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7. 3. 14:03ㆍ야생화, 식물 & 버섯 이야기
고풍스러운 석등
동자석 ㅡ 아이는 모든 어른들의 스승님이십니다.
나포피아 <아틀란타>
나포피아 <아틀란타>
블루베리
블루베리 ㅡ 함유된 안토시아닌이 향균 항암 등의 작용을 하고 활성산소를 억제하여 노화를 방지한다고 함.
비슷한 성분의 과일 : 포도 , 흑자두(플륨) 등
포도는 구약성서 뿐만 아니라 우리 한민족의 파미르 고원 기원설을 뒷받침하는 마고(麻姑)신화에도
나오는 우리 인류와 친근한 오랜 역사의 과실임.
**** 마고신화 : 신라 박제상이 <부도지>저술하고 그의 아들인 거문고 명인인 백결(百結)선생 박문량이
13책을 더하고, 매월당 김시습 선생님이 1책을 더하여 총15책의 <징심지(澄心誌)>로 전해지는
단군신화 이전의 한민족 고대 신화와 이를 풀이한 책에서 기록된 부여의 건국신화.
위서논란이 없지 않으나 이는 경인란(육이오 동란)으로 박제상의 후손인 영해 박씨 문중에서
함경도 산골에 부도지를 보관한 후에 월남하여 기억력에 의존해서 다시 필사하였다는 논란임.
마고신화에 의하면 천산(天山 : 현 키르키즈스탄國 타이거신지山) 천지(天池 : 현 키르키즈스탄國
이식쿨 호수)에 현지명 초본아타(현지어로 금성 즉 샛별이라는 뜻)라는 조그만 마을에 도읍을 정하
고 부여(불,밝음의 이두식 표현 : 태양신을 상징)라는 나라를 세움
단군의 고조선 건국보다 약 칠천년~일만년 이상의 연대가 올라 감.
마고신화에 따르면 파미르 고원에서 최초에 건국한 부여는 호랑이 토템의 맥(貊)족이
주축을 이루었고, 나중에 인구가 증가하고 초원이 사막화되자 동서남북으로 이주함.
동쪽으로 이주한 맥족은 후에 요하근처에서 선주자인 예(濊)족과 통합하여 홍산문명
(기원전 약 6천~7천년 전)을 이루고, 중국의 한나라 세력이 강성해 지자 다시 동쪽으로
이주하여 바이칼에서 남하한 곰토템의 고조선족(숙신 肅愼: 조선의 이두식 표현)에게
흡수동화 됨. 이후 예맥족은 한사군의 설치 등으로 고조선이 약해지자 졸본성에서 부여라는
나라를 세우게 된다.
이 졸본(卒本)이라는 말은 샛별을 뜻하는 초본아타의 이두식 표현임.
후에 이 부여의 한 갈래에서 고구려와 백제가 건국됨.
고구려의 처음 도읍지인 국내성 집안 인근에도 졸본성이 있어서 예맥의 정통성을 유지한다.
따라서 우리의 한민족의 기원은 예맥족을 중심으로 고조선족이 일부 동화되어 형성되어
있슴.
단군 고조선 때에는 흡수동화된 예맥족을 선봉으로 내세워 옛땅인 파미르 고원을 되찾자는
복본(復本)운동이 일어나서 끊임없이 서역으로 진출하고자 하여 흉노족과 돌궐족과의
영토경쟁이 있었고, 후에 예맥족이 주축이 된 부여와, 그리고 이를 이어받은 고구려, 백제에서는
우리의 옛땅인 파미르고원을 되찾기 위하여 다물(多勿)운동이 일어나, 고구려의 광개토대왕
때에는 감주, 숙주(지금의 감숙성)까지 영토를 확보하였고, 백제의 성왕 때에는 지금의
베트남 근처인 광서성장족자치구(진평군)와 요하 서쪽지방인 요서일대(요서군)에 까지 식
민지 총독격인 담로를 파견하였다는 사실이 중국의 정사인 역사서(수서,당서,송사,원사 등)에
반복되어 기록되어 있다. 우리는 하루 빨리 일제강점기의 식민사관의 영향을 타파하여야 한다.
또한 이 마고신화에 대한 고고유물학적인 자료로는 백제 능산리고분군 앞의 절터에서
발굴된 백제용봉금동대향로를 대표적인 예로 들수 있는 데, 향로의 몸통인 향실 뚜껑부에
양각된 각종 인물상과 동물상들을 자세하게 분석하여 보면, 상부단부터 우리 한민족의 역사의
발전단계에 따라 순차적으로 조각상들이 배치되어 있슴을 알 수 있다. 처음에는 마고신화에서와
같이 주악오선상(奏樂五仙像)으로 시작하여, 마지막 양각상은 요하에서 선주자인 예족을 만나는
것을 상징하는 낚시하는 선인상과 의무려산의 천제혈(天帝穴)을 상징하는 동굴이 있는 산像으로
끝난다.
백제금동대향로의 조성시기를 역사학자들이 5~6세기로 추정하고 있는 것과 신라에서 박제상이
왕의 동생을 구하려 일본에 파견된 420년 경으로 미루어 볼 때, 그 당시에는 고구려,백제, 신라 등
3국에서 공히 마고신화가 통용되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후 조선조에 들어 오면서 위화도
회군으로 대표되는 사대주의로 인하여, 우리의 옛역사서를 세종 때에 왕실에서 강제 수집하여
규장각에 보관할 때에 이 징심지 중 일부책이 수집되었거나 또는 더욱 깊숙히 감추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역성혁명으로 조선조를 건국한 태조 이성계도 이 징심지와 부도지를 구하려고 영해 박씨의
후손들에게 극진하게 대하였다는 것도 왕조실록에 보인다.
오늘날 사찰의 산신각이나 성황당에 그려진 산신도를 보면 곰은 한마리도 그려져 있지 아니하고
호랑이가 그려져 있는 것도 예맥족이 정권을 잡고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민속학적 증거가 됨.
현재 곰 토템을 가진 고조선족의 일부 후예들은 현재 만주 동북방의 산간지대나 시베리아 중남부
오지에 일부 잔류하고 있슴.
이야기가 딴데로 흘렀으나 <부도지>에 의하면 천산천지 일대가 사막화되고 나서 식량으로 삼은 것이
포도임.
닛사 ㅡ 위의 사진 참조
꽃완두 종류 ㅡ 외래종
꽃완두
꽃완두
수목원에서 바라본 발해
벌깨덩굴 종류
참좁쌀풀 종류: 참좁쌀풀은 꽃잎이 뾰죽한데 비하여 꽃잎의 끝부분이 둥근 종류임
원예종 날개하늘나리와 마삭줄
원예종 날개하늘나리 : 상품명으로는 틈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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