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윤혜영의 문화산책] (6) 다만 마음뿐인 섬 - 지심도

2016. 1. 20. 02:18美學 이야기

 

 

      

[수필가 윤혜영의 문화산책] (6) 다만 마음뿐인 섬 - 지심도

조영신 기자 | 2015/09/07 08:41 등록 (2015/09/07 17:22 수정)

 

(뉴스투데이=윤혜영 선임기자) 대한민국에서 살기가 점점 더 힘들어졌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다는 ‘3포 세대’에서 한층 업그레이드 된 ‘5포 세대(인간관계와 내집 마련)’가 양산되고, 빈부의 불균형은 어느 시대보다 격화되었다.

기술이 사람을 편하게 하지만, 슬프게도 한다. 전국민의 스마트폰화는 재벌과 연예인, 졸부들의 화려한 생활을 망라하여 상대적 박탈감에 박차를 가한다. 아이들은 꿈보다는 학력을 키우고, 삶의 가치보다 물화의 진리 신봉한다. 철밥통 공무원과 고수익 연예인이라는 양극의 모델을 가치 삼고, 내면의 아름다움보다 강남성괴의 외형을 부러워하는 시대가 되었다.

여성의 학력이 높아지고 재화의 가치가 중시되면서, 인간적인 삶보다는 조건적인 부를 향한 추구가 인간다움을 상실시킨 시대가 되었다. 더 이상 기다림이 아름다운 시대는 갔다. 모든 것은 속도위주로 경쟁되고, 마음보다 물질에 가치를 더 주는 요즘 시대에 낭만과 사랑은 어디로 실종되었는가?

 


   정, 사랑, 진리, 의리, 각박한 도시에서 하이에나처럼 그것들을 찾아 헤매던 나는 아무 소득도 얻지 못한 채, 섬으로 떠났다. 지심도. 다만 지(只), 마음 심(心)...... 심(心)자를 닮았다는 동백섬.

다만 마음뿐인 섬.

 

 

 

 

 

 


   장승포항에서 지심도 가는 티켓을 끊어놓고 배를 기다린다.
매표소에서 얼마 되지 않는 거리에 장승포 우체국이 있어 구경을 하였다.


바다가 보이는 장승포 우체국 앞에는 키 큰 소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그 소나무는 예부터 장승포 사람들이 보내는 연애편지만 먹고 산다는데

요즘은 연애편지를 보내는 이가 거의 없어

배고파 우는 소나무의 울음소리가 가끔 새벽 뱃고동소리처럼 들린다고 한다

어떤 때는 장승포항을 오가는 고깃배들끼리 서로 연애편지를 써서 부친다고 하기도 하고

장승포여객선터미널에 내리는 사람들마다 승선권 대신 연애편지 한 장 내민다고 하기도 하고

나도 장승포를 떠나기 전에 그대에게 몇 통의 연애편지를 부치고 돌아왔는데

그대 장승포우체국 푸른 소나무를 바라보며 보낸 내 연애의 편지는 잘 받아보셨는지

왜 평생 답장을 주시지 않는지


          - 정호승, 장승포 우체국-

 



 

 

   승선하고 십여분, 작은 요트는 시원하게 바닷길을 달려 지심도에 도착하였다.


선착장에 내려 걷는 소로(小路)는 동백꽃에 폭격을 맞아 온통 꽃융단이다. 주먹만한 낙화가 뚝뚝 떨어져 붉은 길을 만들었다. 동백꽃은 12월에서 4월까지가 제철이다. 겨울과 초봄에 아름답게 피는 이 꽃은 질때도 결연하다. 이파리 한잎씩 떨구며 시들지 않고 꽃망울이 통째로 툭 떨어져 져버린다.

 


   지심도는 전체 면적이 0.356㎢에 불과하다. 해안선 길이를 다 합쳐도 3.7km밖에 안 된다. 그러나 울창한 원시림이 우거져 있어 실제보다 훨씬 크게 느껴진다. 섬에 붙여진 지명도 재미있다. 동쪽 끝 벌여, 동섬(떨어진 섬), 대패너를, 굴강여, 굴밑(방공호 자리), 애물깨, 노랑바위, 솔랑끝(끝에 소나무가 자람), 마끝(남쪽 끝), 새논개, 볼락지리 등의 독특한 지명이 있다.

현재 15가구가 살고 있으며 주민들의 대부분은 유자농사나 어업에 종사하였으나 최근에 관광객들이 많이 늘어나면서 민박과 식당을 겸하는 집이 많이 늘었다.

 

 


 

 


   지심도는 일본 대마도와 우리나라 사이에 가장 가까운 거리라 군사적 요충지였다. 일본의 군신(軍神)으로 추앙받는 도고 헤이하찌로(東鄕平八郞) 제독이 러시아 발틱함대를  앞바다에서 궤멸시켰다. 지금도 2차대전에 사용되었을법한 포진지와 지하 방공호, 비행터 등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역사의 상흔이 서린 곳이다.

 

 




 

 

   소설가 윤후명은 1983년 거제도에 삼개월간 체류하며 글을 썼다. 배타고 놀러온 지심도에 반해 쓴 '팔색조'는 소설로도 출간되고, TV문학관에도 방영되었다. 어린시절 그것을 본 기억이 아슴아슴하다. 동백군락지를 걸으며 눈을 크게 뜨고 찾아도 팔색조는 찾지 못했다.


팔색조는 전설의 새가 아니라, 지심도에 사는 천연기념물이다. 7가지의 아름다운 깃털을 가진 새로, 재주가 많은 사람을 이르러 '팔색조'라고 부르기도 한다는 그 새이다.

언젠가 다시 이곳을 찾을 수 있을까? 그때의 나는 무엇을 하며 어디에서 살고 있을까? 그때는 팔색조를 만날 수 있을까?

 

 


 

 


   섬을 다 둘러보고 해돋이 민박에서 점심을 먹었다. 주인 아주머니는 이곳이 예전에 일본군 장교의 막사로 사용되었던 곳이라며 묻지도 않은 말을 해준다. 도다리 회무침과 소라를 넣은 된장국, 톳나물과 묵은 김치가 풍성한 밥상이 어머니의 밥상을 떠오르게 한다.

하얀쌀밥에 풍성하게 피어오르는 김이 입맛을 돋구었다. 혼자 먹기에는 아까운 밥상이다. 맛있는 것을 먹을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가장 심중에 있는 사람이라는 말이 맞는것 같다.

혼자 여행하면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떠나오면 비로소 내자리가 보인다. 아낌없이 버려야 진정으로 사랑할수 있다. 나와 내게서 뻗어나간 인연들, 그리고 세상 모든것들을.

 

 


                                                              ⓒ 김해성, 지심도-팔색조

 


 

                                                                ⓒ 김해성, 연인-지심도

 


 

                                                        ⓒ 송필용, 사랑이 머무는 섬 지심도

 

 

                                                     ⓒ 송필용, 사랑이 머무는 섬 지심도

 

 


                                                          ⓒ 심점환, 마음에 꽃 지던 날

 

 



                                                               ⓒ 심점환, 그 섬

 

 



                                                                   ⓒ 엄윤숙, 지심도

 

 



                                                          ⓒ 최석운, 사랑의 섬 지심도

 

 



                                                              ⓒ 최석운, 팔색조

 

 



                                                                ⓒ 최석운, 지심도 유람



                                                                     ⓒ 이인, 팔색조

 

 



                                                          ⓒ 민정기, 동백숲을 걷다

 

 



                                                           ⓒ 김성호, 지심도 야경

 

 


동백꽃 보러 지심도에 갔다가

동백 잎사귀만 들고 나왔다.

그 푸름이 탐이 나서 골방 문에 붙여 놓으니

잎자루가 몸통이 되고 잎맥이 가지가 되어

온전히 동백 한 그루가 되었다

동백은 좀체 시들 줄 모르고

쪼그려 앉아 들여다보는 날에는

숱한 그물맥 사이사이 동박새 울음소리

바람소리 바닷소리가 섞여 들렸다.

내 몸의 한 귀퉁이도 섬에 남아

울음을 내놓고 있을지 모른다.

섬에 동백꽃이 피고 지고의 문제가 아니다.

쪽빛만큼이나 진한 혐의는

어떤 것도 꿈꾸지 않고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골방에서 멀리 지심도까지

점점 몸피를 불리는 동백나무

그 그늘에 헛꿈마저 서늘해지느니
 

- 이동훈, 지심도 동백-
 

 



<글 : 수필가 윤혜영 geo0511@hanmail.net  >


계명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남 통영 출생

계간 '문학나무(발행인 황충상 소설가)'겨울호를 통해 신인문학상 중 수필 부문 수상자로 등단.
주요 저서로 '우리는 거제도로 갔다'. '화가들이 만난 앙코르와트' 외 항공사와 증권사, 신문사 및 문화예술지등 다수에 문화칼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