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윤혜영의 문화산책] (22) 문선미 - 슬픈 뚱보들

2016. 1. 29. 01:10美學 이야기



       [수필가 윤혜영의 문화산책] (22) 문선미 - 슬픈 뚱보들 

       

2015/10/26 10:26 등록   (2015/10/26 10:37 수정)

  




(뉴스투데이=윤혜영 선임기자)  얼마 전에 지인과 점심을 먹기 위해 사무실 근처의 칼국수집에 들린 적이 있었다.
 
들깨칼국수를 주문하고 좀 있으려니 뚱뚱한 여인이 풋고추와 김치뚝배기를 물과 함께 날라다주었다. 나는 무심코 그녀의 눈과 시선이 마주쳤는데, 표정은 없었고 눈빛은 생기를 잃었다. 몸빼바지를 꽉 채운 터질 듯한 살들은 막걸리를 넣어 커다랗게 부풀린 술빵 같았다.
 
왠지 모르게 나는 입맛이 뚝 떨어졌고, 칼국수는 먹는 둥 마는 둥 시늉에 그쳤다.
그녀의 부풀어 오른 살들이 풍요보다는 빈곤을, 생기없는 눈빛에선 만만찮은 삶의 고뇌를 읽었기 때문이었다. 최근에 관심있게 보고 있는 문선미 화백의 '슬픈뚱보'들이 오버랩되었다.
 


 


   마르는 것이 인격의 척도가 되는 시대이다.
 
각종 매스미디어에서는 걸그룹과 연예인들의 마른 몸매를 찬양하고, 그들을 우상시하는 청소년들까지 마름의 열풍에 동조한다. 심지어 학생들의 교복조차 날씬하고 마른 몸매를 강조하는 광고로 인해 학부모들의 경원을 사기도 했다. 헐리우드의 인기 여배우 안젤리나 졸리는 38kg의 몸무게로 잡지모델로 나서기도 했다.
 
시대가 거식증을 부르는 시대이다. 뚱뚱한 것은 질병이지만, 비만을 지나치게 죄악시하는 사회풍조로 인해 건강하고 통통한 몸매마저 질시받는 비정상적인 시대가 도래되었다. 지나치게 타이트한 이 시대에 문득,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같은 원시적인 美가 그리워진다.
 


 
 


   문선미 화백의 연작 ‘Wedding Step’을 보면 곱게 차려입은 뚱뚱한 여인들이 등장한다.
 
귀에 장미를 꽂고 빨강구두를 신고 한껏 멋을 내어 치장하였으나 표정엔 슬픔이 번진다. 신랑의 손을 잡고 웨딩스텝을 밟지만, 발걸음의 행보는 행복의 나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어딘지 모를 격전지로 가는 듯 걸음마다 비애가 넘친다. 심지어 다이아몬드 같은 시린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기도 한다.


 
 


   뚱뚱한 ‘노라’ 그녀들은 인형의 집에서 박제된 삶을 살며 견디다 못해 뛰쳐나온것 같다.
결혼행진곡의 달콤함은 일시적인 연출에 지나지 않고, 삶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는것처럼 낭만적이지도 아름답지도 않다. 사랑은 지지부진한 현실에 가려 빛을 잃고, 세상은 살기위한 아비규환이다.
 
여자들의 인생은 가끔씩 다가오는 기념일들이나 패키지여행 등과 같은 반짝 들뜸에 묻혀 그냥저냥 흘러간다.
삶은 쓴맛을 가리기 위해 설탕을 듬뿍 넣은 싸구려 커피 같다.
 



 


   이미 알고 있지만 겁이 나서 외면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인생은 특별하지도 않고 현실은 지지부진한 일상의 연속이라는 것을.
시대를 비관하는 사람들이 만든 ‘5포세대, 7포세대’가 말하는 삶의 힘겨움. 박봉과 육아에 시달리며 시간을 견디다 보면 어느새 아줌마로 전락한 자신에 모습에 거울을 바라보기가 두렵다.
 
치킨에 맥주로 시름을 달래며 하루를 마감한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른다 하지만, 내일도 일상은 오늘과 별다르지 않으리라.
 

 
 


   저출산 대책이니 여성들의 일자리 창출과 복지 및 처우개선이라는 정책들이 나돌기는 하지만, 이땅에서 여성들의 삶은 여전히 힘겹다. 그 옛날 어머니들의 농사와 육아의 병행이 먹고살기 위한 전쟁이었다면, 더 많은 교육을 받고 여성의 자아찾기가 더 중요시되는 현대에서도 여인들의 입장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남성들과 같이 공부를 하여도 일의 능률면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가치는 평가절하되고 아이를 낳으면 토사구팽 당한다. 가사와 육아에 시달리며 세월을 보내다보면 사랑도 젊음도 물 건너가버리고 거울속에는 삶의 때가 묻은 낯선 여인이 츄리닝을 입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한번 잘못 든 길을 되돌리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고 출구가 딱히 정해진것도 아니다. 여자들은 방황하기 시작한다. 성냥불 같은 불륜에 빠졌다가 헤어나오기도 하고, 용돈벌이로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하며, 헬스클럽에서 몸매를 되찾기 위한 트레이닝을 시도하기도 한다. 산에 오르기도 하고, 바다로 떠나기도 한다.
 
그렇게 자아찾기에 몰입하면서 세월은 공평하게 흐르고 또 흐른다. 누구나 그렇게 살아왔 듯, 인생이란 길 위에서 나 혼자 별나게 특출나지도 않은 모두가 그렇고 그런 비슷한 삶이다. 시간은 흘러간다. 무정하게도.


 



















































   내안에 묻어 두었던 사소하고 작은 감정들은 꼼질거리고 소곤대며 이야기 하고자 한다.
굳이 말이 아닌 표정으로 몸짓으로 눈빛으로.
난 그저 들어주며 매만질 뿐이다.
난 지금 내가 아는 제일 높은 봉우리를 오르고 있다.
숲 속의 좁게 난 길과 낮은데로 흐르는 물도 볼 수 있겠지.
고갯마루의 바람으로 땀을 식히며 잠시 세상을 바라보려 한다.
 
- 작가의 말 -
 
 
문선미 화백
 
성신여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2009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이탈리아 밀라누에서 두번째 개인전, 광주 아트페어, 홍콩 아트쇼등 다양한 개인전과 그룹전을 가졌다.
 
<글 : 수필가 윤혜영 geo0511@hanmail.net>
 

 
계명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남 통영 출생
 
계간 ‘문학나무(발행인 황충상 소설가)’겨울호를 통해 신인문학상 중 수필 부문 수상자로 등단. 주요 저서로 ‘우리는 거제도로 갔다’. ‘화가들이 만난 앙코르와트’ 외 항공사와 증권사, 신문사 및 문화예술지 등 다수에 문화칼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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