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윤혜영의 문화산책] (26) ‘사랑’ 과 ‘결혼’ 사이

2016. 1. 30. 03:43美學 이야기



       [수필가 윤혜영의 문화산책] (26) ‘사랑’ 과 ‘결혼’ 사이 

       

2015/11/16 10:49 등록   (2015/11/23 20:40 수정)




(뉴스투데이=윤혜영 선임기자) 얼마전 친하게 지내는 후배가 파혼을 한다고 연락이 와서 울먹거렸다.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전쟁통의 고아라도 된냥 구슬프기 짝이 없었다. 이유를 물으니 '스드메' 때문이라고 했다.

‘스드메’ 가 무엇이냐? 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의 줄임말이다.

평생에 한번 있는 결혼인데 신부측은 스드메를 결코 간소화할 수 없고 신랑될 사람은 허례허식이라며 서로 마찰되는 과정에서 싸움이 난 것이었다.


   결혼촬영 스튜디오와 디자이너의 드레스, 메이크업까지 합치면 작게는 몇백에서 몇천까지도 갈만큼 가격은 천양지차이고 부르는게 값이요, 이름 붙이기 나름이다.

결혼은 인륜지대사라고 할만큼 일생일대의 큰 행사인데, 고작 사진이나 드레스 때문에 파탄이 날 정도이면 차라리 이쯤에서 그만두는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게 된다.

신부는 뽐내보이고 싶은 마음을 몰라주는 게 야속하고, 신랑은 그깟 일에 큰 돈을 들이는 것이 못마땅하다.
돈이 엄청나게 많으면 뭔 상관이랴, 그러나 재벌이 아닌 이상 모두가 주머니 사정이 뻔한 서민들 아닌가!


 


   나는 경북 영천의 시장통에 있는 작은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드레스는 세벌 중에 두개만 입어보고 결정을 했고, 메이크업은 마음에 안들어 중간에 내가 직접 붓을 들고 얼굴을 칠해버렸다.

드레스를 너무 빨리 고른다며 시중드는 아가씨가 아쉬워할 정도였다. 나는 원래 남의 이목에 신경을 쓰지 않는 성격이고,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큰 돈을 쓰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결혼식 당일날 식장 1층 미용실에 같은날 결혼식을 하는 신부 다섯명이 나란히 의자에 앉았다.
미용사들이 분주하게 오가며 신부들의 머리에 롯트를 말았고 색색의 팔레트로 얼굴을 단장했다.

두껍고 무거운 속눈썹을 일목요연하게 붙였고, 연분홍빛 루즈를 입술에 칠했다. 다섯명의 얼굴이 모두 똑같았다.
먼지털이같은 속눈썹이 눈알을 찌르고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아 성가시기 짝이 없었다. 나는 화가 나서 속눈썹을 떼버리고 구석 소파에 앉아 내 화장품으로 절반쯤 남은 화장을 마무리했다.


   신부들이 화장을 완성해갈 무렵 신랑들이 와서 머리를 단장했다. 머리숱이 없는 신랑들은 머리통에 흑채를 뿌렸고, 나이가 중년에 이르는 신부는 우는 애를 달래느라 옷섶을 헤치고 젖을 먹이며 화장을 마저 받았다.

   녹음해 둔 음악에 맞춰 입장을 하고, 결혼식은 20분도 안되어 끝이 났다. 시골에 사는 남편의 일가친척들까지 몰려야 하객들이 넘쳐났기에 음식은 금방 동이 났다. 삶은 돼지고기와 잡채 등이 떨어져 음식을 계속 주문하느라 나는 밥도 굶으며 떨어진 음식 챙기랴, 인사 다니랴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어설픈 촌극 같은 행사는 몇 시간도 안되어 종료되었다.


 


   어릴 적에 꿈꿨던 결혼식은 푸른 잔디 위에서 와인을 마시는 하객들 틈에서 하나 밖에 없는 드레스를 입고 꽃들로 장식된 아치를 통과해 주먹만한 다이아몬드 반지를 받으며 함박웃음을 짓는다. 나는 잠들기 전에 이런 상상을 하며 혼자 행복해 웃곤 했다.

살아가면서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 눈뜨게 되고,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하게 되면서 철이든 탓인지, 결혼식은 두 사람이 하나가 되었음을 일가친지들에게 알리는 하나의 행사일 뿐이지, 더도덜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간소화시키고 서둘러 끝내버렸기에 신랑측에서도 군말이 없었고, 나도 결혼식에 대해서는 지금도 불만이 없다. 그러나 많은 예비부부들을 보면 예물과 예단 때문에 골치가 아파져 결혼을 중도에 파해버리는 일들이 종종 있다.

결혼은 사랑하는 두사람이 평생을 함께 하기 앞서 거행하는 성스러운 행사인데, 소소한 것들로 인한 잡음들이 너무 많다. 시작부터 파열음이 들리기 시작하면 나머지 생활도 순조롭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혼은 두사람이 한배를 타는 것과 같다. 암초가 널려있는 망망대해를 한사람이 키를 잡고, 한사람은 조력을 하며 안전하게 항해해야 한다. 안전하고 평화로운 항해를 위해서는 한마음 한뜻으로 협력하여야 한다.

사랑과 결혼은 크나큰 축복이다. 거대한 이 세상에서 오직 내가 사랑하는 단 한사람을 만나 평생을 해로하는데 그까짓 ‘스드메’로 서로의 화를 돋우며 소모전을 하는건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며칠전 전화가 와서 한참을 울던 후배는 신랑이 양보를 해서 원하는 조건을 관철시킨듯 했다. 어떻게든 두사람의 항해가 순조롭게 잘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이다.


<글 : 수필가 윤혜영
geo0511@hanmail.net>



계명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남 통영 출생

계간 ‘문학나무(발행인 황충상 소설가)’겨울호를 통해 신인문학상 중 수필 부문 수상자로 등단. 주요 저서로 ‘우리는 거제도로 갔다’. ‘화가들이 만난 앙코르와트’ 외 항공사와 증권사, 신문사 및 문화예술지 등 다수에 문화칼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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