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윤혜영의 문화산책] (14) 근대화 골목 - 대구

2016. 1. 24. 02:14美學 이야기



       [수필가 윤혜영의 문화산책] (14) 근대화 골목 - 대구 

       

2015/10/02 09:07 등록   (2015/10/02 09:07 수정)

  




(뉴스투데이=윤혜영 선임기자)
전쟁이 막 끝난 1954년, 모두가 어렵게 살던 시절에 우리 가족 다섯 식구 역시 단칸 셋방에서 힘들게 그 세월을 넘겼다. 대구에서 실제로 ‘마당깊은 집’ 아래채에 세들어 살며 어머니가 바느질 일로 우리 형제 넷을 길렀다.

당시 이 나라 백성 모두가 하루 세끼 밥 먹기도 힘들었던 때였지만, 지금 와서  ‘마당깊은 집’시절을 돌이켜보면 우리 식구는 물론이고, 가난한 이웃들이 이른 봄 들녁의 엄동을 넘긴 보리처럼 안쓰럽고 풋풋하게 떠오른다.

가난한 절망으로 가는 길이 아니라 희망으로 가는 길로, 마당이 깊었던 집의 남루한 삶은 언젠가 언덕 위의 집처럼 푸른 하늘과 더 가까이 살고 싶은 사람들의 꿈이 서렸던 집으로 그리고 싶었다.

세월이 변한 지금도 집 없고 가난한 사람들은 그런 꿈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하기에 오늘의 슬픔과 고단을 힘겹게 이겨내며 열심히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 김원일, 마당깊은 집 서문中 -

   진골목에 위치한 ‘정소아과 의원’은 1937년 일제시대에 지어진 2층 양옥건물로 김원일 원작의 ‘마당깊은 집’의 촬영지로 사용되었던 곳이다.



 



   예술가는 시대를 기록하는 자이다.
‘마당깊은 집’은 6.25전쟁 이후 대구 서민들의 고통스러운 삶을 그렸고, 그 와중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몸부림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소설가 자신이 몸으로 겪어낸 1950년대 격동의 세월이 숭고한 예술작품으로 재탄생되었다.






   근대화 골목의 벽화.
낙후된 구도심에 벽화그리기가 나라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3.1계단이라 불리는 이 긴 계단은 1919년 3월 8일 계성, 신명, 대구고보 학생들이 만세를 부르고,
대구 3,1운동에 참여하기 위해 일본순사들의 감시를 피해가면서 서문시장 큰장터를 향해 달려갔던 길이다. 사실적인 투쟁의 역사가 서려있는 뜻깊은 계단이다.






   청라언덕 근처에 있는 이 사과나무는 당시 대구 동산의료원 병원장 존슨 박사 서양 사과나무 72그루를 들여와서
한국 최초로 이곳에서 재배했다는데, 지금 있는 이 사과나무는 그 나무의 자손목으로 아직도 새빨간 사과열매를 메달고 있다.






   근대화골목을 어느정도 둘러보았다면 ‘미도다방’에서 잠시 목을 축이며 쉬어가자. ‘
미도다방’도 골목만큼의 역사를 간직한 곳으로 대구의 많은 예술가들이 찾았던 공간이다.

대기업 프렌차이즈의 획일화된 커피숍이 동네와 골목까지 잠식하고 있는 상황에 이런 역사적인 다방을 만나는 일은 즐겁다. 30년의 시대상황을 간직하고 있는 고마운 문화유산이다.

좀 더 관심을 가지고 보존해가면 프랑스 파리의 ‘마고’나 ‘플로르’ 같은 유명까페처럼 사람들이 즐겨찾는 관광명소가 될지도 모르겠다.






   커피 대신 마셔보는 쌍화차. 미도다방의 가장 인기메뉴.
견과류와 고소한 계란 노른자까지 올려져 한끼 간식으로도 충분하다.






   약전골목.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은 약전골목은 근대의 풍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약650m 도로 양편으로 한의원, 인삼사, 약업사, 제분소, 한약찻집 등이 즐비하게 들어서 약령시를 형성하고 있다.

은은하게 풍겨오는 한약냄새가 좋다.
약령시 한켠에는 한약박물관도 있으니 시간이 남으면 둘러보는 것도 좋을듯하다.






   1910년경에 붉은 벽돌로 지은 서양식 주택으로 미국인 선교사 ‘챔니스’ 가 거주하던 곳. ‘
쳄니스’ 주택 옆에는 지은지 백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선교사 ‘블레어’의 주택도 있다. 벽돌담을 타고 올라간 담쟁이 덩굴과 정원의 풍경이 이색적이다.





   선교사 주택이 있는 옆에는 청라언덕이 있고, 가곡 "동무생각"의 무대 청라언덕에는 작곡가  ‘박태준’의 노래비가 세워져있다.





   "오빠생각"은 1926년 방정환 선생의 어린이 잡지에 실린 글로 13살  ‘최순애’의 동시에 박태준이 곡을 입혔다.
또 당시 15살 소년이었던  ‘이원수’가 쓴 "고향의 봄"도 실려있었는데, "고향의 봄"은  ‘홍난파’가 작곡하였고, 이후  ‘최순애’와  ‘이원수’는 서로 편지를 주고 받다가 결혼에까지 이르렀다.

문화와 전통은 민족과 국가의 정체성을 간직하고 있다. 도시가 재개발되면서 경쟁에서 뒤쳐진 쇠락한 주거지역들은 불도저로 밀어버리고 아파트와 다목적 빌딩을 건설한다.

콘크리트 아파트의 난립과, 높이에 집착하며 하늘을 향해 키를 높이는 마천루들. 네모난 구역의 틀안에서 개미처럼 바삐 움직이는 현대인들. 세계 어느 도시에서나 볼 수 있는 획일화된 풍경들이다.

대한한국은 역사의 정체성과 고유함을 잃은 삭막한 회색도시로 변해가고 있다. 지난 세월은 먹고 살기에 바빠 어디 눈 돌릴데 없는 각박한 삶이었다. 현대는 먹거리는 과거에 비해 훨씬 풍족해졌으나 사람들의 정서는 과거에 비해 더욱 피폐해졌다.

이제는 발전과 도약보다 "뒤돌아보기와 추억하기"를 권하고 싶다.
부수고 새로짓는 도시정책보다 이미 있는 곳을 보존하여 재개발을 하는 ‘도시재생프로젝트’도 각 지역의 지자체들이 많이 시행하고 있다. 전통과 문화를 잃어버린 민족에게서 가치있는 미래를 기대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온고지신(溫故知新), 옛것에서 다시 미래를 계획한다. 세계화시대에도 가장 가치있는 일은 "민족문화의 보존과 계승"이다.


<글 : 수필가 윤혜영
geo0511@hanmail.net  >



계명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남 통영 출생

계간 '문학나무(발행인 황충상 소설가)'겨울호를 통해 신인문학상 중 수필 부문 수상자로 등단.
주요 저서로 '우리는 거제도로 갔다'. '화가들이 만난 앙코르와트' 외 항공사와 증권사, 신문사 및 문화예술지 등 다수에 문화칼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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