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윤혜영의 문화산책] (10) 돌아갈 수 없는 날들의 풍경 ‘전영남 화백’

2016. 1. 22. 01:36美學 이야기



       [수필가 윤혜영의 문화산책] (10) 돌아갈 수 없는 날들의 풍경 ‘전영남 화백’


2015/09/23 07:12 등록   (2015/09/23 07:24 수정)





(뉴스투데이=윤혜영 선임기자)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낙동강아 잘 있어라, 우리는 전진한다아아~"


   열띄게 노래를 부르며 고무줄놀이에 몰입하고 있는데 골목 틈새로 삐져나오는 엄마의 목소리

"영이야! 밥 먹어라"

부름에 대답하기도 전에 여기저기서 새끼들을 불러모으는 목소리

"종팔아! 저녁 먹어라"

고무줄 놀이는 팽개쳐버리고 아무렇게나 신발을 벗어던져 방으로 달려들어가면 동그란 개다리 소반에 차려져 있는

어머니의 밥상.


 



두부를 넣은 된장찌개에 열무김치, 묵은 김장김치에 볶은 돼지고기. 보리를 군데군데 섞은 양재기에 가득 담긴 사람수 만큼의 밥그릇들. 형제자매들은 머리를 맞대고 밥 퍼넣기 바쁘다. 맵다고 연신 물을 들이키면서도 볶은 돼지고기를 향한 젓가락질은 전투적이다.

밤이 이슥하면 모기장을 치고 베개를 베고 나란히 눕는다. 동생은 아빠 옆에, 언니는 엄마 옆에.

다음날 해가 뜨면 고양이 세수를 하고 골목길의 동무들과 책가방을 메고 국민학교로 간다. 우리들은 이렇게 자라왔다.


 
 






   인간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장편적 기억은 점점 더 또렷이 기억하고, 단편적 기억은 잘 잊는다. 우리의 뇌가 슬프거나 지루했던 일상의 단편들은 망각의 상자로 넘겨버리고, 스토리가 이어진 장편적인 기억들은 깊숙히 각인시키기 때문이다.

늙어가면서 어린 시절과 학창시절의 기억이 더욱 생생해지고 즐거운 것은 성인이 되면서 인생은 더이상 '즐겁고 재미있는'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체득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난 것들은 슬프고도 애틋하다. 세월은 노력한다고 되돌릴 수도 돌아갈 수도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영남 작가는 지난 시절들의 '아련함'을 그린다.

옹기종기 모인 슬라브 주택에는 담이 없다. 너나없이 서로를 드나들었던 그 옛날엔 지금처럼 거대한 콘트리트 담벽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나마 골목길엔 중학생 아이가 고개를 기웃거릴 수 있는 돌담이 고작이었다.

푸르게 어스름이 깔리면 방안에는 노란 불이 켜진다. 그 아래서 밥도 먹고, 숙제도 하고, 어머니들이 양말도 기웠던 백열전구다. 메주콩을 띄워 장을 담아 먹었던 시절, 살구꽃이 피어 새로운 계절을 환기시키는 풍경.

연탄장수가 리어카에 연탄을 담아 집집마다 배달하던 장면.
모든 것들이 이미 지나버린 기억이지만, 가슴 속에 간혹 피어나는 힘들었지만 정다웠던 추억의 단편들이다.







   이제는 시골에 가도 이런 풍경들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전쟁과 분단 이후 갑자기 근대화가 들어서면서 "낡은 것은 깨부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자"라는 기치 아래 많은 옛것들이 자취를 감춰버렸다.

전통은 단절되고 정(情)은 질퍽하고 거추장스러운 것이 되어버렸다. 오로지 혁신과 발전의 구호만 부르짖으며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고유의 정체성을 잃고 전세계 어느 대도시에서나 볼 수 있는 삭막한 빌딩숲의 획일화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그때는 그래도 열심히 노력하면 먹고사는 것은 문제가 없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개천에서 용난다'라는 문장은 시대에 맞지 않는 말이 되어버렸다. 빈익빈 부익부, 재벌들의 세습, 상대적 빈곤감, OECD국가 중 최고를 자랑하는 자살률, 퇴행하는 정치와 불안한 경제상황에 밀려 점점 더 두터워지는 도시의 빈곤층들은 타고난 금수저들을 부러워하며 흙수저의 현실을 저주한다.






  거대한 쇠문을 닫아건 아파트의 단절 속에서 현대인들은 현실과 미래가 두렵다.
매스미디어들도 자본주의 경제사회에서 가치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더 좋은 차와, 더 넓은 평수의 아파트, 신모델의 가전제품들을 구입하기를 끊임없이 떠들어댄다.

만성화된 강박증을 앓는 현대인들에겐 속도보다는 '여유'를 경쟁보다는 '쉼'이 필요하다.
그리고 돌아보기와 추억하기를 통해 삶을 온화하게 끌어안을 수 있는 마음의 휴식을 권하고 싶다.

전영남의 돌아갈 수 없는 풍경들은 그래서 더욱 특별하다.
잃어버린 유년을 소환하고 지나친 꿈들을 환기시키기 때문이다.


 


· 전영남 화백 (jyn7407@hanmail.net)

· 2012 kPAM대한민국 미술제 우수작가상 수상
· 한국전업미술가 협회 분과위원장
· 대한민국 현대 한국화회 운영위
· 개인전 9회, 단제전 220회

 

<글 : 수필가 윤혜영
geo0511@hanmail.net  >


계명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남 통영 출생

계간 '문학나무(발행인 황충상 소설가)'겨울호를 통해 신인문학상 중 수필 부문 수상자로 등단.
주요 저서로 '우리는 거제도로 갔다'. '화가들이 만난 앙코르와트' 외 항공사와 증권사, 신문사 및 문화예술지등 다수에 문화칼럼 연재.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