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분이야기 - 이덕희 경북대학교 예방의학교실 교수

2016. 1. 21. 01:01건강 이야기



      

철분이야기 - 이덕희 경북대학교 예방의학교실 교수

 글쓴이 : 베지닥터 



      

 작성일 : 11-07-11 22:33          

 

 
   이제 세상의 관심이 옆 나라 지진과 방사능에서 리비아사태로 옮겨온 것 같아서 숙제같이 생각된 글 올립니다. 이 글을 올리는 직접적인 계기는 설경도원장님께서 올리신 비타민 C 이야기에 제가 먼저 철분이야기를 하면서 시비(?)를 거는 바람에.. 그만 이렇게 되었습니다.^^;; 제가 요즘 POPs에 빠져있느라고 한참 동안 이 쪽으로는 크게 관심을 두고 있지 않았던 터라 최근 논문도 좀 더 찾아보고 해서 올리고 싶었습니다만 그러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릴 것 같아서 일단 그냥 올려봅니다. 혹시 내용에 석연챦은 구석이 있으면 댓글로 알려주세요. 현미채식이야기라기 보다는 철분이야기이긴 합니다만 이것도 결국 하다 보면 식물성 그리고 동물성 식품이야기입니다.
 
 
가볍게 개인적인 이야기부터 시작할까요?^^ 제가 둘째 아이를 가졌을 때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 당시에도 임신을 하면 누구나 철분제를 먹습니다. 사랑하는 임신한 아내한테 철분제를 사다주는 자상한 남편은 텔레비젼 철분제 광고의 변하지 않는 테마죠. 의과대학 다니던 시절 철분은 임신시 가장 부족하기 쉬운 영양소이며 임신시 철분이 부족하면 여러 가지로 태아의 성장발달에 문제가 발생한다고 배웁니다. 첫째 아이를 가졌을 때는 저도 남들처럼 철분제를 꼬박꼬박 먹었습니다만.. 둘째 아이를 가졌을 때는 별 사건 사고 없이 흘러가는 제 인생이 무료하고 심심했던지 또 갑자기 쓸데없는 황당한 생각이 들기 시작하더군요.
 
왜 20세기 임산부는 꼭 철분을 먹어야 할까? 언제부터 임산부는 철분을 먹도록 교육을 받았을까? 철분제가 개발된 시점은 언제였을까? 왜 임신한 여자의 헤모글로빈치가 임신하지 않은 여자의 헤모글로빈치와 비슷해야 할까? 임신시 혈액량이 늘어나면서 헤모글로빈치가 떨어지는 것은 인체의 정상적인 반응이 아닐까? 헤모글로빈이 낮으면 혈액의 점도가 낮아져서 태아로 가는 혈류량의 흐름을 오히려 좋게 해주지 않을까? 등등..
 
 
   혼자서 이런 생각 저런 생각하다가 입덧도 상당한 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안 먹기로 합니다...그대로 성격 나오죠^^. 산전진찰도 귀챦아서 안 받다가 임신 막달에 가보니 헤모글로빈치가 8g/dL까지 떨어졌더군요 (정상치: 12-15g/dL). 산부인과선생님이 이대로 가면 큰 일 난다고 해서 임신 막달에 흡수율 엄청 좋다는 액체로 된 마시는 철분제 그거 2주 정도 먹었습니다. 제가 C-sec을 했는데 수술하고 났더니 헉~ 5g/dL까지 떨어졌더군요. 정말 죽고 싶냐고 해서 남의 피 좀 받아서 제 몸에 넣었습니다. 수술 받고 누워있는데 숨이 차서 죽을 것만 같더니만 남의 피가 들어가서 좀 돌아주니 그 때서야 좀 살 만 하더군요^^.
 
 
   제가 둘째를 놓고 자의반 타의반으로 연구자로써의 삶에 빠지게 되는데요.. 그러면서 이 철분을 다시 연구자의 눈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채식 어쩌구 저쩌구 하는 제 글에 나오는 GGT에 대한 연구를 할 당시, GGT가 어떤 경우에 prooxidant로 작용할 수 가 있는데 그 대표적인 경우가 redox active iron (free iron, labile iron)이 체내에 존재할 때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GGT뿐만 아니라 비타민 C를 비롯한 많은 항산화 물질들이 redox active iron과 같은 transition metal이 존재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따라서 완전히 이야기가 달라지더군요.

인간은 미토콘드리아에서 산소를 이용하여 에너지를 만들기 때문에 이러한 에너지 합성과정에서 활성산소가 반드시 부수적으로 생성되게 됩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활성산소들을 처리하는 항산화시스템도 잘 발달해있기 때문에 대부분은 큰 문제가 없고 또한 이 단계의 경미한 활성산소들은 여러 가지 중요한 생체 반응을 유도하기 위하여 꼭 필요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활성산소들이 redox active iron을 만나게 되면 fenton reaction이라고 소위 아주 반응성이 높은 hydroxyl radical 종류들이 생성되게 되는데요, 이 놈들은 우리 세포를 구성하는 DNA, 단백질, 지질들을 그대로 무차별 공격하는 아주 대단한 놈들이죠. 비타민 C를 항암제로 개발하자는 연구자들도 있는데요, 이 때 암세포를 공격하는 기전 중 하나도 바로 이겁니다.
 
 
   Redox active iron과 같은 transition metal이 존재하는 상황에서는 비타민 C를 비롯한 많은 항산화물질이 Fenton반응에 기여하여 아주 강력한 prooxidant로 작용한다는 사실은 이론의 여지가 없지만 대부분 연구자들은 인체내에서 철분은 redox active iron의 형태로 존재할 수 없다고 혹은 존재한다고 해도 그 존재시간이 정말 찰라의 순간이라써 거의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고 있더군요. 우리 몸의 철분은 거의 대부분 ferritin이나 transferrin과 같은 단백질에 결합되어 있거든요. 그러니까 transferrin과 같은 단백질이 100% saturation된 다음에서야 redox active iron이 존재할 수 있지, 그렇지 않은 다음에야 문제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공부를 해보니 우리 인체는 지극히, 정말 지극히 정교하고 복잡한 철분조절시스템을 가지고 있더군요. 가장 간단한 예를 하나 들면, 우리 몸이 철분이 필요하면 딱 필요한 만큼 음식 속의 철분흡수율을 증가시키고 필요하지 않으면 철분흡수율은 바로 떨어집니다. 이러한 사실은 철분이 인체의 정상적인 대사과정에 반드시 필요한, 매우 중요한 영양소이지만 필요 이상 체내에 존재하면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을 우리 몸이 이미 너무 잘 알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반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특히 식물성식품 속에 들어있는 철분의 흡수율은 우리 몸의 필요에 매우 민감합니다. 평상시에는 식물성식품 속에 들어 있는 철분의 흡수율이 10% 미만으로 아주 낮지만 임신시와 같이 철분이 많이 필요하게 되면 흡수율이 80-90%까지 증가합니다. 식품영양학교과서들을 보면 식물성식품의 철분 흡수율이 낮다는 것을 영양학적으로 큰 문제점인 것으로 기술하고 있지만, 식물성식품의 철분 흡수율을 이렇게 인체의 필요에 따라서 정교하게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굉장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절대로 다다익선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동물성식품속에 있는 철분에 대하여서는 우리 몸이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을 하지 않습니다. 또한 동물성식품의 철분은 기본흡수율이 식물성식품 보다 훨씬 높기 때문에 동물성식품 섭취량이 증가하면서 우리 인체내의 철분축적량은 증가하는 양상을 보이구요. 또한 철결핍성빈혈을 예방한다는 이유로 거의 대부분 가공식품에 상당량의 철분을 인위적으로 첨가하기 때문에 또 우리 인체내의 철분축적량은 증가하는 양상을 보입니다. 저는 이와 같이 우리 몸이 민감하게 반응할 수 없는 형태의 too much iron이 동물성 식품이 좋지 않고 가공식품이 좋지 않은 또 다른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Anyway, 이런 상상을 했었죠. Ferritin은 보통 임상에서 체내 철 축적량을 나타내는 지표로 사용하는데요, 이 ferritin이 또한 acute phase reactant입니다. Acute phase reactant란 보통 염증반응시 우리 인체 혈중에서 증가하는 여러 가지 물질들을 통칭하는 용어인데요, 왜 염증반응시 ferritin이 증가할까?를 두고 고민을 했죠. Ferritin의 주된 역할 중 하나가 바로 redox active iron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염증반응시 ferritin이 높아지는 상황이라는 것은 결국 redox active iron이 그 시점에서 체내에서 발생하는 상황이라고 상상해보았습니다. 당뇨병은 혈중 ferritin이 증가해 있는 대표적인 만성질환중 하나이기 때문에 특히 당뇨병환자들은 redox active iron이 많을 것이고 따라서 이 환자들이 비타민 C를 보충제로 먹으면 오히려 부작용이 있을 것이라고 가설을 세웠습니다.
 
 
이 가설은 미국에 있을 때 Iowa Women’s Health Study라는 코호트 자료로 검증해보았는데 예상대로 참 잘 맞아 떨어지더군요 (1). 당뇨병이 있는 사람들이 비타민 C를 보충제로 섭취한 경우 향후 관상동맥질환이나 뇌졸중으로 사망할 위험이 2~3배정도 증가하더군요. 그렇지만 음식으로 먹는 비타민 C는 그렇지 않구요. 또 당뇨병이 없는 사람들은 보충제로 먹으나 안 먹으나 별 차이가 없었구요. 이 논문은 처음에 Circulation이라는 심혈관계질환쪽의 top journal 에 submission했는데요, 비타민 C megadose 요법을 주장하는 Linus Pauling Institute의 연구자였던 reviewer와 1년 넘게 4차례 이상의 길고 긴 공방이 오고 간 끝에 결국은 reject이 되었던 뼈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죠. 당뇨병환자들은 redox active iron이 많을 것이라는 가설은 국내로 돌아와서 국내 당뇨병환자들을 대상으로 검사해서 발표했었습니다 (2).
 
 
   아시다시피 거의 대부분 만성퇴행성질환들이 결국은 만성염증성질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질환을 가진 환자들이 비타민 C와 같은 항산화제를 복용할 경우 단기적으로는 별 문제가 없거나, 혹은 건강에 유리한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으나 장기간 지속적으로 복용할 경우 궁극적으로 redox active iron과 마주칠 기회가 증가할 것으로 생각합니다.또한 나이가 많아지면서 우리 체내의 모든 생리반응속도가 저하되기 때문에 생성되는 redox active iron에 대하여 우리 몸이 순간적으로 이에 대처하는 속도가 떨어지고 따라서 역시 비타민 C와 같은 항산화제를 장기적으로 복용할 경우 redox active iron을 마주치게 될 기회가 증가할 것으로 생각하구요. 당뇨병은 하나의 전형적인 예로써 선택한 질병이었을 뿐이고 많은 만성퇴행성질환환자들이 유사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2007년 JAMA덴마크연구팀들이 그 동안 수많은 연구자들에 의하여 시행된 항산화비타민 보충제에 대한 68건의 무작위임상실험연구 결과 전체를 종합하여 발표하였는데요 (3), 베타카로틴, 비타민 A,비타민 E을 복용한 군은 사망률을 오히려 유의하게 증가시켰고 셀레늄이나 비타민 C는 특별히 나쁜 것도 좋은 것도 없는 것 같다는 결과를 발표해서 일대 파란을 일으키게 됩니다. 연구자들 소속이 덴마크 코펜하겐대학소속이라서 일명 코펜하겐쇼크라고 부르는데요, 연구자, 언론, 제약회사, 대중들간에 아주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게 됩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우리 몸이 가졌던 정교한 항산화시스템도 여기저기 고장이 나기 시작합니다.그렇기 때문에 나이가 많아지면 외부에서 공급되는 항산화물질이 젊을 때보다 더욱 더 중요해진다고 하죠. 그렇지만 한 두 가지 항산화물질에 초점을 맞춘 보충제 형태의 대량 공급은 답이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에 근거하여 현재 알고 있는 여러 가지 항산화물질을 이리저리 섞어서 복합제로 만들어서 복용한다고 해도 결국은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안다는 그 대단한 과학지식의 얄팍함은 걸리는 시간만 좀 차이가 있을 뿐 언제나 들통이 나기 마련이죠.
 
 
   자연이 만들어낸 균형잡힌 항산화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던 다른 생명체를 나의 몸을 만드는 음식으로 먹는 것.. 인간이 실험실과 공장에서 만들어낸 어떠한 항산화비타민 보충제보다 더 우수할 것이라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을 것입니다. 특히, 식물은 위험이 닥쳤다고 해도 자기 마음대로 몸을 피할 수 없는 생명체로써 자신을 외부에서 공격해오는 미생물들과 싸우면서 전 생애 동안 활성산소를 유발하는 가장 중요한 환경 요인 중 하나인 강력한 자외선 속에서 생존하면서 번식하여야 하기 때문에 스스로 가장 효율적이고 정교한 항산화시스템을 발달시킬 수 밖에 없죠. 우리가 알고 있는 비타민뿐만 아니라 폴리페놀과 같은 파이토케미컬들도 이러한 항산화시스템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는데요, 폴리페놀의 종류만 해도 만가지가 넘는다고 합니다. 
 
 
   생물학에서 유명한 명제 중 이런 말이 있죠. 부분의 합이 전체가 아니라는.. 세포의 합이 조직이 아니며,조직의 합이 장기가 아니며, 장기의 합이 생명체가 아니다라는.. 음식이란 것도 살아 생전에는 우리와 똑같이 이 지구상에 존재했었던 하나의 생명체로서 영양소의 단순한 합이 결코 음식이 아니라는 것 너무 당연할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은 최근 food synergy라는 개념으로 재조명을 받고 있으며 음식을 두고 그 성분들을 하나하나 분석하여 그 중 특정 유효성분을 대상으로 이를 보충제로 만들겠다는 접근방법에 대한 비판이 서서히 나오기 시작하죠. 그렇지만 지금도 여전히 음식 속에 든 수 만가지 파이토케미컬 중에서 한 두 종류를 골라 일생의 연구테마로 잡고 애꿎은 쥐 잡아가면서 실험실에서 날밤 새는 연구자가 전 세계에 수 만, 수 십 만 명 일겁니다. 이러한 환원주의론적 실험연구의 진정한 가치와 의미에 대하여 연구자들이 다시 한번 진지하게 고민해볼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철분이야기 나온 김에 다음에는 21세기 임산부는 왜 엽산을 보충제로 꼭 먹어야 하나? 기회가 생기면 이 이야기도 좀 하고 싶어지네요. 20세기에 아기를 놓은 저한테는 아무도 엽산을 보충제로 먹어야 한다고 이야기하지 않았거든요^^.
 
참고문헌.
1.    Lee DH et al. Does supplementary vitamin C increase cardiovascular disease risk in women with diabetes? Am J Clin Nutr 2004;80:1194-200
2.    Lee DH et al. Common presence of non-transferrin-bound iron among patients with type 2 diabetes. Diabetes Care. 2006;29:1090-5.
3.    Bjelakovic G et al. Mortality in randomized trials of antioxidant supplements for primary and secondary prevention: systematic review and meta-analysis. JAMA. 2007;297:842-57.
 
 

이덕희
경북대학교 예방의학교실 교수
053-420-48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