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경기도 안산에 위치한 성호기념관에서는 국립민속박물관과 공동으로 ‘가보(家寶), 가학(家學)의 전통이 빛나다’ 특별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성호기념관은 조선 후기 실학의 태두 성호(星湖) 이익(1681~1763) 선생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곳으로서 이번 전시는 국립민속박물관이 지역문화 활성화를 위해 추진하고 있는 순회전 사업의 일환이기도 합니다.
작년 2014년 12월 23일부터 오는 2015년 3월 8일까지 열릴 예정인 이번 특별전에는 성호 이익 선생을 배출한 여주이씨 가문에 대대로 내려 오는 50여점의 가보들과 국가지정문화재와 도지정문화재 등이 함께 공개되어 성호 이익의 증조부이자, 역시 실학자인 반계 유형원의 외증조부인 소릉 이상의로부터 비롯된 검소한 가풍과 실사구시의 학풍이 성호 이익에 이르러 정립되고 또 후대와 제자들을 통해 만개하는 흐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이번 특별전에서는 특히 성호 이익의 일상의 삶과 언행 및 그의 저작들을 볼 수 반갑습니다. 그는 생애 대부분을 관직에 나가지 않고 안산에 머물며 양반 신분임에도 직접 농사를 지으면서 ‘백성을 살리자’는 뜻을 가지고 자연의 이치와 인간의 도리를 연구하고 후학들을 키우는데 전념했던 대학자로 수많은 저술을 남겼습니다. 대표작 ‘성호사설(星湖僿說)’은 학문과 사물의 이치를 논하며 제자들과의 질의문답한 내용을 모아 엮은 백과사전 같은 책이며 그 외에도 ‘성호집(星湖集)’, ‘성호선생전집(星湖先生全集)’, ‘성호질서(星湖疾書)’, 성호선생예식(星湖先生禮式)’ 등이 있습니다.
많은 전시물들 중에 특별한 몇 가지를 살펴보면 먼저 전시장에 초입에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83호로 지정된 소릉(少陵) 이상의(1560~1624) 영정이 눈에 뜨입니다. 초상화는 임진왜란 때 광해군을 호종한 공으로 1613년(광해군 5) 위성공신 3등 녹훈 당시 그려진 영정초본으로서 17세기 초 영정으로는 유일한 희소성과 역사성으로 큰 가치가 있으며 현재 유일하게 알려진 위성공신상의 초본이기 때문에 매우 귀중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천금물전(千金勿傳)’은 당대 명필로 이름이 높았던 성호 이익의 아버지 매산(梅山) 이하진이 남긴 서첩으로 서예사적 가치가 매우 높아 보물 제1673호로 지정된 문화재입니다. 천금물전은 중국의 서예가인 왕희지가 지은 ‘제위부인필진도후(題衛夫人筆陣圖後)’의 끝 구절 ‘가장지석실, 천금물전비기인(可藏之石室, 千金勿傳非其人)’에서 따온 것인데 ‘많은 돈을 모아 자손에게 전하려 하지 말라’는 뜻으로서 이는 여주이씨 집안 대대로 ‘금전이 아닌 대의를 추구하라’는 가훈으로 전해졌습니다.
중요민속문화재로 지정된 거문고 옥동금(玉洞琴)도 볼 수 있습니다. 거문고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현악기로 옛 선비들은 거문고를 연주하면서 몸과 마음을 닦는 도구로 삼았습니다. 전시된 옥동금은 성호 선생의 셋째 형인 옥동 이서가 소유했던 거문고입니다. 금강산 만폭동의 벼락맞은 오동나무로 거문고 장인 문현립이 제작했으며 옥동금은 거문고를 만든 목재의 입수 과정, 제작 장인의 이름, 원소유자, 함께 소장된 악보, 보수 과정을 상세히 기록한 문헌 등이 남아있는 유일한 옛 악기입니다.
특히 옥동금 뒤 판에는 옥동 이서가 짓고 이서의 제자이자 윤선도의 현손이며, 조선후기 화가로 명성이 높았던 윤두서의 아들 윤덕희가 쓴 시가 새겨져 있어 예술적인 가치가 높습니다. 또한 옥동금 옆에는 성호 이익의 현손인 목재 이삼환의 후손이 소장하다가 국립중앙도서관에 기증한 거문고 악보인 금조(琴調) 우조초삭대엽(羽調初數大葉)도 함께 공개되고 있습니다.
‘청풍계첩(靑楓稧帖)’은 1620년(광해군12) 봄에 현재 서울의 청운동인 청풍계(靑楓稧)에서 7인의 문사(文士)들이 시회를 가진 후 이를 기념하여 제작한 시화첩으로 당시 병조판서 이상의, 호조판서 김신국, 판돈녕부사 민형남, 예조판서 이덕형, 최희남, 형조판서 이경전, 이필영 등 7인이 하나씩 나눠 가졌다고 합니다. 계회첩에는 ‘청풍계에서 봄을 즐긴다’는 뜻의 ‘청풍상춘(靑楓賞春)’이라는 초서로 쓴 글씨와 계회도(契會圖), 김신국의 발문과 7인의 시문 14편이 실려 있는데 이상의의 증손인 이익의 ‘성호집’에 따르면 시화첩을 만든 후 116년 후인 1736년(영조12)에 원래의 두루마리에서 첩으로 다시 만들었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청풍계첩에 실려있는 ‘계회도’는 청풍계(현 서울 청운동)의 실경을 그린 작품입니다. 계회도는 같은 청풍계를 그린 겸재 정선의 작품보다 무려 120년이나 앞선 것으로서 17세기 실경산수화이자 18세기 시회도의 새로운 형식의 그림으로 가치가 높다고 합니다. 계회도 속의 정자는 아름다운 풍광 때문에 당시 장안 제일경이라 불렸던 청풍계의 태고정(太古亭)을 그린 것이며 정자 주변에는 세심지(洗心池), 함벽지(涵璧池), 척금지(滌衿池)라 불리는 세 연못이 조성되어 있는데 세심지에 물이 차면 함벽지로 넘쳐들고, 함벽지의 물은 다시 척금지를 거쳐 계곡으로 흘러나가게 설계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성호 이익의 대표작 ‘성호사설(星湖僿說)’입니다. 내용은 몰라도 학창시절 제목은 한번쯤 들어봤을 법한 그 성호사설이지요. 성호의 나이 80세 무렵에 그의 후손들과 제자들이 엮어 30권 30책으로 펴낸 책으로 성호 이익이 평소 제자들과 문답을 나누었던 천문, 지리, 역사, 제도, 군사, 풍속, 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 걸친 학식이 집대성되어 있는 대저술이자 조선후기 실학의 중심이었던 성호학파의 근간이 된 책입니다. 성호 이익은 역시 조선후기의대표적인 실학자이자 자신의 친척이기도 했던 유형원과 교류하면서 정치, 경제, 사회, 풍속, 자연, 역사, 문학, 철학 등 여러 방면에 걸쳐서 비판적이고 창의적인 의견을 제시하여, 가히 ‘성호학’이라 불릴 만한 독자적인 사상체계를 형성하였으며 그의 학문은 안정복, 이중환 등 제자들에게 이어졌습니다.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지구가 둥글다는 것이나 태양의 궤도, 춘분, 일식 등을 비롯한 서양의 천문, 역법들을 중국에서 수입된 한역본 서양 서적을 통해 습득한 서양의 과학지식들을 소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특히 지도 제작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왕세자에 대한 엄격한 교육, 서얼에게도 길을 열어줄 것과 조상의 내력을 따지는 서경제도를 없애고 과거제와 천거제를 함께 사용하며, 군현마다 무관을 양성하는 학교를 두어 장교를 양성할 것과 중앙 관청의 통폐합, 화폐 유통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사치 풍조의 근절을 주장합니다.
그리고 특히 노비제도를 ‘천하의 악법’이라 규정하는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주장으로 “노비를 대대로 천하게 전하는 것은 고금에 없던 일이다”라면서 노비 제도의 존속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또한 나라를 좀먹는 여섯가지 폐단으로 노비제와 과거제, 벌열(閥閱), 교묘한 재주와 솜씨, 승려, 게으름뱅이라고 규정하는 개혁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줍니다.
그 외에도 이익의 다른 저술들과 제자들과 주고 받은 서신들도 볼 수 있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성호선생언행록’ 중에 “곡식은 사람의 생명을 의탁하는 것이다. 어찌 하늘이 주신 물건을 아끼지 않아 곡식 낱알을 여기저기 흩어지게 하겠는가”라는 글귀는 선생의 검소한 품성과 학문으로서 백성들의 삶을 걱정했던 참된 경세가로서의 풍모를 엿보게 합니다.
또한 이와 함께 ‘성호학’을 바탕으로 조선 후기 정치, 경제, 사회 문제에 대한 실천적이고 실용적인 답을 찾고자 했던 이익의 후손과 후학들이 남긴 저작들, 이용휴의 ‘혜환잡저(惠寰雜著)’, 이병휴의 ‘정산집(貞山集)’, 이중환의 ‘정본 택리지(正本 擇里志), 안정복의 ‘순암집(順菴集)’ 등도 함께 전시되고 있어 앞서 간 이의 선한 깨달음이 후학들에게 이어지고 또 발전되어가는 모습에 작은 감격까지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가보(家寶)란 한 집안에서 대를 물려 전해 오거나 전해질 보배로운 물건을 말하는 것으로 그 집안이 가보로 삼은 것이 무엇인지를 보면 그 집안의 품격과 후손들이 지향하는 바를 알 수 있기 마련인 것처럼 한 사회가 소중히 여기고 지향하는 바를 보면 그 사회의 수준과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품격을 알게 됩니다.
그런 면에서 물신과 배금에 찌들고, 소위 성공을 위해서라면 아이들에게 권모와 술수마저 부추키고 가르치는 요즘의 야차같은 세태에 천금물전을 내려 ‘많은 돈을 모아 자손에게 전하려 하지 말라’면서 돈보다 대의를 추구하라고 가르친 여주이씨 가문의 고결한 가풍이야말로 천박함이 도를 넘은 이 시대에 유독 빛나는 보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부끄러워서인지 부러워서인지 아니면 그 모두로 인한 시기심에 열받아서인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약간은 상기된 얼굴로 관람을 마치고 나오자 정신차리라는 듯 겨울날 특유의 차고도 상쾌한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세상에 옛 선인들의 도가 끊긴지 오래입니다. 돈은 좀 벌었는지 모르지만 세상은 각박하고 사람들은 천박하죠. 그래서 딱히 물려받고 싶은 것도 또 자랑스럽게 물려줄 것도 별로 없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물려받은 가보가 없으면 내가 스스로 가보가 되어 물려주면 될 일입니다. 그래서 또 다시, 우리가 지키고 물려줘야 할 가보는 무엇입니까?
‘가보(家寶), 가학(家學)의 전통이 빛나다’ 특별전은 성호기념관에서 작년 2014년 12월 23일부터 시작되어 오는 2015년 3월 8일까지 열릴 예정입니다. 한번쯤 찾아가서 고결함이 무엇인지, 그러므로 우리가 간직해야 하고 또 물려줘야 할 참된 보물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이기를 바랍니다.
“가보, 가학의 전통이 빛나다”
전시장소 : 안산 성호기념관 (홈페이지)
전시기간 : 2014년 12월 23일(화) ~ 2015년 3월 8일(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