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윤혜영의 문화산책] (15) 홍경표의 그림일기

2016. 1. 24. 02:31美學 이야기



       [수필가 윤혜영의 문화산책] (15) 홍경표의 그림일기 

       

2015/10/05 08:42 등록   (2015/10/05 08:43 수정)

  


(뉴스투데이=윤혜영 선임기자)

        쾌백의 인상






낯선 곳에서의 강렬한 인상은 작업의 충동으로 이어진다.

   이 작품은 그 결과물이지만 화폭에 자리하기 까지에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작업으로 이끄는 인상은 강렬했지만 지금까지의 작업과는 다른 느낌이 필요한 대상이었다.

나의 작업방식은 즉흥적이지만, 어떤 작품은 미적감흥을 바탕으로 한 즉흥성과 이성적인 사상이 상치되어 두고 두고 보면서 삭히고 되새김질을 한다.


감성과 이성의 아슬아슬한 줄타기이다.

이 작품은 즉흥성을 바탕에 두고 삭히고 되새김질하고 관조하는 시간이 긴, 시작한 시점에서 오랜 시간이 걸려 완성한 작품이다.



 

   시원은 비를 타고 내리고,
어두운 골목 늙은 사내의 형용할 수 없는 울부짖음은 폐부를 찌르고,
취객의 그림자는 젖는다.





그림은 쓰레기가 될 수도 있고 작품이 될 수도 있다.
쓰레기와 작품의 차이는 아주 작은 차이다.
허나 그 차이는 범접할 수 없는 차이다.
나는 훗날 내가 배출한 쓰레기들을 수거하러 다닐지도 모른다.







   담백한 맛이 사라진 식당 음식을 먹고 나면 커피를 찾게 됩니다.
식재료 본연의 풍미가 사라지고 조미료와 소금을 과하게 사용하고, 진한 양념만이 난무하는 음식을 먹으며 '왜'라는 단어를 곱씹습니다.

조카의 모습을 몰라봤습니다. 지나가는 아이들이 거의 전부 쌍꺼풀에 코가 오똑합니다.
지금은 사이보그 세상이고, 방송도 병원도 세상도 이를 주목합니다. 점점 자연을 거슬러 살고 있습니다.







재벌은 죽어서도 죽지 못하고,
살아서도 제대로 살지 못하니, 재벌이 되지 않은게 축복이다.

이 여름을 시원하게! 하하하






   애매하고도 잡아내기 힘든 다양성을 가지는 사람이 예술가다.

신던 구두에 술을 따라 마시고, 청혼을 하면서 생선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오물을 뒤집어 쓰고, 귀를 자른 자화상을 그리고, 성기에 붓을 묶어 그림을 그리고, 그림을 뒤집어서 걸고.....

해결하지 못하는 것들을 붙잡고 애를 쓰고, 현실적으로 손해가 되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신념을 위해 불섶으로도 기꺼이 뛰어들고, 검증되지 않고 확정되지 않은 것들을 떠맡아서 달려가고, 지는 게임이란 것을 알면서도 그 게임을 기꺼이 즐기는 사람, 이런 말도 되지 않고 곤란한 난제들을 피하지 않는 사람, 그들은 예술가다.

그들의 해석은 시간이 지나야 한다. 예술가들의 행위는 언제나 진행형이다.







   불확실한 미래에 희망을 걸 것인가, 아님 과거의 아름다운 추억을 망치지 않는 쪽을 택할 것인가는 많은 이들의 고민이다. 나는 불확실한 미래를 선택했고, 그 댓가로 어려운 여정을 헤쳐 나가고 있다.
그렇다고 나의 아름다운 추억이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살까 말까하면 말고
할까 말까하면 하고
갈까 말까하면 가라고 했다.

떠나요.







   달동네는 나비가 사는 곳이다.

동, 서를 막론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동네가 달동네다. 달동네는 거의가 높은 지대에 위치해서 도로가 발달하지 않아 도보와 차량운행과 운반이 불편해 상권도 발달하지 않고 주택지로도 호응도가 낮아 땅값이 싼편이다.

근대문명이 앞선 유럽의 현재는 대로변에서 떨어져 자신들만의 삶을 즐기기에 호젓하고 전망이 좋은 달동네가 택지로서의 최고의 가치를 가지며 땅값 또한 비싸다.


   우리나라가 제법 경제규모가 큰 나라라고 해도 아직 달동네 땅값은 평지의 수준에 비하면 많이 차이가 나는 편이다. 아마도 살아가는 삶의 방편과도 연관이 있을 것이다.

돈에 대한 사고방식이 대부분의 유럽인들은 목적이 아니라 삶을 살기 위한 수단이고 우린 돈이 목적인 사회적 분위기가 팽배하다. 유럽의 택지는 호젓하고 전망좋은 것이 비싸고, 우리는 반대로 돈벌이가 용이한 대로변이 비싼 것이다.

우리 스스로가 삶을 즐기는 인생의 주인이 될 수 있을때 달동네의 가치는 높아질 것이고, 그때서야 달동네는 아름답게 날아오를 것이다.


 



   입체냐 평면이냐 구상이냐 비구상이냐는 작품을 표현하는 방법의 문제고,
작가가 작품을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예술 본질의 접근이다.

본질이라는 것은 순수와 진실에 가까운 것이고, 나는 이것을 그리고자 하는 대상의 원초적인 색과 생명성에 두었다.



 



   기다리던 비가 옵니다.

빗소리가 잠을 깨웁니다.지붕이 칼라강판이라 불리우는 재질이라서 작은 비에도 소리가 요란하여 곤한 잠을 깨우기도 합니다. 지금은 제법 익숙해졌지만 예전에는 곤란한 소음이기도 하였습니다.

허나 오늘의 빗소리는 사랑스런 연인의 음성처럼 이렇게 반가울 수 없습니다. 지붕에 부딪히는 빗소리의 호오가 마음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 아침입니다. 이 세상 근심 씻어가고, 초록이 춤을 추는 그날을 위해 내 마음에 씨앗 하나 심습니다.






   그리고 지우고,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 되풀이 하는 과정이 작품이 되고, 그 작품이 작가를 만든다.

수행이다.




 



   자연에서 얻은 형과 색은 무너져 화가의 토악질로 되살아나고,
꿈틀거리는 형과 색은 리듬을 타고 푸른 종소리로 울려 퍼지리라.







   돈이 되는 일은 하고, 돈이 되지 않는 일은 하지 않는 것이 자본주의의 논리다.
이와 같은 논리가 점점 심화되고 있다. 많은 토종 씨앗들과 종자들이 사라지고, 가족이 해체되고, 인문학이 사라지고, 심지어 어떤 대학에는 국어국문학과가 사라졌다. 먼 미래에는 무엇이 남아있을까?






   예술은 우리들의 상상력과 감수성을 자극하여 다른 세계로의 여행을 재촉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태초부터 품에 안고 있었던, 지금은 우선 순위에서 밀려나 잊고 지내는 삶의 진실입니다. 예술은 삶의 진실로 떠나는 여행입니다.







   가지가 무성한 나무라 해도 뿌리가 깊지 못하면 겨울을 나지 못할 것입니다.
무릇 세상의 이치가 그렇지요.


 



   나의 작업은 자연의 형과 색에서 작업의 동기를 찾지만 그것들이 발화되어 또 다른 조형과 색으로 치환되어 표현된다. 그것은 나의 자연이다.

캔버스에서 표현되어지는 작업들은 나의 경험과 깨달음의 산물이겠지만 천성적인 기질에서 표현되어지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정교한 선보다는 어눌하고 거친 선을 사랑하고, 수평과 수직보다는 동적인 요소가 강한 사선을 좋아한다. 또한 작업과정에서 생기는 실패한 선이나 색을 사랑한다.

그러한 것들을 다시 뭉게고 구축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중첩의 효과는 나의 화폭을 풍부하게 만들고, 내 밑바닥의 감정을 끄집어내고, 내가 모르는 새로운 곳으로 나를 이끈다.



 



   경주 남산에 가면 수많은 불상이 있다.
세월을 온몸으로 겪은 불상에는 제작 당시에 가지지 못한 아름다움이 있다. 그것은 오랜 세월을 자연과 함께 한 시간이 갖는 아름다움이다.

작가들도 그러하다. 젊은 작가에서는 도저히 나오지 못하는 아름다움이 있는데 그것은 연륜이 가지는 무심이다. 무심은 놓아버림인데 그것은 치기어린 젊은 작가에게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자연에 순응하는 아름다움이다. 이것은 옳고 그름이 아니다.



 

죽변항


   자연스럽다는 말은 이치에 맞고 당연하고, 물 흐르듯이 흐르고 이상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자연스러운 자연을 그대로 화폭에 표현하는 것은 필히 부자연스러움을 동반합니다. 자연스럽고 광활한 자연을 작은 화폭에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며 입체적인 사실을 평면에 표현하는 자체는 이미 추상일지도 모릅니다.

자연을 대상으로 작업을 하는 구상작가의 애로점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화가는 그 어떤 대상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리고자 하는 대상을 통해 그림을 그려야 할 것입니다. 산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산을 통해 그림을 그려야 할 것입니다.

좋은 작품이란 편하고 자연스러워야 합니다.
대상의 재현이 아니라 대상을 통해 자신의 화폭 안에서 또 다른 자연을 생성하는 절대자로 존재할 수 있을 때 화가일 것입니다.






   제주의 색,
나의 어린시절은 산과 들과 강과 바다가 놀이터였고, 소, 닭, 돼지, 강아지, 꽃과 벌, 새 그리고 자연의 온갖 것들이 장난감이었다.

자연을 벗 삼아 놀던 어린시절이 있는 사람이라면, 꽃 피고 새우는 계절에 꽃을 탐하는 벌을 잡으려다 벌에 한번 쏘여 본 적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들은 삶 속에서 자연의 섭리를 배우며, 깨우치며 살아갔다.

작금의 이 땅은 벌에 한번 쏘여 본 적 없는 자들이 나라를 통치하며 자연의 섭리는 무시하고 효율성을 무기로 자본의 등에 업혀 살고 있다.
벌에 한번 쏘여 본 적 없는 자들이 자연과 사람이, 사람과 사람이 더불어 사는 세상을 알까?

이들이 리더인 사회가 서민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자연을 어떻게 대하는지 지금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대,
어디로 가는가?


 



   '영감아 땡감아 죽지를 말아라, 봄보리 개떡에 꿀발라 줄께'

우리네 옛 구전가요입니다. 남편에 대한 애정과 오래도록 같이 살자는 소망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매번 사먹는 음식이 입에 맞질 않아 아내에게 부탁해서 도시락을 싸서 다닙니다. 지인들이 간이 배밖으로 나왔다고 하네요.

일식님도 아니고 이식군도 아니고 삼식이놈이랍니다.

아~ 이것이 뭐시당가? 봄보리 개떡에 꿀발라 주는 것도 아닌디.



 



   이 땅의 모든 지혜는 드러나 있다.
다만 자신의 생각으로 세상을 재단하기에 미명 속에 가리워져 있을 뿐이다. 그 어둠을 벗는 과정이 화가에게는 그림을 그리는 과정이다.

그 과정은 수행이다.
대상을 벗어나 마음을 그리는 것이다.
우주의 조율이다.



 
 




화실풍경1
 

   더 멀리 보고, 더 깊이 보고, 더 넓게 보자.
이것은 나의 안목과 통찰력의 근원이다.



 





화실풍경2


   화가는 그리는 것이 운명이고 숙명이다. 자신이 살아온 환경과 문화, 시대정신에 입각해 無의 캔버스 위에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다. 손가락에 묻어날 것 같은 생생한 마티에르. 하얀 캔버스 위에서 거칠게 뭉게지는 물감들.

붓 아래서 피어나는 색색깔의 인물과 산수들.
오직 홍경표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독창적인 세계.

우리는 화가가 재현한 세계를 보고 자신의 이상과 삶을 투영시킨다.
발견과 재발견이다. 삶이 그다지 즐거운 것이 아니고, 인생은 모든 이들이 걷는 길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슬프다.

끊임없이 존재를 재확인하고자 한다. 정신과 육체의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어한다.
훌쩍 떠나기도 하고, 예술작품으로 깨우침을 얻으려 하기도 한다. 책을 읽고 그림도 본다.


   어느 날 우리가 어느 화가의 아름다운 그림을 보며 일상의 피로를 잠시 잊고, 고요한 명상에 빠져들 수 있다면 화가는 이미 그의 임무를 다한 것이다.

나는 홍경표의 그림속에서 여행을 떠나고 시를 읽고 쉼을 누린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이미 타인의 마음까지 읽어낼 수 있는 고수의 경지에 이른 듯하다.





홍경표
 
개인전 34회(서울, 대구, 부산, 일본, 중국)

단체전

- 구상대제전(한가람미술관)
- 북경관음당아트페어
- 국제아트페어(코엑스,벡스코)
- 한중수교17주년기념초대전(상상갤러리)
- 골든아이아트페어(코엑스인도양홀)
- 대한민국미술인의날특별기념전
- 영남일번지구상회화전
- 구상회화제
- 송울진전/신작전/신미술전/대한민국회화제/초대전및단체전250회

수상

- 대한민국미술대전특선
- 경북미술대전최우수상
- 신라미술대전최우수상

작품소장처

한전프라자, 포항시립미술관, 부산상호신용금고, 울진경찰서, 외교통상부

현재

- 한국미협, 신작전, 신미술회, 회화제, 구작회, 울진미협, 경북미술대전 초대작가, 대한민국 미술대전 초대작가.
- 신라미술대전 심사, 나혜석미술대전 심사, 울산미술대전 심사, 대전미술대전 심사


<글 : 수필가 윤혜영
geo0511@hanmail.net>

계명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남 통영 출생

계간 '문학나무(발행인 황충상 소설가)'겨울호를 통해 신인문학상 중 수필 부문 수상자로 등단.
주요 저서로 '우리는 거제도로 갔다'. '화가들이 만난 앙코르와트' 외 항공사와 증권사, 신문사 및 문화예술지 등 다수에 문화칼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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