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윤혜영의 문화산책] (37) 밥상에 대한 단상
2016. 2. 9. 01:58ㆍ美學 이야기
[수필가 윤혜영의 문화산책] (37) 밥상에 대한 단상
2016/02/01 09:07 등록 (2016/02/01 09:08 수정)
![](http://www.news2day.co.kr/n_news/peg/news/20160131/IXBwKfSgYVnQC2OW3Xy8130c8mF4VAD07jZVbMzw-1454230227.jpg)
(뉴스투데이=윤혜영 선임기자) 사랑하는 이를 위해 음식을 만드는 행위는 아름답다.
어머니가 자식을 위해 부엌에서 또닥또닥 도마질 하는 소리는 참으로 경쾌하고도 즐거운 소리이다. 남편에게 먹일 따순 밥을 지으며 야채를 버무리고 보글보글 찌개를 끓이는 소리는 복스럽다.
하얀밥을 소복히 떠서 먹는다. 숭고한 생명을 삼킨다. 피가 돌고 살이 뽀얗게 솟아난다. 밥상에 옹기종기 둘러앉아 머리를 맞대고 밥을 먹는 풍경을 보면 미소가 지어진다. 숟가락 부딪치는 음률도 정답다.
철이 들고 어머니의 치마폭을 벗어나 세파에 부대끼며 살아온 세월, 언제부터인가 밥을 먹는 행위가 눈물겹다는 것을 느낀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때를 놓친 밥을 허겁지겁 삼키는 사람들의 황망한 숟가락질, 그들의 골이 깊은 주름에서 삶의 신산함을 엿본다.
나이든 남자가 등을 돌린 채 혼자 밥을 먹고 있는 풍경은 더욱 서글프다. 나는 그 언저리에서 삶의 애련을 목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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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직 어린아이였던 시절, 생계로 꾸리는 가게일로 바쁜 부모님의 부탁으로 방학이 되면 동생과 나는 산간지역에 위치한 할머니댁에서 긴 겨울을 나곤 했다. 삶의 목적이 유희나 철학을 우선해 먹고사는 문제가 급선무였던 혼돈의 80년대, 나는 코흘리개 여덟살 계집아이였다.
정신없이 산과 들로 쏘다니다가 밤이면 저절로 지쳐 나가떨어졌다. 어느밤이었다. 잠결에 부엌의 부산한 움직임이 느껴졌다. 양철그릇들이 부딪치는 소리, 도마질 소리, 부글부글 가스불 위에 무언가가 끓는 소리, 할머니가 한밤중에 밥을 하고 있었다.
이윽고 찬바람과 함께 누군가가 방으로 들어섰고, 사업이 부도난 후 사람을 피해 이리저리 도망다니던 삼촌이 들어섰다. 그리고 나는 보았다. 낡은 개다리소반에 가득 올려진 할머니의 마음을!
두부와 무가 듬뿍 들어가 김을 피어 올리는 뽀얀 소고기국과 김치종지와 고봉으로 쌓아올려진 쌀밥, 그 위에 환하게 피어난 계란후라이 한개를.
할머니와 삼촌은 말이 없었다. 삼촌은 고개를 숙인채 숟가락질만 되풀이했다. 그 광경을 실눈을 뜨고 지켜보던 나는 정체모를 슬픔에 코끝이 매워져 베개를 안고 조용히 울었다.
정신없이 산과 들로 쏘다니다가 밤이면 저절로 지쳐 나가떨어졌다. 어느밤이었다. 잠결에 부엌의 부산한 움직임이 느껴졌다. 양철그릇들이 부딪치는 소리, 도마질 소리, 부글부글 가스불 위에 무언가가 끓는 소리, 할머니가 한밤중에 밥을 하고 있었다.
이윽고 찬바람과 함께 누군가가 방으로 들어섰고, 사업이 부도난 후 사람을 피해 이리저리 도망다니던 삼촌이 들어섰다. 그리고 나는 보았다. 낡은 개다리소반에 가득 올려진 할머니의 마음을!
두부와 무가 듬뿍 들어가 김을 피어 올리는 뽀얀 소고기국과 김치종지와 고봉으로 쌓아올려진 쌀밥, 그 위에 환하게 피어난 계란후라이 한개를.
할머니와 삼촌은 말이 없었다. 삼촌은 고개를 숙인채 숟가락질만 되풀이했다. 그 광경을 실눈을 뜨고 지켜보던 나는 정체모를 슬픔에 코끝이 매워져 베개를 안고 조용히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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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시에서의 삶은 가족들이 함께 모여 밥을 먹는 일도 쉽지않다. 이제는 밥상들이 거의 사라지고 부엌의 가장 넓은 공간은 서양식 식탁이 차지하고 있다. 그 시절엔 저녁마다 호마이카 밥상에 온식구가 몰려 앉아 밥을 함께 먹었다.
무릎과 무릎이 서로 닿았고 밥을 먹는 행위가 곧 스킨쉽이며 대화의 장이었다. 나의 어린시절이 떠오르면 생각나는 낡은 밥상, 네 귀퉁이가 조금씩 닳아져 나무의 속살이 드러난 작은 밥상, 그 위에서 나는 많은 것들을 먹어치웠다.
바닷가에 살아 해산물 반찬이 풍족했던 시절. 고들어, 톳나물, 가재미새끼 등등이 굽고 튀겨지고 무쳐져 내 몸속에서 새살이 되었다. 두개로 이어붙인 형광등이 밝혀주는 단칸방에서 TV연속극 소리를 배경으로 밥을 먹고 삼키는 행위들이 노골적으로 떠오른다. 그 장면은 곧 '가족'이란 말과 겹쳐진다.
무릎과 무릎이 서로 닿았고 밥을 먹는 행위가 곧 스킨쉽이며 대화의 장이었다. 나의 어린시절이 떠오르면 생각나는 낡은 밥상, 네 귀퉁이가 조금씩 닳아져 나무의 속살이 드러난 작은 밥상, 그 위에서 나는 많은 것들을 먹어치웠다.
바닷가에 살아 해산물 반찬이 풍족했던 시절. 고들어, 톳나물, 가재미새끼 등등이 굽고 튀겨지고 무쳐져 내 몸속에서 새살이 되었다. 두개로 이어붙인 형광등이 밝혀주는 단칸방에서 TV연속극 소리를 배경으로 밥을 먹고 삼키는 행위들이 노골적으로 떠오른다. 그 장면은 곧 '가족'이란 말과 겹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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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오란 부엌의 불빛, 나무도마를 두드리는 경쾌한 소리와 된장이 끓으며 피워올리는 냄새는 얼마나 구수한지. 지금도 나는 때깔이 매끈한 공산품과 가공식품보다 밭에서 뽑고 바다에서 잡은 날것들로 조리한 음식들이 훨씬 좋다.
무심코 길을 가다 들어선 식당에서 잘 끓인 청국장이나 고소한 참기름으로 조물조물 무친 산나물을 접할 때는 너무도 기뻐 행복한 마음이 든다.
음식은 곧 추억이다. 삶이다. 사랑하는 이들과 손끝이 스치며 밥을 먹고 있노라면 스멀스멀 따스한 기운이 솟아올라 주위를 포근하게 감싼다. 뱃속도 마음도 따스하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정성들여 차린 밥상을 대접하는 행위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행위중의 하나이다. 그리하여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위대한 것이다.
<글 : 수필가 윤혜영 geo0511@hanmail.net>
무심코 길을 가다 들어선 식당에서 잘 끓인 청국장이나 고소한 참기름으로 조물조물 무친 산나물을 접할 때는 너무도 기뻐 행복한 마음이 든다.
음식은 곧 추억이다. 삶이다. 사랑하는 이들과 손끝이 스치며 밥을 먹고 있노라면 스멀스멀 따스한 기운이 솟아올라 주위를 포근하게 감싼다. 뱃속도 마음도 따스하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정성들여 차린 밥상을 대접하는 행위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행위중의 하나이다. 그리하여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위대한 것이다.
<글 : 수필가 윤혜영 geo051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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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명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남 통영 출생
계간 ‘문학나무(발행인 황충상 소설가)’겨울호를 통해 신인문학상 중 수필 부문 수상자로 등단. 주요 저서로 ‘우리는 거제도로 갔다’. ‘화가들이 만난 앙코르와트’ 외 항공사와 증권사, 신문사 및 문화예술지 등 다수에 문화칼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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