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윤혜영의 문화산책] (33) 경주 성동시장 - 유년의 추억이 깃든 곳

2016. 2. 5. 03:33美學 이야기



       [수필가 윤혜영의 문화산책] (33) 경주 성동시장 - 유년의 추억이 깃든 곳

2016/01/05 13:56 등록   (2016/01/21 20:23 수정)


▲ 경주 성동재래시장 [사진=윤혜영]


(뉴스투데이=윤혜영 선임기자) 집에서 차로 십여분 거리에 재래시장이 있어 딸과 함께 가끔 장을 보러 간다.

그곳은 경주 성동시장인데 1971년에 장이 서기 시작해 현재까지 맥이 이어져오며 약 4,000평 규모에 달한다.
채소와 해산물을 주로 판매하면서 한식뷔페와 분식골목, 의류골목, 폐백골목 등  600여개의 상점들이 들어서 각자의 골목을 형성하고 있다. 다양한 품목이 많기 때문에 구경하는 재미가 매우 쏠쏠하다.


 



   거리에서 유명한 곳은 우엉김밥이다. 상인들이 그릇에 우엉을 수북하게 담아놓고 주문 즉시 김밥을 말아준다. 간장과 물엿에 졸인 우엉을 가득 넣어 만드는 김밥은 한줄에 1.500원이다. 가격도 착하고 맛도 착하다.





한식부페는 아침 6시 30분에 문을 열어 8시에 닫는다. 다양한 간판을 내건 가게들 중에 마음내키는 곳을 골라서 앉으면 된다.





   자리에 앉으면 소고기국과 시래기국 중에 택일하라고 한다. 고봉으로 푼 밥을 내오고 빈접시를 하나 주는데, 여기에 먹고싶은 반찬을 양껏 담으면 된다. 밥과 반찬은 계속 리필된다. 가격은 오천원. 후식으로 숭늉과 요구르트를 준다.
 
시대가 어려워져 인심은 점점 삭막해져가지만 재래시장의 인심은 아직도 후하다. 채소를 사면 덤으로 한줌씩 더 담아준다. 중량을 정확하게 달아 정찰제로 파는 마트에서는 있을수 없는 일이다. 평생 상인으로 늙은 할머니들의 걸걸한 입담도 재미있다.




  그런데 점점 시장이 도퇴되어 가고 있다. 주차난과 더불어 현금만 사용해야 하는 불편성, 위생환경의 질적저하 등등의 이유로 재래시장을 꺼리고 대형마트를 찾는다.

나는 유년시절에 엄마의 심부름으로 시장에 저녁거리를 사러 종종 드나들곤 했다. 주로 콩나물 500원치나 계란 한판을 사오라는 명령이었는데, 콩나물 봉지를 손에 들고 장거리를 걷다보면 나처럼 부모의 심부름을 나온 또래 학우가 두부를 들고 오다 마주치고는 했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학교를 마치면 방과후 수업이나 학원을 가야 하는 현대의 아이들이 혼자 시장을 다니며 저녁 찬거리를 산다는 일이! 자칫하면 아동학대로 몰아갈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 시대에는 그런 일이 흔했다. 아이들도 어른과 엇비슷하게 어느정도의 가사를 도맡아 가족구성원으로서의 의무를 해내곤 했다.

나는 어려서부터 시장에 가는 일을 좋아했다. 젊었던 내아버지는 가끔 나를 자전거 뒤에 태우고 시장으로 반찬을 사러 갔다가 동네한바퀴를 돌아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지금은 그때의 내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은 내가 세살난 딸래미의 손을 잡고 시장나들이를 간다. 딸아이가 먼 훗날 유년의 추억속을 유영할 때 엄마와의 시장나들이도 한편의 따스하고 정다운 단편으로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글 : 수필가 윤혜영
geo0511@hanmail.net>



계명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남 통영 출생

계간 ‘문학나무(발행인 황충상 소설가)’겨울호를 통해 신인문학상 중 수필 부문 수상자로 등단. 주요 저서로 ‘우리는 거제도로 갔다’. ‘화가들이 만난 앙코르와트’ 외 항공사와 증권사, 신문사 및 문화예술지 등 다수에 문화칼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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