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속 정치이야기] 수개실록(修改實錄)

2016. 2. 9. 10:04잡주머니



      

[고전 속 정치이야기] 수개실록(修改實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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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30 19: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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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당태종 이세민은 진시황, 한무제, 강희제와 더불어 중국인들이 자랑하는 위대한 황제이다. 그의 대한 극찬은 정치적 업적보다 언로를 개방하여 직언을 잘 받아들인 것에 집중된다. 저수량(褚遂良)은 유명한 서예가였다. 여러 대가의 장점을 두루 취하고 변화가 다양하여 일가를 이루었다. 당태종은 왕희지(王羲之)가 술에 취해 썼다는 난정서(蘭亭序)를 무덤에 넣어달라고 할 정도로 서예를 좋아했다. 위징이 서예의 대가인 저수량을 태종에게 추천했다. 태종은 저수량을 황제의 언행을 기록하는 기거랑(起居郞)으로 임명했다. 하루는 태종이 저수량에게 물었다. 
“매일 나의 언행을 기록했는데 한 번 보여줄 수 없는가?” 
“기거랑은 고대의 사관과 같습니다. 선행이건 악행이건 모두 기록하여 황제가 잘못을 범하지 않게 견제하는 것이 임무입니다. 저는 역대 황제가 그 내용을 보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내가 좋지 않은 말과 행동을 했다면 그대로 기록할 것인가?”
“저의 직무는 폐하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도 기록하는 것이니 모두 기록해야 합니다.”
얼마 후 태종이 신하들에게 말했다. 
“나는 너희의 공과와 득실을 평가하여 거울로 삼을 것이다. 말을 하는 사람은 잘못이 없으나, 듣는 사람은 반드시 자기의 잘못을 고쳐야 한다. 장손무기(長孫無忌)는 임기응변에 능하지만, 군대를 지휘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고사렴(高士廉)은 군서박람하여 지성이 높고 위기가 닥쳐도 좀처럼 흔들리지 않으며 당파를 결성하지 않는다. 그러나 직간할 수 있는 용기가 부족하다. 방현령(房玄齡)은 계획을 잘 세우지만 결단력이 부족하고, 두여회(杜如晦)는 결단력은 있지만 입안능력은 부족하니 둘을 합쳤을 때 능력이 극대화된다.” 

   태종은 대신들을 돌아가며 평가한 후 마지막으로 저수량에 대해 말했다.
“저수량은 학문이 높고 성격도 강직하며 조정에 대해 대단한 충심을 지니고 있다. 나에 대한 검정도 매우 진솔하다. 나는 새장에서 기르는 새가 주인을 따르는 것처럼 그에게 의지하고 있다.”
신하들의 장단점을 기탄없이 평가한 이세민은 사관들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는지도 궁금했다. 황제의 언행을 기록한 것을 ‘기거주’라고 한다. 저수량이 거절하자 방현령에게 다시 끈질기게 요구했다. 방현령은 허경종(許敬宗)에게 기거주에서 ‘고조실록’과 ‘금상실록’을 정리하게 하여 정관 17년 7월에 태종에게 바쳤다. 태종은 끝내 자신에 대한 기거주 원본은 볼 수 없었다. 이러한 태종의 압력 때문에 사관들이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많다.  

   무덕연간에 지은 ‘대당창업기거주’는 관청에서 개입하지 않은 기록이고, ‘자치통감 고이(考異)’는 실록, 야사, 물증을 토대로 당시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기록한 자료이며, ‘구당서’는 실록을 토대로 다시 기록한 것이다. 이들 자료를 살펴보면 3가지의 다른 곳이 있다. 첫째는 태원기병의 제안자가 누구인가? 둘째는 태자 이건성이 장안을 공격한 전공을 왜 숨겼느냐? 셋째는 현무문의 변 이후 누가 이연을 궁궐에 유폐하고 압력을 가했는가라는 의문이다. 이상 3가지 문제는 모두 이세민이 형 이건성과 이원길을 죽이고 정권을 잡은 현무문의 변과 유관하다. 나머지 초당시대의 사건은 관청에서 간여하지 않은 패관야사까지 포함한 다른 기록과 대부분 일치된다. 사서에도 이세민이 현무문의 변과 관련된 전말을 왜곡하지 말고 그대로 기록하게 했다고 한다. 왕부지는 이세민이 친형을 죽인 사실을 그대로 남겨둔 것은 부끄러움을 몰랐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다른 학자는 태종이 공공연하게 현무문의 변과 관련된 기록을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미화하게 압력을 가했다고 생각한다. 사관이 지존의 압력을 전혀 받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무리이지만, 사실상의 창업군주인 태종은 민(民)이 중하고, 사직은 다음이며, 군주는 가볍다는 관점에서 정변을 사실대로 기록하게 하고 후세의 비평과 정면대결하려고 했을 가능성에 점수를 주고 싶다. 정치가는 역사와 대면하여 당당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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