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도 하늘도 나그네도 젖다 <하산세우도夏山細雨圖>

2016. 1. 1. 08:01美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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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도 하늘도 나그네도 젖다 <하산세우도夏山細雨圖>

 

 

   한여름 찌는 듯한 더위와 싸우다보면 잠시라도 비소식이 없나 찾게 됩니다. 여름에 반가운 비는 세차게 쏟아지는 장대비이되, 햇빛이 가려지고 부슬부슬 안개비에 몸이 젖는 정도라도 그나마 태양의 기세를 눌러주는 것이라 반갑기 그지없습니다. 

   비를 그리는 마음으로 <하산세우도(夏山細雨圖)>를 감상해 봅니다.  물을 잔뜩 머금은 붓으로 과감한 그라데이션(선염)을 펼친 이 그림은 조선 후기의 기인화가 호생관 최북(1712-1786)의 것입니다. 산도 젖도 나그네도 젖고 하늘도 젖어 있습니다. 최북의 그림 중에 걸작이라고 볼 수는 없을 테지만, 비오는 산 속의 적막함이 느껴져 계속 들여다보게 됩니다. 개울물에 가는 비 내리는 소리가 보태져 들릴 것만 같습니다.

 

 


최북 <하산세우도>

지본담채 20.1x15.2cm 개인


 


   나그네는 특이하게도 손잡이가 있는 우산을 쓰고 걸어가고 있습니다. 잘 차려입은 선비도 아니고, 그렇다고 농부도 아닌 듯한데 가는 비에 우산을 쓰고 가는 모습이 특이합니다. 조선시대라면 도롱이나 넓은 갓으로 비를 피하는 것이 보통 전해지는 모습인데 말입니다.  

 

 



한시각 <인물도>

지본수묵 92.0x43.7cm 국립중앙박물관


삿갓과 도롱이를 쓰고 빗길을 가는 후줄근하고 처량한 인물의 뒷모습이다. 


 

 

   당시에 우산이 흔한 것은 아니었으므로 최북이 우산 쓴 남자를 그려 넣을 때에는 화보 등을 보고 참고했을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널리 알려진 화보 『개자원화전』에도 우산 쓴 사람이 등장합니다. 이 사람을 좌우로 뒤집으면 위 그림 속의 남자와 비슷합니다.

 

 



 

 

   조선시대 그림 속에서는 우산 쓴 모습을 찾기 힘들지만 일본 그림 중에는 우산 그림을 종종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키요에 화가 스즈키 하루노부(鈴木 春信, 1724-1770)는 함박눈을 우산으로 맞으며 서 있는 커플을 그렸습니다. 

 

 



스즈키 하루노부 <눈 속에 우산을 쓴 남녀雪中相合傘>

26.7x20cm

 


    최북의 <하산세우도>는 다른 한 그림인 <현애소림도>와 함께 대중에 공개된 바 있습니다. 세로 20cm 남짓의 소품인 이 그림들은 각각 다른 계절의 모습을 그린 것으로 선염법, 몰골법 잘 드러난 특징적인 것들입니다. 이 계절 외에 다른 계절을 함께 그려 화첩으로 만들었을 가능성이 큰데, 나머지 그림들의 행방은 알지 못합니다. 소품이지만 아름답고 서정적인 훌륭한 작품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산수 뿐 아니라 도석인물화, 영모화도 훌륭히 그려 인기있던 화가. 중인 신분에 구애되지 않고 양반들에게 호령하며 예술가로 자유로운 삶을 구가했던 최북. 가난과 역마살, 술, 기행으로 전해지는 그의 삶의 단면이 이런 작품들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 궁금합니다. 

어찌되었거나 최칠칠의 정신없고 힘든 삶 중에는 분명 대표작 중 하나인 <공산무인도(空山無人圖)>에서 볼 수 있는 조용하고 적막한 장면이 있었고, 비오는 여름에는 처량하게 비를 맞으면서도 산사 속의 고요함을 그리는 평화가 있었나하고 생각해 보게 됩니다. 오늘쯤 비가 오고, 여름의 끝을 알려주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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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올린 다음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호생관 최북의 그림 중에 우산 쓴 사람이 등장하는 그림이 또 있다는 것입니다.

 

 


최북 <우중인물도>

지본수묵 28x23cm 개인


이 그림은 2002년 한 미술품 경매에 등장했던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우산을 든 모습과 방향이 개자원화전의 것과 유사하네요. 이 그림의 화제에 있는 "오묘한 그림은 정신세계와 통한다"는 말은 이 <우중인물도>보다 위의 <하산세우도>에 더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SmartK C.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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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01 00: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