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속 정치이야기] 조충요절(曹沖夭折)

2016. 2. 10. 03:17잡주머니



      

[고전 속 정치이야기] 조충요절(曹沖夭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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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25 18:4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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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조조는 뛰어난 아들을 많이 둔 것으로 유명하다. 조위를 세운 문제 조비와 칠보시로 유명한 조식은 조조와 함께 건안칠자에 들어갈 정도로 문학적 재능을 자랑했다. 북송시대에 소순, 소식, 소철 삼부자가 당송팔대가에 들어간 경우와 비교할 만하다. 조조의 아들 가운데 지혜와 인품으로는 조충이 가장 뛰어났다.

   조충은 조조와 환(環)부인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자를 창서(倉舒)라고 했다. 소년시절부터 관찰력과 지혜가 뛰어났다. 손권이 거대한 코끼리를 보내자 조조가 부하들에게 무게를 재는 방법을 물었지만 아무도 제시하지 못했다. 조충이 말했다. “코끼리를 큰 배에 싣고 물에 잠긴 흔적을 선체에 표시합니다. 다시 무게를 달 수 있는 작은 물건을 흔적이 있는 곳까지 잠길 정도로 싣습니다. 나중에 작은 물건의 무게를 더하면 알 수 있습니다.” 조조는 형벌을 엄격히 시행했다. 창고에 넣어둔 조조의 안장을 쥐가 갉았다. 창고지기가 자수하려고 하자 조충은 3일만 기다리라고 말렸다. 조충은 쥐가 갉은 것처럼 자기의 옷을 찢은 후에 일부러 울먹였다. 조조가 까닭을 묻자 조충이 대답했다. “쥐가 옷을 갉으면 주인에게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고 합니다.” 조조는 쓸데없는 말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달랬다. 며칠 후 창고지기가 사정을 보고하자 조조는 웃으며 내 아들의 옷을 곁에 두었는데도 쥐가 갉았다고 하면서 창고지기를 용서했다. 조충은 마음도 인자했지만 모르는 것이 없었다. 그는 죽을 죄를 진 사람을 수십명이나 구해주었다. 조조는 조충을 후계자로 삼을 생각을 했으나 불행히도 13세에 중병에 걸리고 말았다. 조조는 직접 하늘을 향해 조충의 생명을 구해달라고 애원했다. 조충이 죽자 조조는 몹시 슬퍼했다. 조비가 위로하자 조조는 나에게는 불행이지만 너에게는 행운이라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조조는 견씨의 죽은 딸과 합장해주고 친척의 아들 조종(曹琮)을 후대로 삼았다.  

   동한 말년에 남방에서 산닭을 조조에게 바쳤다. 조조는 산닭이 춤을 추게 하고 싶었다. 조충이 커다란 거울을 산닭의 앞에 두자, 거울을 보고 춤을 추면서 그치지 않다가 결국 죽고 말았다. 형주의 신동 주불의(周不疑)가 허도로 와서 조충과 친하게 지냈다. 조조도 두 아이를 매우 사랑했다. 조충이 요절하자 조조는 주불의를 볼 때마다 조충이 생각나서 괴로웠다. 어느 날 조조가 주불의를 죽이려고 하자 조비가 말렸다. 조조는 너는 이 아이를 다스릴 수 없다고 말한 후 기어코 주불의를 죽였다.

   조충이 코끼리의 무게를 쟀다는 것에 의문을 품은 사람들도 있다. 하작(何焯)은 손권이 건안 15년에 보즐(步騭)을 교주자사로 파견했고, 사섭(士燮) 형제가 동오를 받든 이후에 코끼리를 얻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조충은 건안 13년(208) 이전에 이미 죽었으므로 조충이 코끼리의 무게를 달았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배에 물의 흔적을 새겨 무게를 다는 방법은 이전에도 있었다. 소진함(邵晋涵)은 ‘부자(符子)’에서 연소왕이 유사한 방법으로 커다란 산돼지의 무게를 단 적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진인각(陳寅恪)은 코끼리의 무게를 단 고사는 불경에도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중원에는 코끼리가 없었으므로 손권이 코끼리를 조조에게 보낸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코끼리의 무게를 잰 고사는 한역불경에서 자주 볼 수 있다. 북위시대에 번역한 불경 ‘잡보장경(雜寶藏經)’에 유사한 고사가 있다. ‘잡보장경’의 번역은 서진초기에 완성된 삼국지보다는 늦지만, ‘잡보장경’의 내용이 다른 불경에도 많이 나오므로 코끼리의 무게를 잰 고사도 불경을 번역할 때 사용됐을 가능성도 있다. 혹자는 이전에 불경의 번역이 완성됐으나 유실돼 고증할 방법이 없다고도 하고, 혹자는 구전을 통해 중국에 전파돼 조충의 지혜로 변했을 것이라고도 한다. 조충이 코끼리의 무게를 단 것에 의문을 품기 시작한 것은 청대에 이르러서였다. 현대의 역사지리학과 생물학자는 진인각의 주장을 지지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료를 통해 남북조시대까지 지금의 안휘, 호남, 강소에서 야생코끼리가 살았다는 것을 밝혀냈다. 손권은 200년 무렵에 강동을 장악하고 회계태수로 봉해졌다. 동한시대에 회계군은 복건성 일대까지 관할했다. 그렇다면 조충의 유년기에 손권이 코끼리를 보냈을 수도 있다. 사실 여부를 떠나서 조충이 오래 살았다면 중국사도 많이 바뀌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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