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상익의 의학 파노라마](1) ‘인생칠십고래희’와 생명표

2016. 3. 10. 22:18건강 이야기


[황상익의 의학 파노라마](1) ‘인생칠십고래희’와 생명표

황상익 | 서울대 의대 교수·의사학


ㆍ핼리, 혜성만 발견한 줄 알았는데 ‘연령별 생명표’도 만들었네



토머스 머레이가 그린 핼리의 초상화. 핼리는 천문학자로 잘 알려져 있지만 생명표와 인구학의 발전에도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토머스 머레이가 그린 핼리의 초상화.

핼리는 천문학자로 잘 알려져 있지만 생명표와 인구학의 발전에도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요즈음 여러분의 걱정거리는 무엇인가요?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학생들은 시험과 진학, 20대는 취업과 결혼, 30~40대는 자녀 교육과 재산 형성을 주로 꼽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일생을 두고 보면 건강과 질병 문제를 빼놓을 수 없겠지요.

건강과 질병은 인류가 탄생한 이래 개인적으로나 가정적으로 가장 큰 문제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국가와 사회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해 국민의 건강과 질병 관리는 현대국가의 존재 이유라고 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더 크게는 흑사병처럼 질병이 문명의 진로를 좌지우지한 경우도 적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질병과 건강이 중요한 만큼, 그에 대한 인간들의 대응인 의술과 의학도 어느 시대든 소홀히 취급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과 같이 발전된 의술과 의학을 가질 수 있게 되었겠지요. 그렇다고 의술과 의학이 질병과 건강 관리에 절대적인 역할을 해왔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 ‘의학 파노라마’에서는 건강과 질병, 의술과 의학을 주로 역사적인 관점에서 살펴보려 합니다. 소재도 동서고금의 역사에서 많이 취할 것입니다. 이를 통해 단편적인 지식보다는 건강과 질병, 의술과 의학, 그리고 인간과 세계에 대한 통찰을 얻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이제 함께 파노라마 여행을 떠납시다.



▲ 연령별 사망률·기대수명 등 정보 담은 생명표, 핼리가 오늘날의 형태로 고안…

우리나라는 1980년부터 공식 작성 시작


   나이 70을 고희(古稀)라고 한다. 고희라는 단어는 중국 당나라 시대의 시인 두보(712~770)의 ‘곡강(曲江)’에 나오는 시구 “사람이 일흔까지 사는 일은 예부터 드물다네(人生七十古來稀)”에서 비롯된 것이다. 두보가 ‘드물다’고 일컬은 것은 수치로 나타내면 어느 정도였을까? 10명에 하나? 아니면 20명에 하나? 두보에게 물어보아도 명쾌한 대답은 듣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에게는 익숙한 인구통계학적인 개념과 자료가 없던 시절이기 때문이다.



■ 나이 70 ‘고희’를 맞은 인구 알 수 있는 방법, 생명표


   조선시대 임금 27명 중에서 고희를 맞은 이는 영조(1694~1776)와 태조(1335~1408) 둘뿐이다. 표본 크기가 너무 작아 통계적인 의미를 둘 수는 없지만 8%도 되지 않는다. 고려시대 임금들은 어떨까? 이 역시 34명 중에서 2명뿐이다.

오늘날은 어떨까? 지난해 말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2011년 현재 한국인 84%가 70세를 넘긴다. 여성은 91%, 남성은 78%다. 두보의 노래와는 반대로 70세까지 살지 못하는 게 드물어진 세상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라고 한 것은 ‘생명표’를 말한다. 생명표는 연령별 사망(확)률(1세 미만 아기의 사망률이 ‘영아사망률’이다), 연령별 기대여명(출생 시의 기대여명을 ‘평균수명’이라고 일컫는다), ‘연령별 생존자 수/사망자 수’ 등 건강 수준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 중요한 정보를 알려준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건강 수준을 잘 나타내는 지표로 영아사망률, 평균수명, 비례사망지수 세 가지를 꼽고 있는데 그 지표들을 생명표를 통해 읽을 수 있다.


   따라서 생명표를 보면 어느 시점의, 예컨대 2011년 한국인의 건강 수준을 파악할 수 있다. 나아가 시대별, 국가 간 비교도 할 수 있다.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1971년 62.3세, 2011년 81.2세다. 40년 사이에 거의 20세가 늘어났다. 2년에 한 살꼴로 늘어난 것이다. 가히 경이적인 증가 속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과 비교하면, 1971년에는 남녀 모두 8세가량 짧았는데 여성은 2003년부터, 남성은 2008년부터 OECD 국가 평균값을 넘어섰다.


   최근 들어 ‘건강수명’이라는 개념이 생겨났고 이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건강수명은 질병이나 손상으로 앓아눕거나 정상적인 활동을 할 수 없는 기간을 제외한 것으로, 평균수명보다도 건강 수준을 더 잘 반영하는 지표로 평가되고 있다. 앞으로는 평균수명보다 건강수명이 더 중요한 지표로 사용될 가능성이 있지만 과거의 건강수명을 구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리고 평균수명과 건강수명은 대체로 비례하므로, 특히 과거의 건강 수준을 파악하는 데 평균수명은 앞으로도 가치를 잃지 않을 것이다.


   왜 2013년 생명표가 아닌 2011년치를 언급한 것일까? 생명표를 작성하기 위해서는 우선 만 0세, 1세, 2세, 100세 등 각 연령별 1년간 사망률을 구해야 한다. 2011년에 태어난 0세 아기들의 사망률(0세 사망률, 즉 영아사망률)을 구하려면 2011년 12월31일생이 만 한 돌을 맞는 2012년 12월31일까지 관찰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2011년에 만 100세가 된 노인들의 사망률(100세 사망률)을 구하려면 이 역시 2012년 12월31일까지 지켜보아야 한다. 이에 따라 어느 해의 생명표는 그 이듬해 12월31일에 작성할 수 있다. 2012년 생명표는 2013년 12월31일, 2013년 생명표는 2014년 12월31일에야 작성된다. 우리나라 통계청은 대체로 12월 초에 그 전 해의 생명표를 발표한다. 11월 말까지의 사망신고 자료를 바탕으로 한 달가량 앞서 잠정적으로 작성한 생명표를 발표하는 것이다. 그리고 12월 말까지의 자료를 토대로 생명표를 확정한다.


   이제 생명표의 역사를 살펴보자. 생명표의 기원은 영국의 그런트(John Graunt, 1620~1674)가 1662년에 펴낸 저서 <사망 보고서에 관한 자연적 및 정치적 관찰>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런트는 자신의 저서에서 1603년부터 1658년까지의 런던과 햄프셔 교구의 사망 보고를 종합, 집계하고는 인구집단의 사망과 출생에 규칙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남성의 출생과 사망이 여성보다 많다는 점, 영아기의 사망률이 다른 연령층보다 높다는 점, 계절에 따라 출산력과 사망력에 변동이 있다는 점, 도시와 농촌 간 사망 수준에 차이가 있다는 점이 주장의 근거다. 그런트는 그 책에서 1604년부터 1661년까지 70여가지 사망원인에 따른 런던 시민의 사망자 수를 산출했으며, 생명표의 개념을 선보였다. 요컨대 사망과 같은 생명체의 현상에도 일정한 규칙성이 있으며, 그것을 계량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주장하고 적절한 근거를 제시한 것이다.



그런트의 <사망 보고서에 관한 자연적 및 정치적 관찰>에 제시된 데이터를 재정리해 나타낸 그래프.

그런트의 <사망 보고서에 관한 자연적 및 정치적 관찰>에

제시된 데이터를 재정리해 나타낸 그래프.



   그런트의 개념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킨 것은 우리에게 핼리 혜성으로 잘 알려진 영국의 천문학자 핼리(Edmond Halley, 1656~1742)였다. 사망원인에 따른 사망자를 집계한 그런트와 달리 핼리는 연령에 따른 사망자 수와 생존자 수를 계산했다. 생명표 개념을 창안한 것이 그런트의 공이라면 오늘날과 같은 생명표를 처음 만든 것은 핼리의 업적이었다. 핼리는 1693년 자신이 간사로 재직하던 영국 왕립협회의 학술지 ‘철학기요’ ‘브레슬라우시 출생 및 매장 기록으로부터 구한 인간 사망률’ 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핼리 이후 네덜란드의 스트뤽(Nicolaas Struyck, 1686~1769), 프랑스의 데파슈(Antoine Deparcieux, 1703~1768) 등이 생명표를 작성했으며, 1766년에는 스웨덴의 천문학자 바르겐틴(Pehr Wilhelm Wargentin, 1717~1783)이 정부 자료들을 광범위하게 활용해 정확도가 높은 생명표를 작성했다. 바르겐틴 등의 생명표를 계기로 구미 국가들은 빠른 경우 18세기 후반, 늦어도 19세기부터 국가가 주도해 생명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공식적 생명표는 1980년 실시한 인구동태표본조사 결과를 이용해 작성한 1978~1979년도 생명표다(그 뒤 기존 자료들을 활용해 1970년부터의 생명표도 작성했다). 구미 국가들에 비하면 100~200년 늦은 셈이다.

국가기관의 생명표 작성에 앞서 주로 인구학자들이 여러 자료를 활용해 생명표를 작성했다. 일제강점기 경성제국대학 의학부 위생학교실의 일본인 교수 미즈시마(水島治夫)와 조선인 강사 최희영이 작성한 것이 효시다. 미즈시마는 간이생명표(5세 간격)를 경성부(1926~1930년, 1931~1935년)와 전체 조선(1926~1930년)의 조선인과 일본인을 대상으로 작성했다. 또한 최희영은 지도교수 미즈시마의 작업을 바탕으로 전체 조선(1926~1930년, 1931~1935년)의 조선인과 일본인을 대상으로 완전생명표(1세 간격)를 작성했다. 하지만 이들의 작업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역량이 부족해서라기보다는 그들이 사용한 일제 당국의 인구 및 사망 자료들이 불완전하고 부정확했기 때문이다.



■ 현재 한국인 84%가 고희까지 생존… 일제강점기 4배

   다시 고희 이야기로 돌아가자. 오늘날은 고희를 맞는 것은 전혀 뉴스거리가 아니다. 그에 따라 고희가 아니라 ‘고희 잔치’가 보기 드문 일이 되었다. 일제강점기 때는 어땠을까? 조금 전에 언급했던 최희영의 생명표를 살펴보자. 1926~1930년에 조선인 남자는 17%, 여자는 22%만이 고희를 맞을 수 있었다. 오늘날의 84%에 비해 4분의 1도 되지 않았다. 조선에 와서 살던 일본인들은 어땠을까? 70세를 넘기는 남성은 20%, 여성은 26%로 조선인들보다는 사정이 조금 나았지만 지금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같은 시기 일본 본토에서는 남성 24%, 여성 32%가 고희를 넘겼다. 이것만으로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일본인에게 식민지 조선은 일본 본토보다 건강에 더 해로운 곳이었다.

      

   두보가 언급한 ‘드물다’가 수치로 어떻게 표현될지 알 수 없지만, 두보가 살던 세상과 지금과는 너무나 다르다. 우리는 불과 몇 십년 전과도 크게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 그러면 지금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행복한 시대일까?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