다.

그 외의 수사, 대명사, 친족어, 색채어 등 기초어휘 분야에서 얼마든지 비교 가능한 어휘가 많이 있고, 필자가 검토한 바 있는 <몽골비사>(蒙古秘史), <몽어노걸대> 등 몽학삼서에도 귀중한 비교 어휘 자료가 많이 있다.

그리고, 몽골어와 한국어의 명사의 준굴곡과 동사의 굴곡에서도 공통점이 많음을 밝힌바(최기호;1985) 있다. 이렇게 볼 때 세밀한 연구를 더욱 계속하면 그 계통을 밝힐 수 있는 문법적 요소가 많이 나올 것으로 본다.

5. 맺음말

우리 한민족과 몽골족, 만주족은 고고학적으로 같은 문양의 토기를 사용했으며, 신화나 전설이 같은 것이 많으며, 민속학적으로도 샤만이나 한국의 서낭당과 같은 ‘어워’ 따위가 유사한 점이 많고, 인종적으로도 몽골반점이 가장 많이 나타나는 민족들이다.

그래서 이들 민족은 그 뿌리가 거의 같으며, 그들의 문화 전통도 유사하고 언어도 같은 계통의 언어를 사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논한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람스테트나 포페같은 알타이어족설을 주장하는 서양 학자들이 연구의 초점을 맞춘 것은 그들을 기준으로 볼 때 가까운 튀르크어와 몽골어의 비교에서 시작하였으므로 한국어가 알타이어족 중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것으로 본 점이다. 이것은 전적으로 기준점을 잘못 설정하였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기준점을 바꾸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므로 튀르크어를 포함하여 몽골어, 만주퉁구스어, 한국어 등이 알타이어족에 속한다는 말은 틀린 말이다.

둘째. 반알타이어족설을 주장하는 이들의 말대로 알타이제어에는 차용어가 있을 뿐이고 기초어휘가 부족하며 문법 요소가 거의 같은 것이 없다. 그러나 그들의 관점은 대부분 튀르크어와 몽골어의 차용 관계를 대상으로 설명한 한계가 있다. 그러한 차용 관계가 몽골어, 만주어, 한국어에는 동일하게 적용되지 않는다. 튀르크와 몽골은 수 세기 동안 서로 지배하고 지배받은 역사적 사실 떄문에 언어의 차용 관계가 매우 심화된 것이다.

다음 다양한 분야에서 본 한국말과 몽골말의 관계는 동질성이뛰어나다.

첫째, 몽골, 만주, 한국은 역사적으로나 지역적으로 같은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었다. 만주 하일라르 초원 지대와, 싱안링(흥안령) 산맥과 헤이룽(흑룡)강 부근에서 같은 역사를 공유하며 살아온 것이 밝혀졌다. 인종적으로도 몽골반점이 있고, 체형인류학적 형질이 유사하게 나타나며, 고고학 유물이 유사하고, 민속학적으로도 매우 비슷하게 나타난다.

한편 몽골어와 한국어가 같다는 중국 사서의 문헌자료에 따르면 위서(魏書)와 북사(北史)와 신당서(新唐書)에는 우리 부여(扶餘) 예맥계의 언어와 몽골의 실위(室韋)의 언어가 같다고 기록하고 있다.

둘째, 언어학적 동질성의 방면에서 보면 몽골어와 한국어에서는 신체어(눈, 코, 귀, 입, 혀, 갈비, 궁둥이, 손가락, 불알, 젖, 머리, 발, 팔 등) 다수가 음운과 형태상으로 유사성을 보여 주고 있다. 몽골어와 만주어와 한국어는 의성어 의태어에서 일치한는 것이 대량으로 존재하는 것을 확인하였다. 정밀한 연구와 음운대응 등을 세밀하게 검토해야겠지만 깊이 있게 연구하면 이들 언어 사이에 기초어휘가 확보되는 결과가 될 것이고, 같은 계통의 연구에 큰 증거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이것은 이들 언어가 동북아시아어족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간접적인 증거이다. 따라서 이들은 언어도 같은 계통의 언어에서 갈라졌을 것으로 보고, 우선 이들 몽골어, 만주어, 한국어를 ‘동북아시아어족’(North-East Asian langueage family)으로 묶을 수 있다는 가설을 세우고 집중적으로 연구할 것을 주창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차적으로 튀르크어와 일본어도 대비하여 연구하며, 나아가 아메리카 인디언의 언어도 대조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우리 국어와 어느 정도는 관련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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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호교수 약력

.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 문학박사를 취득했다. 일본 동경외국어대 대학원 몽골학과 수료하였다.

. 상명대학교에서 조교수, 부교수, 교수로 28년간 봉직하였다.

<주요 경력>

상명대학교 사범대학장, 중앙도서관장, 한국방송심의위원, 교육부 국어교과서 편찬심의위원, 총무처 행정용어 심의위원, 문화체육부 국어심의위원, 캐나다 앨버타주립대학교 교환교수 한국어정보학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현재 KBS방송언어 자문위원, 울란바타르대학교 석좌교수. 외솔회 이사,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상무이사, 한추회 회장, 국제동북아시아학회장 국어단체연합회장을 맡고 있다.

<주요 저서>

<17세기 국어의 존대법 체계연구>, <몽어노걸대의 형태론적 연구>, <국어학서설>, <고운말 사전>, <역사언어학의 원리와 방법>, <몽골어 문법과 회화>, <한글맞춤법 새 길라잡이>, <한국어변천사>, <사전에 없는 토박이말2500>, <몽골비사 역주>, <언어와 사회>, <원각경언해 주석> <토박이말 쓰임사전> 등이 있으며

<주요 논문>

‘훈민정음 창제에 관한 연구’, ‘알타이어족설의 문제점’, ‘한국어의 계통과 형성’, ‘아메리카 인디언 언어와 동북아시아어족의 관계’, ‘유창돈론’, ‘청산별곡의 형성배경과 몽골요소’ ‘훈민정음 창제과정과 정의공주의 변음토착(變音吐着) 문제’, “ A study of Linguistic Genealogy between the Mongolian language and the korean language”, 등이 있다.

< 상훈 관계>

한글학회 공로 표창, 한글학회 우수 논문상 수상, 대한민국 국무총리 표창, 국제몽골학회 공로상, 몽골정부 은성평화훈장(2000), 최고친선훈장(2007)을 몽골대통령으로부터 받은 바 있다.

 

 

cafe.daum.net/MUIS/J48K/312   현대몽골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