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윤혜영의 문화산책] (24) 남학호 - 격조의 예술
2016. 1. 29. 01:26ㆍ美學 이야기
[수필가 윤혜영의 문화산책] (24) 남학호 - 격조의 예술
2015/11/02 09:10 등록 (2015/11/02 09:10 수정)
![](http://www.news2day.co.kr/n_news/peg/news/20151030/8KXbu686vi850k7pGbr285AFf51S6V8DFz5GQy5p-1446187701.jpg)
(뉴스투데이=윤혜영 선임기자) 대구에 살 적에 아랫마을 '강창'에 신도시가 들어서며 많은 술집들이 생겨났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새로운 술집순례를 모른 척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옆집 사는 동생을 부추겨 슬리퍼를 꿰차고 마실을 갔다.
'소찌개'라는 단촐한 간판을 달고 있는 주막을 발견했다. 이것저것 잡다한 것들을 파는 식당들은 대부분 맛이 없다고 보면 된다. 한 두가지 특기할 만한 것을 내세우고 있는 집은 그 종목에 대해 자신이 있는 집이다.
이는 맛집 순례를 거듭하며 터득한 나만의 신념이다.
여섯개 정도 되는 작은 탁자가 비좁은 실내 구석에서 육십 언저리의 아주머니가 어서 오라고 일어서며 인사를 하였다. 소찌개 작은 것 하나를 주문하고 소주도 한병 청하였다. 곁안주로 내어준 껍질콩을 까먹으며 주변을 한바퀴 눈으로 둘러보는데 벽에 걸린 몇 개의 초상이 눈에 띄었다.
기교는 좀 서툴지만 꽤 공들여 그린 사람의 얼굴이었다. 보기에 주인아주머니의 얼굴인듯 했다. "이모, 이 그림 누가 그렸습니까?"라고 물어보니 아들이 그렸다고 답이 왔다. 식당에서 이런 유화그림을 만나는 일은 드물다.
아들이 미술을 하냐 물으니 몇 년전에 교통사고로 하늘에 갔다고 했다. 함께 왔던 동생이 괜한 것을 묻지 마라며 내 입을 닫게 했고, 나는 공연히 무안하고 부끄러워져 연거푸 술을 들이켰다. 사랑하는 대상에 대한 애정이 베어난 그 그림은 아름다웠고 애달펐다.
그림은 물상(物狀)에 대한 베낌에 그칠 것이 아니라 작가의 혼이 스며들어가야 비로소 예술이라 이름할만한 것이 된다.
![](http://www.news2day.co.kr/n_news/peg/news/20151030/xnIOYTVn44XRNJ738dj46c83S76z5aCG50W0avw9-1446187732.jpg)
남학호는 조약돌을 그린다. 90년대 조약돌로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입선을 하면서 돌(石)의 화가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돌그림에는 쌍둥이처럼 나비가 꼭 날아와있다.
무생물의 대표적 사물이 돌(石)이다.
여기에 생명 불어넣기를 한다.
추억, 그리움, 고독과 같은 시어(詩語)들은 나의 신념이다.
또한 인간으로서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십장생(十長生)에서 돌(石)이 으뜸이다.
나비는 수(壽), 돌(石)은 장수(長壽)로 읽는다.
그래서 익수(益壽)이다.
-작가의 말
생명이 없는 돌에 생명을 불어넣고 동적인 나비를 그려넣어 활기를 더한다. 이는 수십년 작업끝에 자리굳힌 그만의 작품세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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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은 무생물이다. 먹이를 먹지도 않고 생명이 없기에 늙지도 죽지도 않는다. 인간은 고작 100년의 삶도 못 누리고 흙으로 돌아가지만, 돌은 죽지도 살지도 않은채로 그 자리에 붙박혀 수천년을 산다. 변하지도 않고 닳아 없어지지도 않기에 고대로부터 사람들은 돌에 조각을 하여 염원을 새겼다.
강가에 놓인 조약돌을 하나씩 올려 소원의 탑을 쌓기도 하고, 돌을 깍아 부처를 만들어 건강과 재화의 돌봄을 기원하기도 한다. 너무도 약하고 가벼운 사람의 세계에서 부서지지도 않고 스스로 소멸할수도 없는 돌에 믿음을 새겨 육체와 정신의 지주로 삼고자 했던 것이다.
![](http://www.news2day.co.kr/n_news/peg/news/20151030/Pwom0mf9NspQpW5L2dC0zSfj2136i6tT4mrWFhg0-1446187786.jpg)
수없이 많은 화가들이 그림을 그린다며 붓을 들고 설친다. 자기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 더욱 획기적이고 혁신적인 작업으로 뜨기 위해 앞뒤를 가리지 않는다.
상어를 포름알데히드로 박제하기도 하고, 자신의 배설물을 전시하기도 한다. 미술관에서 음식을 만들어 관객들과 나눠먹기도 한다. 이른바 관객과 소통하는 참여미술이라는 것이다.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루이 14세의 궁전에 만화를 전시하기도 한다. 이름만 붙히면 예술이라는 것이다. 나는 요즘의 이 해괴한 행위들이 도통 무슨 짓인지 모르겠다.
누군가는 예술이 난해함을 벗고 관람자와 가까워졌다고 좋아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격을 떨어뜨린다며 눈살을 찌푸리기도 한다. 대중이 좋아하면 그것 역시 자리잡아 수많은 아류들이 생겨날테지만, 예술은 예술 그 자체로 고고하고 품위가 있어야 된다는 생각에는 아직도 변함이 없다.
![](http://www.news2day.co.kr/n_news/peg/news/20151030/Ea7Gcl5pfm68VuodgsYsyv2pqkb8LqM9xNHj8xeB-1446187828.jpg)
한국의 아름다운 산천, 고요한 물가에 햇살을 머금은 바위가 하나 있고, 그 위에 여린 날개를 가진 나비가 잠시 쉬어감을 청하고 있다. 바람이 물위에 잔잔한 무늬를 만들었다.
이 얼마나 아름답고 토속적인 풍경인가! 이 작품을 보면 나의 마음도 티없이 맑아지는 것 같다. 잡념과 가식을 허용치 않는 명경지수(明鏡止水)이다.
나는 감히 그의 작품을 '격조의 예술'이라 칭하고 싶다.
![](http://www.news2day.co.kr/n_news/peg/news/20151030/YwC8PaBVa4WDkp41z0ve5KMLE2KRewnI6MrE1G0V-1446187858.jpg)
그림이 넘쳐나고 전시도 넘쳐나는 시대이지만 진정성을 담은 작품을 만나기는 힘들다. 자갈밭에서 옥석(玉石)고르기와 다름없다.
영국의 여류작가 위다(Ouida)가 쓴 동화 '플랜다스의 개'를 보면 갖은 고난끝에 죽어가는 소년 '네로'가 죽기 전에 그토록 보고싶어 하는 그림 두 편이 나온다. 바로크 시대 화가 루벤스(Peter Paul Rubens)의 명작 '성모승천'과 '십자가에서 내려짐'이다. 성당에서 사랑하는 개 파트라슈와 죽음을 함께 맞이하며 소년이 마지막으로 뱉는 대사다.
"파트라슈, 난 봤어, 루벤스의 그림 두 장을, 나는 너무나 행복해"
어른이 되어서도 가끔 이 동화를 생각하면 전율이 온다.
사람의 인생에 예술이 미치는 영향, 이는 실로 위대함이다.
화가가 어떤 작품으로 인해 한사람의 일생을 변화시킬 수 있다면 그는 작가로서의 가장 큰 위업을 달성한 것이다.
울림이 있는 작품, 인간에게 깨우침을 줄 수 있는 작품, 그러나 평생을 그려도 만족이 없고 손에 잡히지 않는 작품, 실체는 있으나 끝이 없는 작품, 이 모든것을 통틀어 예술이라 칭한다.
화가가 어떤 작품으로 인해 한사람의 일생을 변화시킬 수 있다면 그는 작가로서의 가장 큰 위업을 달성한 것이다.
울림이 있는 작품, 인간에게 깨우침을 줄 수 있는 작품, 그러나 평생을 그려도 만족이 없고 손에 잡히지 않는 작품, 실체는 있으나 끝이 없는 작품, 이 모든것을 통틀어 예술이라 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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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news2day.co.kr/n_news/peg/news/20151030/T9RHCMh97IE40GcFs5xSX9cx7KI54q5Xt8Uijn1K-1446187932.jpg)
남학호(南鶴浩) 화가는?
대구대학교 미술대학 및 동 대학원에서 그림그리를 배우고 10번의 개인전을 열었다. 그동안, 다수의 국제 art fair, 대한민국화랑미술제 등, 500여회 단체전에 참여하였다.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을 비롯하여 전국 공모전에 150여회 심사 및 운영위원을 역임했다. 한국미협회원, 대한민국미술대전, 대구시전, 경북도전, 신라미술대전, 개천미술대전, 대한민국정수미술대전, 대한민국한국화대전, 전국소치미술대전 초대작가로 활동 중이다.
현재 / 대구예술대학교 외래교수이다.
전자우편 : dolnabi@hanmail.net.
<글 : 수필가 윤혜영 geo0511@hanmail.net>
![](http://www.news2day.co.kr/n_news/peg/news/20151030/a9UHzZ5vj9I24ZupRp6Tg31KPxRT9CX9CGV3CFJF-1446187992.jpg)
계명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남 통영 출생
계간 ‘문학나무(발행인 황충상 소설가)’겨울호를 통해 신인문학상 중 수필 부문 수상자로 등단. 주요 저서로 ‘우리는 거제도로 갔다’. ‘화가들이 만난 앙코르와트’ 외 항공사와 증권사, 신문사 및 문화예술지 등 다수에 문화칼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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