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윤혜영의 문화산책] (11) 행복한 여자들 - 이철진

2016. 1. 22. 01:45美學 이야기



       [수필가 윤혜영의 문화산책] (11) 행복한 여자들 - 이철진 

       

            2015/09/25 08:17 등록   (2015/09/25 09:53 수정)







 







(뉴스투데이=윤혜영 선임기자)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일은 신선한 참가자미에 쏘맥 한잔 하는 일이다. 말이 잘 통하는 친구가 곁에 있으면 즐거움이 배가 된다. 다음으로 좋아하는 일은 깨끗이 청소된 집에서 조용히 책 읽기, 그리고 한적한 오솔길을 맑은 공기 마시며 걷기, 좋아하는 화가의 그림 구경하기, 가족들과 떠나는 여행이다.

그러고 보니 모두가 일상의 소소한 행복이다. 많은 선각자들이 말한다. 행복은 바로 곁에 있는거라고.

파랑새를 찾으러 떠났더니 파랑새는 결론은 집안에 있더라는 동화도 같은 뜻을 전한다. 그런데도 현대인들은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그렇다. 무언가에 몰두하고 있지 않는 상황에는 문득문득 외로움이 찾아오고 이어서 우울한 상념에 빠진다.

텔레비전을 틀면 나보다 더 젊고 이쁜 여인네가 비키니를 입고 멋진 몸매를 뽐내면 우울하고, 대륙처럼 넓은 집을 자랑하는 연예인들을 보면 나름 만족하며 살고 있는 내 집이 초라해 보인다. 명품백을 24개월 할인해준다는 쇼핑광고를 보면 잠시 살까말까 망설이다 채널을 돌린다.


   우리는 왜 소소한 것에 감동하고 사소한 것에 우울해 하는가?

나는 우리가 불행한 이유가 '욕망'과 '비교대상'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무언가를 가지고 싶고 성취하고 싶은 욕구가 있는데 그것이 충당되지 않으면 우리는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25평에 사는데 친구가 35평 아파트를 사면 내 신세가 문득 초라해진다. 비교되는 삶에 우리는 분개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감정들을 부추기는 촉매제는 무엇인가? 산업자본주의의 매스미디어들이다. 우리가 끼고 사는 텔레비전과 스마트폰에서 끝없이 소비를 권유하고, 그것을 취하면 남보다 나은 삶을 살고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그러나 그 기분은 잠시이다. 더 행복해지려면 끊임없이 소비를 해야 한다. 이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물질만능주의에 무릎꿇은 불쌍한 인간의 모습이다.


   삶이 우리를 괴롭히면 모든것을 내려놓고 훌쩍 떠나보자. 발로 흙을 밟고 신선한 공기를 맡으며 오래오래 걷다보면 나자신을 괴롭히던 문제들이 아무것도 아님을 느낄수 있을 것이다. 인간이 걱정하는 대부분의 일들은 실제로 일어날 확률이 거의 없다지 않는가.

미술관을 찾아 스탕달 신드롬을 느껴보는 것도 짜릿한 일탈 중의 하나이다. 우리는 잘 사는 것보다, 어떻게 행복하게 살아갈 것인가를 더 고민해보아야 한다. 거대한 대자연 앞에서 고작 백년도 못사는 인간의 존재는 얼마나 미미한가. 즐겁게 살기만 해도 짧은 세월을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게 가치있게 살 것인지에 고민해보자는 말이다.

오늘은 이철진 화백의 '행복한 여자들'이나 마음껏 감상하면서 아무 생각없이 지내련다.
작가가 붙인 예명 "춘심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춘심이들이 자신을 더 사랑하고 아꼈으면 하는 마음이다.


 
 








































· 이철진 화백 (artest20@hanmail.net)

· 영남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 졸업
· 영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업
· 개인전 29회
· 포항예술고등학교 미술과 재직
· 동국대학교 미술대학 출강
· 신라대학교 외래교수
· 대구시 미술대전 심사위원 역임
· 한국화동질성 회복전 회원
· 대구광역시 미술대전 초대작가
· 포항 MBC미술 실기대전 심사위원


   스케치하듯 거침없이 선묘해 들어가는 그의 인물은 현실감을 쫓는, 현실의 구체적인 상황 속에 있는 인물이 아니라 현실을 뒷받침해 줄 배경이 배제된 채 공간 속에 던저져 있다.
그것에서 이철진의 인물이 묘사에 목적이 있기 보다 내적 의미의 표출이나 심상의 또다른 표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화면 속의 인물이 같은 모델을 쓴 듯 거의 같은 얼굴로 나타나거나 탈을 씀으로 인물의 개별적 구체성이 나타나지 않는 데서도 그런 의지를 읽을 수 있다.

탈춤의 태용도 현당성보다는 얼굴을 가리거나 익명의 얼굴로 개별성을 부하시키는 그의 전형적 인물상일 뿐이다. 같은 얼굴이나 탈을 쓴 얼굴이란 자아를 감추고 자신을 대체하는 이중적 감춤은 분명 인물의 실재성이 아니라 관념성의 표현이다. 인물이라는 개인적 인격에의 관심이 아니라 인간자체에 대한 이해의 추구이다. 그것은 곧 인물의 사건을 통한 현실적 묘사가 아니라 화면에서의 구성적 긴장을 통해 인물을 재체험하는 것이다.


   화면의 구성적 요인으로 인간을 만남으로 화면 내의 요인으로서 인간을 만나는 새로움의 추구이다. 구성적 요인에 의해서 생기는 인체의 기묘한 긴장과 차이성에 주목하고 인간을 구성적 요인으로 해체해 보는 것이다.

말하자면 인격체로서, 개인의 삶이나 세계에 대한 반응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것으로 인물화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인물이라는 추상성, 인간이 한 공간 속에 처해 있을 때만 드러내는 내적 긴장, 드라마가 아니라 본질적인 인간의 공간성 따위에의 관심이다. 그의 인물이 대부분 눈을 감고 있거나 실눈을 뜨고 있는 것도 표정의 구체성을 제거함으로 현실의 인간으로 읽기 보다 인간, 혹은 인물이라는 그 자체의 관심을 끌어내고자 한다.

그럴 경우 인물의 개별성보다 인물의 전형이 필요한 것이다. 말하자면 그의 인물은 인격체로서 인물이기보다 기호에 가까운 개념어이다. 삶의 애증을 인물을 통해 읽거나 생활의 구체적 체험을 형상화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물의 전형에서, 탈을 쓴 표정에서, 눈을 감고 바깥으로의 시선을 차단함으로 그가 도달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화면의 구성을 통해서 드러나는 인물의 순수조형성의 체험, 즉 본질적인 것에의 시선이 아닐까. 스케치하듯 인물이 선묘되고 그 선의 흔적을 채색이 먹어 들어가고 그 위에 다시 약화된 인물이 분방한 선과 채색으로 문질러 놓은 듯 화면을 차지하는 과정은 본질적인 것에의 시선의 응축이 아닐까.

인체를 싸고 있는 선의 독특한 울림을 통해 본질을 묻고 있는 것은 아닐까. 미완의 선과 채색, 구성적 배려로 등장하는 약간의 약간의 소도구들은 그의 작업이 특별한 상황의 묘사가 아니라는 점을 두드러지게 한다. 현실의 인물이 아님을 강조한다. 탈로 가린 얼굴, 잠들었거나 눈을 감고 있는 표정, 똑같이 연지를 찍은 얼굴들은 분명 현실적 시간과 공간의 대상이 아니라 내적 응시의 기호일 뿐이다.


   배경없이 드러나는 인물의 무시간성은 직관에 의존한 것으로 사건보다 본질에 가깝다. 실내의 인물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도 정물을 보듯 인물을 보고 정물이 놓이 듯 화면 속에 인물을 배치해 봄으로 캔버스라는 공간 안에서 새롭게 읽혀지는 인간에 대한 체험이 된다.
한 공간 안에서 구조를 해체된 인물로 인간이 제시될 때 우리가 만나는 것은 인간이라는 본질적 체험이 될 수 밖에 없다. 사건과 개별성이 괄호로 묶여 버린 상태의 인간인 것이다.

자기응시의 의지로 가득한 이철진의 작업은 분명 삶을 묻고 그것을 추구하는 것이지만 표현의 마당으로서 유념해야 할 부분도 없지 않다. 인간에 대한, 삶에 대한 본질에의 관심이 절실한 것이긴 해도 꼭 같은 얼굴이 갖는 도덕성은 스스로의 감성의 풍부함을 묶어버릴 수 있고, 생각의 깊이나 폭을 얼굴처럼 좁혀 버릴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사건이나 드라마를 통해 인물을 조명하는 것이 아니라 화면의 구조를 통해, 인물을 구조적 요인으로 해체하는 과정을 통해 조명할 때 그 자신의 삶의 체험이나 이념이 삶의 깊이와 역사를 얻지 못할 때 가벼운 형식성에 빠질 위험이 언제나 있다는 것이다. 치열함이 퇴색될 때 급격히 관념의 유희로 그의 작업이 비칠 수 있다는 점을 항시 염두에 두어야 할 것 같다. 삶의 본질에 접근하는 통로는 얼마든지 있고, 미술이란 그 다양함을 속성으로 함을 작가가 모를리 없기 때문이다.

- 미술평론가 강선학, 이철진의 개인전 서문 中에서 -

 

<글 : 수필가 윤혜영
geo0511@hanmail.net  >


계명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남 통영 출생

계간 '문학나무(발행인 황충상 소설가)'겨울호를 통해 신인문학상 중 수필 부문 수상자로 등단.
주요 저서로 '우리는 거제도로 갔다'. '화가들이 만난 앙코르와트' 외 항공사와 증권사, 신문사 및 문화예술지 등 다수에 문화칼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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